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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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여행경보/설명문서)]
[1]
[2]

서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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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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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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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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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86,600km²
인구9,780,780명(2015)
공용어아제르바이잔어
수도바쿠
정치 형태이원집정부제
대통령일함 알리예프
총리아르투르 래시자데
통화아제르바이잔 마나트
국교없음[3]
종교이슬람 93.4%(대다수가 시아파), 기독교 3.1% 등
1인당 GDP8,303$(2014)
Azərbaycan Respublikası아제르바이잔어, 아재르바이잔 레스푸블리카스
Azerbaycan Cumhuriyeti터키어, 아제르바이잔 줌후리예티
جمهوری آذربایجان페르시아어, 좀후리예 어자르버이전
Republic of Azerbaijan영어
Азербайджан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Азербайджан러시아어, 아제르바이잔
Ադրբեջան아르메니아어, 아드르베잔
აზერბაიჯანი조지아어, 아제르바이자니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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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민족
서아시아, 동유럽[4]캅카스에 위치한 내륙국이며[5] 수도는 바쿠.[6] 정식 국명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Azərbaycan Respublikası)이다. 본토에서 아르메니아 구석에 떨어져 있는 영토는 나히체반(Naxçıvan, 나흐츠반) 자치 공화국인데 소련 치하의 행정 체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산유국인지라 이명은 '불의 나라(Odlar Yurdu)'. 나루토의 나뭇잎마을은 사실 아제르바이잔에 있다. 그러고 보니 서쪽은 내륙, 동쪽은 바다 이명답게 땅 속에서 자연적으로 분출하는 천연가스로 만들어진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풍경을 실제로 아제르바이잔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2 역사

2.1 고대사

고대부터 메디아의 일부로 간주되던 지역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정복으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멸망할 때 페르시아의 메디아 지역 사트라프였던 아트로파테스(Aτρoπάτης)는 항복하여 사트라프 자리를 무사히 유지했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한 후 디아도코이들이 제국을 갈라먹을 때 아트로파테스가 다스리던 메디아를 둘로 쪼개서 빼앗으려 하자 아트로파테스는 메디아 북쪽 구석을 차지하고 독립해 버렸다. 이 일대를 아트로파테스의 땅이라 하여 고대 그리스어로 아트로파테네(Ἀτροπατηνή), 페르시아어로 아다르바다간(Ādharbādhagān), 혹은 아투르파타칸(Āturpātākān)이라고 했다. 이 아투르파타칸이 아다르바야간(Ādharbāyagān) 같은 식으로 점차 발음이 변하여 현대 페르시아어의 어자르버이전(آذربایجان, Âzarbâyjân)이 되었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현대 페르시아어로 어자르버이잔은 (آذر)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이후 아투르파타칸 세력은 독립을 유지하다가 BC 2세기 경 파르티아가 남하해 왔을 때 복속되어 사산 왕조 시대까지 확고한 페르시아령이 되었다. 특히 로마 제국과의 분쟁지역인 아르메니아에 가까웠으므로 요충지였다.[7] 이후 이슬람 세력의 대확장 시기에 이슬람 제국에 편입되었고, 현 아제르바이잔인의 원류가 되는 튀르크인들이 도래한 뒤에는 튀르크인들에게 언어적으로 동화되어 완전히 튀르크화되었다. 이란 고원과 캅카스 산맥, 북쪽의 스텝 지대, 남쪽의 평야 지대로 이어지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주변 세력의 흥망성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2.2 근대사

중세 역사상 특기할 점이라면 셀주크 제국이 붕괴되었을 때 아제르바이잔의 튀르크 세력이 꽤 강력한 독립 세력을 이뤘었다는 점과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가 처음에 아제르바이잔 근처에서 발흥했다는 점 정도다.

근대 들어서는 이란의 세력이 크게 위축되고 러시아 제국캅카스 남하 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붕괴 이후인 1918년 4월말에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의 일원으로 조지아, 아르메니아와 함께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였으며 같은 해 5월 28일 자캅카스 연방에서 탈퇴하여 '매햄매드 애민 래술자대(Məhəmməd Əmin Rəsulzadə)'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이슬람권 최초의 의회 민주주의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1920년 4월말 소련군에 의해 수도인 바쿠를 점령당하면서 소련에 편입되었고 래술자대는 유럽 곳곳을 떠돌다 1955년 터키에서 죽었다.[8] 이후 1922년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거쳐 1936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었으며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독립하였다. 페르시아의 일부였던 역사가 꽤 길기 때문인지 현대 아제르바이잔 국가 말고도 이란 북서부 아제르바이잔 접경지역에 동/서 아제르바이잔 주(州)가 따로 있다.[9]

2.3 현대사

옆나라인 아르메니아와는 1988~1994년 동안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자주 무력 충돌을 벌였다. 전면전으로 발전한 것은 1992년 겨울부터였고, 이 때문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이 와중에서 양쪽 다 천여명 가량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이거 가지고 아르메니아에게 니들도 똑같은 학살자라고 주장하고, 아르메니아인은 300만명 학살과 천여 명 학살이 동등한 범죄냐고, 그리고 학살은 니들도 했다고 받아치고 있다. 어차피 규모도 미미한 수준이기에 국제사회에서는 별 관심도 없다. 사실 이 당시 아르메니아는 미국의 엄청난 지원을 받았다. 1992년만 해도 아르메니아는 102억 달러라는 엄청난 미국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이스라엘과 비슷한 상황이다. 즉 미국에 이민간 아르메니아인들이 미국에 로비를 해서 이런 결과를 얻어낸 것. 사실 아르메니아인들은 유태인 다음가는, 해외에서 성공을 이룬 민족 중 하나이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인들이 이렇게나 외국에서 성공한 이유가 터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 떄문에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고,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몹시 미묘하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하여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에게 이슬람 형제로서 도와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 독소전 때나 쓰였을 인해전술이 부활한 것도 이 때. 연이은 패배에 아제르바이잔은 미국의 배후 탓이 크다며 반미 여론이 크게 일어나 아르메니아와 전쟁 중이던 1993년에 수래트 휘세이노프(Surət Hüseynov) 대령의 군부 쿠데타로 2대 대통령이자 친미 및 서구정책을 취하던 애뷜패즈 엘치배이(Əbülfəz Elçibəy)가 퇴진한 [이후] 아제르바이잔 KGB 의장과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던 헤이대르 앨리예프(Heydər Əliyev)가 대통령이 취임하여 2003년까지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앨리예프 정권이 수립되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아제르바이잔은 뒤늦게 반격하여 아르메니아군을 물리치며 20% 정도나마 빼앗긴 영토 일부분을 되찾긴 했다. 그 뒤 헤이대르 앨리예프가 건강악화로 물러난 이후 그의 장남인 일함 앨리예프(İlham Əliyev)가 집권하고 [있다.]

앨리예프 정권 수립으로 러시아는 이제 아제르바이잔 눈치도 봐야했고 아제르바이잔의 패배에 터키 국경지대 나히체반까지 위험할 지경에 이르자 터키군도 참전할 분위기를 보이면서 자칫하면 세계대전급으로 규모가 커질 수 있기에 러시아와 미국이 중재하며 일단 전쟁은 멈췄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비호를 받은 나고르노-카라바흐가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제적으로 전혀 인정을 못 받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2008년에 무력으로 영토를 되찾을 것을 다짐하는 등 아직 평화 정착과는 거리가 멀다. 덕분에 터키와 혈맹이면서도 터키가 아르메니아와 화해하려고 하면 가장 결사반대하여 두 나라를 낭패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2010년 두 나라의 화해적 제스처에 앨리예프 대통령이 터키 대사를 소환해 혈맹인 터키가 이러면 실망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을 정도이다. 게다가 2008년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자 터키는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공식승인하고 코소보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2016년 4월 현재,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양측이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지역에서 전투를 벌여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 큰 타격을 입히고 몇 지역을 점령한 상태[이다.] 탈탈털렸던 과거에 비해 이번 전투에서 아르메니아군을 약 120명 이상이나 사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경전체에 걸친 전면전을 선포한 상태이다.

20여년전과 달리 이번 분쟁에 대해 미국은 은근히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메니아는 친러 정책이 강화되었고 러시아가 강력하게 지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20여년전과 달리 반미적인 분위기를 많이 거두고 러시아어를 배제하고 미국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계 미국 정치인들이 로비하려고 해도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러시아가 경제 및 군 여러 모로 장악한 현실에서 더 이상 친아르메니아적인 미국의 지원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아르메니아는 침묵했고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의 침략과 학살이 들어간 전쟁이라고 강력 비난했던 걸 봐도.

2009년에 3선 금지 조항을 폐지한 이후, 2016년에 대통령 임기연장하는 개헌투표가 시작되면서 대통령의 권한 강화에 따른 권력집중우려도 나오고 있다.[#]

3 경제


4 사회

산유국이기에 일단 경제적으론 대략 어려움은 없다. 물가도 엄청 비싸기로 유명한데 거의 한국 물가와 맞먹어 주변 나라에선 가장 비싼 물가를 자랑한다.였으나 국제 원유가가 폭락하면서 1달러 = 1마나트였던 환율이 1.5달러 = 1마나트 수준까지 떨어졌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하는 비자 간편화 및 비자 수수료 인하 등을 통해 관광으로 경제난을 어느 정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돈 많이 벌었던 산유국이기에 전반적으로 대중 교통 시설 및 화장실은 제외한 인프라는 정말 잘 되어있다. 특히 박물관은 일본마저 가볍게 눌러 줄 수준.

물가는 한국인 입장에서 정말 싸다. 일부 옷이나 레고(...( 말고는 거진 다 한국보다 싸다. 2016년 7월 기준으로 대중 교통 한 번 이용 160원, 빵 하나 400원, 담배 한 갑 1200원 정도. 식당에서 식사비는 한국 보다 30% 이상 저렴하다고 보면 된다.

상인들도 어느 나라든 관광객에게 그렇듯 택시 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직한 편이다. 다만 공항 직원들은 믿지마라. 이상한 직원들 많다. 공항 환전소에서 마나트->달러 교환시 직원이 남는 돈을 먹을 수도 있고, 가방 랩 포장 권유를 거절하니 욕하는 직원도 있고, 출국 검사시 윙크를 하는 직원도 있고 공항 밖을 나가면 버스 이용을 묻는데 택시 이용을 자꾸 권하는 경찰이 있을 정도. 공항 시설은 세련되고 빛나지만 서비스는 중국 공항보다 훨씬 못한 수준이다.

경찰 국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경찰들이 도처에 있으며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닐 정도의 좋은 치안을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강압적 자세를 취하기도 하니 혹시를 대비해서 항상 여권을 소지함을 추천한다.

많은 경찰들이 있다고 해도 지하철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소매치기 당하기도 하니 백팩을 들고 다니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그냥 지퍼를 열고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칼로 찢어서 빼간다. 그리고 인종차별도 심하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전 만해도 중국인 상인들이 아제르바이잔에 정말 많았는데, 얼마 못가서 망가지는 싸구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었다. 이었다. 거기다 상인들 대부분이 가방에 물건들을 가득채우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돌아다녔고 그런 모습들 때문에 중국인을 엄청 무시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오면 '친'(중국인을 낯추는 말) 또는 '칭챙총'(중국어를 따라하는 말)이라며 비아냥거린다.

나라 자체가 유명하지 않고 과거 고환율 국가 및 까다로운 비자 발급 등의 이미지로 관광객이 적은 편이다.

가장 자유로운 이슬람 국가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히잡 쓴 여인들보다 자유롭게 자기를 꾸미는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여성 인권도 타 이슬람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나라다.

빈부격차와 여러가지 부조리가 있으며, 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건너온 80만이 넘는 이들은 난민 신세로 가난 속에 살아가는데, 일부러 이들을 어렵게 하면서도 아르메니아에게 그 증오를 부채질하게 만드는 점도 있다. 덕분에 여기에선 아르메니아 교회라느니 뭐니 말 함부로 하다간 아주 곤욕치룬다고 할 정도.

이 나라의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서 2년의 군생활을 해야 한다. 왜 이런 차이가 있냐면 대학을 졸업하고 가면 1년 대학을 안가고 입대하면 2년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남자 취급 받기 힘든 분위기가 한국보다 심하다. 남자 친구가 군대를 간 경우 놀랍게도 여자들은 대부분 기다린다고 한다. 대부분 입대 전에 결혼을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결혼한다. 그 전에 결혼하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를 잘 다니던 여자애가 학교를 안나오면 거의 100%결혼한 거다. 아니면 보쌈 당했거나...

전반적으로 남녀 간의 정숙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다.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커플들은 많지만 손잡기, 어깨 감싸기, 팔짱 끼기 이상을 하는 커플들은 없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연락처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여기 남자들만의 헌팅 방법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거나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자기 번호를 입으로 직접 불러 주는 것(어떻게 외우라고...그런데 신기하게도 외운다. 어렸을 때부터 죽어라고 외우게하는 주입식 교육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험문제가 2천 단어되는 시를 외워서 적기 또는 책 한 권 전체 외워서 적기다. 물론 다 적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에 대해 책에서 기술한 것을 적는 것이다.)

결혼도 여자는 20대 초중반, 남자는 20대 중후반에 하고 아이도 둘~넷 낳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니 전반적으로 연애 부분에서 사회 풍토는 70~90년대 초반 한국과 흡사.

5 문화

국기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이 들어가지만, 소련 시절을 거치며 터키 영향을 받아 상당히 세속화되어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국가같지 않다고 한다. 수도 바쿠를 여행간 외국인들이 유럽 어느 나라 동네 온 느낌이라고 할 정도이며 히잡은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런 이 나라도 계속되는 기독교 선교에 대한 반감 때문에 2012년부로 오래 전부터 거주해온 기독교인을 제외한 외국 기독교 선교를 일절 금지한다는 법을 통과했다. 물론 이 나라도 터키 영향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는 강제로 막는다. 그런데 이런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2016년 4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조직도 아니고 아제르바이잔 정규군 브콘탁테 공식 계정에 참수된 아르메니아 병사 머리 사진이 올라오는 초대형 병크가 터졌다. 당연히 브콘탁테 측에서 삭제했지만 이미 뉴스로도 뜨고 러시아 인터넷에 다 퍼졌다... 물론 이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아니라 아르메니아를 극도로 증오하다보니 벌어진 일이긴 하다.

사실 캅카스는 원래 중동 극단주의자들 보다 막가는 동네로, 애초에 공개참수가 캅카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중동에 건너와서 확산시킨 것이다. 러시아군도 이 놈들과는 정상적인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극혐)반군 시체를 갈고리에 걸고 헬리콥터에 연결해 전국을 순회공연]하는 곳이다.[10] 그럼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니 이들의 성깔머리를 알만하다.

5.1 음식

주요 특산물로는 와인이 있다. 그러나 조지아의 와인과 아르메니아의 코냑이 워낙 유명하여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카스피해에서 나는 캐비어로도 유명하다. 놀랍게도 한국에서도 아제르바이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신촌에 '바쿠'라는 상호의 아제르바이잔 레스토랑이 영업중.


5.2 언어

아제르바이잔어를 공용어로 정했다. 독립 이후 키릴 문자로마자로 바꾸면서 키릴 문자 사용을 금지했다. 러시아어도 쓰이고 있지만, 배제정책때문에 바쿠에서만 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보니까 소련시절보다는 러시아로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다.[11] 최근에는 바쿠에서조차도 젊은이들은 러시아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고, 갈수록 영어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추세이다. 웬만한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영어를 쓸 줄 안다. 영어만 쓰고도 여행에 큰 불편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 아르메니아어, 소수의 타트어탈리시어 사용자도 존재하고 있다.[12]

터키어를 잘 하면 아제르바이잔에서 꽤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두 언어가 상당히 흡사하다

5.3 종교

이슬람이 다수. 이웃 나라 이란과 더불어 시아파가 주류지만, 수니파도 상당히 많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수니파가 다수였으나,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면서 아제르바이잔의 수니파 무슬림들 중 상당수가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참고로 오스만 제국과 현재의 터키는 수니파가 주류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들이 공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종교 갈등은 거의 없는 편이다.

터키중앙아시아처럼 꽤나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특히 무종교/무신론/종교가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밝힌 인구 비율이 54%로 이슬람권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이슬람교인들도 라마단은 지켜도 특정 시간마다 절하는 모습은 안 보인다. 이 문장을 쓴 필자의 친구는 필자에게 구경 시켜준다고 2년 만에 모스크를 방문해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이 나라에서 기독교 하면 아르메니아 정교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기독교 종파들이 선교할 때 고전하는 나라인데, 가령 한국인 개신교 선교사가 90년대 중순에 아제르바이잔에 가서 선교하다가 현지인들에게 돌팔매질당한 사례도 있는데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랑 우린 다르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추방당했다고 한다.[13] 정작 아르메니아도 다른 기독교 종파 선교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은 함정이지만.


5.4 음악

음악인으로는 첼로의 본좌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Мстислав Ростропович)가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러시아인이다. 그는 1927년 바쿠 유전지대에서 태어났으며, 그를 기념하는 음악원과 박물관이 바쿠 시에 세워졌다. 2007년 그가 죽자 기념비나 동상도 세워졌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2011에서 우승하긴 했으나, 이래저래 묻혔다. [14] 사실 유로비전 우승을 이전에도 터키나 이스라엘도 했으나 같이 묻혀진 적이 있다.


5.5 스포츠

축구 인기가 많으나 실력은 유럽 약체. 프로리그도 약체급이지만 최근에는 몇몇 석유부호들이 투자해서인지 리그는 중하위에서 조금 나은 편. 앙숙인 아르메니아 리그(하긴 여기가 50위로...최약체 랭킹이긴 하다. 참고로 54개 유럽축구연맹 가입국에서 최약체 순위)보다 꽤 높은 유럽리그 랭킹 30위권대를 유지하고 있다.

2012~13 유로파 리그 3차예선에선 아제르바이잔 리그 PFC 네프치가 11-12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오르며 이변을 일으킨 아포엘 FC를 원정에서 3:1로 이기며 결국 아포엘을 탈락시키고 유로파 리그 32강까지 오른 바 있다.

국대 축구는 아제르바이잔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배구도 인기가 많고 협회 차원에서 투자를 많이 하여 배구 리그 수준이 상당히 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듣보잡이지만 여자배구는 터키, 이탈리아,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정상 리그로 인정받는다. 다만 앞선 세 나라의 인구 및 시장성에 비해 아제르바이잔이 뒤떨어져서 국제적으론 좀 낯선 반응을 받는게 많다. 대한민국 여자 배구선수 김연경도 아제르바이잔 프로배구단 아제랄 바쿠에서 세계최고급 연봉 20억을 제시하고 [있었으나] 터키로 건너갔다. 이탈리아터키 리그에서 날고기는 선수들이 아제르바이잔 리그에서 뛰던 경우가 많다. 현재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 뛰고 있는 전 국가대표 세터 김사니가 아제르바이잔 리그 팀인 로코모티브 바쿠에서 1년 동안 뛰었다.

올림픽에선 이웃 아르메니아와 함께 레슬링이 유독 강하다. 어느정도냐면 러시아 바로 아래다. 레슬링은 이 나라에서 금메달을 노려볼수 있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며, 유도와 역도에서 메달리스트에 종종 이름을 올리긴 하지만.......나머지 종목은 그저 안습.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레슬링에서 금메달 2개를 받았다. 금 2개,은 2개,동 6개로 종합 30위. 그래도 터키(금2개,은 2개,동 1개,32위)와 아르메니아(은 1개,동 2개로 공동 60위)를 제쳤다.

2016년 여름 올림픽 유치를 꿈꿨지만 실패했고, 다시 2020년 바쿠에서 여름올림픽 유치를 노렸으나 역시 실패했다. 최종 후보[15]에 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물거품은 아니었는지 처음 열리는 유로게임인 2015년 유로게임은 바쿠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2016년에는 처음으로 수도 바쿠에서 F1 그랑프리를 열었다. 당연히 스트릿 서킷이었고 스트릿 서킷임에도 순간최고속도 378km/h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말도 안되는 고속 서킷이었음이 특징.

6 외교 관계

6.1 터키

아르메니아와 달리 또 다른 이웃 터키와는 매우 사이가 좋은 편. 터키아르메니아가 사이가 나쁜 점도 있거니와, 아제르바이잔이 인구 90%이상이 튀르크 계열이라서 형제의 나라라는 동질감도 크기 때문이다.[16] 터키어도 꽤 많이 쓰이는 편인데다가 아제르바이잔어 자체가 터키어와 상당수의 단어가 일치한다. 문법도 거의 비슷해서, 엔간해선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하에) 아제르바이잔인이 터키어를 알아듣고, 터키인이 아제르바이잔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17] 이러다 보니 친터키 극우들도 입지가 꽤 센 편이다. 심지어 러시아어가 바탕인 기존 나랏말 대신 터키어와 비슷한 라틴어 위주 언어로 바꿔 러시아에서 벗어나고 터키와 가까운 나라로 가자고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다만, 북키프로스의 정식 국가 인정 문제만은 아제르바이잔도 찬성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키프로스를 괴뢰 정부로 간주하는 것이 대다수 국가들의 의견이고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문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측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을 아르메니아 밖의 전세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18] 아르메니아에서 기회가 되면 여길 인정해 달라고 그리스 같이 터키와 사이가 안좋은 나라들에게 부탁하지만, 그리스 뿐 아니라 여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부정적인 나라들도 죄다 거부한다. 이 전쟁 와중에 아르메니아군이 벌인 양민 학살이나 여러 문제를 무시할 수 없고, 여길 인정하면 북키프로스나 코소보, 압하지아, 남오세티아 같은 여타 미승인국들에 대한 인정 문제도 얽혀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터키에서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공식 승인하고 지지하지만 정작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이로 인해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친러 외교정책을 취하며 러시아 눈치를 많이 보이게 러시아와 같이 때문에 코소보 승인을 강력 반대하고 있다.

더불어 경제적으로 터키에 의존하는 면도 크다. 터키 없으면 완전히 내륙국가 신세이기에 카스피해는 바다가 아니라 내륙에 갇힌 소금물호수일 뿐이다 무역이나 여러가지로 터키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며, 군사력의 상당부분도 터키군과 긴밀한 관계이다.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이후엔 노골적으로 협조체제를 구축해 공동군사훈련은 물론이고, 아제르바이잔 장교 후보생들이 터키 가서 훈련 및 교육도 받는다.


6.2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는 위에 현대사를 봐도 알겠지만 영토 문제로 이를 갈기에 사이가 무척 나쁘다. 아르메니아 학살 자체를 코웃음치면서 과장된 징징거림이라고 무시한다. 그리고 아르메니아가 유엔결의안이라도 내놓으려고 하면 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군이 저지른 호찰르 학살, 카살리 학살을 비롯한 여러 학살을 언급하면서 결의안을 가로막기로 알아준다. 이것만은 터키에 부정적인 나라들도 뭐라고 하지 못해 아르메니아로서는 화딱지날 상황.

2012년 8월 31일, 헝가리 당국이 아제르바이잔 정부로부터 처벌한다는 약속을 받았다면서 2004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군사학교에서 같이 언어 연수를 받던 아르메니아군 장교인 구르겐 마르가랸 소령(사망 당시 대위로 26세. 소령으로 추서)을 도끼로 살해한 죄[19]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아제르바이잔군 대위였던 라밀 새패로프(Ramil Səfərov,1977~ )를 수형자 이송 협약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송했는데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새패로프 대위가 도착하자마자 즉시 석방시키고 소령으로 진급까지 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더불어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영웅으로 환대했다.

Ramil_Safarov_killer_baku1.jpg
아르메니아 시위대가 들고 있는 저 사진에서 당연히 왼쪽이 가해자 새패로프. 오른쪽은 피해자 마르가랸.

분노한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은 즉각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으며, 두 나라 사이에 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 건은 하도 병크라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어주는 나라는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하지만 겨우 한 명이 죽은 사건이라 그런지(...) 국제적으로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여전히 배째~이러고 있고 터키나 주변 나라들은 편들어주지 않아도 모른 척 하거나 별 반응이 없다. 유로마이단 같은 훨씬 크나큰 주변 상황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에서는 이 사건이 묻혀지고 있다(...).물론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은 항의시위를 벌였고 미국 정계도 일단 비난했다. 백악관안전보장회의 대변인 토미 비에터(Tommy Vietor)는 오바마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라밀 사파로프가 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그를 사면해 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며, 사파로프에 대한 사면 결정은 역내 긴장 완화와 화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현재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측의 실망을 아제르바이잔 측에 전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토미 비에터는 “미국 측은 헝가리 정부가 사파로프를 아제르바이잔으로 송환한 조치에 대한 해명을 요청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스크그룹의 공동 대표인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 사안을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협약한 자원 개발에 피해가 갈까 그리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곧 미국에서도 유로마이단이라든지 다에쉬 같은 문제로 묻혀져 버렸다. 이란도 비난했지만 가해자 새패로프가 시아파 무슬림이라 난감해했다.

6.3 조지아

또다른 이웃인 조지아와는 소 닭보듯 지내다가, 남오세티아 전쟁 이후 아르메니아를 대신할 철도 및 자원 라인으로 간택(?)해 친하게 지내려고 드는 중. 조지아도 경제적으로 개판된 터에 러시아와 더불어 터키,아제르바이잔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터라(조지아/경제 항목 참고. 이들 3나라가 조지아 수출입 절반이나 되는 비중을 차지한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과 친하게 지내고자 한다.

이런 가운데 2020 유로컵에서 조지아와 같이 공동개최 경쟁후보로 나섰다. 조지아의 축구경기장 투자도 같이 나선다고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미셸 플라티니가 2020 유로컵을 한두 나라가 아닌 유럽 여러 도시 분산 경기로 이룰 계획안을 내보이면서 조지아와 같이 분노하고 있다. 미셸 플라타니 항목 참조.


6.4 러시아

러시아와는 애증의 관계.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 모든 강제 가맹국들이 그러하듯이 아제르바이잔도 민족주의자들,지식인이 엄청나게 학살당했다. 소련의 일부가 된 후 스탈린 시절에는 5만명이 넘는 아제르바이잔 인들이 학살당했는데 그 중에는 이슬람 성직자도 장난아니게 많았다고 한다.더불어 언어도 박해당하고 러시아어를 강제적으로 배워야 하며 문화도 많이 파괴되었다. 더불어 1988년 숨가이트 학살이라고 아제르바이잔에서 부르는 아르메니아와의 충돌 당시, 고르바초프 정권이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고 카살리 학살에서 지원하던 점으로 급격한 반러시아 붐이 일어나 미국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졌지만 위에 나오듯이 미국이야말로 더 노골적으로 아르메니아를 편들었기에 친서구정책을 취하던 민주정부가 무너지며 앨리예프정권이 집권하면서 친러 정책으로 나서게 하였다. 그러다보니 러시아건 미국이건 둘 다 개색히라고 반발도 많다 보니, 차라리 터키가 낫다고 급격한 친터키 정책을 취한다.


6.5 미국

위에 서술하듯이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반미 감정이 엄청나던 곳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아르메니아가 강력한 친러 외교 정책에 러시아군 주둔과 같이 경제적이라든지 여러 모로 러시아 입김을 벗어날 수 없게 되면서 미국과 거리를 두고 아제르바이잔도 반미감정이 수그러들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제 국가 정책으로 러시아어를 배제하고 영어 공부를 학교에서 시키기도 하고 유엔 총회라든지 여러 외교적 논의에서 미국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보니 미국으로서도 터키-조지아를 연결하는 러시아 견제에 딱인 아제르바이잔을 생각하면서 차츰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


6.6 파키스탄

파키스탄과도 사이가 좋다. 아예 파키스탄에선 아르메니아 학살을 엉터리로 여기며 아르메니아와 국교수립도 하지 않았다.반대로 파키스탄과 이를 가는 인도 공화국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교수립은 했으나 아르메니아와 매우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6.7 이란

반대로 이란과 사이는 그럭저럭 지내는 편. 이란이 아르메니아를 두둔하는 게 많아서인지 이란을 질색하는 것도 있지만 이란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갈등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는데 아제리인, 즉 아제르바이잔계 거주민이 본국보다 많이 이란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8180만 이란 인구 20%가 넘는 인구층이 바로 아제리인으로 현재 이란 권력자인 하메네이도 바로 이런 아제리인이다. 하지만 이란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종교적인 꼴통이라 세속적인 정책을 취하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제리인으로서 하메네이는 아제르바이잔과 관계를 잘 지내자고 하지만...2000년 중반에 이란의 한 만화에서 그냥 바퀴벌레아제르바이잔어로 한마디(겨우 대답 한마디)하는(...) 묘사를 그리자자기네 지도자 디스 아제르바이잔인을 바퀴벌레로 봤다며 이란 거주 아제리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아제르바이잔에서도 분노하며 이란 대사관 앞에 시위가 벌어지는 일이 벌어졌을만큼 이란에 대하여 속으로 불만이 크고 견제하는 게 많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인구 상당수가 시아파라는 점 때문에 역시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과 애증적인 관계가 있다.정작 이란과 같은 페르시아족인 타지크인들은 수니파라는게 함정카드


6.8 대한민국

대한민국과는 1992년 수교하였고 그 동안에는 주 일본(아제르바이잔) 및 주 러시아 대사관(한국)에서 겸임해왔다가 2007년 상호간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한국인들은 공항 직원들 조차 이 나라를 모르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거진 다 한국을 안다(...) 소수의 한류 팬들이 존재하는 나라이며 길에서도 쉽게 현대차, 기아차,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LG전자 에어컨을 발견 할 수 있기도 하다. 한류팬들을 대상으로하는 상점도 있는 한국 화장품 전문(고가에 판매 된다고 한다) 매장도 있다. 러시아의 영향으로 초코파이를 필두로 한 오리온 과자들도 상점에서 볼 수 있다. 초코송이, 고래밥 등의 제품도 다른 이름으로 팔린다.

7 국가

아제르바이잔의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행진곡(Azәrbaycan Marşı, 아재르바이잔 마르시으)은 간지돋는 웅장한 국가 중 하나다.

아제르바이잔어한국어 가사

Azərbaycan! Azərbaycan!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Ey qəhrəman övladın şanlı Vətəni! (에이 개흐래만 외블라든 샨르 배태니!)
오 용맹스러운 자녀들의 영광의 땅이여
Səndən ötrü can verməyə cümlə hazırız! (샌댄 외트뤼 잔 베르매얘 쥠래 하즈르스!)
그대를 위해 우리 모두 마음을 바칠 준비가 되었도다
Səndən ötrü qan tökməyə cümlə qadiriz! (샌댄 외트뤼 간 퇴크매얘 쥠래 가디리스!)
그대를 위해 우리 모두 기꺼이 피흘릴 준비가 되었도다
Üçrəngli bayrağınla məsud yaşa! (위치랜글리 바이라근라 매수트 야샤!)
삼색기와 함께 행복하고 영원하리
Üçrəngli bayrağınla məsud yaşa! (위치랜글리 바이라근라 매수트 야샤!)
삼색기와 함께 행복하고 영원하리

Minlərlə can qurban oldu, (민래를래 잔 구르반 올두)
수천의 영혼이 희생 되었고
Sinən hərbə meydan oldu! (시낸 해르배 메이단 올두)
그대의 가슴은 전장이 되었네
Hüququndan keçən əsgər, (휘구군단 케챈 애스개르)
그로부터 세상을 뜬 용사들은
Hərə bir qəhrəman oldu! (해래 비르 개흐래만 올두!)
모두가 영웅이 되었네

Sən olasan gülüstan, (샌 올라산 귈뤼스탄)
그대가 만발한 장미동산이 되기를
Sənə hər an can qurban! (새내 해르 안 잔 구르반!)
그대를 위해 우리 모두 희생하리
Sənə min bir məhəbbət (새내 민 비르 매해배트)
그대를 위해 수천의 우리가 하나의
Sinəmdə tutmuş məkan! (시냄대 투트무시 매칸!)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애정으로

Namusunu hifz etməyə, (나무수누 히프스 에트매얘)
그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Bayrağını yüksəltməyə (바이라그느 윅샐트매얘)
그대의 깃발을 높이 들기위해
Namusunu hifz etməyə, (나무수누 히프스 에트매얘)
그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Cümlə gənclər müştaqdır! (쥠래 갠즐래르 뮈슈타그드르!)
모든 젊은이들이 뛰어나가네
Şanlı Vətən! Şanlı Vətən! (샨르 배탠! 샨르 배탠!)
영광스러운 조국! 영광스러운 조국!
Azərbaycan! Azərbaycan!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Azərbaycan! Azərbaycan!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자매품으로 소련 치하때 쓰인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도 있다.


1절
Azərbaycan! Çiçəklənən respublika, şanlı diyar! (아재르바이잔! 치채클래낸 레스푸블리카, 샨르 디야르!)
아제르바이잔! 꽃핀 공화국, 영광스러운 고을이여!
Qadir sovet ellərində həm azadsan, həm bəxtiyar. (가디르 소베트 엘래린대, 햄 아자드산, 햄 배흐티야르)
위대한 소비에트의 손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네.
Oktyabrdan qüvvət alıb sən qovuşdun səadətə, (옥티아브르단 귀배트 알르브 샌 고부슈둔 새아대태)
10월에서부터 힘을 얻고 그대는 행복을 맞이했네.
Alqış olsun bu hünərə, alqış olsun bu qüdrətə! (알그시 올순 보 휘내래 알그시 올순 부 귀드래태)
칭송하라 이 은총을. 칭송하라 이 힘을!

후렴
Yolumuz Lenin yoludur, partiyadır rəhbərimiz, (욜루무즈 레닌 욜루두르, 파르티야드르 래흐배리미스)
우리의 길은 레닌의 길이며, 당은 우리를 인도하네
Kommunizmin günəşilə nurlanacaq səhərimiz. (콤무니지민 귀내실래 누를라나자크 새해리미스)
공산주의의 태양으로 우리의 새벽을 밝히리
Biz gedirik gələcəyə qaliblərin cərgəsində, (비즈 게디리크 갤래재얘 갈리블래린 재르개신대)
우리는 나아가네, 다가올 승리의 대오에서,
Yaşa, yaşa, Azərbaycan, böyük sovet ölkəsində! (야샤, 야샤, 아재르바이잔, 뵈위크 소베트 욀캐신대!)
만세, 만세, 아제르바이잔, 위대한 소비에트 국가에서!

2절
Odlar yurdu, bu ağ günlər el gücünün bəhrəsidir, (오들라르 유르두, 부 아그 귄래르 엘 귀쥐뉜 배흐래시디르)
불의 나라, 이 밝은 날들과 힘을 손에 안고
Qəhrəmanlıq, bir də hünər azad insan həvəsidir. (개흐래만르크, 비르 대 휘내르 아자트 인산 해배시디르)
그 영웅들은, 이 또한 재능있고 자유로운 인간의 갈망이라.
Nəsillərdən-nəsillərə yadigardır dəyanətin, (내실래르댄-내실래래 야디가르드르 대야내틴)
세대에서 세대로 신앙심있고, 충성스럽네
Kommunizmə biz gedirik, sıra möhkəm, addım mətin. (콤무니즈매 비스 겔디리크, 스라 뫼흐캠 아듬 매틴)
우리는 공산주의로 나아가네, 대오는 강하고, 걸음은 굳건하네.

3절
Rəşadətli rus xalqıdır dostluq, birlik bayraqdarı, (래샤대틀리 루스 할그드르, 도스틀루크 비를리크 바이라그다르)
숭고한 러시아 인민이여 우정과 단결의 깃발을 들고,
Müqəddəsdir, sarsılmazdır dost ellərin bu ilqarı. (뮈개대스디르 사르슬마스드르 도스트 엘래린 부 일가르)
성스러운, 흔들림없는 우정어린 손을 잡고
Qardaş xalqlar birliyindən aldıq gücü, qüdrəti biz, (가르다시 할글라르 비를리인댄 알드크 귀쥐, 귀드래티 비스)
형제 인민들이 하나되어 힘을 얻었고, 우리는 강하네
Qoy var olsun bu ittifaq - şanlı Sovet Vətənimiz! (고이 바르 올순 부 이티파크 - 샨르 소베트 배태니미스!)
영원하라 이 동맹 - 우리의 위대한 소비에트 조국이여!

http://turkce-azerice.cevirsozluk.com/

공교롭게도 두 국가는 모두 같은 작곡가가 쓴 것이다.[20]


8 창작물에서의 아제르바이잔

  1. 나고르노 카라바흐 및 인근 7개 지역
  2. [#]
  3. 무슬림들이 대다수이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엄연한 세속국가이다. 일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아제르바이잔의 국교를 이슬람으로 지정하자고 하고 있지만 이런 극단주의자들에게 아제르바이잔은 강경하다. 2012년에는 한 이슬람운동가에게 국가를 신정국가로 만들려했다는 혐의로 11년형을 구형했다.
  4. 동유럽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영토의 20% 가량이 지리적으로 동유럽에 속한다. 각종 정치적 국제 기구도 유럽 소속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다만 문화적으로 유럽과 다를게 없는 조지아나 아르메니아보다는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접점이 많은 편.
  5. 열린 바다는 아니지만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으며 이 바다를 통해 다른 몇몇 국가와 해로로 연결된다. 당장 수도 바쿠부터가 항구도시이다.
  6. 아제르바이잔어로는 바크(Bakı)라고 한다. 페르시아어로 '바람의 도시'를 의미하는 Bādkube(باد كوبه‎)가 어원이라고 한다.
  7. 별 상관은 없지만 까디시야 전투 당시 아랍 무슬림 군대에 맞섰던 페르시아 총사령관 로스템이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다.
  8. 래술자대의 시신은 현재까지도 앙카라의 한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9. 이란 북부는 아제리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그냥 많이 거주하는 게 아니라 1,000만 명 넘게 거주한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본국을 북 아제르바이잔(Şimali Azərbaycan), 이란령 아제르바이잔을 남 아제르바이잔(Cənubi Azərbaycan)이라 부른다. 참고로 이란의 종교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도 아제리인이다. 위 지도를 보면 아제르바이잔인이 거주하는 지역 사이에 아르메니아가 구멍 뚫린 듯 있는데, 실제로 소련 붕괴 이전만 하더라도 아르메니아에도 아제르바이잔인이 많이 거주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가 극악으로 흐르면서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아르메니아를 떠났다.
  10. 사진은 캅카스에서도 가장 막장인 체첸이지만, 다른 곳이라고 해서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11. 게다가 타지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독립후 전쟁을 겪으며 많은 러시아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12. 타트어는 페르시아어와 사촌지간인 언어이다. 러시아에도 타트어 사용자가 존재하고 있다.
  13. 출처는 월간 신앙계. 다만, 여기는 순복음교회 계열이며 굉장히 개신교 근본주의적으로 쓰다 보니 이슬람이나 불교 같은 다른 종교들은 물론 가톨릭 같은 다른 기독교 종파에 대해서도 비하하기 일쑤라서 이걸 과장하여 쓸 가능성도 있다.
  14. 자동차 CF 음악으로 나온 Lipstick이 더 인기를 모았다.
  15. 터키 이스탄불, 스페인 마드리드, 일본 도쿄.
  16. 실제로 터키가 월드컵이나 유로컵에 출전할때 관중석에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도 바쿠만 가봐도 호찰르 학살 추모비라든지 중앙공원에 아제르바이잔 국기랑 터키 국기가 같이 휘날릴 정도.
  17. 하지만 위의 국가명에서 알 수 있듯이 '공화국'을 뜻하는 말로 아랍어 جمهورية(Jumhūriyya)가 기원인 터키어 Cumhuriyet(줌후리예트), 러시아어 Республика(Respublika)가 기원인 아제리어 Respublika(레스푸블리카)처럼 외래어의 바탕이 조금 다르다. 다만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소련의 지배 이전에는 터키어에서 유래된 Cümhuriyyət(쥠후리얘트)라는 어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18.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북키프로스는 터키 혼자라도 공식 인정하고 있지만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조차도 공식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비공식이라도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먹여 살리는 게 아르메니아이다.
  19. 그것도 잠자고 있는 걸 도끼로 수십 번 난도질해 끔살했다...
  20. 위제이르 하즈배요프(Üzeyir Hacıbəyov, 1885-1948)라는 사람이 작곡했다. 1948년에 작고한 사람이 어떻게 아제르바이잔 국가를 만들수 있는지 의문을 품을수도 있을텐데, 소련 치하의 국가가 아제르바이잔 행진곡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 소련 치하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는 1944년에 완성되었는데, 아제르바이잔 행진곡은 이미 1910년대에 완성되어 소련 치하 이전이었던 아제르바이잔 민주 공화국(1918-1920)의 국가로 쓰이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