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콤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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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안나'라는 소설 표지. 오오 미녀 역사가 오오

Άννα Κομνηνή Πορφυρογέννητα(Anna Komnini Porfyroyenneta)[1]
1083년 12월 1일 ~ 1153년

동로마 제국황제 알렉시오스 1세(알렉시오스 콤네노스)와 유력귀족 두카스 집안의 황후 이레나 두카니아[2]장녀.

그녀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 《알렉시아스》로 유명하며, 동시에 극렬 파더콤으로 유명하다(…). 여튼 이 사서를 통해 그녀는 서구 최초의 여성 역사가의 타이틀을 얻었다.

1 이력

동로마 제국에 몇 없던 '포르피로옌니타'[3]로, 알렉시아드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타고난 지식광이었다. 역사, 수학, 수사법, 그리스 문학, 철학, 의학 등 당대에 공부할 수 있던 거의 모든 학문에 관심이 있었다. 이는 동시대 서유럽에서 찾아보기 힘든(남자를 포함하더라도) 수준의 지성으로서, 안나 콤네나는 문객들을 불러다 형이상학에 대한 토론도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주석을 다는 작업도 후원하는 등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었다. 알렉시아드만 봐도 수도 없이 많은 장면에서 그리스 신화나 문학, 고대 역사등을 언급하며 비교한다. 이같은 지적수준은 동대의 대사상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제국의 후계자라고 생각한 안나는[4] 어머니 이리니 두케나와 함께 알렉시우스 생전부터 제위계승 공작을 펼쳤다. 하지만 알렉시오스가 임종 직전 남긴 유언으로 자신의 남동생(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이 자신을 대신해 제위를 계승했다. 그를 끌어내리고 남편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를 황제로 옹립하려고 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남편이 퇴짜를 놨고, 이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강행된 요안니스 2세 폐위공작은 실패함으로써 결국 안나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일시적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수도(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추방당한다.

이는 곧 철회되지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그녀는 어머니가 칩거했던 수녀원에 들어가 일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반면 아내의 제위 찬탈을 거절한 부군은 그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아 평생 황제의 측근이자 고위 장군으로서 활약하게 된다. 하지만 안나 콤네나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부군에 대해 그다지 불평하지 않고 차라리 자신이 남자였어야 한다면 한심하다고 까긴 했다, 오히려 그가 자신보다 일찍 죽자 그의 유능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절절한 비통을 책에 기록하였다.
콤네노스 가문의 후손관련 1 * [1] 2 * [2]

2 알렉시아드

저작인 알렉시아드는 본래 그녀의 남편인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가 쓰던 것을 이어 쓴 것이지만, 니키포로스 브리엔니로스는 알렉시오스 즉위 이전의 황제인 미카일 7세와 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브리엔니오스와 동일인물이 아니다)의 시기까지만 기술하였으므로 실상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렉시오스 즉위 이후의 상황은 안나 콤니니가 저술하였으므로(15권의 책 중 앞의 두 부분을 제외한 13권이 알렉시오스의 제위 계승과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안나 콤니니의 저작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알렉시아드》는 동로마 측에서 바라본 제1차 십자군에 대한 시각과 당대의 주변 세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지만, 안나 콤니니는 극렬 파더콤이었던지라(…) 알렉시오스의 문제되는 행동[5]들은 상당수 언급하지 않거나 암시만 주었다. 처음에 자신의 아버지라고 좋게 보지않고 공평히 서술할 것이라고 하지만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그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차라리 언급안하고 쓰면 몰라도 언급하고 저렇게 써가니 덕후들의 뇌내 망상은 폭주할 수밖에. 뭐 읽다보면 파더콤이 생각나긴 한다(…).

사실 이런류의 지배층에 대한 미화와 같은 요소는 서구 역사가들에게서도 대단히 자주 발견되며 안나 콤네나는 명함도 못내미는 거의 소설가같은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 콤니니가 어휴 파더콤'ㅅ' 이런 취급받는데는 서구역사가들의 남존여비 사상, 동방에 대한 나쁜 인식 등이 한몫했던 것으로 추정되곤 한다.

알렉시아드를 읽어보면 그녀의 격렬한 파더콤 성향에 어리벙벙해진다고 말하기도 하나 다른 역사서들을 읽다보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지배층에 대한 빠심이 넘쳐나는 역사서는 많기 때문에 깊게 역사서를 배울수록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된다. 안나 콤네나가 딸이라 뇌내망상하기에 더없이 좋을 뿐.

알렉시오스가 뭘 할 때마다 "내 아버지는 훌륭한 계략으로...", "내 아버지는 마치 헤라클레스의 재림과도 같았다"하는 식으로 얘기한다. 아니면 "우리 아버지는 누구누구와 싸웠는데 그 사람은 키도 크고 지휘력도 뛰어나고 힘도 세고..." 하는 식으로 나가다가 결국 "내 아버지가 누구누구를 물리쳤다. 고로 우리 아버지 좀 짱인 듯?" 하는 식의 수사법도 애용한다. 이렇게 보면 안나 콤니니가 객관적 시선이 없는 걸로 곡해 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전반적으로 동방측에 우호적이기는 하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 파더콤이라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알렉시오스가 처음으로 전쟁에 나가는 장면을 묘사한 루셀 진압전은 초기의 알렉시오스가 군사지휘보다는[6] 뛰어난 재치와 지혜[7], 가문빨로 성공하였다는 등의 암시를 주고있다.

문학적 수사도 매우 많이 사용하고 그 수준도 높기에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나다. 역사서로만 보자면 이같은 문학적 수사는 좋지않으나 당시의 시류 자체가 전문적 역사서로서 현대와 같이 본격적인 구분은 본격화 되지 않은 때라 그렇다. 다만 글을 정말로 잘 써서 읽기에는 즐겁다. 《로마제국 쇠망사》라든지 《비잔티움 연대기》를 비롯한 각종 동로마 제국사 저서에 단골로 인용되지만[8] 동로마 제국사가 한국에서 마이너한 분야라 그런지 《알렉시아드》는 그 유명세에 비해 아직까지 한국어 번역본이 없다. 읽고 싶다면 여기를 참조하자.

3 기타

참고로 서브컬쳐인 월드 오브 다크니스에서는 임종 직전 뱀파이어가 되며, 제4차 십자군 전쟁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다만 그 직후 투르크 뱀파이어들에게 격퇴당하고 은거에 들어간다. 이래저래 인간일 때랑 비슷한 듯.

여하간 장대한 야심도 있었고 지식인 기믹에 서구 최초의 여성 역사가 타이틀에 파더콤 기질이 강한모에한공주님. 문제는 그 아버지가 자기 대신에 남동생을 황위에 앉히자 남동생 입장에서는(그리고 심지어 남편입장에서도) X년 소리가 나올 정도의 깽판을 치다 버로우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역시 안나 콤네나와 그녀의 시각을 대중에게 소개한 책 가운데 하나다.

  1. 고전 그리스어로는 안나 콤네네 포르피로겐네타 정도로 발음되지만, 그녀가 생존하던 당시나 현대 그리스어나 발음은 '안나 콤니니 포르피로옌니타'가 된다.
  2. 그녀의 아버지 안드로니쿠스 두카스는 콘스탄티누스 10세의 조카이자 미카엘 7세의 사촌동생이었다.
  3. 영어로 쓰면 Born in purple(자색 혈통). 포르피로옌니타는 제국이 절대 외국인에게 넘겨줄 수 없는 세가지 중 하나였다. 나머지 둘은 그리스의 불과 제관(황제가 쓰는 관으로, 제위를 뜻함)였다. 참고로 이 셋 중에 가장 먼저 넘어간 것은 프로피로옌니타로 바실리우스 2세키예프의 블라디미르 대공에게 포르피로옌니타인 여동생 안나를 시집보내면서 군사지원을 받았다. 두 번째는 제위로 1204년 4차 십자군, 혹은 1453년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에게 넘어갔다. 그리스의 불은 짝퉁은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제조법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 가장 오래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포르피로옌니타나 포르피로옌니투스의 수가 드물었던 이유는 동로마 제국에 워낙 쿠데타가 잦아서 황제가 자주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쿠데타로 즉위한 황제들은 황제 일가를 아예 멸족시키거나 황자는 이전 황제와 함께 거세시커나 눈을 뽑았고, 황녀는 황후와 함께 수도원에 유폐시켰다. 거세하거나 눈을 뽑았던 이유는 대를 끊고 황위 복위를 막기 위함도 있었지만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신체가 완전한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신체가 훼손당한 사람은 대부분 황제로 복위할 수 없었다.
  4. 동로마 제국의 여성은 동시대의 서유럽에 비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황후는 황제와 마찬가지로 대관식을 치렀으며,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황제가 죽으면 황후가 지목한 귀족이 황후와 결혼하여 황제가 되는 일도 많았다. 아니 자식이 있더라도 자식을 까버리고 새로운 귀족과 결혼하여 그를 황제에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황제를 타도하고 황후와 결혼해 제위에 오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레네 여제는 그 권한을 이용하여 프랑크 제국카롤루스 대제와의 국혼을 생각해 보았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타도당하였고, 콘스탄티노스 8세의 딸들인 조이와 테오도라는 공동황제와 단독황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제국을 통치하였다. 특히 조이는 3번 결혼하여 남편들을 각각 제위에 올렸다.
  5. 밤중에 암살자를 보내거나 약속을 어기거나 하는 등의.
  6. 알렉시오스와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안나 콤니니의 남편인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의 아버지, 혹은 조부)의 전투에서는 알렉시오스가 깨졌고, 노르만의 로베르 기스카르와의 전투에서도 알렉시오스가 대판 깨졌다.
  7. 알렉시오스는 루셀을 전투로 제압하지 않고 그와 연합한 튀르크인들에게 뇌물을 주고 그를 자신에게로 압송하게끔 뒷공작을 펼쳤다.
  8. 에드워드 기번의 경우에는 안나 콤니니에 대해 몹시 비판적으로, 그녀를 '동방 궁정의 무지한 황녀'라고 혹평하거나 그녀 특유의 수사법을 이용해서 비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