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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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南都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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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679년, 당고종참파, 입읍 그리고 진랍 등 남만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현 베트남 하노이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안남도호부는 13주 39현 32기미주로 구성되어있다.

2 역사

안남도호부는 교주총관부(交州總管府)의 전신으로 621년, 당고조 때 교지부에 설치됐다. 651년, 당나라는 안남도독부(安南都督府)로 개칭했다. 722년, 매숙란梅叔鸞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군은 참파와 캄보디아인의 진랍(眞臘)과도 제휴하여 도호부를 점령하고 마이 툭 로안은 흑제(黑帝)라는 칭호로 불리며 지배체제를 갖추었다. 당은 환관을 지휘관으로 파견하여 진압에 나섰지만 저항이 격렬하여 현지에서 병사를 모집해 가까스로 반란을 진압했다. 757년, 당숙종은 진남도호부(鎮南都護府)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768년, 당대종이 진남도호부를 안남도호부로 개칭했다.[1]

당선종 연간 안남도호부에 이탁(李琢)이란 자가 안남경략사(安南經略使)로 배치받았다. 이탁은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던데다가 가혹하게 세금을 걷었기 때문에 이민족들이 버티지 못했다. 862년, 이민족은 남조와 결집해 당의 안남도호부를 공격했고 성이 무너지지 않자 남조는 재차 공격해 안남도호부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형남의 군사들이 교주성을 포위 공격하여 회복했고 863년, 당은 안남도호부를 재건했다. 이후에도 남조의 침입은 계속되었고, 880년, 안남도호부에서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절도사는 성을 빠져나와 도망쳤으며, 옹관(邕管)에 파견되어 그 수비를 담당했던 제도(諸道)의 병력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귀환했다. 안남도호부는 함락되었고 당은 당시 황소의 난으로 변방을 지킬 여력이 없어 결국 폐지하고 월남에서 철수하였다.

3 부속 관할

3.1 주(州)

교주(交州), 애주(愛州)[2], 환주(驩州), 봉주(峰州), 육주(陸州), 연주(演州), 장주(長州), 군주(郡州), 양주(諒州), 무안주(武安州), 당림주(唐林州), 무정주(武定州), 공주(貢州)

3.2 현(縣)

송평현(宋平縣), 남정현(南定縣), 태평현(太平縣), 교지현(交趾縣), 주연현(硃鳶縣), 용편현(龍編縣), 평도현(平道縣), 무평현(武平縣), 구진현(九真縣), 안순현(安順縣), 숭평현(崇平縣), 군영현(軍寧縣), 일남현(日南縣), 장림현(長林縣), 구덕현(九德縣), 포양현(浦陽縣), 월상현(越裳縣), 회환현(懷驩縣), 가녕현(嘉寧縣), 승화현(承化縣), 신창현(新昌縣), 숭산현(嵩山縣), 주녹현(珠綠縣), 오뢰현(烏雷縣), 화청현(華清縣), 영해현(寧海縣), 충의현(忠義縣), 회환현(懷驩縣), 기념현(龍池縣), 사농현(思農縣), 무랑현(武郎縣), 무용현(武容縣), 무금현(武金縣), 문양현(文陽縣), 동살현(銅蔡縣), 장산현(長山縣), 기상현(其常縣), 무안현(武安縣), 임강현(臨江縣), 유원현(柔遠縣), 당림현(唐林縣), 복록현(福祿縣), 무아현(武峨縣), 염여현(如馬縣), 무의현(武義縣), 무이현(武夷縣), 무연현(武緣縣), 무로현(武勞縣), 양산현(梁山縣)

3.3 기미주(羈縻州)

  1. '안남'은 여기서 비롯된 단어이다.
  2. 교주의 남쪽, 청화(清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