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俊生
1907 ~ 1951
이토 분키치(사진 오른쪽)에게 사죄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 안준생(사진 왼쪽)
대한민국 근대사의 인간말종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차남이었지만...사실 아버지와는 달리 일제의 개가 되어서 앞잡이 노릇을 하였던 불효자식이자 친일 매국노로 알려진 인물. 사실 누나인 안현생도 비슷한 짓을 했지만 당시에는 남성이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았고 그만큼 책임도 컸기에 주로 욕먹는 건 안준생이다.
1907년생으로 아버지인 안중근이 그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을무렵에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거사를 일으키기 2년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업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나중에 성장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한국 침략의 수괴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애국자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반대로 친일매국노가 되어서 오히려 일제의 개가 되어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망발을 저질렀다.
그리고 1939년 10월 16일, 일제의 개가 되고 충성을 바치겠다고 한 후로는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인 분키치(文吉)[1]를 경성 조선호텔에서 만나 제 부친께서 어리석은 생각으로 당신의 아버님을 죽게 만들었는데 이에 아들로서 아버지의 오만방자한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는 일제에 의해 널리 선전되었으며,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에도 대서특필되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물론 아버지의 훌륭한 업적을 반겼던 한민족으로부터 천하의 불효자식, 친일매국노,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한 더러운 개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에 백범 김구가 중국측에 처벌을 요청했으나 중국측이 이를 면제하게 되었다.[2]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에게 이를 갈던 중국에서도 안준생을 별로 반기지 않았고, 결국 광복이후에 중국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6.25 전쟁 와중인 1951년에 안경근과 안춘생,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병으로 죽었다.
안중근의 친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는 달리 매국노에 친일파로 변절한 영향 때문에 결국 친일인명사전 목록에도 이름이 올라갔다. 그나마 형인 안분도가 일본인들에게 독살당하고 늘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 협박당해 그랬다는 점도 감안할 점이긴 하지만 중앙일보나 조선일보에서 이걸 들먹이며 옹호 기사를 썼다가 친일파 아니면 친북활동의 변명으로 살기 위하여 그랬다는 점을 들먹일 거냐며 까인 적도 있다.
안준생을 다룬 소설로 前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진 교수[3]가 쓴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가 있으며, 인터넷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여태까지는 이런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사죄하는 것이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