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an Sebastián Elcano(스페인)[1]
(1486/1487?~1526)
스페인의 탐험가, 항해사.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 출신의 항해사로 여덞 남매 중의 아들 중 하나였다.
곤살로 데 코르도바 밑에서 제 2차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했으며, 병사들을 수송하는 일을 맡다가 2년 후에는 아프리카에서 아랍인들과 전쟁 중이던 스페인의 병사들과 군수품을 수송했고 또다시 1년 후에는 엘카노는 200톤을 수송할 수 있는 함선의 선주이자 선장이 되었다.
1509년에 추기경이자 톨레도의 대주교인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2]가 조직한 알제 공략에 합류해서 세비야에 정착해 상선의 선장이 되었다.
그러나 제노바의 은행에 대한 부채 상환에 배를 포기하여 스페인의 법을 위반하자 국왕인 카를로스 1세에게 사면을 요청하였지만 그 사면 조건으로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서 향로제도를 발견하려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항해에 협력하는 수락하면서 1519년 마젤란의 항해사로써 참가한다.
그러나 마젤란의 항해 도중에 성과가 없자 1520년 3월 31일에 후안 데 카르타헤나, 루이스 데 멘도사, 가스파르 데 케사다와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으며 선상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중에서 마젤란에게 유일하게 용서를 받았다.
마젤란 항해 도중에 필리핀 세부의 막탄섬에서 마젤란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자 지도자가 두 차례 바뀌었으며, 필리핀을 떠나 북 보르네오의 브루네이에 들렀을 때 주앙 카르발류를 지도자직에서 끌어내려 그는 빅토리아 호의 선장이 되었다.
도중에 몰루카 제도(향료 제도)에서 트리니다드호와 빅토리아호에 막대한 양의 향료를 적재하고 목적지인 몰루카 제도에 상륙해 대량의 향신료를 탑재하고 이제 귀향길에 오르려는 순간에 마젤란 함대의 기함이었던 트리니다드의 함체가 파손되어 항해를 하지 못하게 되자 빅토리아호만을 스페인으로 먼저 출발하도록 하면서 엘카노가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섬들이 포르투갈의 영역이라 기항이 금지당하는 등 가는 곳마다 향료와 금을 줘야 했고 또한 트리니다드호가 폭풍우를 만나 대열에 이탈하여 포르투갈에 나포되는 등 어려운 상황을 겪어 다섯 척의 배에서 오로지 빅토리아 한 척만 이끌게 되었다.
또한 인도양을 횡단해 남아프리카을 지나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으로 진입하지만 포르투갈 군함의 공격으로 26톤의 향로를 넘겨주고 통과하며 아프리카에서 식량이 떨어지는 고난을 겪으며 200명인 선원이 18명만 남았다고 한다.
1522년 9월 6일에 출항을 시작했던 산루카르데바라메다에 도착하여 죽은 마젤란을 대신하여 세계일주에 성공하였으며 세비야에서 카를로스 1세에게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향료제도로 가는 항로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으며, 편지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면서 고생한 함대원들의 향료를 세금으로 바치게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마젤란이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선상 반란, 선원들이 방탕하게 보낸 것이나 이국 여인들과의 섹스 파티 등을 한 것에 대해서는 감추었는데, 생존자들에 대해 반역, 불충에 대한 의혹, 항해일지를 꾸준히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추궁되자 엘카노는 마젤란에게 죄를 씌우려고 했지만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일기, 프란시스코 알보의 항해일지 등 상반된 증거들이 존재하자 엘카노는 마젤란이 막탄 섬의 원주민들에게 죽었다고 사실을 밝혀 해명했다.
이후에는 그 자신은 17명의 선원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 모함을 받았다고 한다.
1525년에 가르시아 데 호프레 로아이사가 이끄는 7척의 선단에 항해사로써 몰루카 제도(향로 제도)로 가는 탐험에 참여하였지만 1526년 8월 4일에 태평양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였다.
현 스페인 해군에는 그의 이름을 딴 사관생도 훈련용 범선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함이 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나오는 세계일주 이벤트의 메인 악역으로 나오는데, 실제 역사와 다르게 여기에서는 마젤란의 세계일주의 업적을 축소시켜 보고하여 그 명예와 부의 영광을 자신이 다 가져가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원래는 마젤란의 두 번째 아들[3]에게 가야 할 마젤란의 수익 20%를 본인이 "고생도 못 해 본 젖먹이에게 이 피땀흘려 얻은 돈을 줄 수 있겠냐" 면서 삭제해버린 것이 원흉. 그래서 마젤란의 장인인 바르보사의 양딸 엘레나가 라스팔마스에서 플레이어의 일행에 합류하여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수기를 찾아내어 엘카노의 보고가 왜곡된 것을 밝혀내어 첫 세계일주자라는 명예를 마젤란에게 회복시켜주는 내용이 세계일주 퀘스트의 주된 내용이다.
이후 플레이어를 비롯한 여러 항해자가 세계일주에 참여한 뒤 바르보사가 그 항해자들에게 그 피가페타의 수기를 찾아달라는 것을 의뢰한 것을 알고는 바르보사를 잡아가둬 심문하면서 그 수기를 지닌 항해자, 즉 플레이어를 암살하기 위해 자신의 사병을 해적으로 위장시켜 공격하게 한다. 즉 어찌보면 엘레나의 무한 민폐의 원인은 알고보면 이 녀석(...)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결국 플레이어가 유럽으로 오는 것을 막지 못했던 엘카노는 자신의 부하들을 나무라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왕궁에서 열리는 축하회에 참석, 플레이어의 축배에 독을 타서 수기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에 살해하려 한다. 하지만 불만을 품은[4] 자신의 부하들이 몰래 바르보사를 풀어버려 모든 진실을 밝혀버리고 즉석에서 수기의 존재를 밝힌 뒤 술에 독이 탔다는 사실을 밝혀 엘카노는 실각된다.
이후 엘카노는 자신의 위신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위에도 써 있는 로아이사의 일주에 참여하게 되지만, 이후 폭풍에 의해 그의 흔적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는 식으로 끝난다.- ↑ del Cano 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 ↑ 시스네로스 추기경은 1499년 알칼라 대학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지금의 콤플루텐세 대학이다. 스페인의 서울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듯.
- ↑ ...로 알려진 딸이다. 딸의 정체는 엘레나.
- ↑ 가뜩이나 명령을 따르면서도 엘카노의 인간성을 고깝게 보던 부하들이 바르보사를 몰래 풀어버려 엘카노를 배반했던 것. 이 때 부하들의 말들이 참 일품인데, 엘카노의 추궁에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고, 끌려나가는 엘카노를 보며 "배신은... 당신의 특기잖아." 라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