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시아 전투

상위 항목: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

기원전 52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중 일어난 로마와 갈리아의 사실상의 최종 결전.
성벽쌓기 게임 실사판

1 전조

기원전 59년 집정관에 선출된 카이사르는 임기 후 남부 갈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헬베티족의 침입을 받은 중북부 갈리아에 사는 골족은 카이사르에게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헬베티아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이후 '보호'를 명목으로 갈리아를 지배하려는 카이사르의 목적이 노골화되면서 골족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수차에 걸쳐 골족의 반격이 있었으나 탁월한 전략가이자 전술가인 카이사르에 의하여 모조리 격퇴되었으며, 겨울의 숙영기간을 노려 있었던 각개격파 시도도 좌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르셍게토릭스에 의한 갈리아의 결집은 최후의 저항이라 할 수 있었으며, 최후의 저항답게 그 결집력도 어마어마하여 본래 카이사르에게 복종했던 골족까지도 이에 호응할 정도였다. 이들은 초토화 작전으로 로마군의 보급을 차단하는 전술로 맞섰고 게르고비아 전투에서의 패배로 인해 카이사르도 한 때 궁지에 몰릴 정도였으나, 베르셍게토릭스가 후퇴하는 로마군을 공격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대규모 회전에서 멋지게 골족의 대군을 격파하면서 승세는 다시 로마쪽으로 기울었다.

패전으로 대부분의 기병을 잃은 베르셍게토릭스는 알레시아에 틀어박혀 농성에 들어갔고 로마군은 포위에 들어갔다.

2 전투

베르셍게토릭스는 카이사르군을 공격하였을 때 패배를 예상치 않았으나 로마군은 갈리아군을 완파하였고 갈리아군은 모두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전투를 조기에 끝내기 위해 로마군은 매우 거세게 갈리아군을 추격하였고, 베르셍게토릭스와 그의 군대는 이 매서운 추격을 피하기 위해 인근에 눈에 띄는 도시로 서둘러 진입하였다. 알레시아는 대군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이 때문에 알레시아는 갈리아인들에겐 예상치 못한 결전지였을 수 밖엔 없었다.
알레시아에 쫒겨 들어간 베르셍게토릭스의 병력은 8만여에 달하였고 이들은 도시내의 거주민들과 합쳐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시내에 있게 된다. 알레시아의 곡식은 거주민들이 겨우 먹을 만한 분량이었던데다 전쟁을 대비하고 비축하지도 않았으므로 한달도 버티기 어려운 분량이었다. 이를 간파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단병으로 하여금 이 도시에 강력한 포위망을 구축한 뒤 곡식을 차단하기로 하였다. 로마군은 전통대로 깊은 참호를 판 뒤 높은 울타리를 세우고 곳곳에 망루를 배치한다. 그 뒤 여러 스콜피온, 투석기와 같은 여러 병기들을 적합한 장소에 배치한 뒤 투창병, 궁병, 군단병, 기병의 기지를 요소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포위망 건설이 시작되자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베르셍게토릭스는 기병을 내보내 로마군을 공격하였고 카이사르 역시 기병을 내보냈다. 둘의 교전은 카이사르가 투입한 게르마니아 기병부대의 활약으로 로마군의 승리로 끝난다. 이를 본 베르셍게토릭스는 기병을 도시밖에서 모두 내보낸 뒤 보병만 도시에 머물게 하는 한편 기병들에겐 갈리아인들에게 구조요청을 하게 하였다. 기병의 식량소비량이 많아 취한 조치였다. 로마군의 포위망 건설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라 이들은 무사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난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외부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포위망을 이중으로 건설한다. 이때 로마인들은 온갖 쇠고리와 꼬챙이, 가시덩쿨, 못 등으로 함정과 장애물을 설치하였다.

카이사르가 알레시아를 포위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갈리아족은 회의를 열어 각 부족들에게 1만에서 3만씩 병력을 제공받아 25만 보병, 8천 기병을 이끌고 베르셍게토릭스를 구원하기로 하였다. 그 병력을 집결한 갈리아인들은 총사령관을 선출하고 알레시아를 향해 이동하였다.

이러는 동안 알레시아의 곡식은 바닥이 났고 따라서 노약자와 여자, 어린이들을 모두 성밖으로 내보냈다. 이들은 로마인 진영으로 가서 항복하였으나 로마인들은 그들의 수용을 거부하였다.

드디어 알레시아에 도착한 갈리아인의 대군은 로마군을 포위하였다. 즉, 2중 포위전이 된 것이다. 그들은 로마군의 포위망을 공격하였고 이것을 지켜본 알레시아의 갈리아인들도 성밖으로 나와 로마군을 공격하였다.


한가운데 고추
알레시아 포진도. 산정에 틀어박힌 베르셍게토릭스의 갈리아군과 그를 포위한 카이사르의 로마 군단, 그리고 베르셍제토릭스를 구원하러 달려온 갈리아군을 볼 수 있다.

로마군은 적지에서 앞뒤로 포위된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나 여러가지로 준비가 잘 되어있었고, 또한 이러한 상황에 익숙한지라 결국 갈리아족의 수차례에 걸친 양면공격을 잘 버텨내었다. 정오부터 해질녂까지 싸웠지만 갈리아인들은 격퇴되었다.

그리고 갈리아인들은 그날 밤 다시 대규모로 공격을 하였고 베르셍게토릭스도 자신의 병사를 내보냈다. 암흑속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로마군은 다시 갈리아인들을 격파한다.

두차례에 걸쳐 패배한 갈리아인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로마인들의 포위망을 이루었던 방책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지형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 끝에 포위망의 북쪽에 언덕이 있는데 이곳은 지형상 너무 넓어 로마인들이 방책을 두르지 않았음을 알게된다. 다만 카이사르는 이곳이 약하다고 보고 2개군단을 머물게 하였는데 갈리아인들은 방책을 돌파하기를 시도하기 보단 차라리 2개군단을 공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들은 6만 병력을 뽑아 이곳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6만 병력은 밤중에 우회하여 언덕 꼭대기에 이르렀다. 로마의 2개군단은 이로써 언덕의 경사진 낮은 곳에서 갈리아인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정오가 되자 갈리아인들은 2개군단이 머무는 보루를 향해 돌격을 개시하였고 이를 신호로 갈리아인 전체가 로마의 진형을 공격하였다. 베르셍게토릭스 역시 그의 병력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 호응한다.

전투는 격렬하였고 특히 2개 군단이 있는 비탈진 경사면에서의 싸움은 매우 치열하였다. 2개군단의 전투력은 뛰어났으나 갈리아인들도 그들의 최정예를 뽑은데다 언덕위에서 공격하는 것이었으므로 밀리지 않았다. 이들은 우세한 병력을 바탕으로 계속 후열의 병력과 전열의 병력을 교체하면서 체력의 저하를 막았다. 이를 파악한 카이사르는 라비에누스에게 6개 대대 (0.6군단)을 보내 이들을 구원토록한다.

이러면서 카이사르는 진영 전체를 누비면서 병력을 격려하였다. 그리고 다른 보루들에서의 갈리아인들의 공세가 약화되자 그는 각 진영에서 병력을 차출하였다. 그 뒤 기병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 적의 배후로 기동하게하였다.

이윽고 카이사르는 라비에누스에게 더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전갈을 받는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이미 차출해 놓은 11대대의 군단병을 (1.1군단) 이끌고 라비에누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카이사르가 도착하자 그의 진홍색 외투의 색깔로 인해 적이 그의 도착을 알았고 두 병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전투가 더 격렬해지고 우열을 가르지 못했는데 마침내 카이사르가 내보낸 기병이 적의 배후에 도착하여 그들의 후방에 돌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인해 갈리아군은 급격히 무너지게 된다.

이 언덕에서의 결전마저 격퇴되자 갈리아인들은 절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들의 의지는 완전히 꺾였고 따라서 갈리아의 대군은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다음날 베르셍게토릭스는 더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자신을 카이사르에게 넘기라고 제안한다. 갈리아인들은 베르셍게토릭스를 카이사르에게 인도하였는데 이때 그는 말을 타고 카이사르의 둘레를 한바퀴 돈 뒤 그의 앞에 꿇어앉아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3 평가

알레시아 전투는 막을 내렸고 이로써 갈리아에서의 로마의 패권이 확립되었고 이후 로마가 멸망하기까지 갈리아족의 대규모 항전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상 라인강 이서의 이후 역사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된다.

이 전투에서 베르셍게토릭스와 골족은 로마인의 포위를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겐 불행하게도 카이사르 휘하의 로마군은 무장 수준이 우수한데다 7년의 전투경험이 쌓여 매우 정예화되었으므로 안팎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포위 공격에 무너지는 부대가 수두룩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역포위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카이사르 군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세번에 걸친 안팎을 동시에 공격한 전투 중 마지막 결전에서는 갈리아인들이 로마군의 포위망의 약한 부분이었던 언덕을 정확히 찔렀고 로마군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로마군은 유연하게 포위망에서 11대 대대를 차출해서 구성을 변화하는 한편, 기병까지 배후로 기동하는 여유를 부려 결정적인 쐐기를 박게 된다.

이렇듯 로마군의 우세한 전력, 갈리아인들의 정교하지 못한 지휘, 그리고 카이사르의 뛰어난 통솔력으로 인해 알레시아 전투는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고 그로써 전 갈리아는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이 군사적 위업을 바탕으로 카이사르는 사실상의 초대 황제가 될 수 있었으며 로마는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제정으로 가게 된다.

아스테릭스에서는 족장 아브라라쿠르식스 등의 골족에게 이 전투 얘기를 꺼내면 그런 건 몰라!!!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이들이 많다. 뭐, 이 만화는 골족 얘기를 다루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