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슬

壓膝

1 개요

죄인을 꿇어앉힌 상태에서 무릎위에 무거운 물체를 올리거나 사람이 올라타서 압박을 가하는 형벌.

2 시행형태

2.1 한국

고려말부터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바닥과 죄인의 무릎 사이에 기와조각을 넣고 무릎 위에 널판지를 깔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타서 밟는 형식으로 실시되었다. 조선 태종 연간에 1차 시행에 2명이... 2차 시행에 4명이... 3차 시행에 6명이 올라타는 식으로 규정했는데 실제로 압슬은 기본 고문인 신장으로 정강이를 치는 형문을 여러차례 집행한 이후에 시행하는 고문인 만큼 죄인이 대부분 2차 압슬까지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기에 3차까지 시행한 사례는 드물다.

워낙에 잔인한 고문이었던 만큼 영조 연간에 낙형과 함께 폐지되어 형문만 합법적인 고문 방식으로 남았지만 그시대가 다 그렇듯 비공식적으로는 자주 행해졌다. 이런 비공식적인 집행의 경우 당연히 위에 서술된 방법 그대로가 아닌 변형이 가해져서 시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무릎밑에 추가로 사금파리같은 이물질을 더 넣고 밟아버린다던가...

사극의 영향으로 조선 시대의 고문 하면 주리틀기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주리틀기는 본시 법전에 명시되지 않은 불법고문으로 관원들이 몰래 사용하던 고문이었고 압슬이 본래 영조 연간에 폐지되기 전까지 형문, 낙형과 더불어 조선 시대 추국에 사용되던 정식 고문이었다.

2.2 중국

문헌상으로는 북위 선무제 연간에 돌을 사용해 불법적인 고문을 가하는 사례가 많기에 이를 자제시키라는 상소가 올라온 기록이 있는 만큼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고문으로 보인다.

2.3 일본

이시다키(石抱き, '돌 끌어안기')라는 이름으로 시행했다. 윗부분이 뾰족한 각목을 여럿 합쳐놓은 판 위에 죄인을 꿇어앉힌 후 한개당 약 45kg의 무게에 달하는 석판을 하나씩 올린다.

3 압슬이 표현된 콘텐츠

워낙 조선 시대... 심지어 그 이전 시대를 다룬 사극까지 주리 틀기가 남발되는 관계로 압슬형의 경우 실제로 조선 시대에 정식으로 집행된 고문 방법임에도 표현되는 매체가 극히 드물다.

  • 용의 눈물 -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용의 눈물에도 압슬이 나온 적이 있었다. 146회에서 태종원경왕후 민씨의 동생 민무회, 민무휼을 고문할 때 이 방식을 사용했는데, 압슬형을 가하라는 대사가 분명히 나오지만 흔히 알려진 것과는 방법이 좀 다르다. 우선 바닥에 깨진 기와 조각 같은게 있는 것도 아니고, 무릎을 꿇린 것이 아니라 다리를 펴고 앉은 상태에서 무릎 위에 엄청나게 큰 돌을 얹는다. 여기까지 보면 별로 안 아플 것 같지만 이후 집행관 둘이 좌우에서 누르고 있는 상태로 한 명이 커다란 망치로 그 돌을 치기 시작하고 두 형제는 연신 비명을 내지른다.
  • 무인시대 - 오랑 : 고려, 조선 시대에 시행된 압슬 방식이 아닌 일본의 이시타키 집행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 대왕 세종 - 강상인이 압슬형을 당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사쿠라다문 밖의 변 - 다키모토 이노 : 에도 요시하라의 기녀로 1860년에 발생한 사쿠라다문 밖의 변에 연루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옥중에서 사망한다.
  • 뱀파이어 시리즈 - 비샤몬의 초필살기로 존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