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시대

KBS 1TV 대하드라마
무인시대
(2003 ~ 2004)
武人時代 / The age of warrior
파일:Attachment/muinside.jpg
국내등급15세 이상 시청 가능
방송 시간토요일, 일요일 밤 10시 10분
방송 기간2003년 2월 8일 ~ 2004년 8월 15일
방송 횟수158부작
방송사50
장르대하사극
제작사50 자체제작
연출신창석, 윤창범, 김성근
극본유동윤
출연자서인석, 김흥기, 박용우, 이덕화, 김갑수
저승사자해설권영운

KBS 대하드라마
제국의 아침무인시대불멸의 이순신

1 개요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의 명작

정도전이 나오기 전까지 있었던 최후의 정통 사극

KBS 1TV에서 방송한 전 사극. 2003년 2월 8일부터 2004년 8월 15일까지 총 158부작으로 방송되었다. 공식 홈페이지. 내레이션은 성우 권영운.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을 잇는 고려 시대 대하드라마 트릴로지. 이 작품으로 고려 시대 시리즈는 일단락되고 조선시대 사극인 불멸의 이순신으로 넘어가게 된다. 본래는 조선왕조 500년처럼 고려사의 전체적 흐름을 꿰는 장대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태조 왕건부터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고려사 소재만 10년을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태조 왕건에서 제국의 아침은 시대가 바로 이어지지만 전작 제국의 아침에서 벌써부터 흥행에서 삐걱거려서 결국 천추태후여요전쟁, 고려의 전성기, 이자겸 집권기를 건너뛰고 무인시대로 이어지게 됐고, 후속작은 당시 KBS측이 당시에 밀어주던 불멸의 이순신이 되었다. 이게 다 시청률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이미 당시부터 시청자 게시판에서 무인시대 후속으로 적절한 고려사 소재에 천추태후가 거명되고 있었는데, 시대상 제국의 아침의 주인공인 광종 사후로 바로 이어지는 시대라 원래 예정대로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순서는 꼬였지만 나중에 제작되긴 했는데... 안습

그리고 종방 후 정도전이 등장하기 전까지 10년이 넘어가도록 최후의 멀쩡한 정통 사극 칭호를 유지했었다. 인수대비, 무신이 정통 사극을 표방했으나 팬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4년 방영한 정도전이 정통사극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10년 만에 '최후'라는 수식어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 수식어는 정도전이 계승할 것 같다

역대 사극 중에서도 특히 매니아층이 두터운 드라마로, 사극 매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통사극 투표를 벌일 때마다 탑 3~5 안에 꼽힐 정도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국내보다도 평가가 더 높다고. 보통 용의 눈물, 태조 왕건의 본좌라인 뒤를 잇는 라인 안에 끼며, 무인시대를 최고로 평가하는 경우도 꽤 많고 오히려 태조 왕건보다도 더 본좌로 친다.

이는 등장 연기자들과 드라마의 전반적인 품질이 후덜덜한데다 구성과 주제면에서 다른 사극들과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여타 사극이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영웅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웅 서사 구조를 따르는 '서사시' 혹은 '전기' 인 반면, 무인시대는 젊은 시절 큰 뜻을 품었던 호걸들이 점차 권력의 맛에 찌들어 잔인한 권력자로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느와르 내지는 피카레스크의 형식인데다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각 세대의 집권자들 하나하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군상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카레스크적 주제와 선 굵은 정통 사극의 조합은 그야말로 미칠듯한 박력을 보여줬고 현재까지도 무인시대 전반부의 박력을 따라 갈 만한 작품이 없을 정도.

제목 그대로 1170~1219년 사이 딱 50년에 걸친(전체 무신집권기는 100년) 고려 중기 무신정권 시대 전반부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정확하게는 보현원의 참살에서 최충헌의 최후까지 전반기 무신정권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격 인물들로는 무신정권 초기 실력자들이자 실질적인 주동자였던 이고, 이의방으로 시작해서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까지의 당대 인간군상들을 다룬다.

물론 역사상의 내용과 싱크로가 100% 맞는 건 아니고 고려사, 고려사절요와의 평이 완전 상이한 조연도 있다. 하지만 주요인물들은 역사적 평가 및 현대의 평가와 대부분 맞을 뿐더러, 변경된 사안도 대걔 조연 몇몇에 한정되어있는 만큼, 이 정도는 역사왜곡이 아닌, 창작의 자유로 봐도 될 정도다.

주제면에서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주제로 한때는 혈기 방장하고 나라의 개혁을 위해 뜻을 가지던 젊은 무신들이 세월이 지나고 권력에 맛을 들이면서 흑화 타락 및 파멸을 맞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냈으며, 권력에 대한 무인(인간)들의 고뇌와 성찰, 권력의 속성을 절묘하게 연출해냈다.

심지어 초반부부터 권력을 탐하는 노장군으로 나오는 정중부마저도 공예태후와의 대화로 짤막하게 나오는 젊은 시절에는 혈기방장한 무신으로 그려진다. 정중부의 경우 김돈중(제5공화국에서 유학성 역을 맡은 박영지 분)이 수염을 태우는 장면에서도 젊은 시절이 나온다. 대사가 무음처리 돼서 지나가는 것 치고는 상당한 긴 분량의 고퀄로, 특히 인종(고려)이 나와 정중부를 꾸짖는 장면이 인상적. 특히 극 마지막에 최충헌이 젊은 시절 자신의 페르소나에게 난신적자의 평가를 받는 명장면이 이러한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무인 집권자들은 마지막 꿈에 자신이 죽인 자들에게서 꾸짖음을 듣고 깨어나 자신의 지나온 삶을 곱씹는 연출이 나왔으나, 최충헌은 자신이 죽인 동생 최충수와 박진재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죽기 직전에는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면박을 당하고 통곡한다. 죽기 직전 경대승의 꿈에 죽은 정중부가 나와서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꿈을 꾸었다는 기록을 모티브로 한 연출로 보인다.

한마디로 최후의 개념찬 20세기식 정통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인시대 자체는 21세기 초반에 방영되었지만 21세기의 트렌드에 맞춘 정통사극의 모습을 보여준 정도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20세기 식 사극중에서 가장 멀쩡한 사극이라고 볼 수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정통사극의 21세기식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데 실패해서(쉽게 말해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이여서)[1]시청률이 낮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비판의 여지가 없는건 아니겠지만, 수작이라 평할 수 있는 사극이다. 또한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용두사미가 되지 않고 끝까지 주제의식에 투철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게, 각본가가 스토리 늘어지기로 유명한 유동윤이기 때문. 물론 이 작품 역시 늘어지는 부분이 없는건 아니지만, 유동윤 각본가의 다른 작품인 여인천하나 대왕의 꿈과 비교하자만 이정도는 늘어지는 것도 아니다 할 수준이다.

최종화에서는 드라마에 등장한 무신집권자들의 삶과 시대를 간략히 돌아보며 무신정권기를 평가한다. 여기서 훗날 조선을 세우는 최강의 무신집권자 이성계와 무신집권자들을 비교하며 왜 무신집권자들이 왕이 될 수 없었나에 대한 해설도 덧붙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무신들은 정치적 경륜이 일천하였고, 개인의 가문과 권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했으며, 고통받는 민심을 읽기보다는 도리어 그들을 억압했다고 본다.

무인시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대의 명장면. 무신정권 전반기의 최종 승자로서 2명의 왕을 축출할 정도로 권세가 막강했던 최충헌조차도 마지막은 비참하게 묘사되었다.

이 장면도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실제『고려사』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한데, 그 대사가 가히 명대사다. 특히 꿈에서 깬 경대승이 "나는 무인일 뿐이다"라고 외치며, 그 고뇌와 울부짖음은 가히 전율이 흐를 만한 것이다.

초기에 비해 뒤로 가면서 예산문제로 인해 박력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동시기 KBS2TV에서 방영된 드라마들이 시청률 저조로 폭망하고 경기침체로 타 프로그램의 광고 판매율도 떨어지면서 광고수입이 급감해 긴축재정에 들어간 영향(...)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악조건에도 끝까지 중후한 이야기를 제대로 끌어냈으며, 중년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후속 드라마 기획을 어떤걸로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이 고려사 계획을 완전히 폐기하고 준비한 불멸의 이순신의 제작이 지연되는 바람에 연장방영되었고 이로 인해 후반부 호흡이 길어져 시청률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당시 연말 시상식 후보자 선정에서도 무인시대 출연진을 홀대한 것으로 뒷말이 꽤 많았다) 게다가 원래 9시 뉴스 직후에 방송었는데 당시 주 5일제 시행으로 주말 KBS 뉴스 9가 45분에서 30분으로 축소되면서 공익성 강화 명목으로 통상적으로 대하사극 뒤에 방영한 시사 프로그램들을[2] 대하사극 전에 편성하면서 2003년 6월 28일부터 시간대도 상당히 늦쳐졌고(9:45 -> 10:10) 이 때문에 시청률에 타격을 받았는데 급기야 후반기 동일 시간에는 SBS 파리의 연인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최종회 시청률이 13.6%대에 머물렀다(이덕화씨가 인터뷰에서 대차게 깠다). 그나마 후속작 불멸의 이순신 종방 때는 이보다도 사정이 나빠서 아예 중국드라마 칭기즈 칸으로 땜빵 편성을 했으니 그보다는 나을지도. 사실 마지막의 최충헌 집권기는 그 특성상 앞서의 집권자들(바로 정적들의 경쟁에 직면했으니까 긴장감은 저절로 올라간다)보다 상대적으로 인물들의 매력이라든가 팽팽한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2번에 걸친 연장으로 총 편수도 원래 예정인 150화보다 8화나 길게 끌고 끝냈는데 후속작 불멸의 이순신이 김명민의 촬영 스케줄이 한참 지연되어 캐스팅 문제가 일어나자 갑작스럽게 애초 기획된 150부작에서 8편 늘린 158회로 막을 내렸다. 그래도 그 당시에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아서 까이지는 않았다.

다만, 사극소재로 여러 번 중복 사용된 조선시대 사극들과는 달리 다소 생소했던 점, 우리 사회에서 권력정점으로의 역할이 끝난 군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시청률 하락의 원인으로 분석되며 고려 무신 집권 중 최씨 정권의 최의 집권까지 다룰 예정이었으나 시간대 변경에서 생긴 시청률 하락 탓인지 최충헌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초반부에는 리얼한 참살 묘사로 잔혹성 논란이 있었다. 한국 사극 중에 이렇게 칼부림이 많고 사람 목이 휙휙 날아가는 사극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모자이크 처리(5회 김돈중의 효수장면을 보라)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참수된 머리를 만드느라 고생 했을듯. 게다가 모자이크 처리할 정도면 일일이 신경써서 만들었으니 ㅎㄷㄷ... 그런데 그런 묘사를 대충 넘기면 또 그걸 갖고 고증무시라고 까니 어쩌라고

드라마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여기서 볼 수 있다.

한편, 작가 유동윤씨는 이 작품 집필과 함께 SBS 왕의 여자 작가로 낙점되었으나 <무인시대>와의 겹치기 집필 문제 때문에 고사했다.

2 등장인물

무인시대에 등장한 인물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보려면 해당 항목 참조.

2.1 화려한 캐스팅

이 사극은 연기파 배우들이 총집합하여 절륜한 연기를 선보인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의방 역에는 서인석, 이고 역은 박준규, 정중부 역에는 김흥기, 경대승 역에는 박용우, 이의민 역에는 이덕화가 맡았다. 이덕화는 제5공화국에 캐스팅 되었을 때 인터뷰를 보면 본인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은듯. 주인공 노릇할 때 쯤에 죽어버렸다고 언급한다. 또 최충헌 역은 김갑수가 맡았다. 하나같이 소름이 끼칠 만치 제대로 무서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팬덤의 인기순위는 이덕화가 맡은 이의민이 가장 높다. 냉혈한과 개그담당, 선역과 악역, 충신과 역적을 넘나들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의민 캐릭터를 정말로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래서 한명회, 전두환, 설인귀와 더불어 이덕화 사극 배역의 최고로 꼽힌다. 팬덤에서는 이의민보다 금강야차라는 이명으로 즐겨 불린다. 이의방과 경대승도 꾸준히 호평을 받고 있는 캐릭터.

흥미롭게도 초반 두 주역인 이의방이의민을 맡은 연기자인 서인석, 이덕화는 2년여 후 제5공화국(드라마)에서도 주역인 노태우전두환을 연기한다. 게다가 이들이 맡은 인물들은 800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둔 역사적인 쿠데타의 주역들이고 모두 나라의 수장 지위까지 오른다! 다만 서열구도가 서로 바뀌어 무인시대에서는 서인석보다 이덕화의 지위가 낮지만 제5공화국에서는 이덕화보다 서인석의 지위가 낮아서 묘하게 대조된다. 그 외에도 훨씬 전의 사극 한명회에서는 이덕화가 한명회를 맡고 서인석이 수양대군을 맡았으니, 두 배우의 호흡은 꽤 인연이 깊은 편. 그런데 세 편 다 쿠데타 동지 사이로 나왔다

한편 이덕화는 임혁과도 사극에서 인연이 깊은 배역을 이어가는데, 무인시대에서는 무신정변에 가담하고 의종을 시해하고 무인집권자로 군림하는 이의민역의 이덕화, 원칙을 지켜 정변과 전횡에 반대하는 두경승역의 임혁이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대립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였으며, 이는 대조영에서 이덕화의 설인귀, 임혁의 대중상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다만 더 뒤에 나온 천추태후에서는 임혁이 연기한 서희가 이덕화가 연기한 강감찬의 멘토 격인 관계가 되어 대립없이 온전한 동반관계로 출연한다.

주인공격인 인물들의 캐스팅도 후덜덜하지만 조연들도 그 못지 않았다. 특히 정태우는 이 사극에서도 젊은 나이에 무신들에 의해 폐위되는 왕 희종을 맡아 또 죽게 된다. 그 외에도 이의방의 의형제 채원 역에 김명국, 정중부의 아들 정균 역에 이민우(무인시대를 마치고 군에 입대), 강직한 무신인 두경승 역에 중견파 배우인 임혁, 이의방의 딸은 박은빈, 정중부의 사위 송유인 역에는 김진태, 경대승의 족형 손석 역에 이계인, 이의민의 멘토 두두을 역에 전무송, 이의민의 의형제 부루 역에 임꺽정으로 유명한 정흥채,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 역에 김형일, 최충헌의 가솔 만적 역에 윤승원과 만적의 난 지도부 미조이 역에 정두홍, 최충헌의 내연의 여인 홍련화 역에 추상미, 최충헌의 심복 노석승 역에는 선동혁, 최충헌 시대에 등장하는 이규보차광수 등 하나같이 화려하다. 그리고 다소 뜬금없게도 함소원이 이의민의 애첩 아란 역을 맡은 것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의민의 부인 최씨도 정선경. 아무튼 이처럼 조연들의 캐스팅도 두터운 연기파 배우들로 채워진 것이 인상적인 사극이었다. 그외 단역들 중에서도 이후 다른 사극이나 드라마에서 주요 배역으로 나온 배우들이 꽤 있는지라, 드라마 속 숨겨진 배우들 찾아보는 재미도 준다.

파일:Attachment/무인시대/military regime.jpg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은 하정우의 무명시절 연기가 포텐셜 폭발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하정우가 맡은 역할은 다름아닌 이의민의 불학무식한 막내아들 이지광. 쌍도자(雙刀子)라 불리며 패악질을 일삼은 것으로 기록된 이지광을 맡아 절륜한 3류 양아치 액션을 선보인 그가 현재 정상급 탤런트 반열에 서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듯하다. 첫 등장부터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진짜 껄렁하게 생겼다'며 이지광과 걸맞는 최적격 배역이라고 입을 모았을 정도이다. 어떤 의미로는 무인시대 출연진 중 가장 출세한 인물. 류덕환은 최충헌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오만석도 경대승 박용우의 수하로 등장하는데 이후 두 배우의 관계를 생각하면..

먹는 연기는 데뷔 때부터 타고난 듯. 먹방과 메소드 연기가 합쳐진 일명 '먹소드' 연기

최하나는 경대승 편에서 수안궁주와 경대승의 첫사랑 머루의 1인 2역을 멋지게 소화하기도 했다. 최충헌-홍련화와 더불어 작중 몇 안되는 로맨스 묘사이다. 정략적 이용 의도가 아닌 진짜 로맨스는 이 정도가 전부이다. 무인시대답게 비극적. 경대승은 이미 죽은 머루를, 수안궁주는 경대승을 연모했으나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무신 집권자중 경대승만 죽을 때까지 솔로였다. 지못미.

그리고 최근 잘나가는 여배우 고은미는 명종의 후궁 순주로도 출연하였는데 당시에는 스스로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사극톤이나 연기가 스스로도 맘에들지않고 이상해서 여러번
다시하자고 하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흑역사시절...

주요 무신 집권자가 5명이라는 점에서 사극전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과거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을 소름끼치게 연기했던 '故 김흥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김흥기는 무인시대 경대승 편의 최종국면인 경대승의 꿈 속에서 호통하는 장면이 마지막 TV 출연이었고 그 직후 연극 에쿠우스를 진행하는 도중 쓰러져 2009년 5년의 투병 끝에 영면하였다. 한편 박용우김갑수에게는 긴 무명시절을 벗고 본격적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반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큰 작품. 그가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모사 종간 역을 맡은 것이 출세작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종간은 어디까지나 주연이 아닌 조연 비중이었고 그보다 더 강렬한 궁예 역 김영철의 임팩트에 묻힌 감도 있었기에, 정작 김갑수 본인이 그리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다.

여성 무사와 자객들이 등장해 열연한 사극으로도 유명하다. 여자 무사들의 이름은 다 "랑"으로 끝난다 특히 이의방 집권기에 등장하는 무비(김성령 분)의 호위 무사인 '오랑'과 경대승 집권기에 등장하는 도방의 '소랑'이라는 여성이 상당히 비중있게 나왔으며 그 외에도 초반에 '철랑'이라는 여성 자객도 등장. 문제는 이 이후로 밑도 끝도 없이 여성 자객이 등장하는 병폐를 제공하기도 했다(...).

3 특기사항

역대 한국 사극 중 극중 반란 묘사 횟수가 가장 많은 작품이다. 그럴만도 한게 당장 시작부터가 '보현원의 참살(경인란/庚寅亂)'이었고, 이어서 한순의 모반, 이고의 모반, 채원의 모반, 김보당의 난(계사란/癸巳亂), 조위총의 난, 갑오정변(이의방 살해), 망이 망소이의 난, 청주변란, 기해정변(정중부 부자 살해), 허승의 모반, 조원정의 난, 효심 김사미의 난, 병진정변(이의민 살해), 최충수의 모반, 만적의 난, 동경민란, 박진재의 모반, 희종의 친위 쿠데타 기도, 개경의 승병 반란 등등 내용의 반 이상이 누가 반란을 일으키면 반란을 평정하는 내용이다. 덕분에 당시 이 드라마를 시청한 수험생들은 국사 과목의 고려 중기 파트를 거저 먹었다. 본격 사극으로 역사 공부하기

또한 고려사를 다룬 사극 중 가장 많은 고려 왕이 등장한 사극이기도 하다. 인종, 의종(김규철 분), 명종, 신종, 희종, 강종, 고종으로 총 7명. 그러나 왕 중에서 그나마 좀 비중이 높은 왕은 명종과 희종. 명종의 경우엔 정중부나 이의민같은 권력자들에게는 꼼짝 못하나, 경대승에게만은 예외로 계속 핍박하고 몰아내려는 성질나쁜 심술쟁이 왕으로 나온다. 그야말로 김병세의 찌질연기의 극한. 근데 이건 공예태후같은 황실 인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대승을 옹호하거나 경대승을 긍정적으로 묘사사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사실 명종 입장에서는 경대승을 경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고 사극에서도 그렇고 경대승은 무신정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復古之志' 를 내세웠는데, 그 무신정변으로 옹립된 명종의 입장에서 무신정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건 ' 너님은 원래 왕 못하는데 정중부가 무신정변으로 왕 만들어 줬잖아요. 옥좌에서 내려오세요 ' 라는 말이나 다를 게 없었기 때문. 실제로 의종이 이의민에게 시해당하지 않았더라면 의종이 복위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명종에게 경대승은 이래저래 불편한 존재였고, 극중에서도 이것이 충실히 재현되었다.(경대승 사후 도방 장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할 때 환관을 보내 고문 강도가 쌘지 약한지 감시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대놓고 탐욕스러움을 드러내고 황실의 권위를 짓밟았던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에게는 별 다른 소리하지 못했으면서 유독 경대승만을 박대하고 홀대하는 명종의 행동은 일관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선뜻 이해하기 힘든 스탠스이긴 하다. 경대승이 어려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신집권자들과 달리 힘은 물론이요 백성들의 지지까지 얻고 있는 경대승이 두려워서였을까
(이 부분은 그냥 설정된 명종의 캐릭터가 그만큼 비루하고, 사람됨이 저열하다는 반증으로 보아야 한다. 조원정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명종의 성격 자체가 이의방 이의민 등 강하게 나오면 되려 꼼짝을 못하지만, 경대승처럼 머리를 조아리는 신하에게는 되려 폭언을 퍼붓는 등 거꾸로 행동을 하였다. 초기의 최충헌이 황명을 받들어 이의민을 참살하고 그 뜻을 천명해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묵인할 정도였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무기들로 인해 전근대 밀덕들에게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기존 사극에 비하면 무기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증을 희생하는 대신 캐릭터에게 개성을 부여함 셈. 대표적으로 이고쌍검, 이의방도깨비 방망이철퇴, 정중부장검, 두경승, 채원구환도, 송유인의 , 경대승과 이영진의 언월도, 김광립의 방천화극, 이의민도끼, 박존위의 비도, 조원정과 이춘부의 대도, 부루의 양인도, 준존심의 유성추 등등이 있다.

또한 무인시대에서 제작된 갑옷과 의상들은 뒤에 제작된 사극들에서도 꽤 오랫동안 우려먹힌다. 특히 갑옷의 목가리개는 무인시대에서 비로소 도입했는데, 이때 쓰인 갑옷 소품들을 수백년 전 배경인 해신, 대조영은 물론이고 수백년 뒤 배경인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재활용시켰을 정도이다. 무인시대에서 조위총이 입었던 갑옷으로 등장하는 경번갑도 새로 제작되어 선을 보였는데,[3] 이는 용의 눈물에서 김무생 씨와 유동근 씨가 입었던 경번갑과 조금 다른 형태이다.[4] 이후 정도전에서 새로 소품을 제작하기 전까지 이 갑옷 역시 사극에서 가끔 등장한다.[5]

임금의 즉위식 때 왕 뿐만 아니라 주요 신하들도 면류관을 쓰고 곤복을 입고 있어서 고증오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도 고증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물이다. 의종 때 제정한 백관의 복식은 제복·조복·공복·상복으로 구분되는데, 제복의 경우에는 백관의 관품에 따라 칠류면 칠장복·오류면 오장복·삼류면 삼장복·삼류면 일장복·평면 무장복으로 했기 때문이다. 옥구슬을 꿰어 관의 앞뒤로 드리우는 유(旒)의 개수와 옷에 넣는 무늬인 장(章)의 개수로 신분의 고하를 나타낸 것으로, 자세히 보면 신하들이 쓴 면류관의 유의 개수가 일곱개나 다섯개로 조금씩 다르다. 한편 왕족에 대한 경칭으로 쓰이는 마마가 원나라 때 몽골어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태후(선왕의 정실), 태비(선왕의 측실), 태자비를 마마라 칭하지 않고 태후 폐하, 태비 전하, 태자비 전하라고 칭했다.

그런데 이 명칭에서 다소 오류가 있다. 황후, 황태후, 태황태후에게 '폐하'라고 부르는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에서 사용하는 관례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예법에서는 폐하는 황제, 태상황에게만 쓰고, 황후, 황태후, 태황태후에게는 전하라고 불렀다. 폐하, 중국어 위키백과 참고

반면 서양에서는 황후, 태후, 태황태후의 경칭을 황제와 동일하게 Your Majesty(2인칭), His/Her Majesty(3인칭)이라고 불렀는데, 아마 일본은 근대화를 단행하면서 서양의 예법을 따라 황후, 태후, 태황태후의 경칭을 덴노와 동일하게 폐하로 높인 듯하다. 따라서 당시 외왕내제를 하던 고려에서는 중국의 예법을 따라 태후에게 폐하라고 부르지 않고 전하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조선갑오개혁대군주 칭호를 도입하면서 '대군주 폐하', '왕후 폐하', '왕태후 폐하' 등의 표현을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조선 역시 서양 국가와의 외교를 염두에 둬서 폐하를 왕의 부인에게도 확대했던 듯. 이것은 대한제국 때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또 무인시대에서는 고려의 군주가 황제의 칭호를 쓰고 있는데 과연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다. 광종이나 경종 때는 황제의 칭호를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성종 때 취소된 듯하며, 후대 군주의 치세에 복구가 됐는지 여부가 확실치 않다. 물론 '성상 폐하' 같은 표현이 문헌에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대내적으로는 거의 황제나 다름 없는 격식을 차렸던 건 확실하지만, 칭호도 대놓고 '황제'였는지 아닌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본 드라마의 시작 시점보다 한 세대 전에 발생한 묘청의 난에서 묘청이 건원칭제(建元稱帝)를 주장했던 걸 보면 당대에는 황제를 칭하지 않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고려사》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전제하에 추론을 해보면, 당대에 고려의 군주가 황제를 칭하고 있다면 묘청이 굳이 칭제(황제를 칭하는 것)를 제안하진 않았을 것이고 건원(독자적인 연호 제정하기)만 주장했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고려의 군주가 황제 칭호를 썼다는 시각에서 보자면, 칭제 주장은 '안에서만 조심스럽게 황제라 하지 말고, 대놓고 황제라고 하자' 라는 주장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방영되었을 당시에는 한국 사극치곤 드물게 뼈와 살이 분리되는 액션 신이 적나라한게 꽤 좋은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현지 한인들은 녹화본으로 VHS 여러개를 떠서 돌려봤을 정도였다고. 특히 이의민 역의 이덕화가 인기있었다. 무인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극중 이의민의 별명이었던 금강야차가 자주 언급된다. 외국에서는 Archfiend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유희왕/OCG에서 데몬을 영어로 번역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 외에 정중부와 공예태후의 마지막 대화라든가 이의방, 경대승의 최후 역시 명장면을 거론할 때 자주 언급된다.

#미국 시청자들에게서 절찬받고 유투브에까지 올라온, 무신정권 4대 집권자 Archfiend(금강야차) 이의민의 장렬한 최후 씬. 상당한 명장면이다.

참고로 고려시대에는 제2대 왕 혜종의 이름인 '무(武)' 자를 피휘하느라 쓰는 게 금지돼서 전부 '호(虎)'로 바꾸었었다. 따라서 엄격하게 고증하자면 극중에서 '무장', '무신', '무인', '무력' 등의 표현은 전부 '호장' '호신' '호인' '호력' 등으로 했어야 한다(...).[6] 호인시대(虎人時代) 호신정권(虎臣政權). 하지만 이렇게 너무 엄격하게 피휘까지 따랐을 경우 소수의 역덕들은 고증이 아주 잘 됐다며 환호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시청자들이 알아 듣기 힘들고 방송 중 이해를 돕기 위해 매번 자막이나 나레이션 등으로 설명하느라 극의 진행이 산만해졌을 위험이 크다. 따라서 '무' 자의 피휘를 무시한 것은 사정상 너그러이 이해해줄 수밖에 없을 듯.

여담으로 경번갑을 입으면 그 순간부터 그 등장인물은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징크스가 있다 카더라(...)
  1. 1999년 허준을 시작으로 대장금등 퓨전사극 열풍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2. 미디어 포커스(단, 심야토론은 금요일 밤 11시 30분으로 시간대를 이동했다. 토요일에 계속 방영되었으면 밤 11시 5분에 방영하는 심야시대 야! 신난다(...))와 취재파일 4321
  3. 이전 문서에서는 조위총의 갑옷을 조위총 역할의 배우인 최동준씨가 불멸의 이순신에서 맡은 역할인 왜장 도도 다카토라가 입고 나온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불멸에서는 일본의 갑옷을 제대로 입었으나, 무인시대에서는 경번갑을 입었다.
  4. 용의 눈물 당시 선보였던 경번갑은 재질 자체가 무척 무거워서 그 무게가 수십 Kg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연기자들이 많이 고생했다고. 최근에는 신소재를 활용하여 무게를 많이 줄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10Kg은 기본으로 넘는단다.
  5. 2008년 대왕 세종에서 이종무(박상조)가 대마도정벌때 이 경번갑을 착용했었다.
  6. 즉, '무장', '무신', '무인', '무력' 등의 표현은 고려 멸망 후 조선 태조 때부터 다시 쓰이게 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