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부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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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Yakubu Gowon
1934년 10월 19일 ~ 현재도 생존중
야쿠부라는 곳에 있는 고원이다.
비아프라 전쟁 당시 학살, 약탈, 공포정치로 아프리카를 피로 물들게 한 악명높은 독재자이자 학살자

2 생애

나이지리아의 군인,정치가.야쿠부 고원은 1934년 나이지리아 북부 플래토 지방에서 태어났다.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고원은 1960년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신생 나이지리아 군의 장교로 임관되었다.

그러다가 야쿠부 고원은 66년 나이지리아 정권을 장악했고 야쿠부 고원은 국가통합을 명분으로 집권하자마자 공포통치를 실시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동부 지역의 이보족이 종족 갈등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자 이보족 지도자인 오두메구 오주쿠가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워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자 야쿠부 고원은 1967년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하나의 나이지리아’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비아프라 전쟁을 일으켰다. 1970년 1월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비아프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 110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야쿠부 고원은 전쟁으로 사람을 죽게만드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정부군은 전쟁기간 중 비아프라 지역 주민을 상대로 집단 살인, 강간, 약탈을 자행했다. 특히 나이지리아 정부군 공군은 ‘도살자’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융단폭격 대상에 난민캠프와 시장을 포함했기 때문이였다. 난민 구호활동을 벌였던 국제적십자사 직원과 전쟁 취재에 나섰던 서방 특파원도 폭격으로 숨졌으며 이러한 폭격은 나이지리아의 다른 소수 종족이 독립을 꿈꾸지 못하도록 공포정치를 이용한 것이였다. 결국 비아프라 전쟁르완다 학살 등 이후 아프리카 대륙 종족 분쟁의 선례가 됐다. 결국 이런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 탄압으로 결국 나이지리아가 1970년 1월 비아프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1970년대 중반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체 지도자로 블릴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러나 1975년 7월 29일 무르탈라 모하메드가 이끄는 군부에 의해 우간다에 체류하던 도중 해임을 당했고 갈 곳이 막막해진 야쿠부 고원은 결국 영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그냥 물러나지 않고 1976년 2월 13일 자신의 지지 세력들과 함께 무르탈라 모하메드를 암살하고권력을 잡으려는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모하메드의 후계자 올루세군 오바산조에 의해 진압당했고 결국 아직도 망명 중인 상태로 살아있다. 정작 오주쿠 비아프리 대통령이 1982년에 사면 받은뒤에 나이지리아로 귀국해서 정치인으로 활동해서 두차례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까지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미묘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