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박쌍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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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루는 지성, 주영, 이청, 기성 선수를 묶어 부르는 말. 사실상 2010년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의 실질적인 얼굴이었던 스타 플레이어들이며 한국판 판타스틱4이다. 이를테면 '택뱅리쌍'과 비슷한 신조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양박쌍용 이전에는 황선홍명보(황선홍+홍명보), 영혼의 투톱(이동국-김은중), 우진섭좌영표(시드니 올대 좌우 윙이었던 박진섭, 이영표), 최조국(정조국+최성국) 등이 있었다.

2 상세

2009년부터 부각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실제로 2010년 당시 위 4인은 국가대표팀에서 엄청난 전력 비중을 갖고 있는 F4였다. 대표팀의 전력은 이들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천지차이로 달라졌다. 예를 들어 2010년 2월 10일 국내파 중심의 대표팀은 중국을 상대로 0:3으로 대패하여 공한증를 옛말로 만드는 굴욕을 당했지만, 고작 한달이 지난 3월 3일 부상을 입은 박주영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해외파가 집결한 대표팀은 코트디부아르를 2:0으로 완파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비록 코트디부아르가 감독도 없는 1.5군이었다지만, 그래도 아프리카 최고 수준의 축구 강국이니 놀라운 결과.

양박쌍용으로 대표되는 공격진은 타이틀부터 월드컵 16강에 부족함이 없었다. 각 선수들의 소속 클럽만 해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S 모나코, 볼턴 원더러스, 셀틱 FC(소속팀은 해당 단어가 자주 쓰이던 2010년 기준) 로 줄줄이 유럽의 명문 구단들. 이만한 공격력을 갖춘 대표팀은 의외로 많지 않다. 게다가 전술 이해도가 높고 많이 뛰는 헌신적인 윙어, 몸싸움과 기술을 겸비한 스트라이커, 영리하고 빠른 테크니션, 넓은 시야를 가진 롱패서 등 4명의 개성이 확실히 차별화되면서도 조화된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월드컵 본선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16강을 이끌었다. 박지성, 박주영 각 1골박주영은 2골, 이청용 2골, 기성용 2어시스트.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의 총 득점인 6점에 이들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후 10/11시즌 기성용은 셀틱으로 이적한 후 주춤하는 듯했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 이탈로 인하여 셀틱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박지성은 부상없이 활약하며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청용은 소포모어 징크스따윈 없다는 듯이 리그에서만 2골 5도움으로 볼튼의 확실한 에이스로 성장했다. 마지막으로 박주영은 이 시즌 33경기 12골을 기록하며, 차범근, 설기현에 이어 유럽리그에서 3번째로 10골이상 넣은 한국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3 몰락

2013년 이후로는 사장된 단어가 되었다. 4명 전원이 클럽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하고, 명백한 기량 하락을 겪으면서 과거의 영광 정도로 언급되는 말이 되어버렸다. 양박이 먼저 빠져나가고 그나마 쌍용이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지만, 이들도 각각 부상과 스캔들 등에 휘말리면서 2010년 당시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4명 중에서도 대표격이었던 박지성은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한다. 이후 클럽 커리어 역시 QPR이라는 흑역사를 거쳐 아인트호벤에서 자신의 선수 여정을 완전히 마무리지었다. 본디 2010년 당시에도 무릎 상태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양박쌍용이라 불리던 당시 이미 국가대표 커리어의 황혼기였다고 봐야 한다.
2010년 월드컵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국가대표팀을 은퇴했고 커리어 마지막을 친정팀인 PSV 아인트호벤에서 좋게 마무리 했기 때문에 4명 중 유일하게 더러운 꼴 안보고 박수칠 때 떠난 사례로 남았다.
  • 박주영은 아스날로 이적한 후 역대 최악의 먹튀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다. 출장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해 경기력을 상실한 것이 주 원인. 그나마 국가대표 생활의 경우 2010년 아시안게임, 2012년 올림픽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이름값을 했지만, 이후론 경기력 하락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몰락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된다. 게다가 조별리그 1,2라운드의 주전으로 나오기까지. 그러나 더이상의 졸전은 없을듯한 한심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팀 패배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명예 회복은 커녕 욕만 수십배 더 먹고 아예 한국 축구계의 공적으로까지 추락해버렸다. 사실상 국가대표 복귀는 무리.
  • 이청용은 이적 스캔들엔 휘말리지 않았으나 2011년 최악의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생활 자체에도 위기를 맞게 된다. 시즌아웃당해서 리그 막바지에 복귀를 했지만, 팀이 2부리그로 내려앉으면서 졸지에 같이 끌려들어가게 된다. 이후 세시즌간 챔피언쉽에서 뛰게되었고, 경기력은 부상 전에 비해 영 못하다는 게 중론.
국가대표에선 팀이 온갖 스캔들과 감독 교체로 내홍을 겪는 와중에도 붙박이 에이스로 활약하여 이름값을 했지만, 2014년 월드컵에선 알제리전/벨기에전 내내 눈이 썩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남아있던 긍정적 여론을 잃어버렸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에도 폼이 돌아오지 않는데, 동포지션에 새로 치고올라오는 신예 선수들이 늘어난지라 위기.
  • 기성용은 선수생활 커리어 자체엔 별 문제가 없었으나 SNS 등의 외부에서 대형 스캔들에 휘말렸다. 특히 최강희/라우드럽 감독과 반목하면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이 발각되어 실력 이전에 인성 쪽에서 실망스럽다는 평. 이천수 이후 최악의 스캔들메이커로 낙인찍혔다. 다행인 것은 이후 결혼을 하면서 내조를 받아 안정감이 생겼는지 이런 한심한 모습이 줄어들고 경기에 집중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대표 내에선 스캔들을 떠나 언터쳐블의 에이스. 그나마 양박쌍용 중 마지막까지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유일한 선수다. 이는 2014 월드컵에서도 다르지 않아, 외신 기준으로 국가대표 선수 중 몇 안되는 고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장단점이 뚜렷하고 실력발휘를 위해선 다른 기반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 여전해 국내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은 편. 그러나 월드컵 이후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빠지면 안될 정도까지 급부상하면서 현재 주장직까지 맡고 있다.

2014년 현재는 손흥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양박쌍용 시대는 저물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박지성을 제외한 박주영과 쌍용은 아직 20대 후반 ~ 30대 초반 밖에 안 되어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활약할 여지가 남아있긴 하나,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직후의 시점에서는 기성용을 제외한 두 사람은 현격한 기량 저하를 보여주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흥민이 토트넘 훗스퍼에 진출한 시점인 2015년 9월에는 EPL에 있는 한국인 선수가 손흥민과 쌍용, 딱 3명으로 압축되었다. (손쌍용?)

류승우, 남승우[1], 이승우 중 2명 이상이 잘 성장하면 '쌍승우'를 보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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