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충

楊忠

507 ~ 568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으로 남북조시대 서위북주의 대신이었다. 12대장군 중 한 사람으로서 대사공과 수국공(隨國公) 작위를 받았으며 장남양견수나라를 건국하자 태조(太祖) 무원황제(武元皇帝)로 추존되었다. 후한의 태위 양진(楊震)의 후예라고 한다. 북위의 무천진(武川鎮) 출신으로 영원대장군 양정(楊禎)의 아들이다. 그의 할아버지 양열(楊烈)은 북위 때 태원태수를 지냈으며 양열의 증조할아버지 양현위(楊鉉爲)는 북연의 북평태수를 지냈고 할아버지 양원수(楊元壽)가 북위 초기 무천진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양충은 북위 때 이주영(爾朱榮)의 친족 이주도율(爾朱度律)의 휘하에서 군을 이끌었다. 같은 동기로는 북위가 서위, 동위로 분열할 때 함께 서위에 가담해 서위의 실력자가 된 위국공(衛國公) 독고신(獨孤信)이 있다.[1] 양충은 우문태(宇文泰)를 따라 서위을 건국하는 데 공헌하여 서위의 대승상 우문태에게 중용되어 공을 세워 거기대장군이 되었다. 북주 건국 후 양충은 원수로 임명되어 양찬, 이목, 왕걸, 전홍, 모용연 등의 10여 명의 대장을 이끌고 북제를 공격하여 20여 개 성을 함락하였다. 이후 돌궐 10만 대군이 진양(晉陽)에 쳐들어오자 맞아 싸워 격퇴했다. 공적을 인정받아 12대장군 수국공(随國公)에 봉해졌다.

568년 양충은 병으로 쓰러져 수도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낫지 못하고 병사했다. 향년 62세였으며 뒤를 이어 아들 양견이 대장군, 수국공의 지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1. 그의 딸 독고씨(獨孤氏)가 그의 아들 문제의 황후 문헌황후(文獻皇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