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탐

1 모용부의 인물

陽耽

생몰년도 미상

북평 사람으로 청렴하고 정직하면서 침착하고 민첩해 진나라에서 요서태수에 임명되었는데, 모용한이 단부를 양락에서 깨뜨리면서 붙잡혔다가 모용외의 예우를 받아 그를 섬겼다. 모용외가 현명한 인재들을 모아 중요한 정무를 맡기면서 송해, 황보진, 무개, 유빈, 봉유와 함께 기밀 사항을 관장했으며, 321년 12월에 군자좨주에 임명되었다.

그의 조카 양유가 어려서 고아가 되고 형제도 모두 일찍 죽어 홀로 살았기에 종족들 중에서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는 이가 없었는데, 양탐은 어릴 때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특하게 여기면서 우리 가문의 빼어난 인재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임금을 보좌할 그릇이라고 평가했다.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羊耽

생몰년도 미상

위의 태상. 아버지. 아내는 신헌영, 아들은 양수(羊琇), 조카는 양호.

태산 사람으로 태산태수, 태상 등을 지냈고 조카 양호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는데, 이후에는 양호가 양탐을 공손하게 모셨다. 그는 삼공, 대장군 다음인 고위 관직까지 오른 것에 대해서는 그의 가문인 태산 양씨는 9대까지 2천 석 이상의 관리를 역임하고 모두 청렴하다는 평판을 받은 명문가로 양탐은 가문의 후광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의 자녀들 세 명 중에서 특별히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없었지만, 명문가라 그런지 대부분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관직을 지냈다. 훗날 그의 직계 후손 중에서 황후를 배출했는데, 양탐의 증손녀인 양헌용으로 서진, 전조 등에서 황후를 지내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두 개의 황조에서 황후를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