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삼국지)

1 후한 말 위나라의 문관

楊修/楊脩
(175 ~ 219)

후한 말, 삼국시대 나라의 인물. 는 덕조(德祖)로 후한 말기의 중신인 양표(楊彪)의 아들로서 어린 나이부터 주부 벼슬을 지냈다.

상당히 아는 게 많고 언변이 능한데다가 재주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민첩해 남이 떠올린 것을 알아채고서 한 발 먼저 처리해 주는 일이 잦았다. 공융이나 예형 등등이 널리 인정한 인재...이긴 한데 이 두 사람의 성격을 볼 때 분명 양수도 괴팍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머리가 굉장히 빨리 돌아가는데, 그의 재능에 관한 일화는 그 유명한 계륵 말고도 특히 세설신어에 많이 설명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이와 관련된 것들을 소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화들.

  • 조조가 부하들에게 화원을 하나 꾸미라고 명령하였다. 얼마 후 화원이 완성되자 조조가 화원을 구경하러 갔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화원 문에 活(살 활)자만을 쓴 채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아무도 왜 써놓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 하고 있을 때 양수가 보고서는 "門(문)에다 活(활)자를 써 놓았으니 이것은 곧, 闊(넓을 활)자. 승상께선 화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너무 커서 마음에 드시지 않은 것이오"라 말하여 사람들이 화원 문 크기를 줄여놓으니 조조가 와서 만족하고는 누가 내뜻을 알아냈냐고 묻자 사람들이 양수가 했다고 대답하였다.
  • 어느 날, 새북에서 조조에게 수(酥)[1]가 올라왔다. 조조는 장난기가 들어 합 위에다가 일합수(一合酥)라는 글자를 써 놓고 책상 머리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양수는 그걸 보더니 숟가락을 가져와 관리들과 함께 퍼먹으니 조조가 짐짓 노한척 양수에게 "왜 먹었느냐?" 라고 꾸짖으니 양수는 "합 위에 한 사람이 한 입씩 먹는 수(一人一口)이라 써 있으니 어찌 승상의 뜻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조조는 웃어젖히고는 물러갔다. 삼국 드라마에서는 마등이 보낸 과자[2]로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선 양수의 대답을 들은 직후 들어온 순욱에게도 조조가 하나 준다. 과자를 넙죽 받아먹은 순욱에게 조조가 마등이 보낸 것이라 말하자 순욱이 독이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란다. 그러자 조조가 웃으면서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먹여봤다고 말하는데, 퀴즈(?)도 내고 독이 있는지도 확인하는 조조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죽을뻔한 대신들은 그냥 넘어가자.
  • 조조가 아들 조비와 조식의 재간을 시험해 보려고 두 아들을 밖으로 내보낸 다음 업(鄴)의 궁궐을 지나가라고 시켰다. 그리고 궁궐의 문지기에게 그 누구도 성문 밖으로 보내지 말라고 명하였다. 아들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밖으로 나와 조조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조비는 궁궐을 통과하려다 문지기가 막자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이 말을 들은 조식은 자신에게도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양수에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자 양수는 "왕자께서 왕명을 받들고 나가려는데 기어이 막으려는 자가 있으면 베어버리셔도 됩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같은 명령을 받아 조식이 궁궐을 통과하려고 할 때, 문지기가 막자 "나는 승상의 명령을 받듣고 지나가는데, 어느 놈이 감히 내 앞길을 막는단 말이냐?"라고 말하고 문지기를 베었다. 조식의 무력으로? 조조는 조식의 재간이 놀라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고 묻자, 조식은 "그것은 양수가 가르쳐 주었사옵니다." 하고 말했다. 이건 그냥 깡패짓아닌가? 조조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양수를 멀리하게 되었다.
  • 조조는 남이 자기를 암암리에 모해할까 두려워 항상 좌우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였다. '내가 꿈속에서 사람을 잘 죽이니 내가 잠이 들었을 때는 행여 너희들은 내게 가까이 오지 말라.' 그리고 나서 어느 날 그가 장중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부러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이걸 본 근시가 조조를 부축해 세우려 하니, 조조는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 칼을 뽑아서 그를 베고 킬러조 다시 와상위로 올라가 자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일어나서는 짐짓 놀라며 물었다. "누가 내 근시를 죽였단 말이냐?" 여러 사람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조조가 통곡하여 후하게 장사지내 주게하니, 사람들은 모두 조조가 정말로 꿈 속에서 사람 죽이는 버릇이 있는 줄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독 양수만이 그 숨은 뜻을 알고 있어서 그 사람을 장사지낼 때 죽은 내시의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가엾구나! 승상이 꿈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꿈꾸고 있었던 것이네!"라고 한탄하니, 이 말을 듣고 조조는 더욱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 양수는 조비와 조식간의 후계자 다툼에서 조식 편을 들었는데, 조비를 위해 계책을 잘 내는 오질이라는 자가 비단을 나르는 바구니 속에 몸을 숨겨 대궐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양수는 즉각 조조에게 "왕자님(조비)께서 조가장 오질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라고 일러바쳤고, 조조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조비가 불안해했다. 이에 오질에게 대응책을 묻자 그는 간단하게 "다음엔 진짜로 비단만 들여오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시킨대로 하자 조조의 신하가 확인해 보니 정말 비단만 들어 있었다. 이에 조조는 양수가 조비를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관광 당한 양수
  • 한 번은 조조가 한중 원정을 가는 길에 채옹의 딸 채염이 거주하던 남전에 들를 일이 있었다. 오랑캐로부터 채염을 구출한 자가 바로 자신 조조였기에 그곳을 들렸는데 그 때 그곳에 걸린 벽에는 비분 하나가 걸려 있었다. 채염이 그것이 조아의 비문이라 답하니 그곳에 적혀있는 글귀는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題臼). 조조가 그 뜻을 몰라 채염에게 물어보는데 채염 또한 그 뜻을 모르겠다고 하니 조조가 주위 책사들에게 그 뜻을 묻는데, 책사들이 양수가 그 뜻을 안다고 하니 지금까지 양수에게 계속 당했던 조조는 자신이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는 삼 마장(30리)을 간 뒤에야 그 뜻을 알아내고는 양수에게 먼저 해석한 바를 말하게 한다. 양수가 답하길 "황견(黃絹)이란 누런 누에고치 옷감을 뜻하는 것이니 곧 색실(絲色)을 뜻하니, 두자를 합치면 절(絶)이 되고, 유부(幼婦)는 어린 소녀를 뜻하니, 어린 소녀(幼婦) 곧 젊은 여인(少女)이니, 두 자를 합치면 묘(妙)가 됩니다. 외손(外孫)은 딸의 자식으로 딸은 여(女), 아들은 자(子)니, 두 자를 합치면 호(好)가 되고, 제구(題臼)는 다섯가지 맛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이는 매운 것(辛)을 담는 것이니(受), 두자를 합치면 사(辭)가 되므로 모두 조합하니 절묘호사 '아주 훌륭한 문장'(絶妙好辭)이 되지요." 라고 하니 조조는 웃으며 "나의 생각과 똑같구나."라 말했다.
어림에 따르면 세간에서 "지혜 있는 사람과 지혜 없는 사람의 차이는 30리다."라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조조는 바로 그것을 알아 본 양수를 겉으로는 칭찬하였지만 속으로는 양수에 대한 미움이 쌓일 때로 쌓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폭발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이렇게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던 바로 그 다음 사건이 그 유명한 계륵이다.

보다시피 이것들은 그저 "머리가 좋다는 걸 나타내는 경우들"만이 아니고 조조의 비위를 긁은 것도 포함되어있는 사건들이다. 이렇듯 아는 게 너무 많은 반면 대인관계에서 겸손함을 모르고, 자신의 재주를 마음대로 뽐낸 나머지 주인인 조조의 비위를 건드리고 말았다.[3] 또한 후계자 선정과정에서 패배한 쪽에 해당하는 조식의 편을 들었던 것도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이는 자신의 주군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조조의 후계자 문제에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들어 이문열은 평역 삼국지에서 양수는 논란의 여지조차 없을 만큼 확실하게 죽을 죄를 지었으며, 양수가 죽은 것은 자업자득이자 당연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계륵사건 때 살았다고 해도 조조의 후계자로 조식을 지목하였기 때문에 다음 황제인 조비가 죽였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4] 비슷하게 가후도 양수만은 아니나 뛰어난 타입이지만 이쪽은 처신에 크게 신경써서 조비의 형인 조앙을 죽게 했던 장수의 밑에 있었음에도 죽을때까지 조비 밑에서 일했던걸 보면 차이가 난다. [5]

219년 조조와 유비한중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 유명한 계륵의 고사에 얽혀서 최후를 맞았다. 단 삼국지연의에서는 그 자리에서 원큐에 사망했지만, 정사에서는 조식을 도운데다가 원술의 생질이기도 해 뒷날 걱정거리로 여겨 219년 가을에 조조가 트집을 잡아 낙양에서 처형했다고 한다. 향년 45세.

인재를 굉장히 아끼는 조조답게 처음에는 조조도 양수를 신임하고 아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면에서 너무나 뛰어난 양수가 조조에게는 점점 부담이 되었고 불편해하던 차에 결정적으로 계륵 사건이 터지면서 양수를 처형한 것이다.

연로한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해 불효했는데, 실제 조조의 경우 양수의 목을 날려버리긴 했지만 조정의 대원로인 양표를 마냥 무시할 수 없기에 선물이니 뭐니 잔뜩 보내며, 이러저러해서 양수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죄드립니다-라고 말했으나 어찌 자식을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그걸로 수습이 되겠는가.

이후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양표에게 조조가 괜찮으냐 말을 건네니, "선견지명이 없어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해 죄를 짓게 했습니다. 아들이 죽고 나니 늙은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아주는 마음처럼 어버이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지닌 슬픔에 핼쑥해졌습니다." 하고 말하자 조조는 양수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노우지독 고사의 유래다.

연의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양씨 집안도 원씨네와 맞먹는 명문가. 선조가 전한의 개국공신인 양희였고, 양수의 고조부인 양진[6]부터 증조부인 양병, 할아버지인 양사와 아버지인 양표까지 삼공을 두루 거쳤다.

아들로 양효가 있었으며 손자는 양준[7]이다. 양준은 서진을 받들며 고관이 되었고 그렇게 양수의 직계 자손은 동진 말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안제의 치세였던 의희 4년(408년), 양준의 증손자였던 양사평[8]이 처형된(진서 안제기) 이후에는 자손들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혈연이나 친분 관계가 딱 조조에게 미움받기 쉬운 인물이었다. 우선 외숙부가 원술이었고(...) 사촌 매형은 손권이었다.(...) 거기다가 조조와는 달리 청류파 쪽 인물이라 존재만으로도 거슬리는데 자기 아들과 친하게 지내니 조조 입장에선 많이 거북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조조에게 무례하게 대한 장송과 서로 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수는 조조의 비범함을 보여주기위해 조조가 쓴 병법서 맹덕신서를 보여주지만, 장송은 코웃음을 치며 그자리에서 다 외워버렸고 놀라서 조조한테 가서 장송이 맹덕신서를 한 번에 읽고 다 외웠다고 얘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맹덕신서가 옛날 책과 비슷하다고 장송이 말했다는 것까지 쓸데없이 말해버려서 조조는 오히려 성이 나서 책을 불태워버린다.

국내의 일부 연의 판본에선 양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제갈량이 접한 뒤 "양수는 분명 남보다 빼어났다. 하지만 남보다 잘 아는 것을 입 안에 삼키고 있기란 더욱 어렵다. 양수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입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고,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1.1 미디어 믹스

삼국에서는 조식의 스승으로 나오며 양수의 지혜를 알 수 있는 일화 일부가 나온다. 조비가 이 일화를 사마의에게 전하자 사마의는 너무 총명하고 오만해서 제 명에 못 살 것이라고 한다. 역시나 마지막은 계륵을 해석했다가 열받은 조조한테 끔살. 이때 사마의가 양수의 말을 듣고 철군명령을 내린 장수를 보며 '자네 대신 양수의 목이 떨어졌으니 참 운 좋다' 라고 말하고 장수라는자가 귀가 얇다며 깐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생활의 참견의 작가인 김양수 작가의 오너캐로 등장한다. 일명 참견의 달인. 비주요모사 중에선 자주 등장하는 편으로 정사와 마찬가지로 후계자 문제로 고민하던 조조에게 계륵 사건을 빌미삼아 숙청당하게 된다.

진유동 삼국지에선 주부 시절부터 조비의 측근인 사마의를 견제하는 역으로 등장한다. 결국 사마의의 계책으로 제거된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만고만한 문관으로 등장한다. 지력, 정치는 보통 80에서 왔다갔다 하지만 매력은 문관치고 매우 낮은 편이고, 통솔, 무력은 백하팔인수준이다. 아버지인 양표가 등장하기만 한다면 매력이 높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불어 당연히 조조의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초반 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조금 후하다.여담으로 삼국지연의에서 장송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지 그 존경의 대상인 장송보다는 능력치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삼국지1에서는 신체61 지력96 무력24 매력22 운15로 순욱과 지력이 같다. 재밌는 점은 187년생으로 실제보다 12살이나 어리다.

삼국지 3에서는 어째 장완, 동윤, 비의가 달고 나와야 할 능력치를 이 녀석이 달고 나온다. 육지28 수지16 무력29 지력73 정치90 매력48에 야망8 운5 냉정10 용맹8로 정치력 하나만은 작살나게 좋다.

삼국지 5에선 지력 92, 정치 84까지 찍고 군사가 되었다. 이 때가 양수의 리즈시절. 물론 무력이 구리기 때문에 전장에서 생각만큼 좋지는 않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4/7/81/81. 파괴, 혼란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0/7/83/79/44에 특기는 8개. 대체적으로 설전쪽에 몰려있고 연의의 성격을 반영한 듯 도발 특기를 가지고 나온다. 그외엔 명사특기가 있고 내정쪽으론 상업특기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영걸전에서 등장. 양평관 전투에서 레벨 50대의 수송대로 등장하지만 수송대가 그렇듯이 내구성이 빈약하기 때문에 그리 위협적이진 않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에디터를 쓰지 않는 한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다.

화봉요원에선 양청 이라는 가명으로 1부의 스포일러가 듬뿍인 인물로 등장한다.
스포일러 덩어리기때문에 자세한건 항목참조

2 서진의 인물

羊琇
(? ~ 282)

서진의 인물로 자는 아서(雅舒). 양탐의 아들로 어머니는 신헌영이며, 또한 양호의 종제.

낭중을 지내다가 263년에 촉 정벌전에 종회가 양수를 참군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는데, 신헌영이 "종회가 밖으로 나갈 때 나는 국가가 걱정되었는데, 오늘 그 걱정이 우리 집안까지 미치는구나. 이번에 종회가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 같구나."라면서 "조심해서 가는 거에요. 옛부터 군자는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해, 밖에서 나라에 충성을 맹세해, 일자리에 있어서는 그 의무를 생각하고 도의에 관해서는 가져야 할 태도를 생각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을 유의했습니다. 군대 안에 있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자비심이 깊고 마음이 어질어 마음쓰는 것 뿐입니다. 그것을 명심해라."라고 했다.

이에 양수는 사마소에게 사퇴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며, 신헌영과 양호의 대화를 알고 있으면서 신헌영의 충고를 들었기에 양수는 종회를 경계해 촉 정벌 이후에 종회의 반란으로 혼란이 일어나 다수의 장병이 살해되던 와중에 무사히 위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

양호가 양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변경을 안정시킨 후에 머리에 두건을 쓰고 동쪽으로 가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자신의 관을 묻을만한 땅을 준비해달라고 하면서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높은 자리가 되었으니 부귀함과 풍족함을 구해 어려운 일을 실행하도록 꾸짖음과 권하는 것을 받을 수 있겠냐면서 소광[9]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내용이었다.

후에 양수가 사마염에게 양호의 평소 의향을 얘기해 양호를 선조의 묘소에 안장하길 청했지만 황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성에서 10리 이상 떨어진 황릉과 가까운 땅 1경을 내려 매장하게 하면서 양호의 시호를 성(成)이라 했다. 이후 진나라에서 중호군, 산기상시를 지내다가 황제의 총애를 믿고 교만하면서도 사치해 자주 법을 어겼기 때문에 유의의 탄핵을 받아 사형될 뻔 했는데, 죄상이 밝혀지자 면직되었다가 다시 중호군이 되었다.

석숭, 왕개, 왕제처럼 엄청난 부자라 이에 대한 일화로 유명한데, 술을 만들 때 항아리에 든 술을 발효시키기 위해 하인들을 시켜 술동이를 교대로 안게 했다고 하며, 이 일화는 세설신어에 실려있다.

282년에 사마준, 이희, 양수, 왕제, 진덕 등과 함께 사마유를 봉지인 산동으로 돌려보내라 청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북군중후 성찬과 함께 양요를 만날 때 칼로 죽이자고 모의했다가 이를 안 양요가 몸이 아픈 것을 핑계로 나가지 않고 몰래 양수를 탄핵하는 상주문을 올리면서 태복으로 좌천되자 분하고 원망하다가 병이 나서 죽었다.
  1. 양젖으로 만들었다는 음료. 현재는 연유 수, 소라고 쓰임.
  2. 수라는 것은 유제품 일체, 술, 동물성 유지, 유제품이나 술이 들어간 과자,빵을 모두 총친한다. 현재 중국인에게 수라고 말하면 퍼프 페이스트리 류의 층이 있는 바삭하고 퍽퍽한 과자를 떠올리는데, 실제로 섬서 일대에서 이 고사에서 유래한 '일합수'라는 물건이 판매되고 있는데 과자이다.
  3. 조조의 속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양수 말고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순욱이라든가. 하지만 그들은 그냥 모른척 하거나 조조가 스스로 말하도록 밑밥을 깔아주는 등 처신을 잘했다.
  4. 게다가 조비는 과거 자신에게 반대한 이들은 가차없이 제거하는 타입이라 조비가 즉위하면 양수가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5. 조비는 장수를 죽게 했는데 그 장수 밑에 있던 가후라고 무사할 이 없었겠지만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조비를 편들어 무사할 수 있었다.
  6. 이 사람은 관직에 오른 뒤 그전부터 친하던 사람이 아무도 모른다며 뇌물을 주려고 하자 거절하면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누가 모른다 하겠는가(천지 지지 자지 아지(天知 地知 子知 我知))'는 명언을 남길 정도로 청렴결백한 이로 유명했다.
  7. 서진 무제 사마염의 황후이자 며느리 가남풍에게 멸족된 무도황후 양씨의 아버지와는 동명이인이다.
  8. 형으로 양전기가 있었다.
  9. 전한의 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