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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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히브리어로 작성된 토라.

羊皮紙. 즉 가죽으로 만든 종이. 영어로 쓰면 parchment. 이는 양피지가 만들어진 Pergamon에서 유래한다.

의 가죽에서 털을 벗겨낸 뒤에 고대 및 중세 유럽에서 문서 기록용도로 사용한 것. 몹시 질기다는 특징이 있다. 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 이외에도 송아지가죽으로 만든 독피지(犢皮紙:vellum)도 있다. 만들기가 양피지보다 어려웠지만, 가죽 자체의 질이 양피지보다 훌륭하다. 양피지의 등장으로 코덱스 형태의 서적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소아시아의 페르가몬도서관이 생기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입지를 위협하게 되자 이집트에서는 페르가몬 도서관의 견제를 위해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해버렸고, 이로 인해 페르가몬 도서관의 자구책으로 인해 발명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 양피지는 그보다 오래 전에 페르가몬 사건 이전에도 많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그것은 양피지가 주로 이집트를 중심으로 많은 지역에 사용되었던 파피루스에 비하여 가격이 비싸고 제작이 어려웠지만, 파피루스는 습한 지역에서는 곰팡이가 생기거나 손상되기 쉬웠던 반면, 양피지의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났으며, 파피루스는 섬유로 인해 만들어진 특성상 양쪽면을 쓰기 어려웠지만, 양피지는 양쪽면을 모두 쓰기 쉬웠던 점, 여기에 필요할 때는 기존의 기록 내용을 비교적 쉽게 고쳐서 사용할 수 있었다는 등의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파피루스에 비해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났지만, 생산가격이 너무나도 비쌌으므로[1]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니었으며, 이 때문에 중세의 도서는 지식의 저장의 측면 외에도 재산으로서의 측면 역시 상당히 강했다.[2] 이렇게 재활용한 양피지를 전문 용어로 팰림프세스트(Palimpsest)라고 한다. 여담으로 셜록 홈즈의 '금테 코안경' 편에서 홈즈가 이 팰림프세스트를 연구하는 장면이 초반부에 나온다. 가장 유명한 팰림프세스트의 사례라면 아마 아르키메데스가 쓴 글일 것이다. 수학 이론을 적어놓았는데 누가 그걸 지우고 기도서로 재활용한 것.

제지술이 중국과 이슬람을 걸쳐 유럽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파피루스와 함께 서사재로 병용[3]되다가, 탈라스 전투 이후 제지법이 전래되면서 종이에 서사재로서의 자리를 넘겨주었고, 그 이후로는 서사재로서는 사장되다시피 하였다. 현대에는 공예용(parchment craft라고 부른다.)이나 요리용으로 사용하는 등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이상 거의 사용하지 않고[4] 수요 자체도 유대인들 외에는 별로 없다. 유대인들은 모세5경을 양피지에 적은 토라를 시나고그에 비치해두고있다

대다수 RPG에 나오는 마법주문서의 재료가 이 양피지라는 설이 있다. 여담으로 일부 사이트에서 마법재료로 팔기도 한다. 물론 외국사이트.

  1. 일반적으로 양피지는 새끼양 수십마리를 잡아야 책한권을 만들정도였다. 이에따라 양피지책은 일반적으로 여백조차 두지 못하고 빼곡하게 내용을 채워넣었으며 현존하는 양피지도서 중에는 이전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덧쓴경우도 많다. 이런 탓에 내용의 첫 부분이 어딘지 표시하기 위해 첫 글자를 다른 글자보다 크고 화려하게 채색하여 내용의 시작을 표시하였다. 로마 시대는 그리스 시대에 쓰여진 양피지를 재활용해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로마 문헌도 중요는 하지만 그 로마 문헌이 쓰이기 전에 기록된 그리스 문헌이 훨씬 더 중요하므로(...)(왜냐고? 로마 문헌은 이미 많거든.) 그리스 문헌으로 복구하는데 노력한다.
  2. 중세까지만 해도 책은 재력이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책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읽히기 시작한 것은 인쇄술이 발명되어 책의 양산화가 가능해진 이후이다.
  3. 파피루스쪽이 양피지보다 값이 쌌고, 자유롭게 필요한 만큼만 잘라 쓰기 편하였으므로 외교문서 등에서는 파피루스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책을 저술할 때도 파피루스에 초고를 써 두고 퇴고를 거쳐 양피지에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4. 아직 문서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긴 한데 당연히 이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나마도 대다수는 메뉴판같은걸 만들때 가끔 쓰이는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