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존 인물
1695 ~ 1755
18세기 초 영국군 장교이자 13주 식민지의 총사령관.
1747년에는 콜드스트림 근위대의 척탄병에 대위로 전속되었고. 이후 제14 보병연대의 준장 자리까지 올라가 지브롤터의 군령총독이 된다. 이후 1754년,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배속되어 55년에 도착했으며 이후 프랑스와의 7년 전쟁 당시 햄프턴에 2개 연대와 함께 상륙하며 프랑스군과 숱한 교전을 벌였으며, 이내 자신이 뉴 프랑스 서부(현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두케인 요새를 공략하려던 브래독의 원정을 이끌었다.
당시 브래독의 원정 행군도.
그러나 브래독이 거느렸던 2,100여명의 정규군과 민병들의 선발대(1,300여명) 두케인 요새에서 멀지 않은 모논가헬라 삼림지(현 브래독스필드)그 반도 되지 않는 프랑스군(108명), 캐나다 민병대(149명), 원주민(637명)들에게 기습당했고[1] 도로 한복판에 주저앉은 꼴이 된 영국군들은 초목을 엄폐물삼고 포로로 잡힌 영국군을 나무에 못박는 등의 심리전을 벌인 원주민들의 공세에 점점 밀리다가 브래독 자신 역시 캐나다 민병 토마스 파우셋의 총탄에 허파를 맞고 후방으로 옮겨졌으나 전사했다.
이때 지휘권을 인계받아 패잔병들을 후퇴시킨 사람이 조지 워싱턴. 이후 후위대의 토마스 던바 대령이 퇴각병력을 인계받아 보급물자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퇴각했다.
당시 프랑스 측 전체 사상자가 100여명도 되지 않았는데, 영국군은 500여명 이상이 사망하고 450명 이상이 부상자로 귀환했다. 그야말로 대참패. 이후 영국군은 1758년 전세를 역전시키기 전까지 북미 전역에서 개발살이 나고 만다. 그야말로 당대 영국군에게 있어서 츠지 마사노부나 무다구치 렌야에 비견될만한 병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욕까지 먹을 정도로 브래독이 무식한 자는 아니였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브래독을 재평가 하고 있다. 일부는 인디언들과 그들의 전술을 쓴 프랑스군들에게 무식한 유럽식 전투를 벌여서 젔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생각해보자. 영국군들과 식민지 민병대는 백년이상 동안[2] 인디언들과 숱한 전투를 치룬 자들이다. 게다가 당시 영국군 장교였던 헨리 부켓 대령은 게릴라 전술을 터득하고 인디언 스타일로 싸우기로한 유명한 60 아메리칸 연대를 창설할 정도로 영국군은 게릴라 전술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고있다. 그렇다 쳐도 "브래독이 그냥 바보같이 지휘해서 부하들만 죽은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브래독이 유럽식 전술을 사용하지 안 해서 패했다고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브래독도 그냥 장군이 된게 아니고 경험을 충분히 쌓은 군인이다. 당시 돈주고 계급을 살수 있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1710년부터 전사한 1755 무려 40년동안 군대에서 짬밥먹은 장군이다. 게다가 기록을 보자면 유럽식 전술으로 인디언이나 프랑스 민병대를 쫓아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나와있다.
왜 브래독의 원정이 실패했는지는 아직도 역사학자들이 논의하는 주제이다. 어떤 학자들은 브래독, 어떤 학자들은 그의 휘하 장교들이 병사들을 지휘하는데 미숙해서 실패했다는 설이나 병사들이 대처를 못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휘하 장교였던 조지 워싱턴은 브래독를 두둔하고 오히려 영국군 병사들이 못싸워서 졌다고 주장한다(...)
지브롤터에서의 브래독 장군은 꽤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지나, 북미에서는 오히려 폭압적인 지휘를 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는 식민지에서 다혈질에 잔혹한 군인으로 기록되었고, 심지어는 같은 영국인임에도 본토출신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를 차별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이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건 당시에 당연한 대우였다. 그래도 민병대 대령 워싱턴은 끝까지 브래독을 흠모하고 존경했다. 더 말하자면 워싱턴은 민병대 시스템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은 민병대 시절에는 영국 정규군 장교가 되고 싶었고 또한 민병대를 폐지 시키고 제대로된 군대를 새우고 싶기도 했다.[3][4] 사후에는 원주민들이 그의 사체를 훼손할 것을 염려해 영국군들이 그의 시체를 도로 한가운데에 묻어 파내기 어렵게 하도록 했으며, 군종장교조차 중상을 당해 그의 장례는 워싱턴이 직접 집도했다. 이는 일종의 도시전설처럼 알려져 왔으나, 1804년 도로 확장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그의 유해를 발굴해 다른 장소에 매장했다.
위에도 씌여있다시피 역사적으로 그는 캐나다 민병에게 저격당해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 아군 병사들에게 프래깅을 당했다는 음모론이 존재한다.
재밌는 점을 말하자면 브래독이 죽기 직전에 워싱턴에게 자신의 장교 장식띠와 권총을 유품으로 주었다고 한다. 워싱턴은 훗날 꼭 권총과 장식띠를 차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민병대 장교시절을 떠나 독립군 장군, 미국 초대 대통령일때도.
90년 초반에 나온 한 위인전 조지 워싱턴 편에선 닥돌바보로만 나온 바 있다. 여기선 무턱대고 앞으로 진격하여 참모이던 워싱턴이 너무 위험하다고 반대함에도 진격(이 책자에서는 에드워드 브래덕 장군으로 나왔다)하여 대패하고 브래덕 본인이 전사하여 워싱턴이 패잔부대 이끌고 겨우 퇴각했다고 나왔었다...
2 실존 인물에 근거한 어쌔신 크리드 3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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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많은 이들이 왜 우리가 서쪽으로 이렇게나 멀리 나아가는지 궁금해 하겠지. 이 땅은 야생 그대로의,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니까.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아있지는 않을 걸세. 때가 되면 우리가 가진 땅은 부족해 질 거야. 그리고 그 날은 자네 생각보다 머지 않았어. 우리는 사람들이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해. 즉,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프랑스 놈들도 그걸 알고 있기에 우리의 성장을 막기 위해 열성인 거야. 그 놈들은 우리 영토 끝자락에 자리잡고, 요새를 세우고 연합을 공고히 하면서, 그 올가미로 우리의 목을 조를 날을 기다리고 있어.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야! 우린 반드시 그 줄을 끊어버리고, 놈들을 몰아내야 해! 그게 바로 우리가 진군하는 이유일세. 놈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서: 프랑스 놈들은 여기를 떠나던가, 아니면 죽게 될 것이다!
명예훼손 [5]
위의 내용은 현실 기록상의 행적에 대한 설명이며 대부분의 행보도 이와 합치한다. 아래에서는 작중에 각색된 성전기사단으로써의 에드워드 브래독의 행적을 설명한다. 장군이라면서 왜 병사 군복을 입혀놨는지...
영국군에 입대한 브래독은 어느 시점에서 레지널드 버치에 의해 성전기사단에 가입한다. 1735년에는 납치당한 누이 제니를 찾고자 하는 헤이덤 켄웨이를 소개받고 헤이덤이 에드워드의 사망 당시 제니가 외쳤던 "배신자!"라는 말을 근거로 집사 잭 디그위드를 추적하는데 도움을 준다.[6]
1747년 브래독은 콜드스트림 근위대에 배속되었으나 헤이덤이 그의 부하중 하나인 톰 스미스를 추적하는걸 알게 된다. 그는 헤이덤이 미처 심문하기도 전에 스미스를 탈영 혐의로 즉결처형해버리고 증거를 은폐해버리고서는 헤이덤의 수색을 허락한다. 당연히 증거가 나올 리 없었다. 마침 이때 네덜란드 연합주-영국 연합군이 농성하던 베르겐 옵 줌 요새를 프랑스군이 포위하게 되고, 영국군은 그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다.
요새를 빠져나가던 헤이덤과 브래독은 그들의 가족도 배에 태워달라는 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헤이덤은 흔쾌히 허락하지만 브래독은 이를 거부하고 그를 욕하는 청년과 그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였다. 헤이덤은 이 광경에 충격을 받았으나, 브래독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잔악한 인물이 되어갔고, 어느새 병사들에게 불독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또한 브래독은 이때 기사단까지 탈퇴하게 된다.
1755년, 그는 식민지 총사령관으로 부임해 보스턴에 당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위수지역이 아닌 보스턴에 와있는 존 핏케언을 탈영과 반역 혐의를 씌워 처형하려 드나(당시 핏케언은 암허스트 제독의 허가하에 헤이덤과 합류하도록 되어있었다.) 헤이덤에게 제지된다. 그러나 그는 핏케언을 인도하기를 거부하고 헤이덤 일행을 내쫒아버리고, 이에 헤이덤은 브래독의 순찰대를 도발하여 핏케언을 구출하게 된다.
1755년 7월, 그는 예정대로 2개 연대의 영국군을 이끌고 두케인 요새로 진군하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명령에 의구심을 품는 병사들을 즉결처형하는 막장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군 병사로 위장한 헤이덤 켄웨이의 습격으로 허파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7] 포세이큰에서 나온 내용대로는 이때 총에 맞고 암살검에 찔렸음에도 살았으나 4일 뒤 결국 숨을 거뒀다고 한다.- ↑ 사실 영국측에서는 기습이라 주장했지만 후대 학계에서는 프랑스군이 기습 타이밍을 놓친데다(...) 기습당한 선발대의 토마스 게이지가 빠르게 화력방어전을 펼쳐 지휘관 부이주(Beaujeu) 대위가 전사한 것에 이걸 보고 모랄빵난 캐나다 민병들이 도망갔던 점을 보아 기습보다는 조우전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 ↑ 버지니아의 마을 제임스타운은 1607년에 만들어짐
- ↑ 민병대는 직업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비군식으로 전쟁이 터지면 모집하고 끝나면 해산하는 식이기 때문에 정규군에 비해서 훈련이나 군기도 많이 부족했다
- ↑ 브래독 장군은 워싱턴이 전쟁이 끝나면 정식 영국군 장교 계급을 받을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사망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 여기서는 아이들과 여자들을 자기가 살려고 학살한 천하의 개쌍놈으로 나온다. 당연히 이런적은 없었고 작가들이 만든 허구이다.
- ↑ 사실 제니가 말한 배신자는 버치였다. 그가 재산 관리인으로 들어와 있었지만 성전기사단인 것을 그녀가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는 브래독 휘하의 용병들과 함께 에드워드에게 먼저 온 자들에 대한 기록을 내놓도록 협박했고 이에 제니가 배신자라고 소리친것. 헤이덤은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하고 집사가 배신한 것으로 생각했다.
- ↑ 위에서 쓰인 아군 병사에게 프래깅을 당한 거라는 음모론을 잘 재현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