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국 대통령 | |||||||
미국 독립전쟁 | ← | 초대 | → | 2대 | |||
미합중국 건국 | ← | 조지 워싱턴 | → | 존 애덤스 |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 |||
앤드루 애덤스 | 존 애덤스 | 새뮤얼 애덤스 | 토머스 애덤스 |
존 앨솝 | 에이브러햄 볼드윈 | 존 배니스터 | 조사이아 바틀렛 |
리처드 바셋 | 건닝 베드퍼드 주니어 | 데이빗 브렐리 | 에드워드 비들 |
존 블레어 | 리처드 블랜드 | 윌리엄 블라운트 | 사이먼 보름 |
카터 브랙스턴 | 제이콥 브룸 | 피어스 버틀러 | 캐럴턴의 찰스 캐럴 |
대니얼 캐럴 | 리처드 캐스웰 | 새뮤얼 체이스 | 에이브러햄 클라크 |
윌리엄 클링건 | 조지 클라이머 | 존 콜린스 | 슈테판 크레인 |
토머스 쿠싱 | 프랜시스 대나 | 조나단 데이턴 | 사일러스 딘 |
존 드 하트 | 존 디킨슨 | 윌리엄 헨리 드레이턴 | 제임스 두에인 |
윌리엄 듀얼 | 엘리퍼릿 다이 | 윌리엄 엘러리 | 윌리엄 퓨 |
토머스 피츠시먼스 | 윌리엄 플로이드 | 나다니엘 폴섬 | 벤저민 프랭클린 |
크리스토퍼 개즈던 | 조셉 갤러웨이 | 엘브리지 게리 | 니콜라스 길먼 |
나다니엘 고램 | 버튼 그윈넷 | 리먼 홀 | 알렉산더 해밀턴 |
존 핸콕 | 존 핸슨 | 코르넬리우스 하니트 | 벤저민 해리슨 |
존 하트 | 존 하비 | 패트릭 헨리 | 조셉 휴이스 |
토머스 헤이워드 주니어 | 새뮤얼 홀텐 | 윌리엄 후퍼 | 프랜시스 홉킨슨 |
슈테판 홉킨즈 | 티투스 호스머 | 찰스 험프리스 | 새뮤얼 헌팅턴 |
리처드 허슨 | 제러드 잉거솔 | 존 제이 | 토머스 제퍼슨 |
토머스 존슨 | 윌리엄 새뮤얼 존슨 | 루퍼스 킹 | 제임스 킨제이 |
존 랭던 | 에드워드 랭워시 | 헨리 로렌스 | 프랜시스 라이트풋 리 |
리처드 헨리 리 | 프랜시스 루이스 | 필립 리빙스턴 | 윌리엄 리빙스턴 |
제임스 러벌 | 아이작 로우 | 토머스 린치 | 헨리 머천트 |
제임스 매디슨 | 존 매튜스 | 제임스 매켄리 | 토머스 매킨 |
아서 미들턴 | 헨리 미들턴 | 토머스 미플린 | 거버니어 모리스 |
루이스 모리스 | 로버트 모리스 | 존 모턴 | 토머스 넬슨 주니어 |
윌리엄 파카 | 로버트 트리트 페인 | 윌리엄 패터슨 | 에드먼드 펜들턴 |
존 펜 | 찰스 코트워스 핑크니 | 찰스 핑크니 | 페이튼 랜돌프 |
조지 레드 | 조셉 리드 | 대니얼 로베르도 | 시저 로드니 |
조지 로스 | 벤저민 러시 | 에드워드 러틀리지 | 존 러틀리지 |
나다니엘 스커더 | 로저 셔먼 | 제임스 스미스 | 조너선 베이야드 스미스 |
리처드 스미스 | 리처드 돕스 스페이트 | 성 토머스 제니퍼의 대니얼 | 리처드 스톡턴 |
토머스 스톤 | 존 설리번 | 조지 테일러 | 에드워드 텔페어 |
매튜 손턴 | 매튜 틸먼 | 니콜라스 반 다이크 | 조지 월턴 |
존 월턴 | 새뮤얼 워드 | 조지 워싱턴 | 존 웬트워스 주니어 |
윌리엄 휘플 | 존 윌리엄스 | 윌리엄 윌리엄스 | 휴 윌리엄슨 |
제임스 윌슨 | 헨리 위스너 | 존 위더스푼 | 올리버 월코트 |
조지 위스 |
풀 네임 | George Washington |
출신 정당 | 무소속[1] |
생몰년 | 1732년 2월 22일 ~ 1799년 12월 14일(67년 9개월 20일) |
재임 기간 | 1789년 4월 30일 ~ 1797년 3월 4일(7년 11개월 5일) |
서명 | |
키 | 188cm |
목차
1 개요
세계사에 등장한 최초의 대통령
그리고 미국의 최초이자 최후의 선거 군주[2]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 중 한 명이며,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
다만 President라는 단어는 1775년 대륙 의회 의장(President of the Continental Congress)들이 최초로 썼다. 며칠만 하다 관둔 의장들을 제외한 사실상의 초대의장은 4대 의장이자 독립선언문에 최초로 서명을 했던 존 핸콕[3]이었다. 이 직위는 핸콕 이후 12년간 11명[4]에게 돌아가다가 그 이후에야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었다. 대개 1년 임기로, 독립이 인정된 1783년 이후로는 7명이 있었기 때문에 총 16대 15명. 지금의 미국에서도 President는 연방 대통령과 연방 의회의 상원 의장 두 명이 사용하는 호칭이다.[5]
1달러 지폐에 삽입된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
2 생애
버지니아의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이복형의 영향으로 군인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해군에 지원했으나 떨어진 그는 대신 버지니아 민병대로 지원했다. 그 후 안정적인 경력을 쌓아가다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라는 과부(3000명이 넘는 노예와 1만 7000에이커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와 결혼, 당대의 미국 최대 갑부(결혼 후 워싱턴의 토지는 2만 2000에이커가 됨. 워싱턴 자신의 상속재산 포함이다)중 한 명이 되었다. 재력을 바탕으로 상당히 뛰어난 패션 센스를 뽐냈다는 말도 있다.
처가 전 결혼에서 출산경험이 있음에도 결혼에서 아이가 없었다. [6] 그리고 전처의 아들이자 입양한 아들인 존 커스티스가 사망하자, 존 커스티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 조지 워싱턴 파크스 커스티스를 입양해서 아내의 전남편의 후손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고로 조지 워싱턴 파크스 커스티스는 장성한 자녀가 딸 한명이라서 딸과 사위에게 모든 재산이 돌아갔는데 그 사위가 바로 로버트 E. 리 장군이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재산중에 원래 워싱턴 가문의 재산이었던 유산은 조카 부시로드 워싱턴에게 상속한다.
그런가하면 당시 법적으로 금지된 지역을 개척해 재산을 불렸다는 흑역사도 존재한다. 이 당시 영국 측은 13개 식민지(미국)가 끊임없이 땅을 개척하도록 놔두면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그 세력이 본국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척에 상당한 제약을 가했고 심지어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으로는 가지도 못하게 법으로 금할 정도였다.
식민지 의용군(Militia) 장교로 7년 전쟁때 나름 활약했는데 간절히 정식 영국군 장교로 임관되기를 바랬다. 상관인 영국군 준장 에드워드 브래독은 워싱턴에게 전쟁이 끝나면 정식 영국군으로 편입될수 있게 노력해보겠다고 했지만 브래독은 결국 전사한다.
2.1 미국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유럽에서 7년 전쟁이 벌어지자, 신대륙에도 그 영향이 미쳐 프랑스-인디언 전쟁(전역)[7]이 발발, 조지 워싱턴은 다른 영국계 식민지 유지들과 함께 영국군을 지원하는 식민지 의용군에 가담 나름의 공로를 세우나, 식민지 전쟁에 많은 예산과 국력을 소모한 영국 정부가 이 빵구를 매꾸려고 식민지에 세금을 늘리고, 새로 편입된 식민지의 원주민을 다독이기 위해 식민지인의 구 프랑스 식민지 지역으로의 개척을 금지시키자, 이런 불만들이 쌓여서 독립전쟁이 발발한다. 전의 전쟁에서 인망을 보인 워싱턴은 식민지군(Continental Army)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초반에는 영국군에게 연전연패했고[8], 이후 영국에게 이를 갈고 있었던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부터의 지원에 힘입어 영국군을 소모전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토벌군은 소모전에 승리를 했음에도 계속 끌려다가 마지막 요크타운 전투에서 패해서 항복, 그길로 식민지에서 손을 뗀다.
워싱턴이 없었으면 미국 독립전쟁은 얼마 안가서 끝났을 것이란 것이 중론이다. 일단 당시 왕당파에 비해 독립파 자체가 지지율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현재 연구로는 지지율은 거의 비슷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인망이 없는 사람이 독립파를 지휘했으면 바로 민중의 지지를 잃고 독립파는 망할 판이었다. 또한 당시 미국군을 지휘할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극도로 부족했는데, 그 이유는 영국군의 보조병격이었던 식민지군 출신들은 원주민 또는 (비슷한 처지의) 프랑스 식민지군이나 상대해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영국군 같이 고도화된 유럽의 선진군대와 싸운바는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영웅이자 후반의 배신자인 베네딕트 아놀드나 대니얼 모건, 너대니엘 그린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중에 총사령관이 가능한 인물은 베네딕트 아놀드 정도. 반면에 호레이쇼 게이츠를 비롯해서 한 줌되지 않는 군대를 말아먹을 인물은 고위층에 많았다. 더구나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을 소모전으로 규정하여 전개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습은 베트남 전쟁 시기의 호치민이나 보응우옌잡과 상당히 유사하다. 전술적 능력은 부족했지만 대전략을 진행하는데 구심점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어쨌든 전술적으로는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인품과 친화력, 그리고 리더쉽으로 말 많은 13개 주를 단합시켜 끝내 독립을 쟁취한 것은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2.2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승리 후 그는 미련없이 군권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사람들의 추대로 결국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만장일치로 결정된 대통령직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9] 대통령으로써의 평가 또한 성공적이다. 그는 왕이 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지라[10] 임기를 2번 치르고 물러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당시 정당간의 극심한 대립을 어느정도 통솔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밖에도 내각(cabinet) 시스템, 국가 은행 등, 헌법에 기술되지 않은 대통령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그 후 2번의 임기가 끝나자 워싱턴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미국 법 어디에도 대통령직은 2번까지만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워싱턴이 2번만 하고 물러난 뒤로 다른 사람들도 2번 이상 대통령직을 하지 않았다.[11] 그러다가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4회 연임을 한 뒤에 1951년에야 법으로 4년 중임제가 명시되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대단하냐하면, 권력을 잡았다가 놓기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조지 워싱턴은 2번의 임기후에 워낙 미국을 잘 이끌어서, 미국 온 국민에게서 추앙받았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2번이상하게 되면 왕권이 된다는 생각에 후회없이 내려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했고, 시작을 정말 잘 끊은 것이 지금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대통령제가 문제없이 돌아가는 이유라고 볼 수도 있다.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최고의 대통령을 뽑으라면 여론에서 톱 5안에 거의 반드시 들 정도로 미국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2.3 사망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지 2년후인 1799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워싱턴의 공식 사인은 '무리한 과다출혈'이다. 워싱턴은 눈내리는 날 무리하게 말을 타고 산책하다가 폐렴에 걸렸고, 치료를 하기 위해 무리하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피를 뽑았다.(당시 서양에서는 그때까지도 병이 나면 무작정 피를 뽑는 '사혈치료'가 유행했다.) 결국 5파인트(약 2.35리터)나 되는 피를 뽑은 워싱턴은 폐렴에 걸린 지 3일만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2.4 그의 업적
미국이 개국이래 독재자 없이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펼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의 역할이 가장 컸다. 당시 미국이 강대국이 아니었고 그와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나름대로 자부심이 쩌는 관료들과 좁아터진 백악관에서 미래가 불안한 신생국가의 미래를 도모하며 사느니 316명에 달하는 노예를 부리며 자신의 별장에서 한가로이 사는 것이 그에게 더 나았기에 대통령직에 집착하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개발되지 않은 광대한 영토와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무수한 관리의 등용을 실시하고 법률의 제정, 시행을 시작한 신생 독립국의 체계와 국력을 개인의 재산과 비교하여 미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다 당시에는 왕이나 황제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지도자 역할이였으며 [12], 21세기에서도 형식상 민주국가에서 왕처럼 행동하는 지도자가 상당수라는 것을 보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스스로 물러난 워싱턴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며 나무위키에서도 박수칠 때 떠나라의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기도 한다. 애초에 초기 미국의 먼지만큼도 안 되는 권력과 권한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워싱턴이 권력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당한 영토를 보유한 한 나라의 시조가 되어 평생, 자손 대대로 왕이 되거나 로마의 종신 독재관처럼 권력을 사용할 기회를 버렸다는 점에서 워싱턴이 미국과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의 고별사(Farewell Address)[13]에서도 보이듯이, 워싱턴은 진정한 힘은 그 힘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게 쉬운 일이면 이런 쉬운 일도 못한 인간들은 뭘까?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시절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역시나 왕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지 워싱턴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2번의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Mount Vernon으로 돌아갔으며 이를 통하여 최고의 권력이 의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미국 국회 의사당에 가면 정중앙 돔의 천정에는 조지 워싱턴이 당시 주 갯수였던 13명의 천사에 둘러 싸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지 워싱턴을 신화화 한 것이다. 원래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국회 의사당의 지하에 조지 워싱턴을 묻으려고 했지만 미망인 Martha는 이를 거부했고 생전에 살았던 Mount Vernon에 묘를 만들게 되었다. 초대 대통령이 국회 의사당 지하에 마련된 묘를 이용하지 않자 이후에 어느 누구도 이 묘를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일각에서 흑인 노예랑 불륜을 저질렀고, 한겨울 엄동설한에 자신이 사랑하던 흑인 노예를 만나러 가다가 폐렴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워싱턴은 천하의 바람둥이이자 호색한이란 주장이 있긴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폐렴에 걸려 죽은 건 맞지만 흑인 노예와의 불륜설은 증거가 없다.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던 미국의 국부는 토머스 제퍼슨이다.
흑인노예와는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염문설은 많다.[14] 독립전쟁 때 자신의 부관에게 "애인을 기쁘게 하려면 열심히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아라"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불임인 분이 이런말 하는게 어색한건 기분탓..
2.5 노예 제도에 대한 평가
노예 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스스로는 노예를 거느렸다. 한국에서 알려진 통설과는 달리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노예제도에 비판적이었다. 다만 노예제도의 존폐를 헌법에 명시하다가는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북부와 찬성하는 남부의 연합이 균열되어 연방이 와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개별 주에 맡기는 정책을 썼다. 워싱턴, 제퍼슨, 매디슨은 노예제가 조만간 자연스레 폐지될 것이라고 생각했고[15],
(당시의 노예제 인식은 "필요악"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니먀 많은 이론들이 나와서(ex:자본주의의 빈부격차에 의한 갈등을 완화시킨다-노예니까 가난해도 문제없음!- 정당화되었다.))
워싱턴이 결혼과 함께 생활하고 항상 은퇴 후에 돌아갈 곳으로 생각했던 Mount Vernon은 결혼 당시에는 50명의 노예가 있었지만 사망 직전에는 300명이 넘는 숫자로 늘어났는데 운영했던 농장의 규모나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그 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이돌이라 불리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며 워싱턴이 사망할 때까지 지냈던 Mount Vernon의 노예들은 단지 잡일의 역할이 아닌 대장장이나 천을 짜는 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 워싱턴은 직접 작성한 유언장에 독립전쟁때부터 자신을 수행한 비서 흑인을 자신의 사후에 자유인으로 풀어주도록 했으며 Mount Vernon에 있는 나머지 노예들은 부인 Martha Washington이 사망한 후에 모두 자유인으로 풀어 주도록 하였다.
2.6 성격
초상화를 보면 상당히 무뚝뚝하고 권위적으로 생겼지만 그와는 달리 대단히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관저에서 카드놀이를 열광적으로 즐겼고, 무료하면 관저를 나서 여우 사냥에 심취했으며 다과회도 자주 열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미식가라서 음식에도 엄격했으며 특히 포도주에는 사족을 못 썼다고. 어렸을 때부터 말타기등을 즐겨해서 그런지 외모는 정말 장군감이었다고 한다. 어깨는 딱 벌어졌고, 키도 187cm로 매우 컸다.[16]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아서 곰보였는데, 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초상화에는 이것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독립전쟁 이전부터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 버지니아 식민지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3 서브컬쳐에서의 조지 워싱턴
3.1 코에이의 역사 게임 Liberty or death
미국측 총사령관 캐릭터로 나오는데 다른 코에이의 역사 게임의 주인공격 캐릭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 칭기즈 칸이 전투형 캐릭터인데 비해 워싱턴은 정치형 캐릭터에 더 가깝다. 사실 워싱턴은 총사령관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인물이었다. 전투력만 따지면 베네딕트 아놀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3.2 문명 시리즈
미국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3.3 루카스 아츠의 텐터클 최후의 날
코믹 어드벤처 게임인 이 작품에선 황당하게 나온다. 과거로 간 주인공 중 하나인 호기가 게임 진행을 위하여 미래에서 건네받은 폭발하는 시가를 그에게 주는데 고맙다고 그 시가를 피다가 폭발하면서 이빨이 다 부숴진다. 덕분에 이빨이 하나도 없는 확 늙어버린 모습으로 변하는데 역시 미래에서 건네받은 딱딱 움직이는 틀니를 주면 그걸 끼는데 이빨이 딱딱 움직이는 지라 얼굴이 흔들리면서 마치 추워보인다고 존 핸콕이 토머스 제퍼슨에게 모닥불을 피우게 한다.
나중에는 그 모닥불을 엄청 화력이 높게 만들면 불이야~ 소리 지르면서 핸콕, 제퍼슨과 같이 창문을 깨고 달아나는데 대머리(가발)이다. 특별히 병신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웃기게 만든 수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3.4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캠페인 등장인물 목록 | ||||||||
-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 대전사 | 아시아 왕조 | |||||
액트1. 피 | 액트2. 얼음 | 액트3. 강철 | 액트1. 불 | 액트2. 그림자 | 액트1. 일본 | 액트2. 중국 | 액트3. 인도 | |
주인공 | 모건 블랙 | 존 블랙 | 아멜리아 블랙 | 나다니엘 블랙 | 체이튼 블랙 | 사쿠마 키치로 | 지안 후앙 | 나니브 사히르 |
서브 영웅 | 엘리자벳 램지 | 카넨케 | 조지 워싱턴 | 성난 말 | 토리이 모토타다 | 라오 첸 | 프라바르 파텔 | |
사힌 | 노나키 | 쿠퍼 소령 | 카넨케 | 도쿠가와 이에야스 | ||||
적 | 알레인 매그넌 | 워릭 | 피에르 보몽 | 스벤 쿠첼러 | 윌리암 홈 | 이시다 미츠나리 | 왕 진하이 | 조지 에드워드슨 |
델가도 |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 |||||||
NPC | 칠체 | 스튜어트 블랙 | 시몬 볼리바르 | 노나키 | 아멜리아 블랙 | - | - | 바하두르 샤 |
조지 워싱턴 | 칠체 |
미션에서 주요 인물이자 주인공 가문인 블랙 가문의 조력자로 등장. 성우는 홍성헌. 영국군 해군장교[17]로 나오며 캠페인 2장 '얼음'에서 주인공인 존 블랙과 7년 전쟁 속에서 합동작전을 펼치며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3.4.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대전사
성우는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홍성헌. 오리지널에서는 그냥 장교였지만 확장팩의 캠페인 '불'에서는 잘 알려진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으로 등장. 존의 아들인 나다니엘 블랙의 보좌를 받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오리지널과 확장팩에서의 스킨이 다르며, 체력이 좋고 공격할 때 군도를 들고 직접 공격한다. 컨트롤을 안 하면 다른 유닛들이 원거리 공격을 하는데 워싱턴 혼자 군도 들고 돌격하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살려가면서 컨트롤해봐야 특별히 이득이 있는 스팩도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제일 먼저 앞세워 일점사를 받아내게 하고 다른 유닛들로 공격을 하면 유닛 손실 없이 캠페인을 클리어 할 수 있다. 체력이 네자릿수라 은근히 오래버틴다.
3.5 벤10 옴니버스
성우는 David Kaye.
말트루언트를 막기 위해 타임 사이클을 통해 1773년으로 시간 이동한 벤과 루크가 만나며 배관공의 일원이란 설정이 붙었다.
3.6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에서도 등장. 여기서는 티미가 역사 숙제를 하기 위해 수호천사에게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을 불러오라는 소원을 빌어서 등장. 여기서는 나무를 보자마자 도끼로 찍을려고 발작을 한다. 상술했던 벚꽃나무 농담의 패러디인듯.
3.7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조지 워싱턴(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항목 참조. 흥미롭게도 이 게임에서 조지 워싱턴은 주인공의 협력자도 되지만 동시에 원수도 되고, 선하고 정의로운 성격이지만 동시에 악행도 저지른다. 심지어 DLC에서는 에덴의 조각으로 환상을 본 조지 워싱턴이 절대군주가 되어 폭정을 자행하는 실제 역사의 패러렐 월드가 벌어지기도 한다. 워싱턴 왕의 폭정 항목 참조.
3.8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진짜 조지 워싱턴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모델로 한 19세기형 자동 인형 살인 기계 적, '기계 애국자'가 나온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적 참고. 팬들과 게이머들 사이에선 '좀비 로봇 워싱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3.9 CF
야 이 영국군 놈의 새끼들아!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닷지를 몰고 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크라이슬러의 닷지 챌린저(Dodge Challenger) 광고에 등장했다. 친히 자동차를 운전해 영국군에 돌진해서 격퇴시킨다(...)는 내용. 이게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Car Party)이다
4 기타
- 오늘날 워싱턴의 얼굴은 1달러짜리 지폐에 새겨져 있으며 이유는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그를 보게 하기 위해서라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대통령의 권위를 확립한 성공적인 대통령으로서 워싱턴은 모든 미국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지만대다수 미국인들은 그딴거 크게 신경 안 쓰고 자주 지폐를 구기고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니지.[18]
- 1달러 지폐의 실려있는 워싱턴의 입이 부풀려져 있는데, 틀니를 껴서 그런 것이다. 워싱턴은 양치를 꼼꼼히 하는 편이었으나 그 당시 치약은 재료부터가 병맛인지라(담배가루를 치약으로 썼다) 워싱턴은 젊은 나이에 이가 빠져 틀니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틀니는 성능이 안 좋아 항상 냄새가 났고 당시 의치 재료로 많이 사용한 것은 하마나 바다코끼리의 엄니였는데, 사용하다 보면 미세한 구멍에 찌꺼기가 끼어 아무리 닦아도 냄새가 났다. 밤이면 뽑아서 물에 담가 놓고 하루 여섯 번씩 닦아도 냄새가 났다고 한다. 워싱턴은 그 냄새가 역겨워 항상 입을 부풀린 채 다녔다. 워싱턴의 초상화는 매우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하는데 표정이 일그러져있는 그림도 다수 보이며 이는 새로 장착한 틀니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였다고 한다.
- 더불어 미군에서도 가장 높은 계급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그가 전역할 땐 중장(Lieutanant General)에 불과했지만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그를 3계급 특진하여 대원수(General of the Armies)로 추서한 것.
별이 6개![19]
- 워싱턴의 벚꽃나무 이야기가 유명한데, 그는 도끼로 아버지가 아끼는 벚꽃나무를 베었는데 그가 솔직하게 말하자 아버지가 용서해줬다는 것이다.[20][21] 참고로 아메리칸 조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생님 "조지 워싱턴이 벚나무를 자른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용서했습니다. 왜 일까요?"학생 "네, 조지 워싱턴은 아직 도끼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륜
그런데 정말로 손에 도끼가 들려있었으면 용서해줬을 것 같다.아, 손도끼!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 위스키와 인연이 좀 있는 인물인데 영국과의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나자 위스키에 세금을 매겼다가 폭동이 일어나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런데 반란은 일으킨 쪽에도 사정이 있는 것이, 애팔레치아 개척지역민들은 험난한 산맥으로 곡물을 나르는 대신 남는 곡물로 만든 위스키를 운반하는 걸 선호했을 뿐더러 현금이 귀했던 개척지의 사정상 위스키는 일종의 화폐로도 사용되어 왔었다. 워싱턴 정부는 위스키세를 사치세로 생각했는데 이들에게는 소득세가 된 셈. 결국 반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워싱턴 본인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토벌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직접 군사를 이끈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이었다. 이렇게 보면 워싱턴과 위스키가 악연일 수도 있겠지만...그가 퇴임하던 해, 워싱턴은 버지니아주에 증류소를 세웠고 사망하기 전 까지 미국 최고의 양조업자가 되었다고 한다.
- 역사가들이 당시 문서를 찾아내어 그의 사생활을 공개했는데, 겉보기와 달리 멋부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카스웰 메시 향수를 즐겨썼고, 위 항목에서도 써졌다시피 틀니를 항시 착용했으며 파우더를 뿌린 가발을 썼다.
- ↑ 연방주의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 ↑ 일단 세계 최초의 대통령 선거가 일종의 선거군주제의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고 조지 워싱턴 자신도 스스로 왕처럼 행세했다. 그런데 그가 임기제와 공화제를 도입하여 대통령직의 기틀을 잡았다.
- ↑ 독립선언서에 제일 먼저 서명하면서 "크게 써야 영국 왕 조지 3세가 돋보기 없이도 이름을 볼 수 있지 않겠소?"하면서 큰 글씨로 서명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존 핸콕이란 이름 자체가 '자필 서명(autograph)'이란 뜻으로 쓰인다. 가령 'Please put your John Hancock'이라고 하면 '여기 서명 좀 해 주세요'라는 의미다.
- ↑ 핸콕이 두 번 했다. 첫번째엔 2년 5개월, 다음번엔 7개월.
- ↑ 2001년 미 상원에서는 부시와 대선에서 붙었다가 낙선한 부통령이 겸임하고 있던 상원의 'President' 자격으로 직접 부시의 'President' 당선 확정 선언을 하게 되는 장면이 연출되며 한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덧붙이자면 하원 의장은 'Speaker'로 불리므로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 ↑ 워싱턴이 10명의 사생아를 두었다는 낭설이 있는데, 근거가 없다.
- ↑ 프랑스 + 원주민 대 영국 식민지군의 전쟁이라고 알려졌지만 영국군과 프랑스군 모두 병력과 보급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원주민 부족과 연합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7년 전쟁참조
- ↑ 당시 영국 육군은 소수정예로서 병력수는 적었지만, 전투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이랬으니 민병대에 불과한 식민지군이 패하는건 당연. 더구나 워싱턴은 몇번의 전략적 실수를 했다. 이 중에는 치명적일뻔한 실수도 몇번 있었는데, 정말 천운이 따라서 넘어갈 수 있었다. 반면 영국군으로서는 정말 더럽게 운이 없었다.
- ↑ 재선때도 그랬는데, 다만 부통령은 존 애덤스와 조지 클린턴이 경쟁을 통해 선출되었다. 단 1820년 제임스 먼로의 재선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한 명 뿐이었는데, 선거인단 선거 지지율은 100%였지만 존 퀸시 애덤스를 찍은 반란표로 선거인단 만장일치는 없었다.(228/231)
- ↑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영국 왕의 이름(조지)과 같았고, 그의 행동은 왕이나 마찬가지기는 했다.
전임을 본게 없으니워싱턴은 "전하"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게 했으며 유럽의 왕들처럼 스스로를 3인칭으로 불렀다. 초기의 대통령의 개념은 "투표로 뽑는 왕"과 같은 것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첫단추가 중요하다는 것. - ↑ 율리시스 그랜트나 시어도어 루즈벨트처럼 퇴직 이후에 재도전했다가 실패한 대통령들이 존재하긴 하다만
- ↑ 물론 워싱턴 자신도 왕 흉내를 좀 내기는 했다. 스스로 3인칭으로 지칭한다든지.. 말하자면 대통령이 "과인"이나 "짐"이라는 표현을 쓴 셈..
- ↑ 명칭은 저렇지만 워싱턴은 이를 직접 연설하지는 않았고 1796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의 한 신문에 내용이 발표되었다.
- ↑ 고대 노예제에서도 그렇지만, 애당초 미국에서 여성 노예는 불륜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주인이 흑인노예와 사생아를 낳았다고 해도 좀 쑥쓰러울 뿐 크게 비난받지는 않았다. 남부 대농장 주인은 예외없이 이런 짓을 일삼았다고 하며, 유명한 미니시리즈 "뿌리"에서도 쿤타 킨테의 10대 딸이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팔려가자마자 백인 주인이 "신고식"을 하겠다며 덮쳤고, 그 이후 출산하게 된다. 현재 미국흑인의 유전자에 10~20%의 백인유전자가 섞인 것은 바로 이때 수많은 흑인 여자 노예들이 백인남자에게 범해져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 ↑ 이 생각은 남부에서 면화농업이 번성하기 전까지는 거의 맞았으나 면화농업이 번성하자 노예제는 오히려 강화된다.
- ↑ 당시 유럽 남성의 평균 신장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165cm ± 3cm 전후였다. 2014년 현재 미국 백인 남성의 키는 179cm이므로 현재 관점에서도 상당히 큰 키다.
- ↑ 사실 Colonel을 오역한 고증오류(...)다.
- ↑ 대한민국의 천원권 지폐처럼
은 아니지만물가 사정상 거래의 주역은 안 되어 잔돈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1달러 지폐들은 갓 찍어낸 것이 아니면, 대부분 지폐는 구겨져 있거나 심지어는 기괴한 낙서가 적혀져 있는 것도 다반사다. 참 이래저래 험한꼴 많이 보는 지폐다. 워싱턴 지못미. - ↑ 같은 영어명으로 존 조지프 퍼싱도 받았지만 당시 군대 계급으로 봤을 때 이 경우는 대원수가 아닌 원수이다. 대원수 항목 참조.
- ↑ 이 이야기는 사실 구라다. 목사 행세를 했던 외판원 웜스란 사람이 위인전이 너무 얇다고 생각해 맘대로 붙인 이야기라고 한다. 이 Parson Weems는 벤자민 플랭클린이 소년 시절에 물건을 팔면서 가격을 깎고자 하는 손님에게 가격을 계속 올리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 더구나 초기 내용은 저것도 아니었다. 원래는 워싱턴을 포함한 형제들은 같이 놀다가 벚꽃나무 가지를 꺾어먹는 것이었고, 이 때 무려 4살짜리 막내 워싱턴이 자기가 했다고 말했다는 엄청난 내용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현재의 내용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 ↑ 이 웜스라는 남자는 어쌔신 크리드 3에서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데 매우 영악한 쥐새끼라고 까이는데, 코너가 워싱턴 암살 기도에 대해 말하자 "워싱턴은 주피터의 환생이자 이 나라를 자유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위대한 국가로 키워낼 인물이니 죽어선 안된다."라며 (당시로써는)엄청나게 말도 안되는 허풍을 떨어댄다. 이 윔즈라는 남자는 나중에 미국 국부들에 대한 위인전도 썼다. 이 아저씨가 다른 국부들을 어떻게 묘사했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