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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 8월 4일 발생한 여객선침몰사고.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몰래 도망갔지만 전원 생존했다.
2 오세아노스호
오세아노스(Oceanos)호는 1952년 7월 12일 제작을 시작하고 1953년 6월 완성된 배로, 최대 속도는 18.5노트, 최대 승객 550명, 승무원 250명이 탑승 가능한 길이 153m, 폭 22m의 거대 여객선이었다.
프랑스에서 제작했고 그리스에서 소유했으며, 프랑스의 Bordeaux의 Forges ex chantiers de la Girende 사에서 만들었고, 만든 이후 첫 이름은 진 라보르테(Jean Laborde)였으나 이후 미지나이, 안코나, 이스턴 프린세스로 이름이 바뀐 뒤 1976년 오세아노스로 바뀌었다.
주요 항로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마다가스카르로 가는 항로였다.
3 사고 당시
1991년 8월 3일, 남아프리카 이스턴 런던에서 출항한 오세아노스 호는 더반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녁에 저녁식사를 나눠주던 도중 폭풍을 만나 접시가 식탁에서 떨어지고, 화분이 쓰러질 정도로 배가 흔들렸다. 이와중에 해수 흡입구의 연결밸브가 고장나 배 아래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원래 배 아레에는 침수가 발생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곳곳에 방수벽이 설치되어있다. 다만 사고 당시 오세아노스호에서는 하수장치에 고장이 발생했는데 수리를 위해서 밸브를 뺀 상태로 방치해둔 상태여서 해수가 밸브로 직접 들어가면서 선내 하수 파이프를 이용해서 배 전체에 해수를 적극적으로 공급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리면서 방수벽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당시 하수장치의 고장 때문에 악취가 올라온다는 승객의 클레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장이 '귀찮다'는 이유로 수리를 방치했기에 최악의 상태로 발전해버린 것. 9시 30분이 되자 벌크헤드에 10cm짜리 구멍이 뚫리면서 폭발음이 들리고, 기관장이 선수와 발전기실에 물이 차오르는것을 선장에게 알렸다. 물에 잠긴 발전기는 이후 꺼져 배는 엔진이 멈춘채 포류했고, 선장 야니스 아브라나스는 경고방송도 안하고 승객들 몰래 승무원 일부와 함께 구명정을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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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힐스
배의 엔진이 꺼지고 갑자기 배가 조용해지자 이상한걸 눈치챈 사람들은 배 밑으로 내려가 위기상황을 파악했는데 그중에는 배 안의 클럽에서 일하던 가수 '모스 힐스' 와 그의 아내 '트레시 힐스', 마술사 '로빈 볼트맨', 코미디언 '테리 레스터'도 있었다. 선원이 모두 도망쳐버린 상황이라 지시를 내릴 사람이 없었고, 선박에 남아있던 크루즈 디렉터[1] 로레인 벳츠가 엔터테인먼트 팀을 이끌고 승객들을 라운지로 소집시켰다. 승객들에게는 침몰사실을 알리지 않고 피난훈련이라고 속이는 재치를 발휘해서 패닉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았다.[2] 라운지에서는 혹시나 승객들이 불안감에 패닉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로빈 볼트맨과 테리 레스터가 화려한 토크로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선박내를 탐색하던 모스 힐스는 무전기를 발견하고 급하게 메이데이를 외치며 구조요청을 했으나 악천후로 인해 9시간이 지난 후에야 남아프리카 해군과 공군이 도착했다. 배가 너무 기울어서 구명정을 타고 가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퓨마헬기 16대가 승객 571명을 구조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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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줄에 1명씩 매달려서 올라가야했으나 워낙 급해서 2명씩 매달려서 올라갔고, 수시간에 걸친 구조 끝에 571명 전원 구조 성공이라는 쾌거를 거두었고, 부상자도 한명 없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배는 이미 30도나 기울어진 상황이었으며, 주변 해역에는 상어 출몰지역이었던지라 구조대가 조금만 늦었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상황. 구조가 끝난뒤 배는 완전히 기울고 결국 침몰했다.
참고로 선장이 먼저 도망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정확히는 도망치려고 했을 때 거친 파도 때문에 구명정에 탑승하지 못해서 실패하고 선원만 탈출했다. 탈출에 실패한 후에 선박 어딘가에 혼자 숨어있다가 모스 힐스가 엔터테인먼트 팀과 연계하여 승객을 탈출시키려고 남은 구명정을 내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튀어나서 "나도 살고 싶으니 일단 나부터 태워라."라며 찌질거렸다. 여자와 어린이를 우선 탈출시키기 위하여 선장의 탑승을 거부하자 그대로 삐쳐서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구조대가 도착하자 갑자기 또 어디선가 튀어나와서는 구조헬기에 젤 먼저 타고 탈출했다.
4 사고 이후
사고 후의 인터뷰에서 선장은 사죄는 커녕 "난 분명히 피난하라고 경고했다. 승객이 멋대로 남은 거니까 내 잘못은 아니다."라는 망언을 하여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후 사고에 대한 재판에서는 선장과 도망친 승무원 3명은 어이없게도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사고 이후 모스 힐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 노래를 작곡했다.
배의 잔해는 인양되지 않은채 그대로 있다.
사고 당시의 용감한 행동으로 주목을 받은 뮤지션 모스 힐스는 그 후로도 선박뮤지션으로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현재는 구조를 리드한 로레인 벳츠와 같은 크루즈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참고로 모스가 선상에서 계속 일하는 이유는 승무원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여객선은 정말 안전하고 쾌적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리고 23년 뒤 대한민국에서 최악의 해상 참사가 터질 때 해외 언론에게 한국판 오세아노스 호 사고로 까이게 되며 다른 점이 있다면 사망자가 없었던 이 사고랑 달리 이 참사는 승객의 2/3이상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5 유사 사고
- 세월호 참사 - 위의 사고는 승객들 전원이 구조되었지만, 이 참사는 달랐다. (왜 사고가 아니고 참사라 하는 지는 항목에 들어가면 알것이다.)
-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 좌초사고 - 위의 참사처럼 선장이 탈출을 했지만 사망자는 위의 참사의 1/8도 안 되었다.
-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사고 - 승무원과 선장이 10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