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島浩(おおしま ひろし) 1886.04.19~1975.06.06
자, 어디 한번 조선을 독립시켜볼까?
1 개요
일본군 육군의 군인이자 외교관. 최종계급은 중장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38년에 주독 대사가 되었다. 독일에 파견된 외교관 답게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고 한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 동맹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 중 하나. 군국주의에 상당히 매료되어 나치를 추종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군인/외교관처럼 보이겠지만...
2 실상
리하르트 조르게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연합군 최고의 스파이이자 8.15 광복의 1등 공신.
그의 실체는 추축군 지능적 안티이자 연합군의 수호신. 전쟁의 판도에 영향을 끼친 정도로 치자면 일본군 내부의 어떤 인물도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가 이루어낸 화려한 성과(…)에 비하면 무타구치 렌야나 도미나가 교지의 팀킬 카운트는 '따위'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독일과 일본을 아울러서 각종 주요 정보를 누설함으로써 추축국이 빠르게 몰락하는데 톡톡한 기여를 하였다. 아~ 명예훈장을 달아줘야한다.... 아니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줘야하나?
그 전말은 이렇다. 고위 외교관인 그는 정기적으로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고위인사들과 접촉을 가졌는데, 오시마는 이렇게 얻은 고급 정보를 일본의 외교 암호기기인 퍼플(PURPLE)을 통해 무선으로 도쿄에 타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1940년경부터 이미 퍼플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으며, 오시마가 본국에 전송하는 고급 정보는 그대로 미국의 손에 들어갔다. 세계대전기 육군참모총장이자 전후 국무장관을 지냈던 조지 C. 마셜 원수는 오시마를 가리켜 "히틀러의 의도에 관한 정보의 기초적 원천"이라고 말했을 정도... 즉 그는 암호를 보내는 족족 연합군에게 귀중한 정보를 헌납하고 있는 셈이었던 것이다. 결국 미드웨이나 사이판, 스탈린그라드, 임팔 전투등 중요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짜로 연합군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가장 압권인 것은 1943년 11월, 오시마가 대서양 방벽[1]에 배치되어 있는 독일군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일본에 전송한 것이 그대로 미국에 누설되어, 결국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전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1948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1955년 감형을 받아 석방되었다. 그나마 양심은 있었는지 자유 민주당으로부터 몇 차례 의원 출마 권유를 받았으나 "본인은 국가를 잘못 이끈 죄가 있다"며 거절하였다.- ↑ 독일의 해안 방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