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嘉
(? ~ 390)
동진 시기의 인물. 자는 자년(子年).
농서 사람으로 행동거지가 진중하지 않고 외모는 못 생기고 모자라 보였다고 하며, 실제로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 골계에 능해 우스갯소리를 즐겼다. 오곡을 먹지 않고 화려한 옷을 싫어했고 늘 청정한 호흡 수련을 하면서 동양곡 언덕의 굴에서 은거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 백여 명과 함께 동굴에서 지냈다.
도안이 병이 위독할 때 도안이 사람을 보내 세상이 어지러우니 자신과 함께 가자는 말을 했는데, 왕가가 도안에게 먼저 가라면서 자신은 남에게 진 빚이 있어서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석륵 말년에 장안 종남산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으며, 제자들이 따라오자 도수산으로 옮겼다. 부견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거절했고 그를 찾아온 선비들 중에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유를 들기에 농담처럼 들렸고 미래의 일을 이야기할 때는 참언으로 이야기했으며, 요장이 장안에 들어오자 왕가를 예우하면서 자문을 구했다.
요장이 부견을 죽이고 자신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냐고 묻자 조금 얻겠다(略得)라고 했다가 두 제자와 함께 요장에게 살해당했는데, 왕가가 도안에게 말했던 빚이 이 때의 일을 말한다. 왕가가 죽자 부등이 왕가를 태사로 추증하고 문정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왕가가 말했다는 조금 얻겠다(略得)는 사실 략(略)이 얻는다(得)는 뜻으로 략은 자략(子略)이라는 자를 가진 요장의 아들 요흥을 말하는 것이었다.
왕가가 죽은 날에 사람들은 언덕에서 왕가를 보았다고 하며, 요장이 농우 지역으로 사람을 보냈다가 그 곳에서 왕가와 두 제자를 보았다고 한다. 요장이 이를 듣고 놀라 왕가의 관 뚜껑을 열어보고 확인했는데, 시체는 없고 죽장만 들어있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습유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