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1 일본성씨

한자 표기는 주로 三宅를 사용한다.

1.1 실존인물

1.2 가상 인물

2 지명

도쿄도의 도서부
오시마 지청
(大島支庁)
오시마
(大島町)
니지마
(新島村)
고즈시마
(神津島村)
도시마
(利島村)
미야케 지청
(三宅支庁)
미야케 촌
(三宅村)
미쿠라지마
(御蔵島村)
하치조 지청
(八丈支庁)
하치조
(八丈町)
아오가시마
(青ヶ島村)
오가사와라 지청
(小笠原支庁)
오가사와라
(小笠原村)
三宅村
(みやけむら)
미야케 촌 / Miyake Village

촌기(村旗)
문장(紋章)
국가일본
지방간토
도도부현도쿄도
면적55.27km²
인구2,494명[1]
상징
촌화수국(ガクアジサイ)
촌목모밀잣밤나무(シイ)
홈페이지



연기나는게 어째 불안하다

三宅村 / みやけむら

일본의 섬.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화산섬이며 이즈 제도에 속해있다. 면적은 55.5km2. 행정구역상으로는 도쿄 도 미야케 촌(三宅村)이다. 화산은 1962년, 1983년, 2000년에 분화하였다. 2000년에 오야마산(雄山) 분화 때는 섬 주민들 전원이 피난하여 한때 무인도였으나, 2005년에 피난명령이 해제되어 주민들이 복귀하였다.

3 宮家

일본 황실분가. 덴노의 자손 가운데 성씨를 받아 신적강하를 하지 않고, 황족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분가를 하는 사례이다. 이름 앞에 '-노미야(宮)'라는 '궁호'를 쓰는데, 마치 성씨처럼 보이지만 성씨는 아니다.[2]

과거부터 여러 미야케가 있었으며 많은 수가 단절되었다.

나루히토(德仁) 황태자의 경우 황태자 책봉 전까지 히로노미야(浩宮)란 칭호를 썼는데 미야케는 아니다. '히로노미야'는 궁호가 아닌 어칭호이다. 이는 덴노와 황태자의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결혼하여 가장이 되면서 칭호 대신 궁호를 새로 받으며, 딸들은 결혼하면 칭호 대신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3.1 현존하는 미야케

  • 히타치노미야(常陸宮): 아키히토 덴노의 남동생으로 일본 왕위 계승 순위 4위인 마사히토(正仁) 친왕의 미야케. 자녀는 없다.
  • 미카사노미야(三笠宮): 다이쇼 덴노의 4남으로 쇼와 덴노의 남동생이자 아키히토 덴노의 삼촌이자 일본 왕위 계승 순위 5위인 다카히토(崇仁) 친왕의 미야케. 다카히토 친왕의 2남과 3남인 요시히토노리히토는 각각 가츠라노미야(桂宮)와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로 분가하였지만, 장남인 토모히토(寬仁) 친왕은 미카사노미야의 후계자였기에 별도의 궁호를 갖고 있지 않았다.[3] 그러나 토모히토 친왕은 두 딸 아키코 공주와 요코(瑤子) 공주만을 남기고 아버지보다도 먼저 사망했다. 때문에 고령인 다카히토 친왕과 그의 아내 유리코(百合子) 비 내외, 토모히토 친왕의 아내 노부코(信子) 비[4]가 죽고,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가 평민에게 시집가면 사라질 미야케이다.
  •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다카히토 친왕의 3남인 노리히토(憲仁) 친왕이 결혼하며 얻은 미야케이다. 노리히토 친왕은 2002년에 사망하여, 당주는 노리히토 친왕의 아내 히사코(久子) 비이다. 자녀는 딸만 3명으로 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絢子) 공주이다. 차녀 노리코 공주는 2014년 평민 센게 구니마로(千家國磨)에게 시집갔고, 남은 두 공주가 시집가고 히사코 비가 사망하면 장기적으로 사라질 미야케.

3.2 역사상의 미야케

  • 아리스가와노미야(有栖川宮) : 에도 시대에서 다이쇼 시기에 걸쳐서 존재했다. 역대로 서도(書道)와 가도(歌道)의 사범을 맡았다.[5] 고요제이 덴노(後陽成天皇)의 7남이 창설했으며 당초 이름은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였다. 다이쇼 시기에 단절됐다. 그 뒤로 잊혀졌는데, 2003년에 아리스가와노미야의 후계자사칭하는 남자가 가짜 결혼 피로연을 열고 400명의 하객으로부터 축의금을 가로채는 사기 사건이 일어나서 일약 유명해졌다.(…) 연예인이나 기업인 등 유명한 인물들도 많이 속아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체포된 범인은 자신이 노부히토 친왕의 서자라고 주장했다.[6]
  •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 : 위의 아리스가와노미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리스가와노미야가가 단절되자 다이쇼 덴노의 제3남 노부히토(宣仁)가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제사를 상속했는데,[7] 당시 황실전범상 황족의 입양이 금지되어 있어서 양자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다카마쓰노미야케를 만들고 아리스가와노미야케를 상속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쪽도 1987년에 노부히토 친왕이 죽고, 2004년에 아내인 키쿠코 비도 죽어서 단절됐다. 죽기 직전에 못볼 꼴을 봤다.
  • 치치부노미야(秩父宮) : 다이쇼 덴노의 제2남 야스히토(雍仁) 친왕이 마츠다이라 세츠코(松平節子)[8]와 혼인하면서 창설했다. 야스히토 친왕은 한때 형 히로히토 덴노에게 한동안 아들이 없자, 군부로부터 덴노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1933년에 황태자의 출생으로 뭍혔다. 정작 야스히토 친왕은 자식을 못 보고 죽었다. 아내 세츠코 비가 별세한 1995년에 치치부노미야는 단절했다.
  • 카츠라노미야(桂宮): 위의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2남인 요시히토(宜仁)가 1988년 1월 1일에 얻은 미야케. 요시히토 친왕이 독신이라, 결혼으로 생긴 미야케는 아니다. 2014년 요시히토 친왕이 사망하면서 단절했다. 아울러 에도 시대에 이와 별도로 4개 세습친왕가의 하나인 카츠라노미야가 있었다. 요시히토 친왕의 궁가와 구분해서 '구 가츠라노미야'로 구분하기도 한다. 요시히토 친왕은 세습친왕가를 이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 상징인 가츠라(桂: 계수나무, 침나무)를 궁가의 이름으로 써서 이름이 겹친데 불과하다.
  • 토쿠쥬노미야(德壽宮) : 고종이 한일합병 이후 받은 미야케. 덕수궁을 의미한다. 순종과는 별개의 세습친왕가로 구분되어 고종이 사망한 1919년에 단절되었다.
  • 쇼토쿠노미야(昌德宮) : 순종이 한일합병 이후 받은 미야케. 창덕궁을 의미한다. 영친왕도 같은 미야케를 사용했다.
  1. 추계인구 2015년 9월 1일 기준
  2. OOO궁 용법은 원피스천룡인에서도 나타난다.
  3. 공식적으로는 미카사노미야의 일원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토모히토 친왕가'로 별개 궁가 대우를 받았다. 2012년 토모히토 친왕이 사망하면서 중단.
  4. 천하의 개쌍놈 아소 다로의 여동생.
  5.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의 외손녀인 키쿠코(喜久子) 비는, 외가로부터 배운 서예를 조카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 후미히토 친왕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개구쟁이였던 후미히토 친왕은 교본에 없는 글자를 묻는 등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종조할머니와 조카손자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6. 노부히토 친왕과 키쿠코 비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노부히토 친왕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7. 노부히토 친왕의 아내 키쿠코 비의 외가가 아리스가와노미야 가문이다.
  8. 마츠다이라 가타모리의 손녀이자 이방자 비의 이종사촌 여동생. 본래 세츠코의 한자는 節子였으나, 시어머니 사다코 태후도 동일한 한자를 썼기 때문에 결혼하면서 勢津子로 바꿨다. 황실과 인연이 있는 땅인 이세(伊勢)에서 勢를, 친정 마츠다이라 가문의 근거지인 아이즈(會津)에서 津을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