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

1 개요

723년부터 727년까지 신라승려 혜초가 5천축국을 답사하고 그들 나라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다.

2 역사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P.펠리오가 중국 간쑤 성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고 있던 왕원록에게서 희귀한 고서를 사들였는데 그 중에 왕오천축국전이 끼어 있었다. 본래 3권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존본은 그 약본이며, 앞뒤부분은 유실됐다.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나진옥(羅振玉), 일본의 후지타 토요하치(藤田豊八) 등이 대표로 하여금 사본의 교정출판이 이루어졌다.[1] 이전에 왕오천축국전의 저술은 당나라 승려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1915년, 일본의 사학자 타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가 신라 승려임을 입증하였다. 1928년, 독일의 사학자 푹스(Fuchs,W.)에 의해 독일어 번역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3년, 최남선이 원문과 해제를 추가함으로써 알려졌으며, 2000년대 들어서 나온 번역본으로 2004년 나온 정수일 교수 번역본과 2010년 나온 지안스님의 번역본이 있다. 정수일 교수 번역본이 더 비싸지만 역자가 문명교류사의 대가다 보니 주석이나 참고자료는 더 풍부하다. 현재,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3 여행국 목록

폐사리(吠舍厘), 구시나(拘屍那), 파라닐사(波羅痆斯), 중천축갈나급(中天竺葛那及), 중천축사대탑(中天竺四大塔), 남천축(南天竺), 서천축(西天竺), 도란달라(闍蘭達羅), 마게타(摩揭陀), 소발나구달라(蘇跋那具怛羅), 탁사(鐸社), 신두고라(新頭故羅), 가섭미라(迦葉彌羅), 가비라(伽毗羅), 대발률(大勃律), 양동(楊同), 사파자(娑播慈), 토번(吐蕃), 건다라(建馱羅), 소발률(小勃律), 오장(烏長), 구위(拘衛), 림파(覽波), 계빈(罽賓), 범인(犯引), 토화라(吐火羅), 파사(波斯), 대식(大食), 대불림(大拂臨), 사율(謝䫻), 조국(曹國), 골돌(骨咄), 강국(康國), 사국(史國), 미국(米國), 안국(安國), 발하나(跋賀那), 돌궐(突厥), 총령진(葱嶺鎮), 호밀(胡密), 식닉(識匿), 소륵(疏勒), 구차(龜茲), 우전(于闐), 안서(安西), 언기(焉耆)

4 의의와 평가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로 손꼽히고,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서이다. 또한, 당시 인도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이 현존본은 다녀간 국가들의 기록이 간략하게 서술되있고, 어떤 국가는 정확한 지명조차 빠져있으며, 그 나라의 일반적인 언급도 빈약하다. 이에 따라,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이 저술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보다는 사료적 가치가 훨씬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오천축국전은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갖고있다.

첫째, 위에서 상술한 대당서역기는 육로기행이고, 법현의 불국기는 해로기행인 데에 비해 왕오천축국전은 육로, 해로가 함께 언급되었다.

둘째, 위에서 상술한 대당서역기는 6세기에서 7세기에 있었던 역사를 기록했지만,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 역사를 기록했다.[2]

셋째, 일반적인 나라 정세 외에 전반적인 사회현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소승불교는 어디며 대승불교는 어디에 있는지, 또 나라의 문화, 날씨, 의상 등 각 국가마다 기록했다. 인도에는 사형과 옥살이와 같은 제도가 없고 벌금이 있다는 것과 여러 형제가 아내를 공유하는 풍습이 있다는 등 이국적인 기록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이모저모

  1. 그러나, 이들의 사본을 보면 문자를 누락시키거나 똑같은 문자를 반복해 쓰는 등 고의의 실수가 많이 보인다. 사본 제작자는 과연 역사가가 맞는지부터 의심이 된다. 너무나 잘못된 문자가 많았는지 겨우 수정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수정된 문자보다 잘못된 문자가 더 많다는건 함정...
  2. 8세기의 인도, 중앙아시아의 정치, 문화, 풍습이 기록된 사서는 왕오천축국전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