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디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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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Sepp" Dietrich, 1892년 5월 28일 ~ 1966년 4월 22일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집권한 독일이 사설해 활용한 무장 조직, 무장친위대의 고관. 최종 계급은 SS 기갑상급대장.[1]

2 행적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육군 돌격 포병[2] 및 전차 승무원으로 참전했으며[3] 당시 부상 탓에 요양받던 중 종전됐다.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전투 도중에 불능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자폭하게 한 전차에서 디트리히를 위시해 전차병들이 빠져나와 도망했는데 도망하던 디트리히는 전차에 놓고 온 주병이 생각나서 그걸 회수하려 적군의 총탄 속을 뚫고 불 타는 전차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용기와 대담 덕분에 디트리히는 그 전차부대에서 유명인이었다고 한다. 이런 최전방에서의 활동으로 디트리히는 1급·2급 철십자훈장을 받았다.

그후 자유군단에서 활동하다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에 가입하면서 SS 내에서 특유한 난폭성과 아돌프 히틀러를 향한, 이성을 잃은 채 시비를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여 신뢰하는 충성으로 말미암아 주목받게 된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집권하던 시기에 돌격대의 에른스트 룀을 제거하는 작전의 책임자였으며, 이후 정치력을 가지고 성장할까 두려워한 하인리히 힘러에게 견제받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힘러 본인도 돌격대 시절 룀을 건너뛰고 바로 히틀러에게 충성한다는 이유로 돌격대 상층부에게 미움받았던걸 보면 그냥 도찐개찐이다. 누가 누굴탓해

히믈러는 SS 대원들이 SS의 장관인 자신에게 충성하기를 원했는데 히믈러를 거치지 않고 히틀러에게만 순수하게 충성하는 디트리히에게 불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히믈러는 사사로운 기록에 디트리히가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다가 뭔가가 필요할 때만 SS를 찾는다고 험담하기도 해서 나중에는 무장 친위대로 밀어내서 정치권력으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설이 있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내의 온갖 더러운 정치 파벌 투쟁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꽤나 가능성 있는 이야기.

세계대전 발발 직전 무장 친위대의 창설을 승인한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SS 기갑연대 '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LAH)'의 첫 연대장이 되며, 이후 LAH는 서부전선에서 다대한 공을 세워 규모와 장비의 확대와 함께 곧 여단, 사단으로 승격된다. 이후 인사 이동으로 영전하여 창설 시부터 함께했던 LAH를 떠나 대전 기간 대부분을 동부전선에서 보냈으며, 직위는 SS 제6 장갑군 지휘관(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종전과 함께 포로가 되었다.

대전 말기에 이를 무렵, 디트리히는 원수 지휘봉을 탐냈던지 아돌프 히틀러에게 승진을 청원했다. 이를 받아들인 히틀러에 의해 아르덴 대공세가 성공하는 대로 민족원수(Volksmarschall)에 오르고 원수봉을 쥘 예정이었으나 공세가 참담히 실패하자 수포가 됐다.[4]

아돌프 히틀러에게 열심히 충성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점령지 잔학 행위 대명사인 무장SS의 유일한 기갑상급대장으로서 최고급 지휘관이었는데도, 전범재판[5]에서 사형을 면하고 금고 25년을 선고받았으나 그마저도 1955년에 조기 석방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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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세계대전 기간 디트리히는 특유한 카리스마와 부하들의 활약으로 유명했는데 군 경력은 하사관이 전부고 고등군사교육을 수료한 적은 없기에 그후에 알려진 부하들의 증언과 기록에 의하면 잘해야 대대장이나 연대장급 인재였다고 한다... 사단급을 지휘하기엔 무리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사단장, 군단장에 나중에는 군사령관이었으므로 보좌관들은 고생이 꽤 심했다고 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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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웃긴 게, 모든 게임과 책에서 디트리히의 능력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제대로 엇갈린다. 전술한 대로 총통의 예스맨, 사단장으로는 무리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독소전의 탁월한 기갑 지휘관이라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파라독스 인터랙티브의 Hearts of Iron 시리즈에서는 탁월한 기갑 지휘관으로[7] 묘사되는데 책 『히틀러의 장군들』을 쓴 저자는 그 책에 디트리히를 무능하면서 전후를 고려하지 않고 내닫거나 덤비기만 한 사령관으로 표현한다(동 책의 470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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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LAH 소속 부하들에게는 세계대전 기간 내내 '파파 제프'라 불리면서 애정이 담긴 존경받았으며, 66년 디트리히가 죽자 장례식장에는 옛 부하 7,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그런 걸 보면 나치즘의 광신자라도 인격이나 지휘관으로서의 덕망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듯.

구데리안, 롬멜[8] 등의 당시 독일군 인사들이 디트리히를 대상으로 해 전우애가 대단하고 상당한 카리스마가 있는 인재라고 한 묘사를 보면, 그 나름대로 지도력과 개성이 있었던 인재라고 간주할 수도 있으며 1차대전 당시 정예 보병부대인 돌격대에서 복무한 것은 디트리히의 독특한 지도력을 설명할 수 있는 일면으로 간주되지만. 객관으로 전쟁 중에 나타난 디트리히의 군사상 능력으로 보았을 때 아돌프 히틀러의 무조건 밀어주기가 아니었다면 군의 고위직은 꿈꾸지도 못했으리라는 시각도 있다.

4 기타

대체역사소설 당신들의 조국에서는 작중 나오는 SS의 훈련소 이름이 제프 디트리히 아카데미다. 안에는 하인리히 힘러의 초상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1. 디트리히 장군의 상급대장 승진은 다름 아닌 파울 하우서 장군 뒤로 밀렸고 이에 히틀러는 디트리히를 배려해 이 칭호를 특별히 부여했다. 단, 디트리히 장군은 무장친위대의 원로인 하우서 장군보다 일찍 승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해 자신의 진급을 늦춰줄 것을 요청한 것이었으며 히틀러도 그의 진급 날짜를 1942년으로 소급시켜 사실상 무장친위대 최고참임을 인정해주었다.
  2. 독일군의 정예 침투 부대인 돌격병의 전투를 지원하고자 포를 최전방에서 인력으로 견인해 조작했으므로 돌격 포병은 상당한 체력과 용기가 필요했다. 돌격포 승무원 아니다. 사실 돌격포가 나중에 기갑이나 포병이 바빠서 보병지원을 못하게 되자 이 임무를 맡기 위해 새로 고안된 물건이다. 하지만 구데리안은 이 와중에 돌격포로 전차전을 시도한다
  3. 1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차 A7V는 총 생산 대수가 21대에 불과했다. 7대 이상 투입된 전투가 없을 정도다. 여기에 뽑힐 정도였으면 최소한 위에서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되는 사병 신분에서의 능력은 인정받았던 셈이다.
  4. 진급 예정 시 받기로 했던 원수봉과 계급장은 베를린 공방전 이후 소 군정기때 분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5. 부하인 요아힘 파이퍼가 저지른 '말메디 포로 학살'을 묵인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6. 한 정규군 장교가 디트리히 앞에 작전 지도를 펼쳐놓고 1시간 설명했지만 디트리히의 반응은 "음...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결국 그 장교는 '저런 돌머리에게는 뭘 어떻게 설명해도 소용없다'고 좌절하고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다.
  7. HoI2 DA 시리즈에서는 기본 숙련도 4, 최대 숙련도 8에 기갑 지휘관 스킬을 깔고 들어간다. 실제로 확실히 명장이었고 1940년 프랑스 침공,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대활약했던 에리히 회프너가 기본 숙련도 4에 최대 숙련도가 7이며,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장군 중 하나였던 헤르만 호트가 기본 숙련도가 3이다. 쉽게 말하면 이 게임상에서는 디트리히 > 회프너 > 호트라는 소리다. 흠좀무.
  8. B집단군 사령관 재직 중 디트리히를 대상으로 해 "디트리히라면 믿을 수 있다"라고 평가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