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아르네 리세

riise-chennai.png

첸나이 FC No.
욘 아르네 리세 (John Arne Riise)
생년월일1980년 9월 24일
국적노르웨이
출신지뫼레오그롬스달 주 몰데
포지션레프트 백, 레프트 윙백, 레프트 미드필더
신체 조건185cm, 77kg
주로 쓰는 발왼발
등번호6번
프로입단1996년 올레순 FK 입단
소속팀올레순 FK (1996~1998)
AS 모나코 (1998~2001)
리버풀 (2001~2008)
AS 로마 (2008~2011)
풀럼 FC (2011~2014)
아포엘 FC (2014~2015)
델리 다이너모스 FC (2015~2016)
올레순 FK (2016)
첸나이 FC (2016~)
국가대표110경기, 16골

악마의 왼발, 맞뒈슛의 달인
선더볼트
크라켄
첼시 킬러
체리필터
분명 수비수인데 포지션이 올라가야 더 잘하는 선수

1 개요

노르웨이의 축구선수. EPL 리버풀에서 8시즌을 뛴 한때 EPL 정상급 레프트백중 한명. 위협적인 슈팅력과 견고한 수비력을 지닌 다재다능한 왼쪽 측면 요원이다.

1980년 노르웨이 몰데에서 출생한 그는 올레순 FK에서 클럽생활을 시작했고, 1998년 17세의 나이에 프랑스 명문 AS 모나코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3시즌 이상 보내는 동안 44차례 리그 경기에 출전, 팀을 1999/20 시즌 리그 1정상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2001년 리버풀의 적극적인 구애로, 630만 유로에 리버풀 유니폼을 입었다. 리세는 안필드에서의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다. 2001년 8월 리버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1로 꺾고 채러티 실드를 차지한 경기가 그의 데뷔전이었다. 그리고 모나코의 스타드 루이 II에서 펼쳐진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수퍼컵 격돌에선 멋진 데뷔골을 터뜨리며 3-2 승리를 가져오고 트로피를 하나 더 추가했다. 2003 잉글리시 리그컵 우승, 그 다음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08년 여름 500만 유로에 AS 로마로 이적유배했다.

2 플레이 스타일

악마의 왼발이라는 별명답게 공격수 못지않은 강한 왼발 슛맞뒈슛이 장기다. 한때 EPL최고의 파워키커중 한명으로 페널티 박스안에서의 슛은 골키퍼가 뛰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뿐만 아니라 강인한 체력과 월등한 피지컬을 앞세운 오버래핑과 수비는 팀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이 선수의 킥력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리즈시절의 어원인 앨런 스미스의 끔찍한 다리부상 사건. 슛으로 다리를 부러트린 사건은 전대 미문일 것이다. 맨유소속으로 05~06시즌을 뛰던 앨런 스미스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차려는 리세앞에 수비벽을 세웠는데 점프한 상태에서 리세가 찬 공에 발목을 맞아 탈구된 상태로 떨어지며 그라운드에 부딪히고 그 충격으로 발목 윗 부분 발목이 골절되었다. 안그래도 스미스는 자리 못잡고 삽질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엎친대 덮친격으로 부상으로 빠지고 축구선수로써는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

3 커리어

nh_080423_spo_soccer_01.jpg
공잡고 기뻐하는 드멘옆 사진에 가운데서 좋아하는 사람이 자책골을어시스트를만든 살로몬 칼루이다

리세의 커리어 말년에 있어서 가장 기억되는 장면인 2008 챔피언스리그 4강전때의 자책골은 리버풀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거다.물론 첼시팬도 첼시의 윙어 살로몬 칼루가 회심의 크로스를 리버풀 오른쪽 사이드에서 올렸고, 마침 그 볼은 골문 가까이에서 대기하던 리세에게 떨어졌다. 리세는 왼쪽 발은 강하나 오른쪽 발이 형편없기로 유명한데, 볼이 오른발로 떨어지는 것이라서 어쩔 수 없이 다이빙 자세를 취하며 헤딩을 했는데 어이없이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리세는 마치 형장의 이슬로 이끌려가는 사형수마냥 얼굴에 수심과 그늘이 가득했고, 허망한 리버풀 선수들은 못 믿겠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그냥 그대로 주저앉았다.

1-1 무승부라는 이변을 연출한 첼시 선수들은 펄쩍펄쩍 뛰었고, 아브람 그랜트 첼시 감독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옥에서 죽다 살아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라파엘 베니테스 리버풀 감독 및 리버풀 수뇌부는 말 그대로 분위기가 초상집이었다. 별명도 첼시킬러라 언제나 첼시에 강한모습을 보여왔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06-07 챔피언스리그 16강전 리버풀 vs FC 바르셀로나 2차전에서 크레이그 벨라미와 함께 서로 1골 1어시스트를 주고받으며 2-1로 바르셀로나를 물리치고 어웨이 득점 우선 원칙에 따라 8강에 올라가며 까임방지권을 얻었을때, 사람들은 '역시 리세다' 하며 생각했다. 비록 당시 벨라미와의 불화로 인해서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리세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며 팀을 8강으로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세는 이전부터 하향세와 함께, 시즌 초에 영입된 알바로 아르벨로아, 파비우 아우렐리우와의 레프트백 경쟁에서 밀리면서[1] 로테이션 멤버로 내려갔지만, 이날의 실수가 결정타가 되어 8년의 리버풀 커리어를 마감하고 AS로마로 이적해야 했다. 이 실수가 없었다면 리버풀이 우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리버풀팬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로마로 이적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3시즌동안 129경기를 출전하여 9득점과 9도움을 기록했다. 로마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든건지 리버풀에서의 안좋은 기억때문인지 리버풀로의 복귀설이 떠돌때 이를 부인하며 로마에 잔류할것이라고 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첼시를 데꿀멍시키는 06년 커뮤니티 실드에서의 크고 아름다운 중거리슛 등 리버풀에서 제라드의 오른발과 리세의 왼발이라 할 정도의 절륜한 슈터로서 올드팬들에게는 강렬한 이미지가 없진 않으나, 하필 마지막이 너무도 끔찍했다. 지못미...

그래도 EPL이 좋긴 한가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풀럼 FC로 이적하여 핵심 수비수로서 활약했다. 30대가 되면서 리버풀 시절의 운동량과 왼발킥을 선보이진 못했지만 그의 친동생인 뵈른 헬게 리세도 풀럼 소속이었기 때문에 둘이 같은 팀에서 뛴다는 것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2]

쭉 커리어를 계속해오다 키프로스 리그의 아포엘을 떠난 후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몸을 관리해온 욘 아르네 리세는 은퇴를 고민했었으나 인도 슈퍼 리그의 델리 디나모스에서 좋은 제안을 해준 덕분에 다시 인도로 진출하여 선수로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ISL는 10월 3일에 시작할 예정이다.

2015년 후반기를 ISL델리 디나모스에서 보낸 욘 아르네 리세는 2016년 3월 자신의 데뷔팀인 올레순 FK와 3개월 단기계약을 맺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욘 아르네 리세의 은퇴수순으로 생각했고, 시즌 종료 후인 6월 13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8월 19일 욘 아르네 리세가 ISL첸나이 FC로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떴다.

4 국가대표

2003년부터 발탁되어 노르웨이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가장 많은 경기인 110경기에 출전하였다. 2000년에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처음 대표팀에 데뷔했으며 노르웨이 대표팀에서 총 110경기의 A매치 경력을 쌓으면서 세계적인 수비수로 평가받아 왔다. 32세때 국대에서 물러났다.

다만, 국제대회 본선 커리어는 아예 없는데, 리세가 현역일때 노르웨이가 국제대회 본선에 나온 것은 유로 2000이 마지막이었기 때문. 20세때 선발된 유로 2000때는 당시 자국 최고의 클럽중 하나인 로젠보리의 주전이었던 안드레 뵈리될모(André Bergdølmo)[3]와 리세 이전 리버풀의 레프트백이었던 스티그 잉게 뵈른비(Stig Inge Bjørnebye)가 있었기 때문에 본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벤치에만 있었고 그 이후로는 노르웨이가 16년동안 쭉 예선탈락만 하면서 본선진출을 못했기 때문.

5 기타

이영표의 데뷔전이 리버풀전이었는데 그때 리세는 라이트백이었던 이영표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계속 크로스를 허용했었다. 이영표에게 탈탈털린 이 일을 계기로어차피 전부터 그래왔지만그의 수비력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대거 늘었다.
2016년 1월 18일 안필드에서 열린 EPL 22라운드 리버풀 VS 맨유전에서 리세가 안필드에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단순 경기관람을 위해 온것으로 보인다.

관중석에 껴있던 필 존스는 덤.
  1. 바르셀로나 원정에서의 그 명경기 역시 리세는 윙어로 출전하고 아르벨로아가 열아홉 리오넬 메시를 마크했다.
  2. 둘이 포지션이 겹칠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형과 달리 동생은 오른발 잡이다.왼발을 사용했다면 지금쯤 형처럼 스타가 퇴었을지도 모르는데...
  3. 뵈리될모는 유로 2000의 활약으로 AFC 아약스로 이적하고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등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