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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까임방지권(-防止券 혹은 -防止權)이란 말 그대로 인터넷 등지에서 사람들에게 까이는 것을 한 번에 한해서 막아주는 일종의 증권(證券) 혹은 그런 권리(權利)를 말한다. 줄여서 까방권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아마도 최훈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올림픽 성적 정리 카툰에서 "사소하게나마 대표팀 전 선수에게 프로야구 카툰 1회 까임방지권을 드립니다"라는 드립을 친 것이 시초일 것이다. 야구 카툰은 평소 선수들을 까는 걸로 먹고 사는 만화이니까 "까임방지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소소한 생색을 냈던 것인데, 이 단어는 이후 실생활에서도 쓸수 있을만한 단어가 되었다.
어원이 야구 카툰에서 나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야구등의 스포츠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아주 중요한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팀 혹은 대한민국을 승리로 이끌어 그 덕에 후대가 두고두고 이득을 볼 정도로 성과를 올리거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살인적인 연투를 하는 안습한 모습에 "얘를 까면 사람도 아니다"란 이유로 까임방지권을 획득하고 나중에 큰 실수(삽질)를 하더라도 그 전에 해왔던게 있는데 이정도는 납득해줘야지라고 그냥 넘어가 주는 배려심(…)을 보여주곤 한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유머의 소재일 뿐이기 때문에 까방권을 받았다고 해도 나중에 깔 일이 따로 생기면 그냥 까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즉 부도 수표일 경우가 다반사인데… 대체로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 온 남자 연예인들에게 주어지는 군대 까방권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이는 사실상 허공에 침뱉기로 까봐야 자기한테 돌아올만한 거리라서 그렇다. 그렇지만 큰 잘못으로 인해 그것도 까먹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니..뭐 까여도 할말 없는 잘못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 사례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앤디와 크라운제이가 있으며, 군대를 가도 더 까이는 경우는 붐과 연예병사들이 있다.
파생된 고급 상품으로 '평생까임방지권'이 있다. 너무나도 많은 업적을 쌓아 올려서 무슨 짓을 해도 안 까일 권리 아닌 권리를 획득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이런게 나올 정도의 인물은 그 업계에서 거의 아버지, 창조주급의 인물로 이 사람을 까는 건 사실상 패드립인 수준일 때 부여한다. 그래도 깔건 까자
또한 인륜지대사의 매우 슬픈 일을 당하면서 위로하는 차원에서 발급하는 경우도 있다. 진짜 양심[1]이 있으면 까면 안될 정도로 큰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쓰는 것.
반대로 평생까임권은 말 그대로 사회 통념상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심각한 사고나 범죄를 저질러서 평생동안 까이다 못해 사회에서 매장당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영구까임권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어감이 이쪽이 더 좋은 관계로 그냥 평생까임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네티즌들이 행실이 나쁜 사람에게 내리는 사적제재의 일종이다.
2 실제 사례
실제 사례를 요약한다. 중대한 잘못으로 상실했을 경우엔 취소선 처리.
2.1 연예계
- 문희준 - 농담이긴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까이던 인물이며, 그걸 모두 그냥 견뎌내고 넘어간 데다가 연예인 병역비리니 뭐니로 한참 시끄러울 때 묵묵히 군 복무하고 전역하였기 때문에 문보살이라 불리며 평생까방권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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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신화 멤버 중 유일하게 현역, 그것도 미국 영주권 소지자여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검정고시까지 봐가며[2] 입대한 거라 까방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군 복무 도중 불법도박을 했음이 밝혀져 현역 그룹 가수 중 최초로 출연금지가 되는 흑역사가 되었다.
- 오종혁 - 해병대 특수수색대 자원입대 후 전역까지 연기하면서 모든 훈련을 소화한 전적이 있어 까임방지권이 생겼다. 과거 정글의 법칙에서 흡연 논란이 일어났을 때도 네티즌 반응이 미적지근해 까방권 관련으로 검색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 유승호 - 남자 연예인치고는 이른 나이에 연예활동 중 현역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까임방지권을 가진 대표적인 남자 연예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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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제이- 위의 앤디와 마찬가지로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카투사에 입대해 군대 까방권이 생겼으나 대마초 사건이 발생했다.
- 차승원 - 차승원 본인부터가 모난 데 없는 훌륭한 연예인으로 배우로서, 그리고 예능인으로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어 호평을 듣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아들 차노아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처벌을 받자 아들을 대신하여 사과를 하기도 하고, 특히나 차노아가 실제로는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 부인이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젊은 시절에 사고를 쳐서 낳은 아들이라는 거짓말로 아들의 출생의 비밀을 숨겼으며, 뒤늦게야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들 차노아를 두고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말하며 친자식 이상으로 아껴주는 모습을 보여 네티즌들에게 까임방지권을 얻은 것으로도 모자라 생불로 추앙받기까지 했다. 반면 차승원의 아들 차노아는 이런 아버지와는 정반대되는 행실을 보여 평생까임권을 얻었다.
- 현빈 - 대한민국 해병대 만기 전역으로 까임방지권을 가진 대표적인 남자 연예인으로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결국엔 모병홍보병으로 복무했다만 이것은 병무청이 아니라 해병대사령부에서 그렇게 결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군대 가기 전 이미지도 좋았고 현재도 안티도 적다. 애초에 현빈이 홍보병으로 복무한 것도 해병대사령부로 실무가 배치되었고 다시 보직을 모병홍보병으로 지정해서였다.[3] 즉 해병대사령관의 인사명령에 의거했던 것이다. 현빈 본인부터가 강력히 전투병을 희망했으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해병대의 실무배치 및 직별 배치 등은 컴퓨터 추첨이라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즉 추첨 결과에 따라 다른 부대로 갈 확률도 높았단 것.[4] 타군 출신이 대부분인 예비역 위키러들이 잘 모르는 듯 해서 추가하자면 해군 및 해병은 따로 행정병이 없고 전투병인 갑판병 및 소총수에서 나온다. 해병 소총수의 직별 번호는 17-1로 육군의 소총수와 다르다. 그래서 현빈은 군 복무 당시 철저히 전투병으로서 훈련을 다 받았고 제6해병여단에서 6개월 파견되어 해안 경계근무, 유격 훈련, 해양훈련 등을 접한 뒤 상병 때 본토로 이동해 수원으로 왔다.
- 가리온 -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국 힙합계에서 엄청난 업적을 쌓고 있는 가수라서 그런지 까이는 일 자체가 거의 없고, 가리온이라면 일단 앞뒤 안 가리고 리스펙을 받는 경우가 많다.[5]
- 故 터틀맨 - 선천성 심근경색을 앓고 있었던 그는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소장 계급을 달고 있던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현역으로 만기 제대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자친구 관련 일화도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故 오드리 헵번 - 젊은 시절엔 세기의 연인으로서, 늙어서는 난민 구호활동에 힘쓰는 사회운동가로서 명성을 떨치면서 만인의 귀감이 되었다. 비록 아버지가 나치 부역자였다는 흑역사가 있지만, 이 때문에 외려 말년에 더욱 구호활동에 헌신하게 되었으므로 이걸 두고 까는 사람이 역으로 까이는 상황이며, 아버지가 나치에 부역하느라고 가족을 내팽개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치 독일군이 식량을 수탈해간 바람에 본인은 튤립의 뿌리까지 캐서 연명하는 비참한 삶을 겪기도 했기에 아버지에게 무슨 영향을 받을 경황이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오늘날까지도 온갖 칭송을 다 받고 있는 중이다.
- 안성기 -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대배우로, 한국외대 졸업자이자, ROTC로 입대한 육군 장교 출신이라는 훌륭한 스펙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라디오 스타에서 보여준 훌륭한 연기력에 흠잡을 데 없는 사생활과 인품 덕에 까임방지권을 넘어서 아예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차인표 - 본격 김구라도 안 까는 연예인.[6] 그 부인인 신애라와 함께 고아를 자녀로 입양하고, 아동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 분야의 운동가로서 열성적으로 활동하여 부인 신애라와 함께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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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 연예인 생활 초반에는 온갖 물의를 일으키는 사고뭉치였지만, 영화 툼 레이더 촬영 당시에 캄보디아를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각종 구호활동에 뛰어들었고,[7] 온갖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미국 연예계에서 브래드 피트와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가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특히 자신이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기억 때문에 자신의 유방과 난소를 모두 들어내는 수술을 감행하면서까지[* 유방이나 난소나 여자들에게는 자존심 자체로까지 여겨지는 부분이다.[8] 가정의 행복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 팬들을 감동케 하기도 했다. 근데 이젠 이것도 다 옛말이 되었다[9].#
- 유재석 - 김구라도 안까는 연예인 2. 유재석/기타사항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왜 그가 대인배를 넘어선 유느님으로 불리는 지가 나온다.[10] 그래서 유재석/비판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그에 대한 비판도 굉장히 사소한 수준의 비판이라 사실상 까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 도경완 - KBS의 아나운서이자 장윤정의 남편.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도경완 자신의 장모와 처남이기도 한 장윤정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장윤정이 평생토록 모은 돈을 탕진하여 장윤정이 본의 아니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음에도, 장윤정과의 결혼을 강행하여 네티즌들로부터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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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균- 이쪽은 사회적인 물의는 전혀 일으키지 않았고 오히려 자살자를 구해주기도 하는 등, 까방권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놈의 매너리즘 때문에... 사실상 평생 까이거나 무관심 대우를 받는다. 개인적인 입장에선 좀 억울할 듯.
2.2 스포츠계
- 거스 히딩크 -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만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친한파에, 선수·코치들에게 보여준 훈훈한 일화들은 덤이다.
- 박지성 - 알다시피 당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이고 인성도 좋다.
- 안정환 - 2002 한일 월드컵의 진 주인공이자, 축구를 비롯한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나 다름없는 한국 축구의 영웅. 방송계에 입문한 이후 약간의 논란으로 조금 까이기도 했지만 안정기에 든 지금은 다시 까방권이 유효한 상태.
- 이영표 - 경기력은 당대 한국 최고의 수비수이다.
- 김인식 - 도쿄 대첩(야구) 참조
- 박찬호·이승엽 - 한국 야구계에 워낙 많은 업적을 쌓아올려 무슨 짓을 해도 안 까이는 선수들
승까들은 - 김연아 - 피겨 스케이터로서 업적으로도 그렇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의 편파 판정 논란에도 자신은 심판들의 판정을 존중한다고 밝혀 신성불가침이 되었다[11]. 거기다가 선수시절때부터 은퇴 이후까지 수많은 기부 행위로 인해 '기부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받는 등 겉과 속이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다.
2.3 E-스포츠계
2.4 만화계
- 가스파드 - 선천적 얼간이들 연재 당시 자신이 비가 오는 날이면 온 몸이 쑤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정말 장마철엔 휴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댓글 분위기는 이건 까지 말자는 쪽이 우세. 사실 휴재한 경우 자체도 적은 데다가, 휴재를 해도 한 번은 휴재공지라고 올린 만화가 그냥 본편 한 화 길이였고 당연히 진짜 휴재 공지가 아니고 그냥 제목이 '휴재 공지'인 에피소드였다. 작가 본인이 직접 공식 연재였다고 인증했으므로 혹여 혼동하지 않도록 하자.
- 또 다른 화는 웬 고퀄 플래시가 올라오기도 했다. 일단 정말 힘들 때는 진짜 쉬었지만. 이런 모습 덕에 장마철 휴재에 관해서는 까방권 획득. 오히려 장마철이 다가오면 독자들이 쉬라고 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랐다.
- 야부키 켄타로 - 한 마디로 직업정신이란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만화가. 사생활에서 엄청난 고생을 겪으면서 일반인이라면 일이고 뭐고 때려쳤을 상황에서도 꾸준히 만화를 그려 그야말로 아버지로서, 만화가로서 모범을 보였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조석 - 팬들이 오히려 휴재를 권장하는 작가. 조석이 연재하고 있는 웹툰 마음의 소리는 첫 연재 시작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된 2016년 현재까지 한번도 휴재한적이 없다![12] 그리고 그상태로 1000회까지 맞이했다. 그리고 결국 화요일, 금요일로 일주일에 2번 연재되던것을 화요일 한번만 연재할것을 밝혔는데 팬들의 반응은 "잘생각하셨습니다" 등의 우호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물론 연재횟수를 바꾼 이후로도 단 한 번의 휴재도 하지 않았다. 휴재라는 것이 만화 팬들에게 얼마나 허탈감을 심어주는 것인지 잘 알면서도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것은 조석이 얼마나 오랜세월동안 꾸준히 연재를 지속해왔는지를 알수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소리 10주년을 기념하는 1054화 '10년' 에피소드에서 정식으로 휴재를 하게되었다! 10년가까운 세월동안 일주일에 2번 연재를 했다면 일상 및 개그툰이라도 소재가 서서히 고갈되기 마련인데 마음의소리를 직접 보면 알수있겠지만 정말 어디서 나오는것인지 끊임없이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디어가 매 회마다 빵빵 터진다. 2016년 9월 드디어 처음으로 휴재를 선언했다. 그것도 3주간! 독자들의 반응은 '드디어 조석이 쉬게 되었다', '건강 챙기고 오세요'로 축약할 수 있을 정도.
2.5 정치계
- 에이브러햄 링컨 - 미국인들로부터 국부인 조지 워싱턴 못지않은 엄청난 존경과 찬사를 받는 대통령으로, 말할 것도 없이 남북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한 미국의 통합과 노예 해방을 완성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인들에게는 끝없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오죽하면, 그 남북전쟁의 패자인 남부마저도 링컨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를 미치광이로 취급했을 정도이며, 오늘날에도 링컨을 까려는 사람은 나치나 KKK급의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을 정도이다.
- 지미 카터 - 미국의 대통령이었으나, 사실 대통령으로서의 평은 그리 좋지는 못하고 심지어는 그의 흑역사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퇴임 이후에는 세계 각국의 정치적 지도자들을 만나면서 한반도를 비롯한 많은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했고
그 와중에 독재자 킬러로 등극하셨다, 동시에 이른바 사랑의 집짓기로 불리우는, 집없는 빈민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자선 운동인 해비타트 운동을 직접 주도하여 만인의 칭송을 들었다. 그리하여 2002년에는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선술한대로 대통령 시절의 실책이 흑역사이지만, 현재 이걸 두고 까는 사람보다는 퇴임 이후의 행적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이다.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터키의 국부. 비록 독재자라는 점이 흑역사이기는 하나[13], 대통령으로서의 재임기간 내내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폈고, 청렴결백한 데다 검소하기까지 한 소탈한 모습으로 인해 대내외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었다[14]. 그리고 남녀차별과 근본주의 성향이 심한 이슬람 국가였던 터키에서 세속주의 체제와 남녀평등을 실현하는데 성공하여 그의 치세에 대한 평가가 높다. 그래서 현재의 아타튀르크는 까임방지권을 넘어 터키 내에서 그를 깠다간 목숨이 붙어있기 어려울 정도로(...) 신성시되고있다.
- 라몬 막사이사이 : 아타튀르크의 필리핀 버전. 이쪽도 청렴결백하고[15] 검소한 모습에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폈다는 점에서 필리핀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거기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전쟁 영웅이기도 했다. 덕분에 현재는 필리핀의 국부로 숭앙받고 있다.
- 잠롱 스리무앙 - 태국의 민주화를 주도한 정치인이자, 관료로, 방콕의 시장으로 재직할 때 보여준 청렴결백한 모습으로 인해 태국 현지에서는 청백리의 대명사로 취급되고 있다. 거기다가 관료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매우 유능했던 인물이라 지금까지도 태국인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 전병헌 - KESPA 회장으로 정상화를 시킨 것 뿐만이 아니라 최근 정치계에서도 까방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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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조선의 관료로 방곡령 덕분에 민중들의 피폐한 삶을 헤아릴 줄 아는 어진 목민관이자 애국자로 까방권을 두둑이 얻었다. 그러나 실상은 민중들의 삶을 헤아리기는커녕 탐학하다는 죄목으로 귀양살이까지 했을 정도로 조선의 대표적인 탐관오리이다. 이름이 비슷한 조병갑보다 더 많이 해먹은 자이지만 현대인들은 조병갑의 부패는 알아도 조병식의 부패는 모른다.
- 피오렐로 라과디아 - 위의 잠롱 스리무앙의 미국 버전. 법조인으로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고[16], 뉴욕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이탈리아 마피아의 두목인 찰스 루치아노가 자기에게 협박과 회유를 가하자[17], 이를 쌩까고 루치아노 본인을 체포함은 물론, 그의 조직까지 개발살내버렸다. 당연히도 그는 일평생을 청백리로 살았고, 말년에는 자신과는 다른 당 소속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18]. 덕분에 붙여진 그의 별명이 바로 '뉴욕의 영웅'이며, 뉴욕의 퀸스 지역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라과디아 공항도 있다.
2.6 경제계
어째 이부분은 유씨 일가 두명 밖에 없다....
- 유일한: 유한양행의 설립자로, 미국에서 식료품 회사의 설립자이자 경영자로서 크게 성공한 뒤, 귀국해서 다시 유한양행을 설립해 한국 굴지의 제약회사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사람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경영자의 성공사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이 분이 사셨던 시대가 일제강점기의 시기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효시이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19].
- 유특한: 유일한의 동생으로, 형이 워낙 뛰어나서 그렇지 이쪽도 장난 아니게 모범적인 경영을 하였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전두환한테 정치자금을 안 주자 정부에서 세무조사를 하였으나 너무 깨끗해서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2.7 학술계
- 라이너스 폴링 - 미국이 낳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화학자이다. 양자 역학과 전기 음성도의 개념을 화학에 도입하여 현대 화학의 기틀을 완성했고, 비록 실패하긴 했으나 DNA의 분자 구조를 밝혀내려는 시도를 했다[20]. 하지만 동시에 반핵운동과 반전주의 운동에도 뛰어들어 과학계의 양심으로 여겨졌고, 덕택에 노벨 화학상과 노벨 평화상을 모두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21].
- 마리 퀴리 -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발견한 라듐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는 것을 거부했고, 자식들에게도 매우 따뜻한 엄마였기에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덕분에 여성 최초, 외국인[22] 최초로 팡테옹에 안장되는 영예를 누렸다.
- 에드워드 제너 - 천연두 예방법인 우두접종법을 유럽 전역에 전파한 영국의 의사. 특히나 그는 이 접종법을 무료로 전해주어서 우두접종법의 도입을 더 빠르게 했다[23]. 덕분에 제너는 지금까지도 이런 사이비년놈들[24]을 뺀 모든 사람들에게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 장 폴 사르트르 - 60년대 히피 세대들의 영원한 우상인 실존주의 철학자. 스탈린 치하의 소련의 실상을 알지 못해 당시의 소련의 체제를 칭송한 것 빼고는 그 어디에서도 까이는 구석이 없다. 덕분에 그의 장례식 때에는 일국의 대통령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추모객들이 운집했다.
- 조너스 소크 - 소아마비의 백신을 발견해 낸 생물학자인데, 자신이 개발한 백신에 대해 특허를 취득하는 걸 거부한 대인배였다. 이때 왜 특허를 취득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럼 태양에다가도 특허를 낼거냐?"고 답한 것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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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영- 한국판 에드워드 제너로, 비록 최초의 천연두 예방법 보급자는 아니었으나[25], 결국 종두법을 한반도 전역에 보급시켜서 천연두의 확산을 막는 데 성공하여 까방권을 두둑이 얻고 위인전에까지 올랐으나, 최근에 그가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사를 읽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2.8 군사계
- 장태완 - 12.12 쿠데타에 맞선 군인이다.
- 손원일 - 해군과 해병대의 아버지로 불린다.
- 김종오 - 전쟁영웅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데 기여했다.
- 이종찬 - 6.25 전쟁의 영웅이며, 군대의 정치 개입을 막으려 한 참군인이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적을 보였고 이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기도 했으나, 스스로 이런 행적을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이승만 정권 초기에 국군의 장성으로 임명을 받고도 이에 응하지 않았고, 6.25 전쟁 때에는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하고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였으므로, 일제강점기의 흑역사보다는 해방 이후의 공이 더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이런 년놈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죄를 참회했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에게도 까임방지권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김영환 - 6.25 전쟁중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에 항명하며 기관총만으로 공격하면서 팔만 대장경을 지켜내었다.
- 김태영 -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왜 전투기로 화답하지 않았냐는 국회의원들의 질책에 전쟁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걸로 유명한 전 국방부 장관이다.[26] 정옥근이나 최차규, 이진삼같은 똥별들과는 달리 군인으로서의 기본 자세도 충만하거니와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을 당시 개최된 청문회에서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임이 밝혀져 주목을 받기도 했다.[27] 덕분에 확실한 까임방지권을 얻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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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북한과 중공군의 침략에서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외려 북진을 시도했던 희대의 명장이라서 까임방지권을 얻었으나, 뒤늦게 드러난 그의 친일 행적과 인천대학교의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사학비리가 들통난 것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 최초의 육군 원수 임명도 물 건너가고, 까임방지권도 거의 날아갔다.[28]
- 하인츠 지크프리트 오이겐 하이드리히 - 무려 나치 독일, 그것도 슈츠슈타펠 출신이(후기에 징집병도 아니다!!) 무려 사람의 탈을 쓴 마귀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집시족을 구출했다.
- 후나사카 히로시 - 실존했던 울버린이자 일본군의 몇 안되는 참군인이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 중에 앙가우르 전투에서 믿을 수 없는 전과를 기록하였고, 종전 후에는 앙가우르에서 죽어간 미군 및 일본군 장병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다. 거기다가 일평생동안 파시즘을 혐오했고[29], 심지어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30]를 자신의 저서를 통해 보고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참군인의 표본이다.
2.9 종교계
- 구세군 : 현재 한국 내에서 가장 이미지가 좋은 개신교 종파로, 신자들의 거의 전부가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하는 대인배들이다[31]. 다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구세군을 일개 자선단체로 착각하는 일이 잦고, 그나마 구세군을 조금 아는 사람들도 구세군이 엄연한 개신교 '종파'인걸 모르는 경우도 많다. 안습.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 한국 역사상 최초의 가톨릭 추기경으로, 군사정권 시기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성당에 숨겨 보호해주고, 민주화 이후에는 많은 선행을 하여 세간의 귀감이 되었다[32].
- 가톨릭의 성인과 복자, 가경자 : 성인과 복자, 가경자는 모두 사회적으로 크게 귀감이 되는 가톨릭 신자에게 주어지는 경칭이다. 당연히 까임방지권을 가진 사람이 성인이나 복자, 가경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복자나 가경자는 언행 면에서 귀감이 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이고, 성인은 거기에 더해 순교자이거나, 무슨 기적을 행한 사례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과 더불어 알려지지 않은 흑역사를 샅샅이 캐내어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자리를 두는 데, 이를 위해 무신론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이 자리를 맡은 일도 있었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을 뚫고 시성된 성인들과 복자들은 모두의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부로, 아래의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는 신학교 동문이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세례를 주었음은 물론, 가톨릭이 박해를 받는 조선시대에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나섰고, 빈자를 구휼하는 일에 앞장섰다. 하지민 결국 관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 테레사 수녀 : 빈자의 성녀. 그녀의 흑역사[33]야 어찌되었건 본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녀의 언행이나 인격이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다지 까이지는 않는다.
-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 자신을 암살하려 한 암살범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물론, 동구권의 민주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타 종교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여 후대의 교황에게 모범이 되었으므로, 선종 당시에는 그의 마지막을 보러 온 사람들이 그를 두고 '즉시 시성하라!'(Santo Subito!)라고 외치기도 했다.
- 문익환 목사 :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로,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이자, 윤동주 시인, 장준하의 친구로도 유명하다. 안타까운 것은 민주화 운동 당시에 숱하게 고문을 당하고 오랜 투옥 생활을 하느라고,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민주화 이후에도 PTSD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 법정 :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분으로, 오늘날에 힐링의 대명사로 불리는 혜민스님이나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의 원조이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로, 과거 박정희 정권 시기에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신 분이시다[34].
- 세계 4대 생불 : 종교인으로서 최고의 모범을 보여 전세계인들의 귀감이 된 불교 승려들을 말한다.
- 고사난다 : 킬링필드로 대변되는 막장 학살극을 벌이던 크메르 루주와 폴 포트에게 대화와 비폭력으로 일관하도록 촉구하신 분이다. '일명 캄보디아의 간디.'
- 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 : 자국을 강제점령하고있는 중국조차 용서한다고 말한 대인배이시다. 중국 공산당은 당연히 그를 까고 있으나, 뻔뻔스럽게 남의 나라에 침략해온 놈들이 깔 자격이 있는지는...[35]
- 숭산 스님 : 한국 특유의 선불교를 전세계로 전파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분이시다[36].
- 틱낫한 스님 :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사이의 무력 충돌을 막고자, 불교 평화 대표단을 결성해 그 대표 자격으로 반전운동을 벌였다.
- 손양원 목사 : 일명 사랑의 원자탄.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었고, 6.25 전쟁 때에는 자신의 아들 2명이 모두 북한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극까지 겪었다. 그런데도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북한군 병사를 용서하고 자신의 양자로 삼는 대인배스러운 행위를 벌였다. 심지어 이 병사가 손양원 목사의 아들을 죽인 일로 처형당할 상황에 놓이자, 딸을 시켜서 '내 아들의 죽음을 막아달라'는 탄원을 넣어 그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손 목사는 결국 북한군에 체포되어 인민재판에 넘겨진 뒤, 처형되었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 말이 필요없는 밀림의 성자. 지금의 가봉에서 펼친 의료 봉사 활동의 방법들은 현대의 의료 봉사 활동의 표준이 되었는데, 다만 슈바이처 박사의 이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까는 사람이 좀 있다. 첫째로, 병원을 서아프리카 현지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서 환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였고, 현지인들의 문화 양식을 존중하였다. 둘째로, 다소 권위적이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그래도 현대 의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감마저 느끼던 현지인들을 설득시키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쯤되면 그를 성인으로 시성 안하냐는 말이 있을 수 있는데, 슈바이처 박사는 개신교의 목사인데다, 이렇다 할 기적을 일으킨 바가 없어서 가톨릭에선 시성을 못한다.
-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 일명 남수단의 슈바이처.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가톨릭 신부이자, 의사이고 위의 슈바이처 박사와 똑같이 의료봉사에 임했던 인물인데, 슈바이처 박사의 의료봉사 장소인 가봉은 아프리카에서는 그나마 정치적으로 안정된 지역이었던데 반해, 이태석 신부의 봉사장소인 남수단은 독립 후 소말리아 급의 막장 헬게이트가 된 곳이므로, 업무 난이도가 훨씬 어려웠다. 안타깝게도 지병인 암으로 선종했다.
- 최양업 토마스 신부 : 일명 '땀의 순교자'[37]. 양인과 천민을 가리지 않고 가톨릭에 입교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는 데도 대단히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가톨릭이 박해받던 조선시대였던 지라, 일생을 관군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며 살았다는 것과 이러면서도 포교 활동과 봉사 활동에 힘을 쓰다가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길에서 객사했다는 점이다.
- 최일도 목사 : 일명 '밥퍼 목사'. 오랫동안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급식봉사를 해온 한국 개신교의 양심.
2.10 기타
- 국경 없는 의사회 - 항목을 참조해보자. 집단 전체가 대인배로 구성되있는 집단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 -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특히 정읍발언 발언자의 병크로 반민특위가 해체되어 친일파에 대한 처벌이 요원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분들의 후손들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해 더욱 까임방지권의 대상으로 꼽히게 되었다. 물론 예외적으로 이런놈들은 독립유공자라도 까방권은 커녕, 평생까임권을 얻었다.
- 후세 다츠지 - 개중에서도 이분은 특히나 외국인의 신분으로서, 그것도 식민 본국인 일본의 국민으로서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사람이라, 특히나 까임방지권의 대상으로 꼽힌다. 농담조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라고 불리는 삼대오물과는 달리 진짜 독립유공자이신 일본인 사회운동가이자, 법조인이었다.[38] 많은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의 변호를 도맡아 하던 인권변호사였고, 한국이 광복을 맞자,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 대한민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하여, 사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고,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 대한민국의 소방공무원 - 목숨을 건다는 측면에선 경찰이나 군인과 같지만, 제일 열악하고 부조리한 대우[39] 속에서도 꿋꿋이 봉사하는 직종이다. 당장 비하하는 멸칭들이 난무하는 두 직종과는 다르게 소방관에 대한 비하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민들이 까지 않는 거의 유일한 공무원이다.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 일명 '마하트마'[40].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함은 물론, 힌두교와 이슬람교 등의 여러 종교들 간의 화합과 공존을 부르짖던 현대사의 성자이자, 인도판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종종 그가 인도의 천민들인 퍼라이어들의 삶을 무시하고 카스트 제도를 옹호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카스트 제도 자체를 악으로 여기고 단지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이를 점진적으로 폐지하자는 주장을 폈던 것이 와전되었을 뿐이다[41][42][43]. 물론 그의 투쟁에 대한 방법론이나[44], 가난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무지한 모습을 보인 것은[45] 문제가 있지만, 이런 과보다는 인도 뿐 아니라 전세계에 가져다 준 공이 더 크므로[46] 오늘날까지도 그는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47].
- 프레드 로저스 : 한국인들은 이 사람을 잘 모를 수 있겠지만, 미국인들은 80년대에 방송하던 교육용 프로그램인 로저스 아저씨네 동네(Mr. Rogers' Neighborhood)의 진행자로서 잘 알고 있다. 프로그램 내에서 그는 각종 선행에 나서는 착한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게 기믹이 아니라 실제로도 여러가지 선행에 앞장서 온 사람이어서[48] 미국인들 사이에선 까임방지권을 넘어 거의 생불 내지는 신성불가침 수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죽하면, 그의 차를 훔쳐간 도둑조차도 자기가 프레드 로저스의 차를 훔쳤다는 것을 알고는 "로저스 아저씨의 차인줄 알았으면 훔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알아서 차를 원래대로 돌려놓은 일도 있었다(...)[49]. 심지어 모두까기 인형 기질이 있는 4chan조차도 안 깔 지경이다.
3 창작물 캐릭터
주인공 대신 옹호받는 적, 커서 보면 불쌍한 캐릭터 항목도 참조.
-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하트
-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 - 가엘리오 보드윈
- 리멤버 - 아들의 전쟁 - 남여경, 안수범
- 수전전대 쿄류저 - 캔들리라, 라큐로
- 아기공룡 둘리 - 고길동
- 프리티 리듬 디어 마이 퓨처 - 아세치 쿄코
- 프리티 리듬 레인보우 라이브 - 노리즈키 코우
-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 얼음 대왕
- KOF 시리즈 - 안토노프, 무카이
- ↑ 물론 양심이 선한건 아니지만
- ↑ 한국에 있는 외국인 고등학교가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당시 병역법상으로 4급(중졸)이 나왔다. 이에 "외국인 고등학교도 엄연히 고졸이다"라면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패소했고 때문에 검정고시를 응시하게 되었다.
- ↑ 해병대원의 보직 지정은 병무청이 아닌 해병대사령부에서 인사명령을 내린다. 병무청은 선발만 위탁받으며 그나마 면접 및 체력검사 등은 해병대에서 직접 병무청에 출장 와서 실시한다.
- ↑ 참고로 이 컴퓨터 추첨은 장군 할애비라도 절대 장난질이 불가능하다. 만일 이 컴퓨터를 해킹하는 용자가 있다면 어나니머스 가입을 진지하게 권유한다(...)
- ↑ 가리온의 랩이 올드하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배로 가리온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 까여도 까이는 게 아니다.
- ↑ 김구라가 조금의 흑역사라도 있으면, 같은 연예인들도, 특히 본인조차도 까는 인물인 걸 생각하면 이게 보통 대단한 게 아니다.
- ↑ 특히 캄보디아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벌인 구호활동에 대해 당시 캄보디아의 국왕인 노로돔 시아누크가 감사를 표하면서 그녀에게 캄보디아 시민권을 부여해준 일이 있었다. 덕택에 안젤리나 졸리는 현재도 미국과 캄보디아의 이중국적자이다.
- ↑ 다만 유방은 배우로서의 활동 때문에 절제 후에 바로 복원술에 들어갔다.
- ↑ 이혼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서 까임방지권이 날아가게 될 지 아닐지는 모른다. 만일 둘 중 누구 한 명이 이혼의 원인을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빼도박도 못하고 까임방지권 소멸 확정이다. 다만 아이가 여섯명이나 되는 데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자신의 유방과 난소를 들어내면서까지 가정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집착한 걸 보면, 이로 인한 양육 스트레스가 이혼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혼 자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되어 둘 다 까방권이 유효해진다. 여자들의 양육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걸 생각해보자.
- ↑ 항목에는 안 나오지만, 유재석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자신의 코디네이터나 매니저를 직접 자기 차에 태워서 다니며, 퇴근할 때도 이들을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그래서 유재석의 매니저가 유재석의 수입을 그 몰래 유용하는 등의 막장 행각을 벌이자, 분노한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매니저 협회 측으로부터도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으며 영구제명을 당했다.
- ↑ 당연히 이 논란의 중심인물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지금까지 전세계의 까임을 받고 있다.
- ↑ 심지어 신혼이나 아이가 태어났을 때조차도
- ↑ 터키 정부도 이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 ↑ 심지어 터키 싫어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리스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좋을 지경이다. 아타튀르크가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자국이 패전한 것도 모자라, 그 책임을 물어 국왕 요르요스 2세가 일시로 폐위되고 추방되는 등의 헬게이트가 벌어졌는 데도 그렇다. 그래서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위치한 아타튀르크의 생가는 현재까지도 그리스 정부와 터키 정부에 의해 잘 보존되어 있다.
- ↑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처음했던 일이 필리핀의 국영 시멘트 회사가 자기 삼촌과 체결한 계약을 무효화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고, 부인이 필리핀의 유력 정치인의 부인들과 모임을 가지려하자 이에 노발대발하면서 귀부인들을 쫓아낸 일이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대통령 일가가 사사로운 연줄을 만들면 안된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후임자랑 너무 비교된다 - ↑ 빵 한 조각을 훔치다 붙잡힌 노인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한 뒤, 사회적으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빈곤한 사람들을 돌보지 못한 책임을 물어 판사인 라과디아 본인을 포함하여 재판에 참석 중인 사람 전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하고 이렇게 거둬진 벌금을 노인에게 전부 주어버렸다.
- ↑ 자기 사업을 방해하면 라과디아의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동시에 자기 일을 눈감아주면 차기 시장 선거 때 라과디아를 지원하겠다고 회유했다.
- ↑ 라과디아는 공화당 소속이었다. 다만 그는 온건 진보 성향인지라, 그가 뉴딜 정책을 지지하는 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 ↑ 참고로 이 분은 물론 이 분의 가족들도 까임방지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유일한 박사가 은퇴하면서 족벌 경영을 막기 위해 유한양행에서 일하던 친족들을 모두 해고했는데, 해고된 친족들이 해직 당시에 회사에서 나온 퇴직금을 안 받겠다고(!) 유일한 박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으며, 유일한 박사의 유지에 따라 박사의 재산의 거의 전부가 사회로 환원되고, 아들 유일선이 받으나 마나 한 푼돈 1만 달러를 상속받은 일이 있었는데, 유일선이 그 돈의 상속을 거부(!!)하려다가 결국 돈의 절반을 자기 재산과 합쳐서(!!!) 사회에 환원해 버렸다. 그리고 유한양행에서 해직된 유일한의 친족들은 그 일로 유한양행 측과 연락을 끊고 살아 뒷날에 SBS에서 유한양행 측에 이들의 근황을 물었을 때, 유한양행 측이 그들의 연락처조차 모른다고 답변한 건 유명하다. 다만, 이런 유일한의 가족들 중에 딱 한 명, 평생까임권을 얻은 자가 한 명 있는 데, 그가 바로 유명한이라는 사람이다. 독립운동에도 힘을 썼던 유일한 박사와는 달리 친일파가 되어 일제에 부역을 하였기 때문에, 유일한 박사의 동생인 유특한이 "나는 동생 유명한은 둔 적 있어도 일본놈 야나가하라 히로시(유명한의 창씨개명)라는 놈은 모른다!"라고 말하며 동생과 절연해 버렸다. 결국 유명한은 가족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당하며 살다가 6.25 전쟁 중에 죽었다.
- ↑ 이 시도는 라이너스 폴링이 아닌 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성공하였...지만 그 과정은 과학계의 희대의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DNA 항목 참고.
- ↑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사람 중에선 최초로 둘 다 단독 수상을 한 사람이다.
- ↑ 그녀는 폴란드 인이다.
- ↑ 물론 제너는 생전에 많은 부를 얻었지만, 이건 유럽 각국에서 들어오는 연구비 지원과 자신의 개인 병원을 경영하면서 얻은 수익에 의한 것이다.
- ↑ 지금까지도 이놈들은 에드워드 제너를 까지만, 잊지말자. 제너 덕택에 우리는 천연두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이 링크에 연결된 것들을 제너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제너에 대힌 모욕이다.
- ↑ 대대적인 보급에는 실패하였으나, 이미 정약용과 박제가가 종두법의 보급을 시도한 사례는 있었다.
- ↑ 과연 그것이 명언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 ↑ 그의 재산이 7억 여원 밖에 되지 않을 만큼 청렴했고, 그의 아들은 군입대 후 병장으로 만기전역했으며, 김태영 본인이 법의 처벌을 받은 사례라고는 속도위반으로 딱지를 떼인 게 고작이었다.
- ↑ 다만 동생이 저지른 뻘짓에 한해서는 까임방지권이 인정된다.
- ↑ 그래서 친구인 미시마 유키오가 파시스트로 주화입마하자, 그를 한심하게 여겼다. 게다가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 부대 안에서 깽판을 치다가 할복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자신에게 전달된 미시마의 유품인 그의 일본도에 '자살 밖에 못하는 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미시마의 극우적 행보를 조롱했다.
- ↑ 위안소의 상세한 위치
- ↑ 애초에 구세군의 기본 교리가 자선과 희사이다.
- ↑ 선종할 때, 자신의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겨 사람들의 장기기증 서약이 줄을 잇기도 했다.
- ↑ 아이티의 독재자인 프랑수아 뒤발리에를 칭찬한 일이나, 가난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것등
- ↑ 이 서명운동에는 상술한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해 유진오, 장준하, 문익환 목사 등도 참여했다.
- ↑ 한국사에 비유하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와서 강제점령해 놓고는 그 일본마저 용서한다는 독립운동가를 까는 격이다.
- ↑ 마찬가지로 위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를 전세계로 전파한 것에 대한 공로가 크다.
- ↑ 한국 가톨릭계에서 '피의 순교자'라고 하면 김대건 신부를 가리킨다. 땀의 순교자라는 별명은 순교만 안했을 뿐, 일생이 고난의 연속이었고, 그럼에도 가톨릭의 선교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 ↑ 그렇지만 도미나가 교지의 경우 필리핀 한정으로는 까임방지권이 있으..려나?
- ↑ 의경이나 병이 아닌 군, 경의 간부층과 비교할 때
- ↑ 산스크리트어로 '커다란 혼', 즉, 성인(聖人)이라는 뜻이다.
- ↑ 비슷한 경우로 링컨도 노예 제도의 폐지를 점진적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폐지할 것을 촉구한 것이 그가 노예 제도 폐지라는 문제를 미국의 통일을 위한 프로파간다로만 사용했다는 오해를 산 바 있다.
- ↑ 간디가 카스트 제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증거로, 그의 부인인 카스투르바이 간디와의 일화가 있다. 한 번은 간디의 집으로 천민이 세입자로 들어온 일이 있었는데, 간디의 아내가 천민 출신 세입자가 자기 집의 공동 화장실을 쓰는 걸 불쾌하게 생각해서 세입자에게 사기로 된 전용 요강을 쓸 것을 요구하자, 간디가 세입자가 천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 요강을 웃는 얼굴을 지으며 부수어 버릴 것을 아내에게 요구했다. 결국 간디의 아내는 세입자에게 공용 화장실을 쓰는 것을 허락하고 그의 요강을 부수었으나, 끝내 웃는 얼굴로 부수지는 못했다고 한다.
- ↑ 그가 카스트 제도의 열렬한 반대자였다는 다른 증거로는 그가 사바르마티 아시람이라는 마을을 경영할 때 있었던 일이 있다. 간디가 마을 주민으로 천민들을 받아들인 일 때문에 마을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간디에게 전달되던 후원금이 끊긴 일이 있었다. 그때 간디는 마을이 재정난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직접 천민들의 마을로 들어가서 살겠다고 선언하였는데, 운 좋게도 한 무슬림 사업가가 그에게 거액의 돈을 무상으로 지원해주어 간신히 마을은 재정난을 피했고, 이를 계기로 천민들을 마을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간디는 카스트 제도 상, 중상류 평민 계층에 속하는 바이샤 출신이며,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을 지내었던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이었다.
- ↑ 제대로 된 토론을 통해서 양자를 화해하게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단식을 통한 양자에 대한 압박이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는 갈등을 잠시만 잠재울 수 있을 뿐이라서 당대에도 그의 투쟁 방식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면, 위의 각주에서 간디를 도왔던 무슬림 사업가가 자기 회사의 직원들과 노사분규가 일어나자, 간디가 중재를 시도했으나 받아들여지 않자,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면서 자신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한 일이 있었다.
- ↑ 위의 테레사 수녀와 같은 이유였다.
- ↑ 간디는 일평생동안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도덕적인 투쟁 등을 설파하였는데, 이는 뒷날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혁명적 사상가들이나, 반전주의자들같은 진보적 사상가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그의 이런 사상은 뒷날 뉴에이지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 ↑ 참고로 왜 간디가 기타 부분으로 분류되었는지를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이유인 즉슨 간디는 단 한 번도 정계에 진출한 적이 없었던 엄연한 '재야사상가'에 불과한 사람이라서 정치 부분에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디가 정치 부분에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 사람들은 아마 이것(...) 때문에 착각했을 수 있다.
- ↑ 자신을 비웃던 방송국 직원들이 가정사나 인생사가 생기면 그를 찾아와서 펑펑 울면서 상담을 받고, 팬들이 질문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면 그 팬은 물론이고 가족에게까지(!) 친필 편지를 보내는 등, 일일이 다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다.
- ↑ 당연히 프레드 로저스는 그를 용서했다.
오오 대인배 아저씨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