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상왕(比武商王), 비무제(比武帝) 육홍(陸哄), 자(字)는 무결(武結).호광성 호북, 적벽 출신
무공은 높지 않으나 지모가 출중. 상업 수완이 몹시 뛰어남.
중원사대 비무대회(中原四大比武大會) 중 적벽 암무회전의 기반을 다진 이로 유명함. 이후 역시 중원사대 비무대회 중 하나인 낙양 용비대전의 정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음. 성정이 담대하고, 판단이 명쾌하여 수많은 비무와 거래를 성사시킴. 무림보다는 상계에서 더 큰 명성을 쌓았음.
발상이 기발한 데가 있어 독특한 사건을 여러 번 일으킴. 숱한 일화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천회 무신(武神)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었다던 태산무신전(泰山武神戰)임. 태산무신전이 열린 이후 상왕(商王)에서 제(帝)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고 함.
구주쌍룡(九州雙龍), 의협비룡회의 회주와 소통하면서 천룡상회주와도 깊이 연계하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확인 불가.
영락 십구년, 북경 정신 천도에 맞춘 어전 무술대회에서 세외사신병 네 병장기를 비무대 위에 모두 올린 공로로 황제로부터 보물과 전답을 하사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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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무림서 인물편 이십오장주요 강호 인물 中에서.
융중상회[1]에 소속된 상인이며, 거의 적벽에서만 활동하는지라 외부의 상인들에게는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별 것 아닌 도박판이였던 적벽암무회전을 현재의 규모로 끌어올린 사람.
본래 의창상회에서 해결사 일을 하던 막야흔을 데려와 적벽의 아이돌로 만들었다. 막야흔의 호방한 말투와 행동은 전부 육홍의 코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 적벽에 막야흔 열풍을 일으켜, 젊은이들은 죄다 막야흔이 쓰는 영웅건, 옷, 칼 등을 사서 따라하고 있을 정도로 우상시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광고효과로 융중상회가 얻은 이득은 무지막지한 수준. 경쟁 상회의 상인들은 육홍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
막야흔과 꽤 오랬동안 지냈기 때문인지 서로 상당히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웅성비영창과 포공사 출신의 검사가 출전한다는 소리를 듣자 강설영에게 막야흔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막야흔이 오랬동안 챔피언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패배하면 그만큼 타격이 커지기 때문.
막야흔 대신 청류검이라는 무인을 비무대회에 출전시켰으나 결국 엽단평에게 져서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게다가 정작 막야흔은 엽단평에게 이겼다(...)[2]
그래도 막야흔이 적벽을 떠날 때 최대한 무리해서 은자 만 오천냥이라는 거금을 챙겨주는 걸 보면 제법 의리도 있다.
한백 및 한균[3]과 친분이 있으며, 덕분에 어렸을 때 병기전설과 요마전설을 보았다.[4] 나이를 먹은 뒤로는 허구맹랑한 책이라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눈앞에서 직접 세외사신병 중 하나인 축융부를 보았다. 게다가 축융부로 상대한 것은 요마전설에 언급된 요괴.
그 후로 세외사신병을 추적하고 있으나 소득은 미미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세외사신병을 추적한 이유는 세외사신병을 비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축융부를 보는 순간 비무대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백무림서의 언급을 보면 훗날 성공한 모양이다.
사실 소연신이 문파를 만드려는 단운룡에게 준 헌팅 리스트에 있던 인물이지만, 단운룡은 이딴 녀석은 줘도 안 가진다며[5] 막야흔과 엽단평을 데려갔다(...) 이 때문에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모양이지만 자세한 경위는 불명.
몇 년 후에는 융중상회를 떠난 모양이다. 천잠비룡포 시점을 기준으로, 융중상회 내에서 단심맹과 연계하여 제갈세가의 소가주를 견제하는 세력이 있다.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제천회 십익을 모두 모아서 비무대회도 열었다. 아마도 팔황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로 추정되기는 하는데 한백무림서 최강자인데다가 무림의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저 자존심 높은 십익들을 모아서 비무대회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6] 그의 수완의 일부를 알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