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기

殷基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무난독을 지냈고 재주, 학문 등으로 유명했고 통어 수십 편을 지었으며, 세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차남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통어를 저술한 것으로 볼 때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해 정치 논평을 한 것으로 보이며, 손권손화를 태자로 삼으면서도 손패를 노왕으로 봉하고 같은 궁에 살면서 예법에 따로 구분을 두지 않은 것으로 인해 신하들이 두 파벌로 분리되어 오나라 황실 내부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이궁의 변, 고평릉 사변 등으로 이루어진 논의 등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남아있다.

그런데 고평릉 사변에 대한 논평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249년 이전에 생존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