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의 변

1 개요

장기적으로 보면 오나라가 멸망한 원인.[1]

오나라의 후계자 선정을 놓고 일어난 사건으로 오나라가 막장으로 치닫게 된 가장 큰 사건. 흔히들 노망이라고 밖에 보이지가 않는 손권의 대삽질. 이 일로 인해 그나마 손권이 쌓아온 좋은 이미지는 다 사라진다. 본격 손제리 비긴즈. 이궁(二宮)은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이궁지쟁(二宮之爭)' 혹은 '남노당쟁(南魯黨爭)'이라고 부르는데, '남노'는 태자 손화가 거처하던 궁(南宮)과 노왕 손패의 를 따서 부르는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이궁사변이나 이궁의 변이라고 부르는 모양.

요약하자면, 손권이 멀쩡하던 후계자 문제를 꼬아놓는 바람에 터진 사건이다. 노망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대다수이지만, 그 외 정세파악이나 후계자 문제를 제외한 판단은 의외로 멀쩡한 것을 보면 노망나지 않은 상태로 진짜로 자기가 주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더욱 더 무섭다. 이후 오나라의 능력자들이 줄줄이 사망하면서 황제부터 신하들에 이르기까지 인재들의 질적저하는 물론이고, 주요 가문과 능력자들이 서로 믿지 못한채 반목하게 되면서, 오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수습이 안 되는 개막장 역사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제갈량 사후는 잘 다루지 않는 소재인데다가, 상대적으로 오는 위나 촉에 비해 덜 주목 받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사를 읽은 사람들이 늘면서 조금씩 다루기 시작(#)했고, 최훈삼국전투기에서 전투외편으로 냈다.

2 배경

일단 기본적으로 손권의 아들들이 일찍 죽었다. 그냥 손권이 오래 산 것도 문제 차남 손려가 232년에 죽은 것도 모자라 242년에는 장래를 촉망받던 태자 손등이 죽는다. 그러자 손권은 삼남 손화를 태자로 삼는데 이때 사남 손패를 같은 궁에 살게 하면서 예법에 따로 구분을 두지 않는다. 나중에 신하들의 반대로 다른 궁에 살게 되나 오히려 이때부터 신하들은 두 파로 분리되어 치고박고 싸우기 시작하니 이를 이궁의 변이라 한다.

3 세력 분류

등장하는 관직명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굵직굵직한 관직들이다. 말 그대로 온 나라가 반으로 나뉘어 싸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

  • 이 당시 관직의 변화도 심하고 여러 일을 중임한 인물들도 있으므로 모두 서술함.

3.1 손화

이들은 예법을 내세우며 손화 편을 든다. 그리고 오의 사성이라 부르는 장온의 일가, 고옹의 일가, 육손의 일가, 주환의 일가 중에 장온의 일가를 빼고 다 포진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3.2 손패

이들이 손패편을 든 것에 대해 정사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으나, 보연사가 아들이 없이 죽음에 따라 손패를 지지했다는 설이 있다.

3.3 기타

  • 좌대사마 주연 : 손패파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아들 주적이 손화전 주석에 손화파의 일원이라고 적혀있기에 여기 기술한다.
  • 독군사자 양도
  • 상서복야 시의 : 손패의 부상으로 있었으며 그를 극진하게 섬겼으나 그가 올린 상소문의 내용은 손화파의 내용과 가깝다.

4 사건의 진행

4.1 초기 상황

이렇게 둘이 치고 받고 싸우니 손패의 부상으로 있으며 손패를 극진히 섬기던 시의 조차 상소문을 올려 두 왕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세우고 손패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손패를 바깥으로 내보내 국경을 지키게 해야한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세 번이나 올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손패파와 손화파로 시시각각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때 전종은 자신의 아들 전기를 파견하여 손패를 섬기게 하고 육손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 육손은 전종에게 낙하산 인사 옳지 않은 행위라고 경고하지만 전종은 듣지 않고 깔끔하게 무시해준다. 여기에 손패파로 들어간 전기가 둘 사이에 이간질을 하니 육손과 전종의 사이는 더 안 좋아지고 육손은 다시 한 번 김일제[4]의 사건을 보라며 경고하지만 전종은 이번에는 답변조차 하지 않아 둘 사이는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5]

또한 손패는 손화파지만 같은 손화파인 제갈각과 사이가 나쁜 주적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그의 관서까지 찾아가나, 주적은 땅으로 내려가면서까지 합당을 사양하니 결국 실패하고 만다.[6]

이렇게 중신들이 두 파로 갈려 싸우게 되니 손권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손패와 손화에게 사람들의 왕래를 끊게 하고 궁궐에 처박혀 두 사람을 독서나 하라고 하는데 고만해 미친놈들아! 여기서 양도란 녀석이 상소를 올려 다시 왕래를 허락하게 하라고 하며 헬게이트를 열어 버린다.

4.2 손노반의 공격과 손패파의 반격

선제공격은 손화의 어머니인 왕부인과 사이가 나빴던 손노반이 시작한다. 손화가 손권을 대신하여 종묘에 제사를 지내게 될 때, 손화 아내의 숙부인 장휴의 집이 근처에 있어 손화는 장휴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근데 손노반은 이걸 손권에게 손화가 일은 안 하고 지 아내 집에만 간다라고 모함하니 왕부인은 이 일을 근심하다 죽어버리고 손화의 총애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를 보고 육손과 고담은 각각 상소를 올려 손권의 이러한 행위를 비판하지만 손권에게 손화파의 말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이런 손권의 행위에 힘입어 손패파는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4.3 손화파의 연달은 패배

그들이 먼저 목표를 삼은 것은 241년 수춘의 전투에서 적의 기세를 꺾어 피해를 막은 장휴와 고승. 전종을 비롯한 그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공이 이들때문에 과소평가 되었다고 안 그래도 미워하던 사이라 양축, 오안, 손기, 전기를 중심으로 손패파는 손권에게 장휴와 고승이 진순과 내통해서 거짓으로 공을 늘렸다고 한다.

손권은 그 둘에게 벌을 내리고 연좌제로 그들의 친족들에게도 벌을 내리는데 이때 고담 또한 연좌제로 받게 된다. 손권은 그래도 자신이 총애하던 고담인지라 그에게 사죄하면 용서해주겠다고 말하나 고담은

폐하, 참언[7]이 흥하고 있습니다!

라고 외치는 패기를 보여준다. 이에 사무를 맡은 관리는 "저런 불공한 죄를 저지른다니! 저건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라고 외치나 손권은 여기서 쥐꼬리만한 아량을 배풀어 고옹을 생각해서 봐준다고 하며 장휴, 고승, 고담을 교주로 유배보낸다.

거기다가 이렇게 유배를 간 장휴와 평소 사이가 나빴던 손홍이 장휴를 참소, 장휴는 41세의 나이로 죽고 고담 또한 유배간지 2년만에 죽어버리며 고승은 37세의 나이로 죽는다.

이에 이어 양축은 20가지의 이유를 들어 육손을 고발하고 손권은 이것에 즉각 반응해 육손은 쫓겨나 무창에 있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손화파인 오찬은 시의가 했던 말처럼 손패를 내보내 하구를 지키도록 하고 온갖 더러운 일을 맡아서 하는 양축을 내보내 경사에 있지 못하도록 건의를 하며 또 쫓겨나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하는 육손에게 계속해서 소식을 전해준다. 육손은 오찬을 통해 정보를 받은 후 손권에게 끊임없이 표를 보내 잘못된 상황을 개선하려고 하지만 손패파는 이에 반응해 양축과 함께 오찬을 힐난하고 손권은 이런 그들의 행동에 오찬을 죽이는 것으로 답을 한다.[8]

4.4 손패가 드디어 태자로?

이런 손패파의 공격에 손화는 폐위될 것을 걱정하고 손패는 더욱 불손해진다. 그리고 손패는 양축, 오안, 손기, 전기와 함께 손화를 위해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던 상황. 이때 손권은 양축과 밀회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양축은 자신의 주특기인 입털기로 손패를 칭찬하는데 손권은 이 자리에서 양축에게 손패를 태자로 세우기로 약조한다.

이런 막장 사건이 손권에 의해 아무런 상의없이 선포될 위기에 처했으나 평상 밑에 숨어있던 손화파의 인물이 이 사실을 손화에게 알린다. 손화에게는 진짜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는 상황. 일단 그는 때마침 자기를 보기 위해 온 육윤과 상의 후에 육손에게 표를 올려 간언하게 한다.

손권에게 이미 쫓겨난 뒤였음에도 불구하고 육손은 진언을 올리는데 이를 받은 손권은 반성하기는커녕 양축을 불러다가 누구맘대로 내 결정을 유출하냐고 성을 낸다. 자신 또한 어떻게 그게 흘러나갔는지 모르는 양축은 일단은 부인하고 손권은 그런 양축의 말을 듣고 그를 풀어준 다음에 그럼 누가 유출했냐며 범인 수색을 시킨다. 양축은 그런 손권의 말을 듣고 조사를 한 후, 서쪽으로 간 것은 육윤밖에 없었다며 육윤이라고 보고를 하는데 육손 또한 누구에게서 그런 정보를 얻었냐는 질문에 육손 역시 들은대로 육윤이 알려주었다고 보고한다.

그렇다면 다음 손권의 행동은? 뻔하다, 육윤 고문의 시작. 육윤 입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정보를 얻었는지를 말하면 손화가 피해를 볼 것은 당연한 사실. 육윤은 그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양축이 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된 가혹한 형구에도 다른 말을 하지 않으니 손권은 이번에는 양축을 데려다가 고문을 시작한다. 양축은 육윤과 다르게 그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육윤에게 말했다고 거짓시인해 버린다. 손권은 이 말을 듣고 "훗, 과연 내가 예상했던 대로군."이라고 하며 양축을 죽여서 개울가에 던져 버린다.

다만 여기서 가족들이 모두 피해를 입었던 손화파 인물과는 달리 양패의 형 양목의 경우 육손의 경고에 따라 양축을 여러 번 말려서 선을 그었던 점이 참작되어 남쪽 주로 유배가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4.5 육손 분사, 혼란 속의 손패 처형

손권은 육손에게 계속해서 궁궐의 사자를 보내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데 육손은 이를 이기지 못하고 245년, 결국 분노와 통탄에 죽고만다. 그리고 이런 육손의 분사에도 불구하고 손권은 상주자리에 온 육항에게까지 환관을 보내 양축이 고발한 20가지에 대해 설명을 하게 하지만 다행히도 아버지를 닮아 뛰어난 능력을 물려받은 육항이었기에 그에 대한 손권의 의심은 점점 풀리게 된다.

이 와중에 245년 7월에는 이런 혼란을 틈타 마무라는 자가 손권과 대신들을 모두 죽이고 위에 항복하려는 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어 무리가 모두 처형된다.

또한, 양축의 죽음으로 손화를 해할 손패의 계획이 모두 밝혀지게 된다. 음모의 끝 지금까지 손패에 대한 칭찬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아 손패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진 손권에 의해 250년 8월, 손패는 손권의 명으로 자살하며 전기, 오안, 손기 또한 손패를 따라 온갖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기에 처형된다. 이것으로 손화의 자리가 유지되고 그대로 끝났으면 괜찮았으려만... 갑작스레, 손화가 태자에서 폐위되어 유폐된다!

4.6 아니, 갑자기 왜?

사실 양축이 죽으면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손패는 글렀다'고 생각한 손노반과 전씨 일족은 반근숙(반부인)의 후손인 손량을 목표로 정해둔 것이다(…). 이놈들이 손노반은 남편 전종의 조카인 전상의 딸을 손량의 아내로 삼게 하고 연일 침이 마르게 손량을 칭찬한다.

손권은 태자하겠다고 온갖 악행을 하던 손패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고, 그 전부터 그냥 싫던(...) 손화 역시 꼴도 보기 싫던 판에 자신이 이뻐하는 로리 어린 반부인의 아들을 칭찬하니 손준을 불러다가 "자제들이 화목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나뉘어서 장차 원씨와 같이 실패함이 있게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만약 한 사람을 세워 놓게 된다면 어찌 혼란이 일어나지 않겠소?" 라고 말하면서 손량을 태자로 세울 계획을 하고 잠자코 몇 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런 손권의 행위에 배송지는 길게 주석을 달아 손권을 깐다.

신 배송지가 생각하건대 원소와 유표는 (장남이 아닌) 원상과 유종을 현명하다 말하고 본래부터 후사를 전할 뜻이 있었으니, 이는 손권이 기왕에 손화를 태자로 세워 놓고서도 다시 손패를 총애하여 앉아서 난리를 만들고 스스로 집안의 화를 빚어낸 것과는 다르며, (손권의 뻘짓거리가) 원소, 유표보다도 어리석고 도리에 어긋남이 더욱 심합니다. 보즐은 덕과 도리를 칭하여 오나라의 대신이 되었음에도 손패에게 아부를 떨고 양공과 같이 일을 도모했으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손화를 기왕에 태자의 자리에 올려놓고 적자와 서자를 갈라 정했으니, 비록 재능과 덕이 특출나지 않다 해도 오히려 의로운 이는 서자를 편들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손패가 실제로 저지른 (뻘스러운) 일을 듣지 않고서 손화에게 후사를 잇게 한단 말입니까? (그게 제대로 이뤄지겠습니까?) 무릇 사악하고 편협한 자라도 그 행하는 근본에 어찌 장점이 없겠습니까마는, 만약 하나라도 선하지 않은 행동이 있다면 그 많은 장점은 모두 사라져 버릴 뿐입니다. 보즐에게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 나머지는 족히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여대, 전종의 무리들도 대개 논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4.7 그것만은 아니되옵니다

250년, 손권은 결국 손화가 장휴와 짜고 반란을 일으키려했다는 명분으로 손화를 폐위시켜 유폐한다.
아니 자기가 태자인데 무슨 반란을 일으킨다고 게다가 장휴면 9년도 더 된 일이다[9]

이 소식에 손화파는 심각하게 당황. 주거와 고제 및 수많은 신하들이 함께 상소를 올리지만 손권은 듣지 않고[10] 무시해버리니 주거는 굴황과 함께 여러 관리들을 이끌고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스스로를 결박한 다음에 연일 SM플레이를 요구 손화를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이 일을 백작관에 올라가 본 손권은 그들에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면박을 주고 자신이 로리 어린 반부인으로부터 얻은 손량을 태자로 세우려고 한다. 이에 진정과 진상이 편지를 올려 진헌공해제의 고사를 들어 이 일을 말리지만 손권은 진정과 진상의 일족을 주살하고 주거와 굴황은 곤장 백대를 때린다. 굴황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태자를 바꾸면 안된다고 간언하지만 이미 정신이 나갈 때로 나가버린 손권은 그를 추방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주거 또한 신도궁의 승으로 좌천되며 손권에게 간하던 장순은 목숨을 잃고 시체마저 시장바닥에 버려진다.

한편 제갈각은 손화파이고 그의 아들 제갈작은 손패파였는데 손패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손권은 제갈각에게 애 교육 좀 잘 시키라고 하고, 이에 제갈각은 손권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아들에게 독을 먹여서 죽인다. 이 행동으로 제갈각은 다른 손화파와 다르게 손권의 호감을 산다.

이처럼 간언을 하다가 주살되거나 좌천된 사람이 수십 명이 넘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이들이 억울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손권은 끝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나라가 이꼴인데 7살짜리를 황제에 올리겠다고?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다

4.8 태자는 손량

신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50년 11월 아직 7살밖에 되지 않은 손량을 황태자로 임명한다. 그리고 250년 12월에 신인이 편지를 주어 연호를 바꾸고 황태후를 임명하라고 했다는 것을 이유로 251년 5월에는 로리 어린 부인 반부인(반근숙)을 황후로 세워버린다. 문제는 이 반부인이 아주 잔학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천성이 악랄했던 반부인은 다른 비빈들을 무고해서 죽였고 궁녀들에게도 아주 가혹해서 죽거나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여자가 황후가 되었으니 여론이 좋을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손권이 병에 걸려 누워버리니 이때다 싶은 손패파의 손홍은 손권의 거짓조서를 만들어 좌천되어 임지를 향해가는 주거를 죽여버린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손권은 요양차 도성으로 온 육항을 만나 자신은 그저 간신배에게 속아 육손과 육항을 욕하게 되었다며 육항을 비난한 편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다 불태워달라는 찌질한 부탁까지 한다. 병 치료하러 왔다가 화병으로 죽을 지경[11]

4.9 마지막 희망

그렇게 미쳐 돌아가던 오나라에도 마지막 희망이 비치니 251년 11월, 남교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풍질을 만난 손권은 죽을 때가 되자 정신이 맑아지는지 기적적으로 노망에서 벗어나 손화에게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은데, 다시 태자로 삼자.라는 발언을 하게 되지만 이미 병에 걸려 쇠약해진 그에게는 레임덕 수준의 충성심밖에 없었다. 주위의 손노반, 손준, 손홍은 이를 거절해버리며 오나라의 마지막 기회는 물 건너가버리고 결국 252년 1월, 손화는 남양왕으로 임명돼 장사로 가게되어 태자가 될 마지막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린다. 한편, 이렇게 손권이 오늘 내일하고 있을 때 반부인은 손홍 등을 시켜 전한여후가 섭정하던 전말을 조사케 했다. 쉽게 말해 손권이 죽으면 여후처럼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것.

그러나 워낙 궁내외에서 미움을 샀던지라 252년 2월, 섭정을 생각하던 포악한 황후 반부인의 횡포에 견디지 못한 후궁, 궁녀들이 반부인이 손권의 병간호에 지쳐 침대에 누운 틈에 들이닥쳐 목을 졸라 죽여버린다. 이들은 반부인이 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으나 목졸린 흔적 때문에 결국 들통났다. 손권은 반씨의 악랄함 때문에 자초한 일인 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황후를 살해한 자들이 용서받을 리가 있는가? 결국 가담자 예닐곱명이 주살당한다. 이처럼 죽을 때까지 피비린내 나는 일생을 보낸 손권은 4월에 제갈각, 손준, 등윤, 손홍, 여거를 불러 뒷 일을 부탁하고 죽는다.

5 피해를 받은 인물

유비가 이릉대전으로 말아먹은 인재들 수보다 더 많다. 이러니 나라가 기울지.

5.1 손화파

  • 손화 - 일단은 생존
  • 육손 - 분노로 사망.
    • 육윤 - 생존
  • 제갈각 - 아들을 제물로 생존
  • 고담 - 유배후 사망
  • 고승 - 유배후 사망
  • 고제 - 아버지 제사 지내다가 너무 슬퍼하며 사망(…)
  • 주거 - 좌천후 손홍의 문서조작으로 처형
    • 손노육 - 생존
  • 등윤 - 생존
  • 주적 - 생존
  • 정밀 - 생존
  • 오찬 - 양축의 참소로 손권이 처형
  • 장휴 - 유배후 손홍의 참소로 처형
  • 굴황 - 유배후 기록 없음
  • 진정 - 일족 전멸
  • 진상 - 일족 전멸
  • 장순 - 끔살 후 시장바닥에 시체 뒹굶.
  • 왕부인 - 상황 걱정하다가 사망.

제갈각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참가자들 모두 사망한다. 특히 장소의 일족과 고옹의 일족이 대표적인 피해를 입는다.

5.2 손패파

  • 손패 - 명령에 의한 자결
  • 보즐- 도중에 자연사
  • 여대 - 생존.
  • 전종 - 도중에 자연사
    • 손노반 - 생존
    • 전기 - 손패 사망 후 끔살
    • 전단 - 생존
  • 손준 - 생존
  • 여거 - 생존
  • 손홍 - 일단은 생존
  • 제갈작 - 아버지의 생존을 위한 제물로 희생.
  • 양축 - 본인만 끔살 후 강가에 시체 투하
  • 오안, 손기 - 손패 사망 후 끔살

손패파의 주요 인물들은 자연사한다(…).

제갈작의 경우는 제갈각전에만 실려있어 시행시기가 모호하고 국역 삼국지에는 노왕의 사건과 연류되었다고만 나와 손패파라는 점에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원문을 보면
恪長子綽,騎都尉,以交關魯王事,權遣付恪,令更教誨,恪鴆殺之。

(제갈)각의 장자 (제갈)작은 기도위였으며, 노왕과 교유했기 때문에 (손)권이 (제갈)각에게 보내 가르쳐 꾸짖게 했거늘, (제갈)각이 짐살했다.에서 노왕과 교류했다는 것을 통해 손패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6 그 후 인물들의 행보

손권이 죽은 직후 손패파의 일원인 손홍은 주거를 죽였던 방법처럼 거짓조서를 만들어 제갈각을 죽일 기회를 세우지만 그 자리에 있던 손준이 이 사실을 제갈각에게 보고했고, 제갈각은 손홍을 불러 자문을 요청한 다음에 대답하지 못하자 죽여버린다.

그 후, 권력을 잡은 제갈각이 잘 나가면서 손화파에게도 빛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253년 합비 신성 공략 실패로 제갈각의 세력이 약해졌을 때, 손준의 계획으로 제갈각과 그의 일족은 주살되고, 손준이 권력을 잡아 손패파인 손준+손노반+전씨일가라는 세력이 세워진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결국 손화도 죽이고 손노육도 죽이며 손화파 정리에 들어간다.

즉, 피의 권력에 특화된 손패파가 손준-손침 시대를 열면서, 오나라의 개막장 역사에 일조하게 된다.

256년 9월 14일 손준이 죽고 손침이 뒤를 잇는데[12], 이에 여거와 등윤이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둘 다 죽는다. 그리고 257년 제갈탄의 반란 때 출진했던 전씨 일가가 모조리 위에 투항해버린다. 그 후 오나라에서 전씨 일가는 풍비박산나고 얼마 안 되어 손노반도 유배크리를 먹고, 드디어 손패파도 깨끗이 정리된다.

7 평가

  • 손권의 어리석은 판단

손권이 죽은 지 5년(대통령 1대 임기에 해당하는 기간)도 안 돼서 참전했던 세력 중 오나라에 살아남아 관직을 지낸 자는 정밀과 육윤, 주적밖에 없을 정도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된다. 그 와중에 손준과 손침이 나라를 말아먹은 것은 덤. 결국, 이 모든 것을 자초한 것은 손권이 되었으므로, 그가 이룬 업적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까이게 된다. 오주전과 비빈전에 있는 진수의 평이 그 대표적.

단, 배송지의 경우 그래도 모든 책임이 손권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했다.[13] 또한, 먼저 죽은 황태자 손등이 후계자로 손화를 지목했다고 하지만, 이후에 후계자를 다시 손패로 바꾸는 일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둘 사이에 계승권을 애매하게 두고, 하필이면 개막장인 손패파의 손을 들어서, 딱히 문제가 없는 손화와 그를 옹호한 개념인들을 대거 척살한 것이다. 일단, 모든 일이 손패에 대한 편애에서 시작되었음을 생각하면, 손권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영제~오 멸망 사이에서 후계자 구도 문제는 중요하다. 왜 가후가 후계자 문제에 관해서 조조에게 원소와 유표의 예를 들었겠는가 둘 다 후계자를 잘못 선정해서 자기 가문까지 말아먹었다. 즉 후계자 문제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면 이 시대엔 다 말아먹었다. 그런데 제대로 정하질 못했으니...[14]

  • 손패파의 폭정이 승리하다

당시에 손권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냉철한 판단을 내리면서 국정을 돌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군주제의 말년은 필연적으로 썩어가기 마련인데, 손패파가 이런 시점을 잘 노려서 "황제님 기분에 거슬리는 놈들 다 역적임 다 죽여버리셈"이라고 교묘하게 알랑거리면서, 손권의 의심병과 숙청성향을 권력장악에 써먹은 것이다.[15]

문제는 육손-고담 일족을 포함하여, 오나라를 안정적으로 굴려갈 비전을 가지고 있던 주요 인재들이, 손권의 입맛에 맞는 손패파의 폭정에 휩쓸려 비참하게 사망했다는 점이다.[16] 물론 손패파도 많이 죽었지만, 핵심세력들은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이러다 손권마저 죽으니, 기고만장해진 손패파가 집권하면서 남긴 부정부패와 피의 통치는 두고두고 오나라 내부에 악영향을 끼친다.

물론, 기존 태자를 옹립했던 손화파도 자세히 파고들면 무조건 정당한 방식을 쓰진 않았다. 그렇지만, 손패파가 사용한 방법들은 손화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개막장, 그야말로 한숨이 나오는 3류 양아치 방식으로 국가권력을 중간에서 왜곡시켰다. 심지어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덕을 세우지 못하고 피를 뿌렸으니, 이후 오나라의 정치 상황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든다. 똥묻은 개보단 겨묻은 개가 낫다.

  • 이후의 안습한 황제들

이렇게 많이 죽어나간 사람들의 상당수가 호족인 것을 들어서, 중앙집권화를 꾀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실권없는 9살짜리 꼬맹이가 황제에 올랐으니 황제에게 어떤 권한이 생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손량의 일화를 보면 머리는 확실히 좋았으나 어린 황제가 뭘 할 수 있겠는가?[17]

손량 다음으로 즉위한 손휴가 어느 정도 혼란을 잠재웠지만, 이 손휴마저도 요절하면서, 다음 황제는 개막장 폭군으로 유명한 손호가 즉위한다.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손호가 어떤 놈이냐면, 암군 유선보다 못한 평가를 받는다. 물론 머리는 유선보다 더 낫다고 쳐주는 모양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평가가 더 안 좋다. 여담으로 손호는 손화의 아들인데, 이 때문에 손화는 사실상 손호를 세상에 내보낸 것만으로도 오와 손권에 대한 원한을 다 갚은 셈이 되었다.

  • 기타

손오의 아침 드라마급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별(인재)들이 죽어나간 대숙청이면서, 이후에 시작될 혼란 시대의 개막에 지나지 않았다.이궁의 변도 충분히 막장인데 이게 시작이라고?!

종종 조조의 사실상 통일을 완수했다 날려먹은 적벽대전이나 유비의 최대 8만+온갖 장수들이 죽어 자빠지고 항복하게 된 이릉대전에 비견된다는 사실에서 그 막장성을 짐작할 수 있으며[18], 국가 내정에 끼친 영향력으로는 지속적인 폭정과 유력가문들의 증오심을 키웠다는 점에서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손권이 손제리라고 까이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건이다.

8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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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전투기에서도 등장, 손권 이 쥐새끼야 라며 장렬하게 까였다.(...) 손권의 치적과 업적은 확실히 고평가 하지만 이 이궁의 변으로 이어지는 후반기의 노망만은 절대로 실드를 쳐주지 않는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삼국전투기에서 작가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욕하면서 비난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욕먹을만 하다.[19]
  1. 만약 이궁의 변이 안 일어났으면 육손, 주거, 고담, 고승, 장휴 등 인재들이 죽지가 않고 손등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황제에 자질이 있는 손화가 비참하게 죽을일이 없을것이다. 그리고 손화가 비참하게 죽지 않았다면 손호가 미쳐돌아갈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론 : 만악의 근원 어쨌든 손호는 황제가 되긴 했을 것이다
  2. 손권의 사위이기도 하다.
  3. 오경의 손자
  4. 곽거병의 흉노 토벌때 잡혀온 흉노 번왕의 왕자로(선견지명 참조)자신의 아들이 황제의 자식들과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자 아예 자기 아들을 죽여서 우환이 될 소지를 막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김일제를 언급하는 것은 자식 교육 똑바로 시켜라라는 소리를 완곡하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5. 둘 사이 서신의 자세한 내용은 육손(삼국지)#s-2.8 참고.
  6. 그리고 후에 주적은 강릉전투에서 제갈각의 동생 제갈융과의 사건으로 인해 제갈각과의 사이는 더 안 좋아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손패파로 노선을 변경한 것 같지는 않다.
  7. 거짓으로 남을 헐뜯는 말
  8. 정확히는 옥에 갇혔다가 처형당한다.
  9. 손화와 장휴가 무슨 관계인지는 위의 손화파의 연다른 패배 항목 쪽을 볼 것. 보면 알겠지만 별 일도 아니다...
  10. 상소내용은 주거참고.
  11. 물론 그 편지들이 나중에 정치판에서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 제거하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원인제공자인 손권이 제거부탁을 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모양새는 아니잖는가.
  12. 이 와중에 9월 16일에는 여대가 늙어서 죽는다.
  13. 이에 대해 배송지가 섬긴 유송의 태조 유의륭은 형 유의부가 황음무도하여 신하들에게 참살된 다음 즉위했고 유의부의 아들 유의진도 황음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때 살해되었기에 다른 사가들과는 달리 정통성보다는 유능함을 강조하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14. 실제로 위나라와 촉나라는 후계 구도를 잘못 잡아서 말아먹지는 않았다.
  15. 손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정치적 숙청을 잔인하고 철저하게 실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지방호족들이 강했던 오나라의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손권의 마지막 숙청은 나라를 한데 모으긴커녕, 오히려 반목과 증오심을 퍼트렸고, 딱히 오나라를 하나로 뭉칠 비전도 없이 그냥 거슬리면 죽인 꼴이기에(…). 이러한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별로 대단한 소득은 없었다고 평하는 경우가 많다. 외교도 그렇고 손권은 행동력은 끝내주는데 제대로 하는 게 없냐
  16. 육손만 해도 형주 공방전,이릉대전에 참여한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17. 그리고 호족들이 죽어나가긴 했다고 해서 어린 황제가 그 몇 안되는 이들을 통제하는걸 기대하는것도 무리다.
  18. 적어도 위의 두 패배는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지, 이궁의 변은 국가 내부에서 미쳐돌아갔다는 점에서 수준이 다르다.
  19. 첫 컷의 괴물(...)감택. 마지막과 그 바로 전 컷의 한량은 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