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1 삼국시대의 인물

李根. 생몰년도 미상. 자는 자원(子源).

허창 사람으로 조가라는 사람이 할아버지아버지에게서 대대로 이근을 봤다는 얘기를 듣자 어렸을 때부터 이근을 모셔 84세가 되었는데, 이근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늙지 않았다고 한다.

수춘의 오태문이라는 사람의 집에 오태문이 이근을 따라다니면서 도를 배웠는데, 이근은 변화를 일으켜 물과 불 속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앉은 자리에서 음식을 마련해 20명이 먹을 수 있도록 공급했는데, 그 음식은 훌륭한 반찬으로 기이한 물건이면서 그 곳에서는 나지도 않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왕릉이 패해 수춘이 함락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근이 요언을 퍼뜨린다고 여겨 잡아들여 죽이려고 했다. 이근은 상소문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천여 명의 사람이 밖에서 포위하면서 자신을 나오라고 하자 오태문의 아버지에게 자신은 모른다면서 관리들은 스스로 들어와 수색하라면서 어제 이근은 이미 떠났다고 전하게 했는데, 밖에서 들어온 관병들이 집 안을 수색했지만 이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관병이 사라진 후에 오태문이 확인해보니 이근은 방금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으며, 오태문에게 태위 왕릉의 가족이 멸족당하면서 오태문의 아우가 이 사실을 누설해 열흘 안에 죽을 것이라 해 그 말대로 되었다. 이근의 제자 집에서 딸을 이근에게 주어 아내로 삼았는데, 그 여자는 글을 알고 있어 이근이 외출하자 몰래 이근의 책 한 권을 읽어봤다.

이근이 도경에 쓴 글을 통해 한나라 원봉 연간에 모씨에게 배웠다고 했는데, 계산하니 이근의 나이는 7백여 세였다. 그의 눈동자는 네모난 형태로 선경에 8백 세가 된 사람의 눈동자는 네모라고 했으며, 이근이 제자들에게 신산 대도의 비결을 터득하지 못해 오직 지선망을 터득했을 뿐이라고 했다.

1.1 관련 사료

2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李懃. ?∼1398(태조 7).

본관은 고성(固城). 임(琳)의 조카이다. 1388년(우왕 14)에 좌부대언이 되고, 1389년(공양왕 1) 우왕·창왕이 서인(庶人)으로 될 때 숙부 임과 함께 원지에 유배, 얼마 뒤 석방되었다. 이듬해 좌상시(左常侍)로서 염문계정사(廉問計定使)가 되어 경상도에 파견, 1392년 이조판서에 이어 우대언이 되었다.

이성계를 추대하는 데 공을 세워 개국공신 3등에 녹훈되고 좌승지가 되었다. 1393년에 대사헌이 되어 동국 역대 여러 현인들의 비록을 두루 상고하여 요점을 추려서 바치기도 하였다. 1396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종묘감독관에 이르렀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에 관련되어 주살되고 관직도 추탈되었다.

3 북미게임 웹진

IGN을 한국 게임팬들이 이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