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李吉用
(1899-?)

한국의 기자, 언론인.

1899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했다. 이후 아버지가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인천에서 성장하게 된다. 인천에서 영화학교를 다녔고 이후 서울로 와서 배제학당을 졸업한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도시샤대학에서 공부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중도 포기하고 귀국했다.

귀국후 철도국에서 일하다가 3.1 운동에 가담한 이후 기미독립선언서와 상해 임시정부의 기밀문서를 철도로 운송하는 일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발각되는 바람에 체포되어 3년간 투옥되었다.

출옥후 동아일보송진우사장을 만났고 송진우의 권유로 동아일보에 입사해 체육부 기자로 활동했다. 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체육계 활동에도 참여해 여자정구 육성에 주력하여 1923년부터 전조선여자정구대회를 주관 운영하는 일에 앞장섰다.

한때 조선일보로 이적했다가 송진우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 다시 동아일보로 돌아왔고 체육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체육계 발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를 위해 1927년 다른 신문사의 체육기자들과 뜻을 모아 조선운동기자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1932년 LA 올림픽에 출전한 김은배와 권태하가 들어오는 순간을 찍은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이때는 일제가 의식하지 못해 넘어갔으나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달성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조선중앙일보에서 지워버리자 자신도 동아일보에서 이를 감행하기에 이른다.(일장기 말소사건) 조선중앙일보는 윤전기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일제가 의식하지 못했으나 동아일보는 좋은 성능의 윤전기를 쓰던 탓에 일장기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것이 들키고 말았다.

이 일로 이길용은 두번째로 투옥되었고 동아일보는 40일 정간 조치를 당했다.

이후 이길용은 창씨개명을 거부하여 다시 세번째로 투옥되었다가 1945년 8.15 광복 며칠전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광복이후 일제에 의해 사라진 조선체육회를 재건했는데 이는 한국체육회의 전신이 되었다. 또한 체육사 정리에도 앞장서서 체육연감과 대한체육사의 발간에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때 납북되었고 이후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길용은 한국 최초의 체육기자라 할만한 인물이었고 단순히 기자로서만 뿐만 아니라 체육계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일제치하 조선체육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세웠다. 또한 한국 체육의 역사를 정리해 한국 체육의 전통을 전수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길용의 공을 기리기 위해 1989년부터 스포츠 취재기자들을 위한 "이길용 체육기자상"이 제정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