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東鎬
Abbot Placidus Lee Dong-ho
역대 천주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 |||||
2대 이성도 티모테오 몬시뇰 | ← | 3대 이동호 플라치도 아빠스 | → | 4대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제3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장 겸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 세례명은 '플라치도'이다.
만주 간도 연길현 팔도구에서 출생한 이동호 아빠스는 서울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뒤 성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에 입회, 왜관본당 보좌신부와 성주본당 보좌신부·구미본당 주임신부 등을 거쳐 1969년 9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본원장으로 임명된 후 1971년 4월 15일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살에 왜관수도원 제3대 아빠스로 선출돼 한국인 최초의 아빠스가 되었다.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진출한지 62년만의 일이었다.
이것은 당시 한국 천주교의 상황에서 외국서 설립된 수도회들 중 최초로 방인 장상을 갖게 되는 사건이었으며 수도회 내적으로는 한국인이 국제적 공동체에서 동등하게 대접받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독일인 아빠스가 물러나고 한국인 장상이 출현하게 된 배경은 당시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과도 관계가 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릿고개라는 용어가 없어지고 새마을운동 등 영향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경제적인 성장을 거두며 전반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시점이었다. 또한 교회적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현지 교회의 정신적 사회적 발전에 적응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그 의미대로 이동호 아빠스는 이전의 수도원 사업들을 계속해서 성실히 발전시켜 나갔으며 자립 수도원을 목적으로 했던 부산 수도원을 분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분도출판사 분도인쇄소를 분리 확장시켜 교회 출판사업을 진작시켰고 연화리 결핵요양원을 설립하는 한편 순심중ㆍ고등학교를 확장하고 농장사업을 시작 발전시키는 일도 추진했다. 한국인에 의한 베네딕도회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시기였다.
2006년 11월 18일 향년 71세로 선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