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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레지스탕스
이름 | 이반 베크 (Иван Бек / Ivan Bek) |
생년월일 | 1909년 10월 29일 |
사망년월일 | 1963년 6월 2일 |
국적 | 유고슬라비아[1] |
출신지 | 베오그라드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80cm[2] / 82kg |
등번호 | -[3] |
소속팀 | BSK 베오그라드(1925-1928) 마츠바 샤바츠(1928) FC 세트(1928-1931) 우라니아 제네브 스포르트(1931-1932) FC 세트(1932-1935) AS 생테티엔(1935-1939) 님 올랭피크(1940-1942) |
국가대표 | 7경기 / 4골 (유고슬라비아 / 1927-1931) 5경기 / 0골 (프랑스 / 1935-1937) |
1 생애
1.1 어린 시절
이비차(이반 베크의 별명)는 독일 혈통의 아버지[4]와 체코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세르비아에 대한 애국심을 남달리 강조하였는데 그로 인해 베크 역시 강한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
1.2 선수 생활
16살의 나이에 BSK 베오그라드에서 데뷔한 그는 초기 선수 시절에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주로 활동하면서 50경기에 출전하여 51골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1928년에 학업을 위해 잠시 샤바츠에서 활동한 베크는 같은 해에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축구계에 뛰어들었다.
베크는 류비사 스테파노비치와 같이 FC 세트에서 뛰게 되었고 1930년에 처음 우승컵을 들었다. 그 무대는 쿠프 드 프랑스였다. RC 파리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그는 연장에서 2골을 뽑아내는 활약으로 3대 1의 승리를 이끌었다. 프로화가 된 이후에는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기는 했지만 리그 전체의 득점왕까지는 차지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1934년이 FC 세트 최고의 순간이었는데 리그와 컵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더블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스트라이커 이슈트반 루카스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베크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그 때문에 베크는 1935년에 디비지옹 2의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하였고, 그 곳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1938년에 디비지옹 2 준우승으로 팀을 승격시키기도 하였다. 2차 대전 시기에는 님 올랭피크에서 활약하다 1942년에 선수 생활을 마쳤다.
대표팀은 유고슬라비아와 프랑스에서 활약하였는데 초대 월드컵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으로 참가하였다. 그는 브라질과 볼리비아를 상대로 3골을 득점하여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1931년 이후에는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활약하였는데 5경기에 출전했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했다.
1.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프랑스 시민권을 얻은 그는 나치 독일에 대항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지휘관으로서 몇몇 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후에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는데 세트 항에서 항만 노동자로 정착하였다. 베크는 1963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