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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 | |||
제1차 세계 대전 (1914 ~ 1918) | |||
제2차 세계 대전 (1939 ~ 1945) | |||
2차 대전의 흐름 |
300px | 300px | |
유럽 전선에서의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 태평양 전쟁에서의 추축국(일본) | |
두 지도 모두 붉은 색은 추축국에 항전하는 나라, 푸른색은 추축국 및 추축국에 점령된 나라들이나 동맹국이다. |
1945년 5월 9일 나치 독일 항복 당시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 항복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 ||
날짜 | ||
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6년 1일 간)출처[1] | ||
장소[2] | ||
아프로-유라시아, 아메리카, 대서양, 태평양, 지중해 | ||
원인 | ||
여백이 부족할 정도로 너무 많음. 항목참조 | ||
주요 교전국 | 연합국 미국 23px 소련 23px 영국 23px 중화민국 프랑스 * 프랑스 제3공화국(1939~1940) * 자유 프랑스(1940~1945) 폴란드 핀란드(1944~1945) | 추축국 23px 나치 독일 일본제국 23px 이탈리아 왕국(1940~1943) 23px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 (1943~1945) 핀란드(1939~1944)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 왕국 |
주요 지휘관 |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S. 트루먼 이오시프 스탈린 조지 6세 네빌 체임벌린 →윈스턴 처칠 →클레멘트 애틀리 린썬→장제스 알베르 르브룅 에두아르 달라디에 샤를 드 골 이그나치 모시치츠키 등. | 아돌프 히틀러 →카를 되니츠 쇼와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고이소 구니아키 →스즈키 간타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베니토 무솔리니 리스토 리티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호르티 미클로시 등. |
결과 | ||
연합국의 승리 | ||
영향 | ||
독일 제3 제국 및 일본제국 멸망 식민제국들의 몰락 유엔 창설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대두 냉전 시작 | ||
피해 규모[3] | 군인 사망자 | |
1,600만 명 이상 | 800만 명 이상 | |
민간인 사망자 | ||
4,500만 명 이상 | 400만 명 이상 | |
총 사망자 | ||
6,100만 명 이상[4] | 1,200만 명 이상[5] |
언어별 명칭 | ||
영어 | World War 2 Second World War | |
프랑스어 | Seconde Guerre mondiale | |
러시아어 | Вторая мировая война | |
중국어(간체) | 第二次世界大战 世界反法西斯战争 | |
중국어(정체) | 第二次世界大戰 | |
일본어 | 第二次世界大戦 | |
폴란드어 | II wojna światowa | |
스웨덴어 | Andra världskriget | |
노르웨이어 | Andre verdenskrig | |
덴마크어 | 2. verdenskrig | |
네덜란드어 | Tweede Wereldoorlog | |
몽골어 | Дэлхийн хоёрдугаар дайн | |
페르시아어 | جنگ جهانی دوم | |
히브리어 | מלחמת העולם השנייה | |
루마니아어 | Al Doilea Război Mondial | |
불가리아어 | Втора световна война | |
아랍어 | الحرب العالمية الثانية | |
태국어 | สงครามโลกครั้งที่สอง | |
힌디어 | दूसरा विश्वयुद्ध | |
터키어 | II. Dünya Savaşı | |
스페인어 | Segunda Guerra Mundial | |
에스페란토 | Dua Mondmilito | |
독일어 | Zweiter Weltkrieg | |
이탈리아어 | Seconda guerra mondiale |
1 개요
현 21세기까지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역사상 최대의 전쟁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추축국[6]이 일으킨,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의 전쟁.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시작된 세계대전이자, 최대 규모의 전쟁.
세계의 역사가 구미열강 중심의 근대에서 미소 중심의 현대로 넘어가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더불어 논란들이 딸려나오는 수많은 전쟁들 중에서도 정의구현 등의 단어로 패전국을 대놓고 디스해도 되는 얼마 안되는 사례[7]이며,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근대를 무덤으로 보내버린 대사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8] 당장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은 분명 전세계를 휩쓸었지만, 정작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국가는 태반이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과 주변국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오세아니아(호주)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고, 직접 전장이 되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하와이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전장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해안가나 주요 항로가 추축국 잠수함들의 게릴라전에 시달렸고 미국의 태도도 지난 세계대전에 비하면 매우 적극적이었다. 물론 거대한 흐름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도 1차 세계대전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는 있다. 큰 흐름으로 보면 1차 세계대전은 2차 세계대전의 프롤로그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너무 거대하고 장렬한 프롤로그였지만. 어떤 전쟁이든 전쟁은 보는 바와 같이 끔찍하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수많은 국가의 정치나 정책이 변화했고, 나라나 정권이 멸망하거나 재탄생하기도 하였다.[9]
원래 독일의 계획은 폴란드만 공격하는 것이었는데, 폴란드를 공격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세계 대전으로 번졌다. 추축국이 도화선만 준비했다가 불 붙이고 터트린 건 연합국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당시 독일은 이미 오스트리아를 병합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뮌헨 협정을 체결하면서까지 전쟁을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뮌헨 협정을 어기고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폴란드마저 침공할 경우 선전포고할 것임을 여러 번 히틀러에게 전달했으며, 이를 무시하고 폴란드를 침공한 건 분명 독일이다.
통계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피를 흘린만큼의 명장과 영웅들이 탄생했으며, 수많은 무기들이 발전하고 군전술이 급일보했다. 사실상 오늘날의 군대 운용의 기본은 모두 이 전쟁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당시 세계는 좋든 싫든 제국주의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국을 따라 지옥으로 몸을 던졌다. 인류 역사에서 이만큼이나 전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은 전례가 없었고, 그런 만큼 이 전쟁 한번으로 세계 정세가 뒤집히기는 충분했다. 세계 각지에서 화약을 터트린 만큼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었고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으며 그 시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전쟁인 것이다. 국제연맹이 무력해지고 유엔이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16년 9월 2일, 종전한지 71주년이 되었다.
2 발단
3 연표
- 제2차 세계대전/전투목록 문서도 참조하면 좋다.
3.1 전간기
- 1935. 3. 16 독일, 베르사유 조약 파기 및 재군비 선언.
- 1935. 6. 18 영국-독일 해군조약
- 1935. 10. 5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 1936. 3. 7 독일, 라인란트 재무장
- 1936. 7. 17 스페인 내전 (~1939. 4. 1)
- 1937. 7. 7 중일전쟁(~1945.8.15)[10]
- 1937. 12. 12 파나이 호 사건
- 1938. 4. 10 독일, 오스트리아 병합
- 1938. 7. 29 하산 호 전투
- 1938. 9. 28 녹색 작전
- 1938. 9. 30 뮌헨 협정
- 1938. 11. 2 빈 중재
- 1939. 3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병합.
- 1939. 5. 11 할힌골 전투
- 1939. 8. 23 독소 불가침조약
3.2 전쟁발발 1939년
3.3 1940년
- 알트마르크 나포(1940. 2. 16)
- 베저위붕 작전(1940. 4. 8 ~ 1940. 6)
- 프랑스 침공(1940. 5. 10 ~ 1940. 6. 25)
- 캐터펄트 작전(7. 3)
- 영국 본토 항공전(7. 9)
- 타란토 공습(11. 11)
3.4 1941년
- 비스마르크 추격전
- 그리스 침공
- 크레타 섬 전투(1941. 5)
- 유고슬라비아 침공
- 바르바로사 작전(6. 22)
- 계속전쟁
- 세바스토폴 공방전(10. 30 ~ 1942. 7. 4)
- 남방작전
- 진주만 공습(12. 7)
3.5 1942년
- 르제프 공방(1942.1 ~ 1943.3.22)
- 영국 해협 돌파작전(2.11~2.13)
- 실론 해전
- 둘리틀 특공대
- 산호해 해전(5. 7 ~ 5. 8)
- 미드웨이 해전(6. 4 ~ 6. 7)
- 엘 알라메인 전투(6. 30)
- 코코다 트랙 전투(7. 21 ~ 11. 16)
- 과달카날 전투(8. 7 ~ 43. 2. 9)
- 디에프 상륙작전(8. 19)
- 청색 작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9. 13)
- 겨울폭풍 작전(12. 12 ~ 23)
- 횃불 작전(11. 8)
- 몰타항공전
- 마다가스카르 전투
- 바렌츠 해 해전(12. 25 ~ 1943. 1. 9)
3.6 1943년
- 카사블랑카 회담 (1. 14 ~ 1. 26)
-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2. 19 ~ 3. 14)
- 비스마르크해 해전(3. 1 ~ 3. 5)
- 튀니지 전투
- 이탈리아 항복
- 쿠르스크 전투(7. 5 ~ 7. 15)
- 스몰렌스크 전투(8. 7 ~ 10. 2)
- 드네프르 저지대 공세(8. 24 ~ 12. 23)
- 타라와 전투(11. 20 ~ 11. 23)
3.7 1944년
-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1. 24 ~ 2. 16)
- 임팔 작전(3.15)
-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3. 22 ~ 4. 5)
- 이치고 작전
- 노르망디 상륙작전(6. 6)
- 사이판 전투(6. 15)
- 필리핀 해 해전(6. 19)
- 바그라티온 작전(6. 22)
-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및 발키리 작전(7. 20)
- 팔레즈 포위전
- 바르샤바 봉기(8. 1)
- 용기병 작전(8. 15)
- 마켓 가든 작전
- 펠레리우 전투
- 휘르트겐 숲 전투
- 아르덴 대공세
- 라플란드 전쟁
- 레이테 만 해전 (10. 23)
- 일본 본토 공습 (~45.8.15)
- 부다페스트 공방전
3.8 종전 1945년
- 독일 본토 항공전
- 드레스덴 폭격(1945. 2. 13 ~ 2. 15)
- 이오지마 전투(2. 18)
- 람리섬 전투(2. 19)
- 도쿄 대공습 (3. 9 ~ 3. 10)
- 오키나와 전투(4. 1)
- Elbe day(4. 25)[12]
- 베를린 전투
- 올림픽 작전 입안
- VE[13] day (5. 8, 9)[14]
- 구레 군항 공습 (7. 24 ~ 7. 28)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8. 6, 8. 9)
- 만주 작전[15](8. 9)
- 궁성사건(8. 14 ~ 8. 15)
- VJ#s-5 day (8.15, 9.3) / 8.15 광복[16]
4 주요 전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별 분류 문서 참고.
5 참전국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연합국 | ||||
?width=45 미국 | ?width=55 소련 | ?width=50 영국 | width=42 중국 | ?width=45 프랑스 |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추축국 | ||
?width=45 나치 독일 | ?width=45 이탈리아 왕국 | ?width=45 일본 제국 |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 ||
연합국 | 프랑스/자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중화민국, 영국, 에티오피아, 소련, 터키, 미국, 필리핀, 파나마,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 쿠바, 멕시코, 볼리비아, 콜롬비아, 라이베리아, 페루,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칠레, 폴란드, 노르웨이, 체코슬로바키아, 그리스, 브라질, 알바니아,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투바, 이란,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왕국,대한민국 임시정부 | |
추축국 |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헝가리, 태국, 핀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 |
* 추축국에서 연합국으로 전환 |
기준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부터 종전까지 한번이라도 선전포고를 하거나 대상이 된 국가를 기준으로 한다.
해당 기준이 만들어진 이유는 전쟁의 상황에 따라서 연합국과 추축국에 소속된 국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양자 모두 국가에 따라서 전쟁에 뛰어든 시기가 다르며, 연합국은 나중에 줄서기로 가담한 국가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또한, 비공식적으로 가담한 국가도 엄청나게 많다.
이전 기준에는 선전포고를 한 국가만 포함된다고 하지만 첫 스타트부터 선전포고 없이 개전한 독일이나, 선전포고라고 주장하지만 인정 안해주는거 한건만 선언한 일본이 빠지는 기준이다(...).
5.1 연합국
국가 | 참전일 | 참전 계기 |
중화민국[17] | 1937년 7월 7일 [18] | 일본의 기습적인 선제침략, 중일전쟁 |
폴란드 → 폴란드 망명 정부 | 1939년 9월 1일 | 독일의 선제침략, 폴란드 침공 |
프랑스 → 자유 프랑스 | 1939년 9월 3일 |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
영국 | 1939년 9월 3일 |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
오스트레일리아 | 1939년 9월 3일 |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19] |
뉴질랜드 | 1939년 9월 3일 |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
남로디지아[20] | 정확한 시기가 모호함[21] |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함[22] |
영국령 인도 | 1939년 9월 3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
뉴펀들랜드 자치령[23] | 1939년 9월 4일 |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
네팔 | 1939년 9월 4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24][25] |
캐나다 | 1939년 9월 10일 |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26] |
남아프리카 연방[27] | 1939년 9월 6일 |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
영국령 케냐 | 1939년 9월 3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28] |
탄자니아[29] | 1939년 9월 3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0] |
영국령 나이지리아 | 1939년 9월 3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1] |
영국령 골드 코스트 | 1939년 9월 3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
바레인 | 1939년 9월 10일 | 독일에 선전포고 후 연합군에 합류[32] |
노르웨이 | 1940년 4월 9일 | 독일의 선제 침략, 노르웨이 침공 |
네덜란드[33] | 1940년 5월 10일 |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
벨기에 | 1940년 5월 10일 |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
룩셈부르크 | 1940년 5월 10일 |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
체코슬로바키아 임시정부 | 1940년 7월 18일 | 독일에 강제병합된 본국 탈환 노력 |
이집트 왕국[34] | 1940년 9월 16일[35] | 이탈리아의 선제 침략[36] |
그리스 | 1940년 10월 28일 | 이탈리아의 선제 침략, 그리스 침공 |
유고슬라비아 왕국 | 1941년 4월 6일 | 독일의 선제 침략, 유고슬라비아 침공, |
소련 | 1941년 6월 22일[38][39] | 독일의 선제 침략, 독소전쟁 |
투바 인민 공화국 | 1941년 6월 25일 |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 |
몽골 인민 공화국 | 1941년 8월 9일[40][41] |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42] |
파나마 | 1941년 12월 7일 |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일제의 침략. |
미국 | 1941년 12월 8일 | 일본의 기습 공격[43], 진주만 공습 |
필리핀 자치령 [44] | 1941년 12월 8일 |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코스타리카 | 1941년 12월 8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도미니카 공화국 | 1941년 12월 8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엘살바도르 | 1941년 12월 8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아이티 | 1941년 12월 8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5] |
온두라스 | 1941년 12월 8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6] |
니카라과 | 1941년 12월 8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피지 식민지 | 1941년 12월 8일 | 연합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7] |
과테말라 | 1941년 12월 9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쿠바 | 1941년 12월 9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멕시코 | 1942년 5월 22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브라질[48] | 1942년 8월 22일 | U-Boat의 자국상선 공격에 격분하여 참전 |
에티오피아 | 1942년 12월 14일 | 영국군에 의해 해방 후 합류 |
볼리비아 | 1943년 4월 7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49] |
콜롬비아 | 1943년 7월 26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0] |
이탈리아 왕국 | 1943년 9월 8일 | 항복후 연합국에 합류, 구금된 무솔로니를 구출해 세운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대항해 이탈리아 내전을 찍었다. |
이란 | 1943년 9월 9일 | 영국과 소련의 전쟁수행에 합류 |
라이베리아 | 1944년 1월 27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1] |
페루 | 1944년 2월 12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루마니아 | 1944년 8월 25일 | 전 추축국 |
불가리아 | 1944년 9월 8일 | 전 추축국[52] |
산마리노 | 1944년 9월 21일 | 연합군에 의해 보호받은 후 참전 |
알바니아[53] | 1944년 10월 26일 | 1939년, 이탈리아에 강제통합된 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참전 |
헝가리 | 1945년 1월 20일 | 전 추축국 |
바하왈푸르[54] | 1945년 2월 2일 | 종주국(영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에콰도르 | 1945년 2월 2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파라과이 | 1945년 2월 7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우루과이 | 1945년 2월 15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
베네수엘라 | 1945년 2월 15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5] |
터키 | 1945년 2월 23일 | 줄서기[56] |
시리아[57] | 1945년 2월 26일 |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 |
레바논 | 1945년 2월 27일 | 줄서기 |
사우디아라비아 | 1945년 2월 28일 | 줄서기[58] |
아르헨티나 | 1945년 3월 27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59][60] 및 나치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연합국 가담요구.[61] |
칠레 | 1945년 4월 11일 |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2] |
핀란드 | 1945년 4월 15일 | 전 추축국, 소련의 압박과 영미의 추축국 탈퇴 및 연합국 가담요구. |
5.2 추축국
국가 | 참전일 | 참전 계기 |
일본 제국[63] | 1937년 7월 7일 | 중국에 대한 전면공격 |
만주국 | 1937년 7월 7일 | 일본의 전쟁 수행에 합류 |
몽강자치연합정부 | 1937년 8월 19일. |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한 동조 |
나치 독일 | 1939년 9월 1일 | 폴란드에 대한 전면 기습공격 |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1939년 9월 1일 | 독일의 전쟁수행에 대한 동조 |
핀란드[64] | 1939년 11월 30일 | 소련의 기습공격, 겨울전쟁 |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65][66] | 1940년 6월 10일 | 대프랑스/영국 전쟁에서의 전리품 획득 |
이라크[67] | 1941년 4월 18일 | 영국의 강압적 통치에 대한 반발 |
헝가리 | 1941년 6월 22일 | 독소전쟁에 가담 |
루마니아 | 1941년 6월 22일 | 소련에 빼앗긴 몰도바 지방 회복 |
유고슬라비아 | 1941년 3월 25일 | 사면초가로 인해 가담 이후 탈퇴, 이후 괴뢰국화 |
불가리아 | 1941년 |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
알바니아 왕국[68] | 1941년 12월 17일 | 미국에 선전포고.[69] |
크로아티아 독립국 | 1941년 4월 10일 | 독일에 의해 독립 이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
태국[70] | 1942년 1월 25일 | 일본의 남방작전에 가담, 인도차이나 지방 회복 |
자유 인도 임시정부 | 1942년 |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71] |
5.3 중립국
개전부터 종전까지 형식상으로라도 중립을 유지한 국가에 한해 기술한다.
이유는 추축국의 침략으로 점령된 벨기에처럼 중립의사는 있으나, 침공을 당해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참전한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중립국에서 제외되고 참전국으로 분류된다.
국가 | 중립사유 |
스위스 | 지리적으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사이에 낀 최악의 조건이었는데도 용케 중립 유지에 성공했다. 물론 독일이 '어이쿠 중립 스위스시네요'해서 중립을 유지한 것이 아니고,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 점령해서 이득보는 것이라곤 이탈리아 북부와의 교통 정도인데 의외로 병력이 많아 알프스 등지에서 버틸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컸다. [72]결정적으로 항복 직전이 되면 사회 인프라까지 자신의 손으로 다 붕괴시키겠다는데… 그냥 두는 편이 돈세탁 등 으로 쓸모가 많아서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한 이후 꾸준히 국토 사수에 성공, 영세 중립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아예 전투가 없던 것은 아니고, 스위스 영공을 침입한 독일 공군과 스위스 공군[73]이 몇차례 소규모 공중전을 벌인 적이 있다. 연합군의 경우 스위스의 중립을 보장해주긴 했지만 독일을 폭격하려던 폭격기가 스위스 도시를 오폭한 사례가 소수 있다. 자세한 내용 |
스페인 | 당시 프랑코 정권은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덕을 많이 봤지만, 역시 내전의 후유증으로 어느 한쪽 줄에 설 처지가 아니었다, 거기에 독일 공군 원수란 작자가 스페인 내전 중에 벌인 짓 덕분에 추축국에 가입할 이유를 상실했다(...) 독일의 압박에 의해 의용군 1개 사단[74]과 청색 비행중대[75]를 동부전선에 파병했고 상당한 활약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용군이었을 뿐이다. 나중에는 은근슬쩍 연합군 편을 들어서 히틀러가 분노하기도 했다. 일본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했지만 1945년 4월에 단교했다. 이미 전황이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서 그 쪽 눈치를 본 것도 있었기 때문... |
안도라 | 현재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의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중립을 지키자, 스페인에 묻어가기 식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
포르투갈 | 역시 독재정권이며 지리적으로 스페인에 둘러싸여서 스페인에 묻어간 셈. 연합국과는 해상통로로 연결되고, 추축국과는 스페인을 거쳐서 육로로 연결되므로 전쟁 기간 내내 양측의 스파이 활동이 성행했다. 다만 파시즘 국가는 아니어서 전쟁 중반 이후에는 아소르스 제도 등의 주요 거점을 연합국에게 개방해서 사실상 연합국이 된다. 사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이 몰락하고 영국이 힘을 가진 뒤부터 전통적인 영국의 동맹국이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전쟁 때 틸지트 조약 후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동맹이나 밑에 있을 때 영국편에 서서 프랑스와 싸운 단 하나의 국가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1차대전에서도 영국편으로 참전했던 걸 생각하면 중립인 게 오히려 별난 상황. |
스웨덴 | 형식적으론 중립국인데 나치 독일의 편의를 굉장히 많이 봐줬다. 당장 독일의 철광석 수요의 상당부분을 스웨덴이 메꿔줄 지경이었다. 물론 당연한 게, 이웃국가 중 노르웨이-덴마크는 독일에 점령, 핀란드는 추축동맹에 가담하여 독일에 의해 국토가 포위되어 있었으므로 독일이 맘만 먹으면 단번에 밀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노르웨이는 스웨덴이 길을 비키지 않겠다면 공격하겠다는 독일의 협박에 밀려서 길을 내줘 점령당했는데, 이때문에 안 그래도 깊었던 노르웨이의 반스웨덴 감정이 더 심해졌다. |
아일랜드 | 과거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했던 영국 때문에 독일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옆에 있어서 영국의 견제가 심했으며, 미국과 영국간의 통상항로 중간에 버티고 선 관계로 전략적인 요충지에 있는데다가 독일이 은근슬쩍 아일랜드를 점거하려는 계획을 만들다가 몇 번 들켜버리자 아예 미군이 아일랜드를 무혈침공해서 사실상 연합국의 점령지로 바꿔버린다. 그 외에 아일랜드인이 개인적으로 영국군 등 연합군 측에 참전한 사례도 있었다. |
리히텐슈타인 | 이쪽은 스위스에 묻어간 식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사실상 스위스의 보호령이기도 했다. |
아프가니스탄 | 이란이 소련과 영국에게 사실상 분할점령되면서 일종의 완충지대로 중립국임을 인정받았다. 물론 유사시 연합국이 진주할 수 있었긴 하지만 이 지역이 원래부터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집단적으로 반항하는 곳이었으므로 긴급사태가 터지지 않는 한 사실상 방치하는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
티베트 | 일본과의 사이에 중국이 있고, 중국의 상황이 어수선한데다 사실상 당시의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건드릴 생각 없이 엄연히 다른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청나라의 붕괴 이후 중국과는 이웃한 다른 국가로 존재하며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나 종전 뒤 중화인민공화국이 침공해와 먹히게 된다. |
바티칸 시국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5.4 중립이었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나라
국가 | 점령사유 |
덴마크 | 1940년 4월까지 중립을 유지했으나 독일이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그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침공했다. 지리적으로 연합국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독일의 군사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며 군사력 격차도 심했기에 침공 당일 새벽,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국 영토에 독일군 주둔과 군시설 사용을 허가했다. 덕분에 덴마크는 독일군 점령지이면서도 어느정도 개입은 받지만 그래도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정부가 존속할 수 있었다. 또한, 독일의 침략을 받았음에도 연합국에 가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에 전황이 불리해지는 1943년 후반부터 독일도 덴마크에 대대적으로 개입을 시작하였으며 수탈이 강화되었다. 이를 교훈삼아 덴마크는 대전 종식 후 NATO에 가입한다. |
5.5 중립이었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나라
국가 | 점령사유 |
이란 | 1941년 초까지 정부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정부와 별개로 국민여론은 영국과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친독정서가 상당했다. 한편, 영국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전황 악화에 이에 호응하는 이라크의 반영 폭동으로 중동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소련은 독소전쟁 발발 후 영국으로부터의 군수물자 지원루트 확보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페르시아 침공이 개시, 이란은 항복하고 국왕이 퇴위당했으며 대전 기간동안 영소군의 점령을 받게 된다. |
6 전쟁 범죄
- 이탈리아 왕국
- 도메니콘 학살(#
-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7 참조 문서
7.1 관련 인물
- 제2차 세계대전/관련 인물 해당 문서 참조.
-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76] 가담자 : 중복서술은 제외한다.
7.2 관련 용어, 사용 병기, 기타
- 제2차 세계대전 도시전설급 황당실화
- 8월 13일의 신나는 뇌조 사냥
- 노르망디의 한국인
- 둘리틀 특공대
- 플라잉 타이거즈
-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 마지노 선
- 무기대여법
- 세계 대공황
- 얄타 회담
- 에니그마
- 에방 에말 요새
- 울트라 작전
- 전격전(기동전)
- 지크프리트 선
- 태평양 전쟁의 원인
- 카미카제 특공대
- 파르티잔
- 레지스탕스
- 행정명령 9066호
- 명령 227호
- 미군의 일본인전사자 유체의 절단
7.3 병기
8 생산물
8.1 1차 생산물
- 공수부대
- 나일론(발명은 전쟁 전이었으나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전쟁 중)
- 네이팜
- 레이더
- 미사일
- 바주카
- 산분해간장
- 스마트 폭탄
- 스팸
- 야간 투시경
- 여군
- 원자폭탄
- 융단폭격
- 인조 낚싯대
- 컴퓨터
- 전자레인지
- 접착폭탄
- 제트 엔진
- 지프(윌리스 MB)
- 진공동결건조 제법
- 카풀 제도
- 페니실린
- 합성 고무
- 형벌 부대
- 혼합소시지
- VT신관
8.2 2차 생산물
8.3 게임
- 194X 시리즈
- 메달 오브 아너시리즈
- 배틀필드 1942, 배틀필드 1943, 배틀필드 히어로즈[78]
- 카르마 온라인[79]
- 서든 스트라이크
- 제국 시리즈
- 제독의 결단 시리즈
- 클래시 오브 탱크
- Hearts of Iron 시리즈
- Brothers in Arms 시리즈
- Day of Defeat 시리즈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 코만도스 시리즈
- 콜 오브 듀티 시리즈(모던 워페어 시리즈, 블랙 옵스 시리즈, 고스트 시리즈, 어드밴스드 워페어 시리즈 제외) - 다만 블랙 옵스 세계관과 연동되는 월드 앳 워는 태평양 전쟁과 독소전쟁을 다뤘고, 블옵 1편은 디미트리 페트렌코와 빅토르 레즈노프의 나치 잔당 소탕 회상, 3편은 전뇌 공간으로 구현된 사라 홀의 바스토뉴 망상(?)의 형태로 미션 한개 분량으로나마 짤막하게 다뤘다.
사실 블랙 옵스 3는 배경과 적군만 빌려온 사실상의 인셉션 - 네이비필드
- 울펜슈타인3D 시리즈
- uncommon valor 태평양 전쟁 중 남부 태평양 전선만을 다룸
- Company of Heroes
- 월드 오브 탱크 정확히 말하면 2차대전게임이라 하기 애매하지만...
- Axis and Allies - 보드게임
- 플레임즈 오브 워 - 미니어처 게임
- 레드 오케스트라 2 : 라이징스톰
- R.U.S.E.
- 사일런트 스톰[80]
- 히어로즈 앤 제너럴스
- 팬저 제너럴
- 팬저 콥스
- Men of War
- 워스토리[81]
- War Thunder
- 스나이퍼 엘리트 시리즈[82]
- Blitzkrieg 시리즈
- 월드 엣 워[83]
- WW2: 바르바로사 투 베를린
- 메모아 44
- 컴뱃커멘더 시리즈
- ASL
- 태양의 제국
- 함대 컬렉션
- 전함소녀
- 강철의 왈츠[84]
- 어드밴스드 대전략
8.4 영화
전쟁 영화/제2차 세계대전 문서 참조.
9 전후 상황
전세계를 휩쓸었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으나, 그 후폭풍은 너무나도 컸다.
7천만 명 이상이 희생당한 인류 역사 최대의 비극. [85]
9.1 연합국
연합국은 매우 많지만 일단 전쟁 중 파시스트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박터지게 싸웠던 미국, 러시아(구소련),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중국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미국은 승전 이후 해리 트루먼 행정부 체제를 통해서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와의 동서냉전으로 한때 같은 연합국으로 활동했던 소련과 정치적 대립을 하게 되었으며 1990년대에 가서야 동서냉전을 종식하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도 소련이 망하면서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자원을 무기로 다시 성장 중.
영국은 승전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쓰게 되었고 프랑스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쓰는 등 전후 사정이 여러가지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영국은 이 과정에서 식민지가 죄다 독립해버리는 등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어버렸으며 프랑스는 그리도 사이가 안 좋았던 독일과 함께 EU의 초기 창립 멤버이자 주축이 된다.하지만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전쟁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하고 프랑스는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베트남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되어 이로 인해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초강대국 지위에서 강제 탈락하여 사실상 미국과 소련의 장기말 신세가 된다. 물론 초강대국에서만 탈락했을 뿐이지 이들 2개국들은 아직도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승승장구중이다.
폴란드는 이후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폴란드 공산당에게 넘어가 소련의 괴뢰국화 된다.소련과 폴란드 공산당은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망명정부 및 폴란드 국내군 소속 장교들을 서방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시키는 희대의 병크를 일으키고 만다. 기껏 싸워서 나라 다시 살려놨더니 돌아오는건 러시아산 총알 이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를 위시한 소련의 간섭을 겪다가 이에 반발한 고무우카가 집권하고 또 이에 반발한 세력으로 인해 쫓겨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으로 마침내 1989년 공산당 독재가 종식된다. 폴란드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NATO와 EU에 가입하는 등 서방 세계로 화려하게 다시 돌아온다. 덕분에 하인드가 아파치와 같이 날아다니고 레오파르트2와 함께 작전을 하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체코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뮌헨 협정으로 독일에게 빼앗긴 국권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패망함으로서 다시 되찾았으나 뒤이어 들어온 소련군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체코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그러다가 스탈린 사후 공산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알렉산데르 둡체크등 개혁파 세력들이 집권하여 이후 체코 내부에서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련이 체코에 대한 군사개입을 일으켜 반정부 세력들을 진압하였고 둡체크의 개혁정책에 반발하던 체코 공산당내 보수파 세력들이 소련의 군사 개입을 등에 업고 둡체크를 몰아내면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반정부 운동 진압 이후에도 바츨라프 하벨등이 이끄는 반 공산 세력들의 반정부 투쟁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89년 동유럽 자유화 바람을 틈타 벨벳혁명이 일어나게 되어 마침내 야케스 공산당 서기장이 퇴진하고 이후 실시된 민주 다당제 대선에서 반공 운동 지도자였던 하벨이 당선되면서 마침내 공산당 독재 체제가 종식되었다.
네덜란드는 추축국에서 해방된 이후 연합국 자격을 얻었지만,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려고 하자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물 간 식민주의 대신 새로운 신예인 인도네시아를 자국의 동맹으로 끌여들이길 원했던 미국과 영국, 소련등 전승국들의 압박으로 금방 데꿀멍하고 독립시켜줘야 했다. 이후엔 수리남과 같은 해외 식민지가 모조리 잘려나가고 아루바 등 소수만 남긴 채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함께 EU에 가입하고 현재는 조용히 살고있는 중이다.
중국은 뒤진 일본 제국 대신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뻔 했으나 국공내전이 재발발하여 공산혁명으로 기존의 중화민국(국민정부)이 타이완 섬으로 국부천대하면서 철수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미국과 소련 양쪽에 밉보여 1970년대까지 고립된다. 그동안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제사해 운동같은 충격과 공포의 OME급 사건을 겪다가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사실상 말만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이후 천안문 사태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경제성장, 우주개발에 성공하고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아 구 제국주의 시절의 치욕을 씻는 등 겨우 20세기를 해피엔딩으로 맞이하고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다.
승전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5개국[86]은 현재 UN 상임이사국들이다.
9.2 추축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고, 추축국들이 현대는 물론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의 상당수는 기존 정부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특히 추축국 삼인방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연합군이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등 일시적으로 국가가 소멸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UN의 규칙중에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남아있을 정도다. 해당 조항은 유엔헌장 53조와 107조로 이곳을 참조하라.
1943년 조기에 항복한 추축국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후에 신정부가 들어서서 연합군에 가담하였고, 무솔리니가 북쪽으로 도망가서 세운 정부와 독일군을 상대로 1945년 5월까지 혈투를 벌렸다. 1946년에 들어서 1861년 통일 이후 유지했던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공화정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하고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1936년에 탈퇴했던 국제연맹의 후신 UN에도 1955년에 공식 가입하였다. 추축국 3대 국가 중 피해는 제일 적은 편. 잃은 영토도 거의 없다.
독일은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정복하며 전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되니츠 정부가 해산 당하면서 국가가 일시적으로 소멸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연합통치에 의해 영토를 상당수 잃고, 남은 국토는 동서로 분단되어 이른바 서쪽에는 서독이, 동쪽에는 동독 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으며 이후에 베를린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 10월 드디어 재통일을 이루었다. 이후에는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옛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범들을 잇따라 체포하는 등 전범시절 청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전쟁 때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전후보상을 했으나, 집시 학살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나 배상은 일절 없었기 때문에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체코 등 2차 대전 당시 싸웠던 유럽 국가들이나 엄청 죽여댔던 민족들이 만든 이스라엘에게는 제대로 배상한 덕분에 좋은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는 씁쓸한 상황이다.[87] 심지어 2014년에는 전세계 국가 이미지 1위 까지 했다. 과거 식민지 국가들 입장에서는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분통이 터질 듯. 근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사과는 일절 안한다는게 함정
일본은 위의 두 국가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과 성전을 결의하며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국가적인 피해와 손실을 입고 경제까지 파탄될 위기에 처하자 덴노의 명의로 항복선언을 하면서 최후에 가서야 전쟁의 종식을 고하였다. 그 뒤 미 군정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나 1951년 한국 전쟁으로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는 국가로 일본을 내세우며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고 선진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소련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서 전쟁을 일으킨 기존 세력들의 후손들이 다시 정치권력을 잡는 걸 허용했고, 정치적으론 독일처럼 과거사 청산 및 단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체 실패하였다. 이후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하고 호소카와, 무라야마등 역대 일본 총리들의 담화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도 했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무색하게도 우익 정치인들의 과거 전쟁 과오에 반성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독도,쿠릴열도,센카쿠등 영토분쟁으로 2015년 현재 러시아,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 대립하고 있다.특히 2차 대전 당시 중일전쟁을 치룬 중국과의 갈등이 가장 심하다.[88]
10 후폭풍
애매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불안했던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은 누가 봐도 대립구도가 명확했고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와 세계질서를 완전히 결정짓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친 영향이 워낙 커서 영향을 안 받은 곳이 없다. 그나마 아메리카 대륙은 별 일 없었지만 다른 온갖 대륙은 전장이 되었다. 독일은 유럽에, 일본은 아시아(+오세아니아),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 전장을 만들었고, 대서양이나 태평양 역시 전쟁터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가지 일들이 전후 세계를 많이 바꿔놓았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때문에 국가 자체가 잠깐 멸망해버린 경험을 한 국가도 많고, 아예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거나 혹은 세계 각국의 정치, 사회 부분에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간략하게 봐도 참전국들의 신병기와 신전술의 개발로 인한 전쟁양상의 변화, 식민제국의 지배체제 붕괴와 이로 인한 독립열풍, 소멸해버린 인간성을 보고 충격에 빠진 철학계와 전쟁으로 갑작스레 발전해버린 과학계의 대혼돈, 동유럽과 제3세계에 몰아친 공산주의 열풍, 유럽의 몰락과 이로 인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구도 성립,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그리고 주변의 우호국)이 미국의 쇼미더머니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하는 등 엄청난 변혁의 바람이 불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장기 20세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다만, 이 경우에는 1990년 동구권의 붕괴나 2001년 9.11 테러 등의 사건을 기준으로 기존의 정세가 뒤집히고 이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애초에 어떤 시대를 칼같이 나누는것이 무리기도 하고.
긍정적인 영향도 없지는 않다.총력전을 겪고 난 사람들은 더이상 전쟁이 군인들만이 아닌 전 국민이 겪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전쟁이란 게 인류 전쟁사의 온갖 기록을 다 갈아치울만한 거대한 전쟁이었기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인식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한 대립구도가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세계를 전쟁으로 이끈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는 과거에 비해 터부시당하게 되었고[89], 전쟁 발발의 과정이 된 뮌헨 협정이 재조명되어 국제관계에서 독재 국가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거절하고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국제정세에 그렇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판단되어 버려진 경우도 있다.
아무튼 여러가지 면에서 연구할 거리가 많아 많은 밀덕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적 배경이며 각종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 있어서도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나 실제 전쟁에 맞지 않는 묘사 또는 편파적인 시각으로 만든 작품이나 이걸 모에로 포장하고 미화한 작품이 여럿 있어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실제로 전쟁을 겪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전쟁 영화나 만화는 절대 안 본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90] 해석은 알아서 하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남긴 전쟁이다. 이는 아주 무겁고, 굉장한 비극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다루지 말기를 권한다.
한국에는 비록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라는 아픔을 안겨주었으나, 동시에 일본의 패전으로 독립이라는 열매가 주어진 전쟁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일본의 잘못이지 연합국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2차 대전의 승리로 미국과 더불어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소련의 영향력 때문에 민족과 국토가 반토막 나 버렸으니, 한국인과는 굉장히 미묘한 관계에 놓인 전쟁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은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일본을 몰아내지 못하고 남의 힘으로 독립을 얻었으니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우리 목소리를 내냐."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항목을 참고하길.
11 관련 어록
우리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다행히, 악랄한 전범으로 남았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그의 일기장에서.
우리는 사악한 세력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폭력과 불신과 불의와 억압과 박해이고 그것과 맞섬으로써 정의가 지켜질 것임을 저는 확신합니다.그걸 아는 사람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써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무적의 군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중화민족뿐만이 아닌 인류의 번영을 위해, 설령 실패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리는 소중한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때에 왔습니다.
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날에 있으니, 공들은 기꺼이 백성들보다 앞장을 서서 분노를 새로이 하여 단결을 굳건이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야욕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히로히토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여. 나는 미국을 공정하게 평한다. 5만명의 병사들이 전쟁터로 향한다. 미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위대함을 위해서 말이다.-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유럽으로 파견되는 미군 수송선에서 쓴 편지에서[92]
"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It is their government and you are fighting a people, you are not trying to fight an armed force anymore. So it doesn't bother me so much to be killing the so-called innocent bystanders."(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것은 그쪽 정부와 함께 우리와 싸우는 민중들이고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죄없는 방관자를 죽이는 것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In Japan they would be set up like this: they’d have a factory; and then the families, in their homes throughout the area, would manufacture small parts. You might call it a home-folks assembly line deal. 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These would be manufactured right in the same neighborhood. Then Mr. Kitagawa from the factory would scoot around with his cart and pick up the parts in proper order."(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정리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커티스 르메이가 도쿄 대공습 직전 도쿄 상공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습이란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던 부하들을 향해.[93]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전장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지들, 우리가 해냈소!'
내 진정한 바람이자 모든 인류의 소망은 이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과거의 피와 대학살을 벗어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더글라스 맥아더, 일본의 항복 조인식 후 미주리호 갑판에서의 연설
나는 이 전쟁이 전세계의 인류와 전 중국의 동포, 그리고 세계문명국가가 참가한 최후의 전쟁이 되기를 믿는 바입니다.-장제스. 1945년 8월 15일 승전기념연설에서.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것이며, 우리의 바다와 해양에서 싸울것이고, 우리는 자신감과 함께 자라나는 공군의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것입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땅을 지킬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안에서 싸울것이며,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대지와 도시의 거리에서 싸우고, 우리의 언덕에서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절때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1939년 전시총리로 임명받고 국민 사기를 고취시키고자 한 연설에서.
- ↑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이 아닌, 전함 미주리에서 항복 조약에 서명한 날인 9월 2일을 종전일로 보고 있다.
- ↑ 사실상 대부분의 전투는 아프로-유라시아나 태평양에서 벌어졌다.
- ↑ 사망자 규모만 따져도 제1차 세계대전의 총 사상자 수를 넘는다. 연합국에서 학살당한 사람만 5000만 명이 넘는다. 전사자만으로는 1,600만 명 정도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이 전투가 아니라 추축군의 학살 때문에 사망했다.
- ↑ 이 총규모도 단순한 추산에 불과하다. 일단 학살에 의한 민간인 피해규모는 정확한 추산이 불가능하고, 계획적으로 진행된 학살도 많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학살이 우발적으로,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정확한 인명추산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보다 천만명이 더 많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소련의 인명피해규모다. 소련의 가장 큰 인명피해는 1941년과 42년에 일어났는데, 이즈음 소련군 지휘부는 붕괴된 상태에 가까워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 군인 전사자 수만 해도 위 아래로 백만가량은 껑충뛴다. 민간인 피해규모도 마찬가지다. 소련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수행된 파르티잔 운동에서 파르티잔 측 사망자와 독일군의 파르티잔 토벌작전 중의 민간인 사망자도 정확한 추산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정도. 적혀있듯이 최소한 6,000만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전쟁이란게 최소한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아니지만.
- ↑ 추축군 사망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이나 소련군의 독일 본토 진주 과정에서 사망한 민간인과 급조된 민병대의 사상자도 불명일 수 밖에 없다.
- ↑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 ↑ 더불어 역사학계에서 추축국을 편드는 수정주의가 금기시된 극히 드문 시기다. 사실관계와 관련된 것 정도는 상관 없지만 추축국이 근본적으로 옳다느니 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있다.
- ↑ 외교정책 같이 국제정세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점으로 싹 갈아엎어졌을 정도였다.
- ↑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나라가 멸망 후 연합국 점령 후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으며,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지의 국가들도 엄청난 국가의 변화, 정권 변화를 겪었으며, 중국도 중일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운 마오쩌둥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 한국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했다.
- ↑ 중국이 연합국에 가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뒤인 1941년 12월 9일이다. 1937년부터 1941년까지의 중일전쟁은 중-일 양국 간의 전쟁이지 '세계'대전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으므로 2차 대전의 시작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폴란드 침공 역시 세계적인 관계는 없었기에 진주만 공습을 진정한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학자들은 중일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2차 대전에서의 나치 독일의 지분이 너무 큰 탓에 학계에서는 아직 통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세계대전 개입과 국제연맹의 무력화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고, 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전쟁이 계속되었으니, 2차대전의 주요 전선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 ↑ 1939년 9월 3일에 연합국을 구성하는 영국(영연방 포함)과 프랑스가 추축국인 독일에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것을 2차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
- ↑ 엘베 강에서 서방 군대와 소련 군대가 조우한 날.
- ↑ Victory in Europe의 줄임말.
- ↑ 되니츠의 플렌스부르크 정부는 서방연합국에 먼저 항복하고 다음날 소련군한테 항복한다.
- ↑ 8월의 폭풍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 ↑ 영국과 영연방은 전자, 미국(시차상 9월 2일)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후자를 기념한다.
- ↑ 중국 공산당과 군벌들도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 소속되어 참전했다.
- ↑ 참고로 중화민국이 연합군에 공식적으로 가입한것은 진주만 기습 다음날인 1941년 12월 10일(충칭 시각 기준)이다.
- ↑ 태평양 전쟁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유럽 지역에도 호주인들이 보내졌고 미국과 함께 일본과도 싸웠으며 일본 역시 호주 북부를 97차례나 폭격했다고 한다.
- ↑ 현재의 짐바브웨에 해당하는 영국의 보호령
- ↑ 그러나 영문위키를 참조하면 상징적인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
- ↑ 북아프리카나 동아프리카, 미얀마, 유럽 등에도 병력이 보내졌다고 한다.
- ↑ 이 당시에는 영국의 자치령이었다.
- ↑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 보면, 히말라야 등정에 실패하고 내려오던 독일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브래드 피트)가 네팔에서 영국군에게 체포되는 장면이 나온다.
- ↑ 군사적인 참전과 총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뿐 아니라 차, 설탕, 원료까지도 지원했다.
- ↑ 다양한 전선에서 활약하였고 전쟁이 끝났을 당시 캐나다 공군의 규모는 세계 3위였고, 지상군은 물론 수많은 자원봉사단도 유럽으로 보냈다.
- ↑ Union of 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
- ↑ 약 10만의 의용군이 나왔으며, 탄자니아와 함께 동아프리카 전선의 사실상 주역을 맡았다.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버마 전선에 참전했다.
- ↑ 당시에는 탕카니카와 잔지바르라는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 ↑ 케냐와 마찬가지로 약 10만의 의용군이 지원했으며, 동아프리카 전선의 주역이었다.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버마 전선에 참전했다.
- ↑ 약 4만 5천의 의용군을 보냈으며, 영국과 영연방에 대한 물자와 자원 지원 또한 맡았다.
- ↑ 1940년에는 이탈리아에게 폭격을 당하기도 함.
- ↑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도 일본군에게 점령당함.
- ↑ 1952년 왕정이 폐지되었다.
- ↑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1945년 2월 24일이며 이 때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 ↑ 이집트는 그 당시 형식상으론 독립국이였으나 여전히 영국군이 주둔했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상태였다.
- ↑ 1941년 3월 25일 추축국에 가입했지만 2일만에 쿠테타로 엎어졌다.
- ↑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한 시점을 기준으로 함.
- ↑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이 1939년 5월 11일, 소련의 폴란드 공격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은 1939년 9월 17일.
- ↑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 1939년 5월 11일
- ↑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1945년 8월로, 일본에 선전포고
- ↑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만주국에 대한 기습 공격'
- ↑ 일본은 선전포고문을 재일 미국대사관에 암호로 타전했다. 하지만 그 해독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고 그에 따라 진주만 공습까지 본국으로 전송되지 않아 기습공격이 되버렸다. 그리고 진주만 공습이 기습공격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종전 후, 협상 태이블에 앉았을 때 계속 발목이 잡혔다. 안습....
- ↑ 미국 헤어-하워스-커팅법에 의해 1935년부터 1946년까지 존재한 미국 통치하의 준독립상태. 현 필리핀 공화국의 전신
- ↑ 연합국에 식량을 지원.
- ↑ 연합국에 식량과 원료를 지원.
- ↑ 태평양 전쟁 도중 연합군의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뉴질랜드나 호주 아래의 부대로 병력도 파견함, 단 당시 기준 영국의 식민지였다.
- ↑ 남미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지상군도 파병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었다.
- ↑ 병력을 파견하진 않고 연합군에게 주석을 지원.
- ↑ 주로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으며 독일의 잠수함에 의해 자국의 상선이 작살났음에도 군대는 파견하지 않았다.
- ↑ 전쟁 초기에는 자국 영토를 개방, 이후에도 '고무'와 같은 중요한 자원들을 제공했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 ↑ 제2차 대전 발발 초기에 추축국에 속해 있었지만 나치독일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등 나치군에게 사실상 피지배국,나치 군대 점령지 수준의 취급을 받았고(심지어 당시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 장교들과 병사들의 약탈,범죄 행위들조차도 심각해서 제2차 대전 당시 현지 민초들과 일부 관리들의 나치에 대한 증오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전쟁 말기 전세가 추축국에게 불리해지자 나치독일과의 국교,동맹관계를 끓고 소련등 연합국과 동맹을 맺고 나치군을 공격했다.
- ↑ 엔베르 호자가 이 당시 알바니아 빨치산을 했었다.
- ↑ 파키스탄에 있던 토후국가
- ↑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
- ↑ 영국, 소련 등 연합국 세력과 추축국 세력의 가운데에 끼인 묘한 위치에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 내내 친독적인 자세를 계속 유지했지만, 이는 표면상일뿐 실제로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에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소련의 압박으로 형식적 선전포고를 했다. 자세한건 무스타파 케말과 터키/역사문서 참조.
- ↑ 당시 프랑스의 위임 통치령 지배 하에 있었으나 지배국이었던 프랑스가 나치군의 침공을 받아 점령당한 이후엔 나치의 지배 하에 있었다. 그러나 결국 영국과 자유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점령됐고 프랑스는 시리아의 독립을 약속해 이듬해인 1946년 프랑스의 식민지 위임 통치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독립한지 70년뒤 지옥의 문이 열리는데.. - ↑ 사실 줄서기라기보단 1939년, 1941년 각각 독일, 일본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며 추축국과 선을 그은 데다가 이전부터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다. 또 동부 지역에는 미 공군의 기지까지 짓는 걸 허용했다.
- ↑ 남미의 대표적인 친독국가였으나 전쟁 내내 독일을 도와준 적은 일절 없고 연합군 군수사령부의 자격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즉, 연합군의 군량은 상당부분 아르헨티나산이었던 것. 다만 참전 사유가 줄타기로 오해받는 이유는 전쟁이 끝난 후 나치 독일 전쟁범죄자들을 아르헨티나가 도피시켜줬기 때문이다.
- ↑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유럽에 파견되어 활동했었다.
- ↑ 당시 아르헨티나는 나치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헝가리 출신 신문기자인 신문기자 비로 라슬로(Bíró László)이다. 비로 라슬로 는 볼펜을 발명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나치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가 나치의 편을 든다는 건 완벽한 어불성설이다.
- ↑ 친독 성향을 보였으나 1943년 이후로 추축국과의 관계를 끊었고 이후 일본에게만 선전포고를 했다.
- ↑ 위 지도에도 나오지만 일본에 병합된 상태였던 한국도 엄밀히 말하면 추축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 ↑ 사실 추축국에 들어가긴 애매한데 핀란드 정부의 공식 입장상으로는 어쩌다보니 소련과 같이 싸우게 되어서 서로 협력했을뿐 추축국은 아니다였고 실제로 핀란드는 독일의 공식적인 군사동맹요구같은걸 모조리 씹어버렸다. 실제로 핀란드는 전쟁의 대상을 소련으로 한정지었고 미국,영국 역시 핀란드를 추축국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 ↑ 메이저 추축국 중 1943년 연합국에게 가장 먼저 항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개편하였다.
- ↑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진영을 변경한 사례가 있다.
- ↑ 이전 문서에서는 이미 독립했다고 나오지만 사실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의 심한 내정간섭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고 얼마 안 가서 영국군에의해 점령당했고 영국은 1947년끼지 이라크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 ↑ 이탈리아의 괴뢰국
- ↑ 1939년 이탈리아에 점령된 이후 이탈리아의 전쟁 수행에 합류한 바가 있다.
- ↑ 가장 늦게 항복한 추축국. 일본이 항복한 뒤 우리는 싸울 맘 없었는데 일본이 강제로 시켰어여ㅠㅠ 신공으로 미국에 무릎꿇고 싹싹 빌며 아첨했다.(실제로도 태국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원하지 않게 동맹을 맺고 전쟁에 끌려갔다.) 영국과 프랑스,네덜란드등 다른 서방 연합국들은 당연히 태국을 전범국으로 처벌할것을 주장했으나 태평양 전쟁의 연합군 핵심은 미국이었던지라 전범국 처벌을 주장해도 딱히 반영할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미국이 태국을 용서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꼭 태국이 너무 관대한 처분을 받았고, 추축국에 가담했다고 악의 축으로 보기도 뭐한게 원래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추축국 이전에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서양 식민제국들이 워낙 악랄한 깡패였다. 게다가 태국은 서양 열강들이 주변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줄타기 외교로 겨우 생존했으면서도 이미 일부 지역을 할양해 프랑스에게 빼앗긴 상황이며 태국 입장에선 일본도 그런 열강들 중의 하나고, 가담하지 않았으면 일본에 점령당했을 것이다. 애초에 프랑스에게 일부 지방을 빼앗겨서 그걸 회복하려고도 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종전 후에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의 식민지배를 유지하려고 식민지 전쟁을 벌여 식민지배로부터 자주 독립을 요구하던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사람들을 살상하거나 영국이 식민지 독립 후에도 내정간섭이 상당했던걸 생각하면 프랑스와 영국,네덜란드는 충분히 일본 때문에 추축국에 가담한 걸 빌미로 점령하거나 이권을 침탈 했을수가 있고 미국이 태국에 대한 처벌을 막은게 백번 의로운 행동이다.
그런데 미국도 동남아에서 필리핀 식민통치하면서 필리핀인들 학살 자행한게 함정 - ↑ 찬드라 보세를 정부수반으로 하며 안다만제도의 포트블레어를 영토로 지배했던 괴뢰국.
- ↑ 물론 이 분은 제외.
- ↑ 재미있는 게, 이 당시 스위스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독일제 Bf109였다.
- ↑ 흔히 청색 사단(División Azul, 정식 명칭은 에스파냐 의용사단/División española de voluntarios)이라 불리는 이 사단은 1943년에는 연합군의 압력에 귀국시키긴 했으나 수천명 가량은 베를린 전투까지 독일에 남았다. 특이한 점으론 사단의 구성원 중 몇몇 인원은 스스로 혹은 친지가 내전 때 공화국에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 사단은 항상 선봉에 서는 것은 물론 심지어 고기방패 역할까지 하는등 의용군을 골수까지 빨아서 활용하자는 독일군에 의해 엄청 빡빡하게 굴려진다...
- ↑ Escuadrilla Azul. JG27 산하로 편성되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Bf109를 탑승했던 베테랑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 ↑ 1944년 7월 20일 있었던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을 말한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
- ↑ 운 좋게 살아남아서 아르덴 대공세를 지휘하기도 했다.
- ↑ 나머지 배틀필드 시리즈들은 현대전 또는 베트남 전쟁이 무대다.
- ↑ 배경은 동부전선, 즉 독소전쟁이다.
- ↑ 최대 6인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하는 턴제 전략게임이다. 게임플레이는 재기드 얼라이언스나 폴아웃과 비슷하다. 추축군 진영과 연합군 진영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스팀에서도 판매 중.
- ↑ 국내에서 만들어진 2차대전 게임인데 진영이 연합군과 독일군으로 나누어진다. 소련군은 유닛 형태로 구매 가능.
- ↑ 독일군도 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이 게임의 주적은 특이하게도 전쟁 도중의 소련군(?!)이다. 1편에서는 전쟁을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서방측 연합국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2편에서는 V2 로켓으로 영국을 작살내려는 소련군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러시아측 유저들은 이 게임을 할때 아주 뒷목을 잡는다고..
- ↑ 보드워게임에도 불구하고 전지구를 범위로 2차대전을 시뮬레이팅하는 워게임. 기존의 워게임이 시나리오 단위로 주어진 제한된 병력으로 목표달성이 주였던 것에 비해, 월드 앳 워는 단순히 전투뿐만이 아니라, 생산, 정치, 외교까지 신경써야한다. 물론 이에 비례해 들어있는 컴포넌트의 갯수, 룰북의 양, 플레이 타임은 왠만한 보드게임의 상상을 초월한다.
- ↑ 그런데 업데이트 이후로는 냉전기때의 전차로 확대되고있다.
- ↑ 각 국의 통계 자료가 각기 달라 정확한 추산은 어려우나 확실한 건 이 정도로 인류의 희생이 발생한 전쟁은 없었다.
- ↑ 미국, 영국, 프랑스와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그리고 중화민국(국민정부)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 ↑ 다만 러시아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꽤 남아있어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냉전 때문에 공산주의 진영인 소련과는 애초에 관계 회복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후에 독일을 감시하던 국가들이 대부분 자본주의 진영이였으니...
- ↑ 그 이유는 위의 독일-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냉전 때문이다. 미국, 영국 등과는 나름 관계 회복이 잘 되었으나 전후에 미국의 감시를 받고 있던 일본이 공산주의 진영인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긴 어려웠던 것이다.
- ↑ 물론 21세기 현재도 여전히 인종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있으나 절대로 주류가 되지 못하며 천하의 개썅놈들이라고 욕을 먹는다.
- ↑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 코멘트 중에도 이런 언급이 있다.
- ↑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역설사의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 티져 영상에서 해당 연설을 읆는 윈스턴 처칠의 육성이 나온다.
- ↑ 그는 자유프랑스군 소속 정찰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
- ↑ 이 문구가 제2 차 세계대전 당시 완전히 무고한 민간인이라는 게 노인이나 어린 아이같은, 전쟁 수행 능력이 전혀 없는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아예 없던 총력전이었다는 걸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