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유럽 축구 연맹(UEFA)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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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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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트비아
러시아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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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리투아니아
리히텐슈타인
마케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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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
몰도바
몰타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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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
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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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리노
세르비아
스위스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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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스페인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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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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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라
알바니아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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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웨일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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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조지아
지브롤터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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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코소보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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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페로 제도
포르투갈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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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Фудбалска репрезентација Србије
정식명칭Фудбалска репрезентација Србије[1]
FIFA 코드SRB
협회세르비아 축구 협회 (FSS)
연맹유럽 축구 연맹 (UEFA)
감독라도반 쿠르치치 (Radovan Ćurčić)
주장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Branislav Ivanović)
최다출전자데얀 스탄코비치 (Dejan Stanković) 103경기
최다득점자스티에판 보베크 (Stjepan Bobek) 38골
홈 구장레드 스타 스타디움 (Red Star Stadium)
첫 국제경기 출전VS 체코 (3:1 승), 체코 우헤르스케흐라디슈테 (2006년 8월 16일)
최다 점수차 승리VS 아제르바이잔 (6:1 승), 아제르바이잔 바쿠 (2007년 10월 17일)
VS 불가리아 (6:1 승),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008년 11월 19일)
VS 루마니아 (5:0 승),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009년 10월 9일)
VS 웨일스 (6:1 승), 세르비아 노비사드 (2012년 9월 11일)
최다 점수차 패배VS 벨기에 (0:3 패),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012년 10월 12일)
별칭Бели Орлови (하얀 독수리)
월드컵출전 11회, 4위 1회 (1962)
유로출전 5회, 준우승 2회 (1960, 1968)
올림픽출전 13회, 금메달 1회 (1960)
현 FIFA 랭킹43위
현 Elo 랭킹36위
유니폼어웨이
상의빨강하양
하의파랑하양
양말하양하양

세르비아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1 개요

감독은 라도반 쿠르치치이다. 하얀 독수리(Beli Orlovi)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유명한 선수로는 첼시에서 활약중인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네마냐 마티치 맨시티 수비수인 알렉산다르 콜라로프가 있다.

1.1 유고슬라비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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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시절 축구협회 엠블렘

발칸 반도와 동구권의 강호로 명성을 떨쳤으며, 현재 세르비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1930년 월드컵 세계 4강을 시작으로 구 유고의 찬란한 축구역사가 시작되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잇따라 8강에 올랐고, 이런 활약을 통해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196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196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하며 동구권의 강호로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그동안 동유럽의 강호를 자처했던 유고슬라비아는 1970년대에 접어들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며 연이은 예선 탈락을 경험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부활하는 듯했으나,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는 분열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0년 FIFA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제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지만 유고슬라비아의 승계국가 자리를 놓고 구 유고 국가 사이에 논쟁도 만만치 않다. 일단 세르비아의 경우, 수도 베오그라드가 있어서 붕괴 전 유고 연방의 정치적, 외교적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수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잡은 나라가 바로 세르비아라면서 유고의 승계국은 세르비아라고 주장하고 있다.[2] 그러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경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국부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명분삼아 유고슬라비아의 승계국가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라며 세르비아의 승계국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이 밖에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등도 유고슬라비아의 정통성을 승계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3]

만약 이 지역이 조각조각 떨어져 독립하지 않고 그대로 유고슬라비아로 지속되었더라면,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떡밥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이 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유고 연방에 속하는 국가들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1980~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었기 때문이다. 선수 목록을 살펴보자면,

사페트 수시치(Safet Sušić) - 보스니아 [4]

흐리스토 비다코비치 사비치(Hristo Vidaković Savić) - 보스니아
다르코 판체프 (Дарко Панчев) - 마케도니아
네나드 마슬로바르(Nenad Maslovar) - 몬테네그로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ćević) - 몬테네그로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Predrag Mijatović) - 몬테네그로
드라간 스토이코비치(Драган Стојковић) - 세르비아
고란 부녜브체비치(Горан Буњевчевић) - 세르비아
고란 조로비치(Горан Ђоровић) - 세르비아
슬라비샤 요카노비치(Славиша Јокановић) - 세르비아
시니샤 미하일로비치(Синиша Михајловић) - 세르비아
블라디미르 유고비치(Владимир Југовић) - 세르비아
드라간 판텔리치(Драган Пантелић) - 세르비아[5]
보라 밀루티노비치(Бора Милутиновић) - 세르비아[6]
밀린코 판티치(Милинко Пантић) - 세르비아
즐라트코 자호비치(Zlatko Zahovič) - 슬로베니아
알렌 부치시치(Alen Vučkić) - 크로아티아
다보르 슈케르(Davor Šuker) - 크로아티아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 크로아티아
로베르트 야르니(Robert Jarni) - 크로아티아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Robert Prosinečki) - 크로아티아
이고르 슈티마츠(Igor Štimac) - 크로아티아
드라잔 예르코비치(Dražan Jerković) - 크로아티아

등등... 이외에도 많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국가 아래에서 뛸 수 있었다면 적어도 유로컵이나 월드컵 등 주요대회 우승은 한 번 차지할 수 있었겠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이들이 활약했던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유고 대표팀 및 유고 청소년 대표팀은 공포의 대명사였다.[7]

그러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1992년 유로컵이나 1994년 월드컵을 비롯해 90년대의 주요대회에 유고팀이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차례로 독립하고 결국 나중엔 몬테네그로도 떨어져나가면서 유고 축구팀은 완벽히 해체되었다. 결정적 계기는 보스니아 내전. 내전이 시작하자마자 미국, 영국 등 서방세계의 NATO 가입국들의 주도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신 유고 연방에 대한 경제 재제와 무역 금수 조치가 단행되었고, 신 유고는 UN 회원자격도 박탈되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은 스포츠 부분이었다.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경기 출전 금지령까지 내려졌던 것.

그렇게 벌어진 1992년 유로컵은 안습의 극치였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 조별예선에서 7승1패 승점 14점으로 1위를 차지했으나 이듬해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모든 국제활동이 금지되면서 유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당시 같은 조 2위는 6승1무1패 승점 13점[8]이던 덴마크였는데, 대회개막 1주일을 앞두고 잉글랜드와 친선전을 가지려던 덴마크는 갑작스런 통보를 받고 본선에 출전하여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을 차례로 따돌리고 동화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나마 1998년 월드컵 때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신 유고 연방과 크로아티아가 각각 월드컵에 진출했고, 이 대회에서는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긴 했다.

만약 구 유고 연방이 붕괴되지 않고 이 대회에 출전하여 크로아티아의 멤버 외에 다른 유고 연방 계열 국가의 멤버들이 함께 뛰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201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라서, 한다노비치의 슬로베니아를 필두로 네마냐 비디치, 수보티치,이바노비치, 마티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등을 배출한 세르비아나, 다리오 스르나, 모드리치, 라키티치, 만주키치를 보유한 크로아티아, 피아니치, 에딘 제코를 보유한 보스니아와 요베티치를 보유한 몬테네그로 선수들을 조합해보면 유럽 내 어느 강호팀을 상대로도 꿀리지 않는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다.

참고로 세계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8골이나 득점한 유일한 나라였다는 나름 자랑할만한 기록(1934년 스코어 8:4)이 있었다.#

한국과의 상대전적은 4승 3무로 절대우세....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고슬라비아 시절 전적이었고 이후의 전적은 아래의 문단 참조.

1.2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시절

1992년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붕괴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구성되었을때 생겼으며, 2003년 국호 변경을 거쳐 연방이 해체된 2006년까지 존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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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시절 축구협회 엠블렘 왠지 이 음료수가 생각난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이름으로 지역예선에서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본선직행으로 진출했지만 아르헨티나에게 무려 0-6 대패를 당하면서[9] 이 대회 최다 실점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네덜란드에게 0-1, 코트디부아르에게 2-3로 지면서 3전전패, 2득 10실점을 당하며 꼴찌로 탈락했다.

한국과는 2005년 서울에서 평가전을 가졌으며, 최진철이동국의 골로 한국이 2-0으로 승리한 바 있다. 이후의 상대전적은 아래의 문단 참조.

1.3 세르비아 시절

유로컵 2008 대회에선 유럽 최약체급인 카자흐스탄에게 2-1로 패하기도 하고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에서 프랑스를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본선으로 진출해 독일을 1-0으로 이기긴 했지만 가나호주에게 패하면서 2회 연속 월드컵 조예선 꼴찌로 탈락해야 했다.

결국 유로 2012도 본선 탈락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벨기에,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웨일스, 스코틀랜드와 같은 조를 이뤄서 그래도 해볼만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정작 안방에서 벨기에에게 0-3으로 대패했고 승점자판기 마케도니아에게도 원정에서 1-0으로 패하면서 마케도니아와 3위 쟁탈전을 벌일 지경에 처했다. 7차전까지 3위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마케도니아는 꼴찌 추락) 2위 크로아티아와 9점이나 승점차가 있기에 사실상 진출은 물 건너갔다.

유럽 안에서는 고춧가루 팀이지만 이상하게 유럽을 벗어나면 별 볼일 없다. 특히 세르비아도 중동팀들이나 우루과이처럼 침대축구로 악명이 높은데 세르비아는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같은 극강의 팀들을 상대로 침대를 제조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200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스페인에게 침대축구를 시전해서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내던졌다. 하지만 정작 위에 나온대로 본선에선 개관광.

유로 2016에서는 1차전 원정경기에서 아르메니아와 고전 끝에 겨우 1-1로 비겼고 2차전 안방경기로 알려진 알바니아전은 그만 취소되었다! 코소보 전쟁으로 사이가 나쁘던 두 나라였건만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파르티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3차전은 전반이 끝나기 직전 경기장 위로 알바니아의 과거 영토와 국가 위상을 찬양하는 깃발을 단 무인기가 등장하면서 폭발하게 된다. 세르비아의 스테판 미트로비치는 이를 잡아채 깃발을 뽑아버렸고 이를 본 알바니아 선수들이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다. 여기에 관중까지 난입하며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결국 경기는 중단됐고 선수들은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흥분한 팬들은 터널을 통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알바니아 선수들을 향해 오물을 투척하고 발길질을 하는 등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세르비아 공영방송 TRS는 귀빈석에서 무인기 조종을 지시한 혐의로 알바니아 총리의 형제인 올시 라마를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태로 결국 양팀 모두 징계를 받게 되었으나 최종 결과, 알바니아가 몰수승을 거두며 2위로 올라선 반면, 몰수패당한 세르비아는 가장 먼저 탈락했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고할것.

한국과의 상대전적은 1승 1패로 백중세. 2009년 영국 런던에서 경기를 가진 바 있으며, 이 당시에는 니콜라 지기치의 골로 세르비아가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2011년 서울에서 다시 한 번 평가전을 가졌으며, 이때는 박주영김영권의 골로 한국이 2-1로 승리했다.

청소년 대표팀은 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로 언급된 브라질을 2-1로 이기고 세르비아 분리 이후,처음으로 우승했다(1987년 칠레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 시절 서독을 제치고 우승한 것까지 합치면 2번째).

2 역대전적

2.1 FIFA 월드컵

FIFA 월드컵 통산 랭킹: 11위
④④⑧⑧⑧⑧⑧⑯

년도결과순위승점경기득점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4강46320177
1934 이탈리아 월드컵예선 탈락
1938 프랑스 월드컵예선 탈락
1950 브라질 월드컵조별리그[10]56320173
1954 스위스 월드컵8강74311123
1958 스웨덴 월드컵8강55412177
1962 칠레 월드컵4강[11]496303107
1966 잉글랜드 월드컵예선 탈락
1970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74 서독 월드컵8강[12]756123127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예선 탈락
1982 스페인 월드컵조별리그164311122
1986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8강[13]510531186
1994 미국 월드컵실격[14]
1998 프랑스 월드컵16강107421154
2002 한일 월드컵예선 탈락
2006 독일 월드컵조별리그[15]3203003210
2010 남아공 월드컵조별리그[16]233310223
2014 브라질 월드컵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합계4강(2회)11/20[17]5943178186459


총성적 17승 8무 18패 승점 59점으로 2014년 대회를 기점으로 러시아와 동률을 이뤘다. 하지만 월드컵 진출 횟수에서 세르비아 11회, 러시아 10회로 근소하게 앞서 세르비아가 아직은 월드컵 랭킹 11위를 차지하고 있다. 4강에만 두 번 진출했으며, 가장 경쟁이 치열한 유럽임에도 월드컵에 열한번이나 올라갔을 정도로 유럽의 강호이다. 현재 세르비아를 포함해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심지어 몬테네그로까지 한가닥 하는 나라들이라 유고가 분열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강했을까 하는 떡밥은 심심하면 나오는 축구계의 흔한 떡밥이다. [18]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브라질 1승 2무 1패(1930, 1950, 1954, 1974), 독일 2승 1무 4패(1954, 1958, 1962, 1974, 1990, 1998, 2010), 아르헨티나 1무 1패(1990, 2006), 스페인 1승 1패(1982, 1990), 프랑스 2승(1954, 1958), 네덜란드 2패(1998, 2006), 우루과이 1승 1패(1930, 1962), 스웨덴 1패(1974), 러시아 1패(1962), 멕시코 1승(1950), 폴란드 1패(1974), 체코 1패(1962), 칠레 1패(1962), 스위스 1승(1950), 파라과이 1무(1958), 미국 1승(1998), 콜롬비아 2승(1962, 1990), 스코틀랜드 2무(1958, 1974), 가나 1패(2010), 북아일랜드 1무(1982), 코트디부아르 1패(2006), 호주 1패(2010), 이란 1승(1998), 온두라스 1승(1982), 볼리비아 1승(1930), 아랍에미리트 1승(1990), 콩고민주공화국 1승(1974)을 기록중이다. 독일과 세르비아는 본선에서만 7번을 만났는데 이는 브라질:스웨덴, 독일:아르헨티나와 더불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만난 상대다.

대륙별 역대전적은 유럽 6승 4무 11패, 남미 5승 4무 4패, 북중미 3승, 아프리카 1승 2패, 아시아 2승 1패이다.

세르비아에 승리한 적이 있는 나라들은 독일(4패), 네덜란드(2패), 우루과이(1패), 브라질(1패), 러시아(1패), 체코(1패), 칠레(1패), 폴란드(1패), 스웨덴(1패), 스페인(1패), 아르헨티나(1패), 코트디부아르(1패), 가나(1패), 호주(1패)로 총 14개국이다. 이 중에서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 폴란드, 체코, 칠레, 가나, 코트디부아르, 호주에게 전패를 기록중이다.

세르비아가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나라는 독일로서 7경기 7점이다. 가장 많은 패배를 당한 나라이자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그 뒤로는 프랑스와 콜롬비아가 2경기 6점으로 공동 2위이다.

세르비아가 열세를 보이는 나라들은 독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 폴란드, 체코, 칠레, 가나, 코트디부아르, 호주로 총 11개국이다. 호각세인 나라들은 브라질, 스페인, 우루과이, 파라과이,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6개국. 그 외 나머지에겐 전부 우세를 보이고 있다. 대략 유럽에서 늪축구를 구사하는 팀답게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면모를 보인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74년 조별리그 자이르전 9:0 승리로 윌드컵 최다 득실차 타이기록이고,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30년 4강 우루과이전 1:6 패와 2006년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0:6 패이다. 최다득점, 최다실점 모두 숫자가 비교적 큰 편이다.

2.2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UEFA 유럽 선수권 대회 순위 : 15위

년도결과순위경기득점실점
프랑스 1960준우승2210166
스페인 1964예선 탈락
이탈리아 1968준우승2311123
벨기에 1972예선 탈락
유고슬라비아 19764위4200247
이탈리아 1980예선 탈락
프랑스 1984조별리그83003210
서독 1988예선 탈락
스웨덴 1992출전 금지[19]
잉글랜드 1996출전 금지
벨기에/네덜란드 20008강84112813
포르투갈 2004예선 탈락
오스트리아/스위스 2008예선 탈락
폴란드/우크라이나 2012예선 탈락
프랑스 2016예선 탈락
유로 2020????????
합계준우승 1회5/14143292239

2.3 올림픽

유고슬라비아 시절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1960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외 1948년, 1952년, 1956년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1984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4 메이저 대회 유리멘탈?

여담으로 2000년대부터 상당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큰 대회에서 어이없는 점수차로 무너지거나 역전승을 허용하는 등 유리멘탈의 모습들을 곧 잘 보여준 팀이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인 유로 2000 8강전에서는 네덜란드에게 6-1로 무너졌고, 2006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6-0으로 무너진 후 조별예선 마지막 게임인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2-0으로 앞서고 있던 게임을 3-2로 역전패를 당했다. 2010년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2차전에서 독일을 이겨놓은 후 3차전에서 호주에게 패배하는 등 큰 게임에 약한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1. 세르비아어
  2. 하지만 세르비아는 구 유고 연방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인종학살 등 전쟁 범죄 과오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구 유고 연방의 정상적인 승계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3. 어느 정도 평화적으로 국가들이 분리 독립되었고 옛 소련의 승계권을 확실히 이어받은 러시아와 달리 유고슬라비아는 전쟁과 학살 등 폭력적인 과정을 겪으며 해체되었기에 어느 나라가 계승국인지는 알 수 없다.
  4. 1955년생. 아래 언급된 선수들보다는 대선배.
  5. 1951년생. 원조 골 넣는 골키퍼. 통산 A매치 19경기에 출장, 통산 2득점을 기록했다.
  6. 1944년생. 선수로써의 커리어는 미미했지만, 은퇴 후 지도자로써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코스타리카,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미국을 16강에 올려놓는 등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수완을 인정받았다.
  7. 이는 1987년 20세 이하 칠레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것으로 증명된다. 보반, 야르니, 프로시네치키, 슈케르, 미야토비치 등이 출전했다. 당시 조별예선에서 칠레, 호주, 토고를 각각 4:2, 4:0, 4:1로 가볍게 제압하고, 8강, 4강에서는 브라질과 동독을 각각 2:1로 무찌르며 결승에 진출, 서독을 승부차기 끝에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8. 당시에는 승리시에 2점, 무승부시에는 1점을 주는 제도였다.
  9. 참고로 이 경기에서 나온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골은 무려 26회에 걸친 패스을 끊김없이 이어 득점에 성공한 것으로, 대회 최고의 골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0. 당시 기권팀이 많아서 13팀밖에 참가하지 못했던 관계로 조별리그 다음이 결승리그였다. 덕분에 조2위를 차지하고도 예선탈락했다.
  11. 1954~1962년까지 3회 연속 8강에서 서독을 만났으며, 두 대회 연속으로 졌지만 결국 이김으로서 복수에 성공, 두 번째 4강 진출을 이뤄냈다.
  12. 승점자판기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를 상대로 9:0 월드컵 최다 득점차로 이김으로서 남은 두 경기를 비기고도 조1위로 8강 진출했다.
  13. 1962년 4강 진출이후 가장 높은 성적.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패배함으로서 4강 진출은 아깝게 이루지 못했는데, 이 대회에서 뛰던 선수들 상당수가 크로아티아 출신이었고 이들이 8년 후에 결국 4강 진출에 성공한다.
  14. 당시 유고 분열로 인한 내전으로 실격처리되었다.
  15.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라는 최악의 조를 만나서 아르헨티나에게 0:6 관광당하고 광탈
  16. 톱시드팀 독일에 1:0으로 이겼지만 남은 두 경기를 져서 예선탈락했다. 8년전 크로아티아의 데자뷰
  1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
  18. 유고슬라비아는 언어와 문화, 인종이 동일했지만 역사적으로 오스만투르크,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헝가리, 러시아와 같은 외부 세력의 영향 아래 수백년 이상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지역별로 고유한 정체성이 생겨났다. 그래서 19세기에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이 따로 독립했으며 1차대전 이후 열강과 이 소국가 수장들의 합의 아래 반강제로 유고연방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고의 절정기였던 티토시대에 분열의 여지는 많지 않았지만 유고슬라비아는 소련, 영국과 마찬가지로 여섯 나라의 연합인 연합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차이는 종교였으며 티토 사후 경제적 불안정과 억눌려왔던 불만의 표출로 갈등이 본격화되고, 공산권 붕괴와 더불어 슬로베니아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유고 내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원래 한민족 한나라가 높으신 분들의 욕심 때문에 쪼개진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연합국들이 제갈갈을 가려고 하니 유고연방의 종주국인 세르비아가 인종청소라는 패악을 저지르며 발칸반도를 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정말 같은 민족이라고 서로가 의식했다면 독립 선언을 했을 때 '인종청소'라는 표현을 쓰면서 보스니아인의 10% 이상을 학살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인종청소라는 단어 자체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가 서로를 완전히 다른 민족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래서 수십만의 죄없는 시민을 학살하는게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반인륜적인 전쟁과 국제적 범죄를 저지른 1992년~1996년간의 신유고연방(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징계는 지극히 타당한 일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세르비아의 경제력도 축구 실력도 하향세를 그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 예선 통과했으나 유고내전으로 실격되었다. 참고로 이 대회에서 예선 광탈했다가 유고슬라비아 대신 나가게 된 덴마크가 우승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