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나치에 대항하는 조직의 명칭
위 사진은 프랑스의 촌락지방/산악 쪽에서 저항하던 조직인 마키(Maquis)이다.[1]
Resistance
저항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이후 저항조직을 상징하는 말 자체로 변화하였다.
단어의 뜻 자체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 뜻이 저항군을 뜻하는 명사로 활용되는 계기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독일에 점령당한 각국은 독자적으로 독일군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프랑스인의 저항조직을 말한다. 특히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파리를 무시하고 진격하려던 연합군을 파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리 레지스탕스들이 총봉기를 시도해 연합군의 진격로를 바꿔버리기도 했다.[2] 레지스탕스의 구성원은 대체로 프랑스 내 공산주의자들이었다.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대체로 레지스탕스의 대략 절반이 급진파 공산주의자들이였으며[3] 30% 정도는 중도좌파 사민주의자들 그리고 나머지가 우파계열로 추정하고 있다.[4] 사실 이 공산주의 계열은 비시 프랑스가 설립되었을때 페탱 정부를 지지 했다. 왜냐면 독소불가침 조약때문에 적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공산당 놈들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고 또한 코민테른 역시 프랑스 공산당에 독일을 지원하란 지령이 하달되었기 때문이다. 페탱이 독일과 휴전을 맺자 프랑스를 전화에서 구해낸 페탱이라고 지지했으며 심지어 모스크바의 지령대로 반전 선동과 대독 지지 선동을 했다. 물론 독소전쟁이 시작되자 당연히 반독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정직하게 서부전선 개전 부터 프랑스 점령, 그리고 1942년 자유 프랑스군 설립 까지 프랑스 내 레지스탕스 활동에 중심에 있었던 세력은 아직도 노선 문제와 페텡 정부에 대한 입장을 두고 갈팡질팡하던 프랑스 국내 단체들이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하고 망명와 있었던 스페인 제2공화국과 아나키스트 CNT 출신의 스페인 망명자들이었다. 프랑스 함락 시점에서 프랑스 남부의 난민수용소에는 30만명 가량의 스페인 망명객들이 수용되 있었고, 프랑스 까지 파시스트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갈곳이 없어졌고, 애초에 페텡 정부에 대한 충성 여부로 고민할 필요도 없는 입장에 있었던 이들은 서부 전선이 개전하자 15,000 명 가량이 외인부대에 자원하여 노르웨이, 프랑스 전역 등에서 싸웠고[5], 프랑스 점령 이후 노동 수용소에서 탈출한 만명 가량의 스페인인들은 산이나 들로 숨어 이때만 하더라도 도피 중인 노조원, 좌익 지하 세력 중심에 점조직으로만 존재했던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 스페인 내전 때 부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며 초기 레지스탕스 조직에 큰 역할을 했다.[6][7]
프랑스 정부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수는 220,000명이며, 학계에서는 200,000명에서 400,000명 사이로 추산하기도 한다. 이는 당시 전체 프랑스 성인 인구의 2%에 달하는(!!) 수치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대략 2,000,000명, 다시 말해 전체 성인 중 10%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하거나 옹호했을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실 1~2% 정도라는 숫자는 미묘한 것이긴 한데, 68혁명 이후 학계에서는 레지스탕스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보기까지는 힘들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1940년 자유 프랑스가 처음 발족할 때만 해도 드골은 국내에서는 듣보잡 신세[8][9](차라리 옆 나라 처칠이 더 유명했다.)였고, 1944년까지도 다수 프랑스인들의 조국은 비시 정부에 있지 자유 프랑스에 있지 않았다. 나치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자유 프랑스에 대한 심정적인 지지가 늘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10]
프랑스 수복 후 친독파들은 사살당하고, 좌파(레지스탕스)가 정당하게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레지스탕스의 주축이 좌파이므로 당연한 귀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산당이 정권에서 축출되고[11] 중도좌파(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중도파(급진사회당)-중도우파(자유공화운동)의 연합정권이 이어지다가 50년대 후반 드골리즘의 깃발아래 우파가 드골파와 연합을 하거나 흡수되었고, 중도파와 좌파는 쿠데타에 대한 지지 여부를 놓고 찬반문제로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고, 이후 드골과 마찰을 빚은 상태에서 총선에서 참패해 야당으로 전락하여 드골파가 정권을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초반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이 될때까지 우파가 지속적으로 집권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레지스탕스를 굉장히 미화해서 생각하고 이들의 규모와 활약상도 과장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레지스탕스만으로 외국의 정규군을 몰아낸 경우는 없고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즉 대독일전선에 있어 절대 주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거나 위대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우리나라의 독립군들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일 뿐이다.[12] 생각해보면 완전히 점령된 영토의 곳곳에서 암약하는 수준인데 큰 활약을 할 수 있었을 리는 없으며 기껏해야 일제강점기나 유신정권의 비밀결사나 전위조직들 정도를 크게 넘어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게릴라에 가까웠다. [13]
독일이 프랑스에서 물러난 것도 연합군의 공세가 있었기 때문이지 레지스탕스 때문은 아니다. 만약 연합군의 공세가 없었다면 비슷한 시기 스페인 내 반프랑코 게릴라들이나 우크라이나, 발트3국의 반소 빨치산 처럼 장기적으로 치안 유지와 통치 확립에 걸리적거리는 역할 정도는 해도 결국 각개격파 이후 처참하게 멸균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는 소련이나 동유럽[14] 빨치산들에 비하면 훨씬 규모가 작았고, 같은 서부 전선 내에서도 무려 1920년대 부터 조직을 만들어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고, 2차대전 발발 시점에서는 유럽 각지의 좌익 레지스탕스 조직과 접점이 있었던 이탈리아 반파시스트 빨치산이 프랑스보다 더 오래, 효과적으로, 큰 규모로 전쟁에서 싸웠다. 레지스탕스 활동의 실상을 그린 대표적인 영화로 아래에도 설명이 등장하는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그림자 군단'이 있는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고 나치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위험 속에서 인륜을 거스르며 살아야 하는 레지스탕스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그려냈다.[15]
전쟁 이후 역사학계에서 치열한 수정주의 논쟁을 겪으며 알려진 사실이지만, 상술한 스페인 공화파나 전쟁 전 부터 골수 좌익 분자로 찍혀서 점령군과 타협의 여지 자체가 없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성장한 건 1942년 점령 당국의 강제 노동 징발령, 페텡 정부 해체, 그리고 연합군의 상륙 같은 딱 봐도 "아 나치스 세력이 오래 가지 못하겠구나" 싶은 기점에서 집중적으로 큰 기회주의적인 일면이 컸다. 물론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컸다고 해서 기본적인 의기와 역사적 의미도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2차대전 시기 분명히 거대 열강이면서도 일찍부터 떡실신 당해 점령군 치하에 있었던 입지 때문에 전후 과거사 청산 과정을 하며 점령기의 역사를 마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큰 홍역과 깊은 성찰이 있었다.
빛 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나치독일과 싸우는 레지스탕스가 있으면 나치독일과 함께 레지스탕스를 잡는 친독 의용대가 존재했다. 대표적인 단체가 프랑스 친독 의용대 밀리스(La Milice francaise)이다. 이들의 수는 4만명에 달했는데 레지스탕스를 색출하고 유태인을 탄압하는 것이 주임무이다. 특히 가장위의 사진의 주인공인 마키단과 밀리스가 산악지역에서 치고박고 싸웠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자발적으로 밀리스에 가입한 이유는 레지스탕스가 주로 친유태계 좌파조직이지만 밀리스는 반유태계 우파단체이기 때문이다...반유태주의를 악용한 사례 중 하나이다. [16]
1.1 유명한 레지스탕스
- 마르셀 푸티오 - 연쇄살인자. 유대인들에게 도주로를 만들어 주겠다고 속이고는 모조리 죽인 뒤 소지품을 강탈했으며 주변에서 의심하면 나치 부역자 처단이라고 둘러댔다. 이후 진짜 레지스탕스로도 활동했으나 전후 홀로코스트 조사 과정에서 모든 사실이 밝혀져 1946년 사형.
- 마르크 블로흐 - 프랑스의 역사학자. 역덕이라면 <봉건사회>라는 책이 도서관에 꽂힌 것을 알 것이다. 그 책 저자 맞다. 정발 시 저자명은 마르크 블로크로 적혔다. 그는 1차 대전에 참전해서 대위로 전역한 경험도 있으며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끝내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사망했다. 그림자 군단에서 폴 뫼리스가 배역을 맡은 성자 뤽 자르디의 모델이 이 사람으로 추정된다. 뤽 자르디 역시 역사학자였던 레지스탕스였다. 역시 총살되었지만...
- 스테판 에셀 - "마지막 레지스탕스"라 불린다. 《분노하라》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얻은 전직 외교관. 그도 역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잡히기도 했다. 2013년에 95세의 나이로 작고.
- 앙리 롤 탕기 - 육군 대령 출신의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지도자. 파리 해방 전투에서 휘하 조직원들을 이끌고 독일군의 파리 군정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을 체포하여 항복 협상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 에티엔느 마틀레르 - FC 소쇼-몽벨리아르 역대 최고의 수비수이자 주장. 그리고 2차 대전 이전 프랑스 대표팀의 간판 수비수였다. 큰 덩치에 정비례한 용기를 가진 선수였고, 그 역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가하였다.
- 이반 베크 - 유고슬라비아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소속으로 월드컵에까지 출전했지만 학업 때문에 프랑스에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프랑스 시민권을 얻고 자신이 주로 활동하던 세트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였다.
- 장 마리 로레 - 자신이 히틀러의 아들이라 주장한 사람. 죽기 전 자서전으로 이 사실을 주장했다. 또한 영국군 병사의 일기가 2012년 3월 공개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2008년에 이미 히틀러의 혈족과 장 마리 로레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로레가 히틀러의 미국인 친척의 후손과 Y염색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 규명되면서, 히틀러의 숨겨진 프랑스인 아들의 가설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은 일이 되었다.[17]
- 장 물랭 - 레지스탕스 운동의 상징적 인물. 2차 대전이 터지기 전 당대 최연소 도지사로 유명했으며, 비시 정부가 들어서자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그때 드골의 자유 프랑스 운동에 합류했으며, 드골의 지원을 받아 레지스탕스의 통합 조직인 레지스탕스 국민평의회를 조직하고 초대 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내부 배신으로 인해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고문 당하다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사후 레지스탕스 신화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기려지게 된다.
- 장 피에르 멜빌 - 본인이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그림자 군단'을 만들었다. 레지스탕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 때문에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했다. 그러나 이후 재개봉과 DVD 출시 등을 거치며 미국 쪽을 중심으로 재평가받았다.
- 조르쥬 비도 - 본래 신문기자 출신. 레지스탕스 국민평의회에 합류했으며, 장 물랭이 체포되자 그를 계승하여 프랑스 해방까지 의장직을 수행했다. 전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제4공화정 시기에 총리까지 역임했지만, 알제리 전쟁 시기에 알제리 독립 반대 테러 조직을 주도하다 망명하기도 했다. 후에 사면되어 귀국함.
- 피에르 신부 - 2차 대전 말기 당시 유대인들을 포함해 수천명을 스위스와 알제리로 피신시켜 많은 생명을 구했다. 전후에도 프랑스인의 정신적, 종교적인 아버지로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 보리스 빌데 - 초기 레지스탕스 중 하나인 인류 박물관 조직[18]의 일원 중 한명. 직접적인 저항은 하지 않았지만 프랑스군의 무기를 은닉하거나 탈출한 프랑스군 포로를 숨기고 외국으로 탈출시켰다.
1.2 등장매체
1.2.1 사보추어
나치 독일 치하의 프랑스(파리와 일부 지방)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며, 게임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나치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나치 군인들을 사살하고 각종 나치 시설들을 폭파시킨다. 자세한 내용은 사보추어 참조.
2 항목이 분리된 레지스탕스
- 스타워즈 : 저항군 (영문명: resistence)
- 록맨 제로 시리즈 : 레지스탕스(록맨 제로 시리즈)
- 인섬니악 게임즈에서 제작한 게임 시리즈 : 레지스탕스 시리즈
- 메이플스토리 : 레지스탕스
- 이나즈마 일레븐 GO : 레지스탕스(이나즈마 일레븐 GO)
레스토랑스(분리가아니잖아!)
3 WWE 프로 레슬링 스테이블
앞에 관사가 붙어서 풀네임은 La Résistance 이름의 유래는 1번 항목.
프랑스와 퀘백주 출신의 르네 듀프리, 실뱅 그레니어, 랍 콘웨이[19]
기믹이 기믹이니 만큼 FBI(fool blood italan)와 함께 각 브랜드에서 악역 스테이블을 담당하였다. APA의 대척점에 있던 악역전문 심부름쩌리센터에 가깝던 fbi와는 달리 월드 태그팀 챔피언쉽을 획득 하는 등 나름 승승장구하였다. 미국 국기를 깨부수고 프랑스 국기를 흔드는 행동을 보이면서 오죽하면 관중 피켓중엔 france fuck(...)까지 있었을 정도. 2005년 팀의 에이스였던 르네 듀프리가 스맥다운으로 드리프트되면서 퀘백주 깃발을 들고 다니면서 찬양하다 둘다 방출되었다.
4 유희왕 ARC-V의 레지스탕스
하트랜드 시티 참조.- ↑ 이 마키라는 단어는 스타트렉 보이저 시리즈에서 침략군에 대항하는 원주민저항군을 상징하는 단어로 등장한다.
- ↑ 이 부분은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 아주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사실 이 파리해방을 둘러싼 여러 정치세력간의 각축이 21세기 현재까지의 프랑스 정치구도를 결정지었다.
- ↑ 원래 지하조직, 반체제 혁명투쟁은 이쪽 계열의 전공이니 이들로선 바뀐건 상대가 더 포악하고 지랄맞은 놈들이라는 것 뿐이다
- ↑ 드골이 주도하는 자유 프랑스가 프랑스 국내의 레지스탕스를 지도했다는 이야기는 전쟁후에 언론에 의해서 유포된 허구이다. 애초에 전쟁기간에는 프랑스 국내의 우파계열 레지스탕스 조차 드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 ↑ 프랑스 입장에서 이들은 속된말로 쓰다 버려도 문제 없는 고기방패인지라 사지에 집중적으로 투입 되어 노르웨이 전투에서만 하더라도 참가한 1,200명 가량의 스페인 출신 병사들 중 300명 가량만 생환했다. 게다가 포로로 잡힌 스페인인들은 나치스와 프랑코 정부의 협약에 따라 전쟁 포로 취급도 못 받고 바로 마트하우젠, 다카우 등 나치스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 ↑ 출처: http://www.cervantesvirtual.com/obra-visor/espanoles-en-la-liberacion-de-francia-19391945--0/html/ffdeef08-82b1-11df-acc7-002185ce6064_7.html
- ↑ 그 외에도 세계로 퍼진 스페인 공화주의자들은 부근 연합국에 자원해서 싸웠으며 미국으로 간 한 인민전선 병사는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자 소련 대사관에 붉은 군대 자원신청을 냈으나 거리상 반려, 진주만 침공이 일어나자 미군으로 싸우라는 권고를 받고 훈장을 수여받고 해병 부사관까지 되었다. 이런 자본주의 군대의 공산주의자들은 승진에 불리했고 단 한명도 장교가 되지 못했지만, 이념 하나만으로 용감히 싸웠다
- ↑ 2차 대전 개전당시 드골은 육군 준장으로 기갑여단장이었다. 각국 군인들 사이에선 기동전을 주장한 군사전략가로 유명했지만 일반인들이 기껏해야 육군준장을 어떻게 알겠는가.
- ↑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자 국방차관으로 입각해서 프랑스군과 주요물자, 민간인을 해외식민지로 탈출시키는 수송계획의 실무책임자가 되었다. 정부를 알제리로 옮겨서 독일과 계속 싸우면서 본토탈환을 노린다는 계획. 하지만 우파정권이 항복을 결정하자 이 계획은 자동폐기. 그러나 항복에 반발한 상당수 군장교들이 개별적으로 탈출했고 드골이 이들의 리더가 돼서 자유 프랑스를 만들었다.
- ↑ 사실상 비시 프랑스가 아니라 페탱 본인에 대한 기대가 컸다. 페탱은 1차 세계대전때 프랑스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었고 비시 프랑스를 건국 할때 까지만해도 1차대전급 화마를 프랑스에 미치지 않게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친 페탱 레지스탕스들도 "페탱원수는 프랑스를 구하려고 노력을 하신다. 나쁜건 페탱원수 주변의 친나치 인사들 때문이다"라는 논조의 지하신문을 돌리기도 했다.
- ↑ 그래도 득표율에선 제1야당 자리를 차지하긴 했다. 1978년 총선때 사회당에게 밀릴이후에 거의 매번 세가 축소되다시피한 상황이지만...
- ↑ 초기 레지스탕스 조직들은 소규모 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지하신문을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 ↑ 사실 근대 이후 한반도 내부에서 게릴라나 무장세력이 오래 가 본 역사가 없다. 민주화 운동 시기만 해도 한국처럼 평화적으로 운동을 한 나라도 드문 판국이다. 외국이었으면 반군, 도시 게릴라들이 등장했을 텐데 말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일제시대의 몇몇 의열투쟁을 제외하고는 총기로 저항해 본 일도 거의 없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는 지리적 한계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요건이 작용한 것이다.
- ↑ 특히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빨치산이면서 탱크와 항공기를 운용할 정도였다. 종교/언어/민족/역사가 전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2차대전이후 유고슬라비아라는 단일한 독립국가로 우뚝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빨치산 투쟁을 이끈 티토의 리더쉽 때문이다. 그리고 티토가 죽은지 10년만에 유고는 갈가리 찢어졌다.
- ↑ 그런데 그림자 군단은 말이 레지스탕스 영화지, 실제로 보면 갱스터 영화다. 감독의 취향 때문.
- ↑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군과 만주에서 싸운 팔로군이나 조선의용대를 좌파조직이라며 까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이해는 가긴 한다. 예를 들어 평생 일본군과 싸우던 독립투사 조선의용대의 수장인 김원봉이 해방되자 좋다고 남한땅으로 오자 친일 형사 노덕술에게 '빨갱이 두목'으로 몰리며 고문당하자 열받아서 북한으로 넘어간 사건이 있었다.
- ↑ 애초에 장 마리 로레의 친모는 평생 자신이 히틀러의 아이를 낳았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고 장 마리 로레 또한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자신이 히틀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데 영국 병사가 무슨 수로 히틀러에게 아들이 있고, 레지스탕스 일원으로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지 의문이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다.
- ↑ 사실 정식 조직명칭이 아니다. 이들의 동료들이 인류 박물관의 서기나 인류학자, 언어학자, 경비들이 참여한 조직이었기때문에 임시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 처음에는 르네, 실뱅 두명이였다가 더들리 보이즈와의 대립을 계기로 지원군으로 콘웨이가 들어온다. 참고로 콘웨이는 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