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삭 오시파비치 두나옙스키(Исаак Осипович Дунаевский) |
출생 | 1900년 1월 30일, 폴타바주 로흐비챠 |
사망 | 1955년 7월 25일, 모스크바 |
학력 | 하르코프 예술학교 |
데뷔 | 1919년 |
1 생애
그는 1900년 1월 30일 부유한 은행가인 유대인 차리 시모노비치 두나옙스키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에 러시아 음악협회 하르코프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콘스탄티 고르스키 (Konstanty Gorski)와 이오시프 아흐론(Иосиф Ахрон)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이 시기에 세묜 바가티료프(Семён Богатырёв)로부터 음악 이론도 배웠다. 1919년에 하르코프 음악학교를 졸업하여 하르코프에서 바이올리니스트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데뷔했다. 이때, 그의 작곡가로서의 일도 시작되었다. 1924년, 그는 에르미타주 극장에서 공연을 위해 모스크바로 갔다. 후에 그는 1929~1941년간 레닌그라드에서 '음악 회관'(1929~1934)의 지휘자이자 감독으로서 활동하다 오페라타와 영화 음악들을 작업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두나옙스키는 14개의 오페라타, 3개의 발레, 3개의 칸타타, 80개의 합창곡과 80개의 노래와 로맨스, 42개의 영화에서 나오는 88개의 영화 OST, 43개의 경음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곡과 12개의 재즈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곡, 17개의 멜로데클라매이션, 52개의 교향 악단을 위한 악곡과 47개의 피아노곡과 현악 4중주를 썼다.
그는 재즈를 쓰기 시작한 최초의 소련 작곡자들 중 하나다. 그의 듣기 좋고 기억에 남는 선율을 가진 음악들은 군중들한테 접근하기 쉬웠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성공을 보증했다. 그는 대조국전쟁 이전 스탈린 시대에 그리고리 알렉산드로프가 감독했었던 가장 중요한 영화들인 <서커스>, 소련에서 처음으로 재즈를 끌어들인 희극 <쾌활한 친구들>, 스탈린이 가장 좋아했다는 영화인 <볼가-볼가>의 음악들을 작곡했다. 그는 여러 작품들을 썼지만 특히 이런 영화음악과 대중가곡들이 널리 사랑받는다. 영화 <서커스>의 OST인 <조국의 노래> (1936)는 레베졔프 쿠마치의 시를 보고 작곡했다는데, 모스크바 라디오의 호출부호로 쓰일 정도로 네임드. 1951년 동베를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입상한 <청년의 노래>, 영화 <쿠만의 카자크> 속의 <이삭 줍는 노래>(1949) 역시 유명하다.
두나옙스키는 1955년, 심장마비로 그의 마지막 오페라타 <흰 아카시아>(1955)를 미완성한채 사망한다.
2 수상
3 가족 관계
그의 첫째 남동생 세묜(1906~1986)은 지휘자로, 둘째 남동생 지노비(1908~1981)은 작곡자로 활약했다.
두나옙스키는 지나이다 수제이키나와 결혼하여 아들 예이게니(1932~ )와 애인인 조야 파쉬코파 사이에 아버지처럼 유명 작곡가가 된 아들 막심(1945~ )를 두었다. 1983년에 모스크바에서 출생한 막심의 딸 알레나는 프랑스에서 살며 Markize라는 헤비 메탈 그룹을 이끌고 있다.
4 작품
그의 대표작 <조국의 노래(Песня о Родине)>. 선율이 굉장히 아름답다. 독일어 번안곡(Das Lied vom Vaterland; 조국의 노래)도 존재한다. 역시 동독은 소련 빠돌이
<청년>
<포병 행진곡(Марш артиллеристов)>
<나의 모스크바>
<나는 베를린으로부터 왔다>
그 외에도 많은 곡들이 있으니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