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한

李雲漢

1 소개

백범 김구를 암살미수한 인물이다. 1938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한국국민당의 3당 합당에 대한 통합을 논하고 있던 백범 김구를 향해 권총으로 저격하여 실신하게 하였던 인물로 1949년에 백범을 암살하였던 안두희보다 먼저 백범 김구에게 총격을 하였던 인물이다.

당시 조선혁명당 당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임정주석인 백범이 3당 합당 및 통합에 관한 논의를 하려하자 이에 반대하게 되면서 앙심을 품고 백범을 비롯해 임정 요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장사 교외의 작은 정거장에서 체포가 되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강창제(姜昌濟)와 박창세(朴昌世)가 이운한과 같이 잡혔으나, 강창제와 박창세는 석방되고 감옥에 갇힌 이운한은 탈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이운한의 행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백범을 제거하라는 일제의 지령을 받고 시도한 친일파라는 일설도 있으나,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다.

1949년에 백범 김구를 최종적으로 암살하여 즉사하게 만들어서 역사적으로도 유명해진 안두희와는 달리 그 당시 총격을 받고 쓰러졌던 백범이 치료를 받고 회생하게 되면서 일찍 역사에서도 묻혀버렸던 인물이 되었다. 세간에서는 백범에게 최초로 총격을 가했던 자가 안두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작 이운한에 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안두희와는 달리 총격을 가하긴 했지만 일제강점기 때 총격을 가했고 백범이 회생하게 되고 미수에 그치게 되면서 안두희에 비해 오히려 묻혀지게 되었다. 역사책에서도 이름이 언급되지도 않는 인물. 만약 백범이 안두희의 총에 맞아 즉사했던 것처럼 저 때에 먼저 즉사를 당했다면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고 백범 자신도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죽었을 뻔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해방 이후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즉사하게 된 것도 이 이운한이 쏘게 된 총탄의 악영향 때문이라는 일설도 있다.

1.1 백범을 살해하려했던 이유

그가 백범에게 총구를 겨누며 저격까지 하게 된 것은 위에서도 말했듯 임시정부에서 3당 합당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강화와 민족의 결집력을 높이기 위해 3당을 하나로 합쳐서 일제와 맞서싸우려고 하였다. 당시 이운한은 조선혁명당 당원 중 한 명에 속하였으며 일부에서는 이봉창, 윤봉길의 항일의거로 인해 일제가 백범을 주범으로 지목하게 되면서 일제에게 매수되어서 사주를 받거나 지령 등을 받고 백범을 살해하려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합당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으로 밖에 나오지 않아서 일제와의 연관성은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