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에 구미시에서 태어났으며(당시에는 선산군이었음) 4남매(2남2녀) 중 맏이였다. 오상고를 졸업하였으며[1], 1989년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2] 군법무관 시험에 최종합격하여 1991년에 법무사관 9기로 임관(중위로 임관)했다.[3] 법무사관 가운데 첫 여군이었다.[4] 당시 임관한 뒤로 10년을 법무사관 중 홍일점으로 지내야 했다고. 2011년에 여군 군법무관으로는 처음으로 준장에 올랐다.[5] 법무 병과장인 국방부 법무실장에 올랐다.[6] 같은 해 12월에 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옮긴 후 2014년 퇴임하였다.
가족관계로는 남편과 딸 하나가 있었으나 남편은 07년에 지병(암)으로 사망하였고, 부친도 이 장군의 전역 3개월 전에 별세하였다.[7]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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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장군은 원래 의사나 과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당시 오상고 여자반에 이과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문과를 선택했고, 법대를 나온 고모부의 영향으로 경북대 법대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 ↑ 이 장군은 대학 4학년 때 사시 1차와 군법무관 1차에 합격하였으나 사시 2차에 떨어지고, 집안형편상 더 이상 고시공부를 할 수 없어 취직을 했다고 한다.
- ↑ 대개 임관을 하면 사단 법무참모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군이라 바로 발령받지 못했는데 당시 36사단장이 이은수 중위를 참모로 썼다. 36사단장의 사모님이 간호병과 대령이었기 때문에 여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한다.
- ↑ 2012년 기준으로는 군법무관 56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이었다.
- ↑ 여군 최초의 장관급 장교는 간호 병과의 양승숙 준장이었다. 2014년까지 간호장교에서 준장 7명, 보병 1명, 법무 1명 등 9명의 여군 장관급 장교가 있었다.
- ↑ 본래는 법무관리관이 병과장으로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으나 여러 문제가 일어나 예비역을 임명하는 걸로 바뀌었다.
- ↑ 이은수 장군은 자신의 장군 취임식 때 연평도사건으로 인하여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부친을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의 전역식 때는 부친을 꼭 모시고자 마음먹었으나 전역 3개월을 앞두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모친의 병간호로 무리했는지 별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