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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나라 시구 강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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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 인사하는 장나라)
2002 올스타 전 당시 인천 문학구장 에서 장나라의 시구를 굳이 받아친 일화가 유명한데, 이때 맞은 타구가 하필 시구자 장나라 정면으로 날아가서 맞을뻔한 상황이 났다. 한편, 장나라의 안티와 기아 일부 팬들의 장나라가 1시간 또는 30분(각 글마다 다르다) 지각을 해서 이종범과 관중석에서 짜증이 났다거나 장나라가 구두를 신었다 등에 헛소문도 나왔는데, 사실은 2002년 올스타전 경기가 오후 6시30분에 시작될 예정었으나 올스타전 경기전 행사인 퀴즈게임과 치어리더 경연대회, 그룹가수 공연 등 식전행사가 늘어지면서 40분이나 늦은 7시10분에 경기가 시작된 부분이 와전된 것이다. 그리고 지각 카더라 외 홍드로 같은 현재 시구문화 등에 거론도 있는데, 이 시기에는 시구자가 어떤 분야의 인물이든 공을 잘던지는 거보다 시구를 한 것에 의미를 두었던 점을 잊지 말자. 여담으로 장나라는 행사, 방송 등 지각을 한다거나 불성실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이 시구 논란에서 큰 문제는 공을 친후 바로 덕아웃으로 가면서 즉각적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자 장나라의 아버지이자 배우 주호성은 "이 선수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사고도 없었으니 진정하라"는 글을 올렸다.
이종범은 이후“팬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어 순간적인 충동으로 타격했다. 장나라씨가 놀랐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으며 장나라는 공식홈페이지(나라짱닷컴)에서“놀라긴 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시구 직후 곧 안정을 찾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이종범은 두드림이라는 예능프로에 참가해 이 사건에 대해 술회했는데, (장나라가 잘못됐으면)"결혼했는데 데리고 살아야 하나"라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후에 kbs 관계자는 당시 진행자였다 이창명이 타구를 쳐야 재밌지 않겠냐는 말에 카메라가 없는 쪽으로 친다는 것이 장나라 쪽으로 간 것 같다고 하였다. 역시 이창명
2 인터뷰의 대가로 돈 요구 사건
이종범이 주니치 시절 KBS 한성윤 기자 외 취재진에게 인터뷰의 대가로 2만엔을 요구한 사건. 섭외 후 인터뷰를 하러 취재진이 일본에 갔는데 "정말 중요한 시기이니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가 출장비를 털어 2만엔을 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바로 바뀌어 인터뷰가 성사되었다고 한다. 사실 공식 기사는 아니었고 기자가 취재후기라며 게시판에 끄적거린 글이며,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활동, 선수협, 위의 장나라 시구 사건에 대한 내용이 있어 당사자가 이종범임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내용 중 이종범에게 선물하려던 기념품을 그냥 버렸다는 내용에 한성윤 기자의 배신감이 절로 묻어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자가 일본야구의 인터뷰 룰을 몰라서 벌어진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이후 이와 유사한 일이 이병규에게도 발생했다. 기사를 참조하자
- 이 사건은 이종범이 국내 복귀팀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원했었다는 사실(그의 타이거즈로의 국내복귀는 KIA가 해태를 인수하고 난 뒤 이루어졌다.)과, 말년에 은퇴하지 않으려한 것과 합쳐져 돈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비난을 받을 때 사례로 자주 쓰였다.
한편 2013년 임찬규 물벼락 사건이 터지고 한성윤 기자의 소위 "못배운 야구인들"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이 사건도 재조명되었다.
3 전준호와의 도루왕 경쟁 사건
93년 신인시절 73개의 도루로 75개의 롯데의 전준호에 이어 도루 2위를 기록했다. 73도루를 기록하고도 2위라니 ㄷㄷㄷ 둘 모두 기존 최다도루 기록이었던 김일권의 62도루를 초월한 훌륭한 기록이긴 했는데 문제는 시즌 막판 도루왕 경쟁이 붙으면서 둘 다 팀 차원에서 기록 밀어주기로 쌓은 도루였다는 점.
시즌 막판 해태는 정규리그 1위, 롯데는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둘의 도루왕 경쟁이 불이 붙자 팀 차원에서 기록 밀어주기가 시작되었으며 시즌 끝날 무렵에는 양팀 모두 아래와 같이 지금은 상상도 못할 추태를 보여줬다.
1. 전준호와 이종범은 선발 출전하지 않고 벤치에서 헬멧을 쓰고 대기
2. 처음으로 출루한 타자가 나올 경우 그게 누가 되었든 바로 대주자 교체 -> 도루 1개 추가
3. 도루 시도시 타석에 선 타자는 볼은 물론 충분히 칠 수 있는 스트라이크마저 일부러 헛스윙해 포수의 시야를 방해
심지어 타석에서 2루타성 타구를 날리고도 일부러 2루로 가지않고 1루에 멈춰서서, 2루도루 3루도루로 도루 2개를 추가하는 기행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특히 이종범이 이 방법으로 한 경기에서 무려 6개의 도루를 쌓았을 정도.
2006-2007 시즌 프로농구에서 벌어졌던 문경은과 우지원의 3점슛 몰아주기와 비교할 수 있는 행태였음에도 이 당시 언론들은 죄다 둘의 도루왕 경쟁을 아름다운 선의의 경쟁으로 포장하기에 바빴다. 당시 스포츠언론의 수준을 볼 수 있었던 사건. 단 한 명의 기자만이 별도의 칼럼에서 직설적으로 추하다는 단어를 써가면서까지 둘을 디스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냥 묻혔지 지금 저런짓을 했다간 역대급 비난을 받을만한 수준의 추태임은 분명하다. 특히 이종범이 아쉬운게 그 해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할 때 보여줬던 모습과 이듬해 4할타율에 도전하며 84도루를 쌓은것을 감안시 도루 능력이 검증되었음에도 그렇게까지 타이틀에 집착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신인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었다고도 하나 당시 신인왕은 양준혁으로 거의 굳어진 상황이었던지라...
4 선수협 관련
2차 선수협파동 당시 일본에 있었던 관계로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회장인 송진우가 운영자금이 부족해 해외파에게 손을 벌렸을때 모른척하는등 철저하게 방관자로만 남았다. 덕분에 정민태와 쌍으로 까였다. 도움을 준거라고는 선수 소장품 경매에 주니치시절 물건들을 몇개 내놓은것 뿐. 당시 해외파 선수중 박찬호, 김병현, 조성민등 한국프로야구를 거치지 않은 선수들에게 책임은 물을수 없다. 처음에는 도와주는척 하다가 뒤통수친 선동열과 비교하면 차라리 무대응이 낫다는것이 일반적인 평가. 2001시즌 도중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회장직을 맡을거라는 보도가 나왔으나 이종범은 이사회에 불참하고만다. 당시의 이종범은 3년반의 일본생활을 한 후 복귀 1년차인탓에 명성에 비해 선수단 내에서의 입지는 그리 강하다고 보기 힘들었고 구단과 이호성(...)의 협박이 있었을거라는걸 감안하면[1] 마냥 비난할 일만은 아니지만 이후 나온 변명이 한 팀에서 연속으로 선수협 회장이 나오는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였기에 많이 까였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말도 아니다. 애초에 반대한것도 아니고 의욕이 없었던 것이 잘못이라 할수도 없는것 아닌가.
2005년 말에 선수협 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 한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활동이 없었다. 외국인 엔트리 확대저지, 동대문야구장 철거 반대운동정도가 업적의 전부. 선수협 홈피가서 06,07년 연혁을 보면 기겁을 할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첫째는 2차 선수협파동 당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애초에 이종범이 구단과의 마찰을 부담스러워했다는것이고 둘째는 재임기간 2년이 야구인생 최악의 성적이었던만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빴다는데 있다. 이 당시 이종범이 취한 미온적인 태도는 다음 회장인 손민한이 팬들의 반대까지 나올정도로 초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된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종범의 선수협 회장 재임 당시 억대의 금전사고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강병규 트위터에 따르면 이종범회장은 선수회비를 펀드에 투자 결정했고 그걸 모든 선수들에게 공표하지 않았고 결국, 손실처리난 억대의 금액을 쉬쉬하고 넘어갔으며 결국, 이종범은 회장으로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 때, 손민한이 회장에 취임하며 전임 나진균사무총장을 강제해임 하는 걸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8개구단 대표선수중 그 어느 누구도 금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선수협은 선수협 공금을 일부 고참 선수들에게 빌려주었던 사실도 문제가 되어 선수협 집행부의 자질 문제도 심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진균 전 사무총장의 말에 따르면 펀드로인한 손실은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500만원 가량이라 하며 선수협이 펀드를 투자한것은 각 구단 대표 8인의 통보 빛 승인을 받은 사항이라고 한다. 강병규 역시 이후 인터뷰에서 억대의 손실을 600만원의 손실이라 말을 바꾸었으니 결국 본인도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꼴.
5 빵 사건
한때 빵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며 빵종범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기아 구단이 당시 빵을 먹은 선수는 지금 팀에 없는 선수라고 기사를 냈으며, 마해영은 본인의 책 '야구본색' 출간 후 식사 자리에서 빵 사건 자체가 금시초문임을 밝혔다. KBS의 옐로우카드라는 프로그램 51회에서는 이재국 야구전문기자가 당시 빵 사건을 언급하면서 빵을 먹은 인물에 대해서 밝혔다. 당시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어있었던 사람인데 대패를 하고 난 뒤 "야, 빵없냐?" 라면서 빵을 먹은 선수는 FA로 영입되어 팀에 융화되지 못하던 선수로, 2009년에 현역이 아니고 은퇴한 선수라는 것을 암시한 것인데... 지못미 마몰레드
재밌는 건 같은 오해에 휘말린 박재홍의 경우엔 오히려 팬들이 더 "빵형", "빵신" 등으로 친근감 있게 부르고 있다는 점. 사실 발음하기 제일 좋다
이후 2012년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하여 본인은 빵을 먹지 않았다고 직접 언급하였다. 그리고 범인을 찾아낼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렇긴 한데, 빵 사건의 최초 발설자인 정철우 기자가 진범이 마해영임을 밝히면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갔다고 진범보다 더 욕을 먹었다.
6 방송출연과 관련된 구설수들
-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었으나 자신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하기는 커녕 변명과 자기포장으로 일관하며, 아무 생각없던 다른 야구팬에게조차 조롱을 당했다. 특히나, 일본에서 당한 부상에 대해, 당시 투수 가와지리에게 맞은 몸 사구가, 129km짜리 커브였고 헛스윙 판정에 스트라이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속구로 포장하며, 당시 사건을 주변의 차별과 압박 탓인양 돌리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2] 또한 양준혁과의 비교에 있어서는, 자신이 한국에 있었다면 2000안타는 먼저 달성했을 것 이라는 발언으로 양준혁을 무시하냐며 대차게 까였다. 게다가 양준혁이 이종범보다 연장자라는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생각을 하고 말했어야 할 발언. 반면, 양준혁은 예전 출연에서, "이종범은 늘 나보다 앞서 있었고, 내가 그 친구와 비교되는 것은 나로서는 영광" 이라는 식으로 겸손하게 발언한 바 있어, 인성면에서 더욱 비교당하며 비난당했다.
물론 이미지 세탁 프로그램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인 무릎팍도사의 특성상 좋은 점만 과도하게 부각시켜 편집했을 가능성도 있을것이고 자기비판을 엄정히 할 수 있는 인물이 몇 안된다는 점은 감안해야한다.
- 2010년 12월 5일 1박2일에 출연해 이수근에게 육전 먹는 법을 알려줬다. 당초 이수근은 그를 대전으로 섭외하려고 하였으나 구단의 훈련일정을 이유로 이는 이루어지 못했다. 대구광역시로 간 강호동이 양신을 섭외하는데 성공하였기에 더욱 아쉬웠던 상황. 다만 올시즌 은퇴로 어느정도 일정에 여유가 있는 양준혁에 비해 이종범은 2011년에도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때문에 사전조정도 없이 방송에 출연하는것은 무리가 있다. KIA 타이거즈가 2010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함으로서 선수단은 분위기가 저하된 상태에서 일찌감치 훈련중인 상황에 저런 행동은 내외적으로 좋지 않게 비치기 쉽기 때문이다. 고령으로 인한 기량저하로 인해 젊은 선수보다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것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