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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o.72 | |
전준호(田埈昊) | |
생년월일 | 1969년 2월 15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
출신학교 | 마산상남초-마산동중-마산고-영남대 |
포지션 | 중견수[1] 좌익수[2]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1년 드래프트 2차 2순위(롯데 자이언츠)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1991 ~ 1996) 현대 유니콘스(1997 ~ 2007) 히어로즈(2008 ~ 2009) |
지도자 |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2010) 투손 파드레스 타격 인스트럭터(2011) NC 다이노스 작전/주루코치(2011 ~ 현재) |
종교 | 개신교 |
1993년 1995년 1998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보유 기록 | ||||||
1995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득점상[3] | ||||||
1993년 1995년 2004년 한국프로야구 도루왕 |
성구회 | |||
회원번호 | 기록 | 가입년도 | 비고 |
3 | 2,018 안타 | 2008년 | 최초 창립멤버 3인 |
위대한 도루왕이 있었다.
도루는 발로 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 하는 거다.
1 소개
2,018안타와 550도루에 빛나는 전설의 대도
멈추지 않는 그라운드의 독사
前 롯데 자이언츠-현대 유니콘스-히어로즈 소속의 외야수. 2010년에 SK 와이번스의 주루코치로 지내다 미국으로 건너가 연수를 받았으며, 귀국 후 2011년 10월 10일 날짜로 코치 연수를 마치고 NC 다이노스의 작전 및 주루 코치로 합류하였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1번.
이대형의 상위호환이라 카더라
2 프로 선수 시절
마산고 - 영남대를 거쳐 199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롯데 시절 모습
1992년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 당시 이종운, 박정태, 김민호, 김응국과 함께 남두오성 중 톱타자로 활약하였으며, 2번의 도루왕을 차지하지만 1996 시즌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1997년에 실업 야구 팀 현대 피닉스가 문동환의 계약을 해지해서 문동환이 롯데에 입단할 수 있게 하는 대가로[4]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였고, 이후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톱타자로 맹활약하며 현대 유니콘스 왕조시대를 이끌었다. 이적 첫해인 1997년과 부상으로 고전했던 2000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한 활약을 보였고, 2008년 팀이 히어로즈로 바뀌었지만 규정 타석 3할을 채우는 등 팀의 지주로 활약했다.
KBO 역사상 양준혁에 이어 2,000안타를 2번째로 달성했고 2,000경기 출전 - 2,000안타를 최초로 달성하였으며, 통산 도루 1위(550개, 2위는 505개인 이종범), 단일 시즌 최다 도루 2위(1993년 75개, 1위는 1994년도 84개를 기록한 이종범), 그리고 3차례의 도루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1993년, 1995년, 2004년) 양준혁, 송진우 등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릴 만하다. 통산 득점도 1,171점으로 양준혁, 이승엽에 이어 통산 3위다.
특히 대도라고 불릴 정도로 도루에 관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선수. 이종범과 비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약간 타입은 다르다. 이종범은 전성기 시절 도루를 확실히 점수로 연결하여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선수였다. 그래서 이종범은 매해 wSB가 높았는데 역대 1~5위를 거의 혼자 독식하는 수준. 반면 이종범처럼 도루로 경기를 뒤집는 타입은 아니였지만 꾸준한 적립으로 통산 도루 기록을 쌓은 케이스다. 실제로 도루왕을 3차례밖에 못 한데다가 역대 매년 wSB 세이버수치를 찾아보면 그닥 특출난 편은 아니다. 매년 20개 이상의 도루를 꾸준히 적립하여 통산 최다 도루 기록을 남겼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한국시리즈 최초 홈 스틸을 시도하여 성공한 선수이기도 하다.
도루에 대한 노하우는 단순히 한국 무대에서만 통하는 수준의 노하우가 아니었는지, 메이저리그의 올스타 내셔널리그 도루 1위 에버스 카브레라는 특별히 전준호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기자가 알아내서 먼저 물어본 게 아니라 한국 기자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본인이 먼저 전준호 코치를 아는가? 라며 물어보고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두 번 세 번 부탁할 정도. 그에 의하면 스프링캠프 중 전준호에게 도루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모양. 여기에서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전준호가 카브레라를 만들었다고 하는 건 물론 오버지만, 내셔널리그 도루왕이 짧은 기간이나마 받은 그의 코칭을 몇 년이고 잊지 않은 채 감사함을 표하는 걸 보면 도루에 한해서는 세계에서도 통할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봐도 무방할 듯. 아쉬운 게 있다면 저 인터뷰 전부터 약물 관련 리포트 목록에 올라있던 카브레라는 결국 사실로 드러나 50 경기 출장 정지를 먹었다.
1991 시즌부터 2009 시즌까지 모두 19시즌(!)이나 뛰었으며, 통산 타율 0.291, 2,018안타, 42홈런, 577타점, 550도루(통산 1위!), OPS 0.745를 기록. 3루타 통산 100개로 이 부문 1위 기록도 가지고 있다. 2위가 61개인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깨지기는 쉽지 않은 기록.
특히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의 홈 구장인 사직구장에서 상당히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9년에는 부상으로 1군 21게임에만 출장했으나, 그 해 통산 550도루를 달성했다.역사적 순간 그러나 시즌 후 2009년 10월 16일,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다. 하지만 그 모습이 거의 방출이나 다름없어서 많은 팬들이 이를 성토하며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이 방출은 전준호 선수에게 다른 팀에게 갈 마지막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일단 팀에서 풀어준 것이며, 다른 팀에 이적되지 못할 경우 미국에 코치 연수를 보내줄 것이며, 나중에라도 은퇴식은 치뤄 줄 예정이었다고 한다.관련글
결국 다른 팀으로 가지 않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특이한 사항은 히어로즈가 아닌 SK 와이번스의 1군 주루코치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2.1 은퇴식
파일:/image/295/2009/11/29/55.jpg
전준호의 은퇴식은 28년 한국프로야구 역사는 물론 19세기 말 야구가 들어온 이래 팬들이 직접 은퇴식을 열어 준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히어로즈에서 방출된 후 2009년 11월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 KT 체임버 홀에서 열렸으며, 참석인원은 참석자의 짐작으로 300명 가량 된 듯하다. 장소가 참 의미심장하다...
히어로즈 선수 전원[5], 성구회 회원 양준혁과 송진우, 권시형 선수협회 사무총장도 참가했다.
3 기록
- 타자기록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수상 |
1991 | 롯데 자이언츠 | 122 | 372 | .263 | 98 | 13 | 6 | 2 | 48 | 66 | 18 | 60 | .347 | .360 | - |
1992 | 120 | 466 | .300 | 140 (3위) | 17 | 9 (3위) | 5 | 49 | 90 (5위) | 33 (3위) | 58 | .408 | .376 | - | |
1993 | 120 | 393 | .282 | 111 | 3 | 7 (3위) | 1 | 31 | 63 (5위) | 75 (1위) | 52 | .333 | .363 | 골글 | |
1994 | 79 | 281 | .288 | 81 | 5 | 2 | 2 | 25 | 47 | 25 | 33 | .349 | .361 | - | |
1995 | 124 | 458 | .308 (5위) | 141 (3위) | 13 | 12 (1위) | 1 | 42 | 93 (1위) | 69 (1위) | 68 | .395 | .393 | 골글 | |
1996 | 103 | 324 | .272 | 88 | 12 | 9 (1위) | 2 | 22 | 49 | 49 | 38 | .383 | .346 | -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수상 |
1997 | 현대 유니콘스 | 110 | 369 | .247 | 91 | 14 | 7 (3위) | 2 | 18 | 48 | 48 | 46 | .339 | .330 | - |
1998 | 126 | 446 | .321 (2위) | 143 (5위) | 16 | 7 (3위) | 5 | 43 | 78 | 35 (4위) | 59 | .422 | .398 (4위) | 골글 | |
1999 | 129 | 470 | .291 | 137 | 7 | 2 | 4 | 43 | 80 | 38 (3위) | 71 | .340 | .380 | - | |
2000 | 87 | 263 | .316 | 83 | 12 | 2 | 1 | 18 | 53 | 18 | 57 | .388 | .436 | - | |
2001 | 125 | 400 | .325 | 130 | 18 | 6 (2위) | 4 | 35 | 85 | 27 (5위) | 75 | .430 | .426 (5위) | - | |
2002 | 126 | 420 | .300 | 126 | 15 | 8 (1위) | 3 | 28 | 83 | 26 (4위) | 66 | .395 | .394 | - | |
2003 | 129 | 442 | .269 | 119 | 16 | 6 (1위) | 3 | 38 | 79 | 20 | 68 | .353 | .365 | - | |
2004 | 132 | 487 | .292 | 142 | 10 | 7 (1위) | 4 | 48 | 88 | 53 (1위) | 68 | .366 | .377 | - | |
2005 | 94 | 278 | .266 | 74 | 8 | 2 | 0 | 22 | 34 | 18 | 29 | .309 | .332 | - | |
2006 | 109 | 303 | .287 | 87 | 10 | 1 | 1 | 26 | 37 | 20 | 27 | .337 | .345 | - | |
2007 | 121 | 371 | .296 | 110 | 8 | 1 | 1 | 13 | 52 | 11 | 49 | .332 | .377 | -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수상 |
2008 | 우리 히어로즈 | 114 | 352 | .310 | 109 | 16 | 5 (3위) | 1 | 24 | 44 | 16 | 36 | .392 | .372 | - |
2009 | 히어로즈 | 24 | 33 | .242 | 8 | 1 | 0 | 0 | 4 | 2 | 2 | 4 | .273 | .324 | - |
통산 | - | 2091 | 6928 | .291 | 2018 (5위)[6] | 214 | 100 (1위) | 42 | 577 | 1171 (3위) | 550 (1위) | 962 | .369 | .375 | - |
75도루 | 외야포지션중 최다 도루기록 |
53도루 | 역대 최고령(만 35세) 도루왕 |
100개 | 역대 통산 최다 3루타 |
550도루 | 역대 통산 최다 도루 |
4 지도자
2010년 SK 와이번스에서 주루코치로 활동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마이너리그에서 순회 코치로 활동하며 여러 선수들에게 도루왕의 노하우를 전수했는데, 이 시기 그에게 배운 선수 중 에버스 카브레라는 포텐을 터뜨리며 올스타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물크리...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2011년 10월 10일, 고향의 신생 팀 NC 다이노스의 주루코치로 임명되었다.
2013년 시즌에 접어들어, 과거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저 그런 2군 외야수였던 김종호를 이적 첫 해 주전 1번 타자 및 50도루&도루왕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팬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그의 지도 덕분에 박민우, 나성범, 테임즈 등 많은 선수들이 도루에서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팀 200도루 기록, 테임즈의 40-40클럽 가입 등 많은 기록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루코치 전준호의 평가는 더욱 상승하고 있다. 왕년의 남두오성 중 지도자로서도 긍정적인 평을 듣고있는 유일한 인물.
5 야구 외
- 2000년 시즌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창설되기 시작할 무렵 전준호가 선수협 참여를 독려하였는데, 당시 선수협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던 현대가 친구단파인 김경기를 통해 이를 저지하면서 둘의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전지훈련지에서 둘은 주먹다짐까지 했다고. 아무래도 김경기 쪽이 체구가 좋다 보니, 상처를 많이 입은 쪽은 전준호. 갈비뼈와 손가락이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준호의 성적을 보면 2000년도 출장경기수가 유독 적다. 김경기는 그후 이 사건으로 입지가 좁아진 상태에서 신생구단인 SK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은퇴 후 코치가 됐다. 공교롭게도 전준호도 은퇴 후 SK로 가서 코치가 된걸 보면 서로 화해한 듯.#
- 은퇴 선언 후 목동에 있는 KT 홀에서 은퇴식을 진행했는데, 은퇴식에는 송진우와 양준혁이 참석했다. 2010년 SK의 주루 코치가 된 후에 "우완투수보다 좌완투수 상대로 도루하기가 더 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헐...[7][8][9][10]
- 참고로 마구마구에서는 롯데나 현대가 아닌 넥센 히어로즈의 레전드 카드로 나왔는데, 이는 마구마구 레전드 카드 생성 초기에 레전드 카드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을 당시 애니파크 측의 실수로 애니파크 측도 이를 인정했다. 듀얼 레전드 시스템이 도입된 지금은 롯데, 현대, 히어로즈 이 3가지의 레전드가 모두 업데이트된 상황. 04년도 레어 카드와 같이 외야 송구 시 딜레이를 줄여주는 퀵스로잉이라는 사기급 잠재력이 띄우기 쉬운 1슬롯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좌익수/중견수 듀얼포지션이 가능해 모두의 준호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여러 세트덱의 타자용병으로 애용되고 있다.
- 파일:Attachment/전준호/2014-04-12-03-00-45-1.jpg
- 그러나 마구마구2014에서는 2014년 4월 10일 업데이트 후 롯데 레전드카드와 현대 레전드카드가 모두 업데이트되었다!
나는 박현석 롯데 현대 넥센 레전드 3개 다있는데?
- 파일:Attachment/전준호/2014-04-12-03-00-45-2.jpg
-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95 전준호(가명:박현석)의 엘리트 카드가 업데이트되었다.(다른 신규 엘리트는 06 권오준, 02 송진우(가명:박흥진), 89 박정현(가명:김석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