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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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arta_riot_14_May_1998.jpg
인도네시아어 - Kerusuhan Mei 1998
영어 - May 1998 riots of Indonesia
중국어 - 黑色五月暴動 혹은 1998年印尼排華事件

1998년 수하르토 정권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학살의 대상은 화교로, 학살 사건이 일어난 1998년 당시 인도네시아화교의 인구비는 5%였지만 경제에서는 85%를 차지하고 있었다.

1998년 5월 2일 동부 자카르타의 사범대학 학생들이 수하르토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며 시위하였고, 경찰은 공포탄을 쏘며 이를 막으려 했다. 이때 두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5월 11일에는 자카르타 서부의 트리삭티에서 수하르토 규탄 집회가 열렸다. 원래 트리삭티는 학생들의 시위가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곳인데 트리삭티대학 학생들이 처음으로 이 지역에서 규탄집회를 열었던 것. 이때 진압군의 발포로 학생 6명이 사망했다. 다음날 12일 자카르타 전역이 통제 불가 상태에 빠졌다.

시위는 폭동으로 발전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이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상가가 불타고 사망자가 속출했는데, 이때 화교들이 휘말렸다.

본래 수하르토 정권 규탄 시위로 시작된 것이 어느새 화교들을 쳐죽여라로 바뀌어버린 것. 이때 인도네시아 거주 화교 2000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수백명의 여성이 강간 살해당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화교인들의 집을 불태우고 어른 아이 할것없이 죽창으로 찔러 살해, 시체를 차에 메달아 끌고 다니기도 했으며 백주대낮에 대로변에서 강간을 서슴치 않았다. 또한 참수한 머리들을 들고 몰려 다니며 '화교의 씨를 말리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 그 광경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한마디로 인도네시아 전역이 광기에 휩싸였던 것. 인도네시아 화교는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가톨릭개신교로 대거 개종했는데 이 때문에 기독교 = 중국인 종교로 인식되어 교회가 불타는 경우도 많았다. 인도네시아인 기독교인이 학살당한 건 덤. 지금도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섬들의 경우 기독교인이 학살당하거나 교회가 불타는 등 박해가 극성이며 박해의 제1호 대상은 화교, 그 다음은 기독교인 인도네시아인이다. 그래서 화교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이 많은 싱가포르로 도망가버렸고 아직까지 많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언제 다시 박해당할지 모르기 때문. 이 사건은 수하트로 정권이 정권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의도적으로 화교에게 총을 돌리면서 생긴 일로 평가되며 실제로 수하르토 세력에서 이러한 학살을 부채질하는데 주력했다는 증거와 증언이 수없이 남아있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한테 충격을 주었고 중국인들과 세계의 화교들은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하지만 이때 중국 지도자 장쩌민은 인도네시아와 상호협력 관계였기 때문에 내정간섭은 안 된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인터넷에서 루머가 돌면서 원성을 샀으나 사실은 소극적이나마 [1] 구출은 있었다. 문제는 많은 화교들이 반공감정 때문에[2] 구조를 거부했다는 것. 결국 화교가 70%인 싱가포르에서 공군 수송기를 급파해 화교들을 싱가포르 영내로 들여보냈고 상당수가 돌아오지 않고 싱가포르에 눌러앉았다. 인도네시아어네덜란드어만 배웠던 화교들이 영어가 서툴어 처음에는 정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3]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면 이와 비슷한 1965년 쿠데타군의 학살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1. 화교는 중국계 이주민일 뿐 중국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개입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것도 있다. 또한 당시 홍콩이나 대만 등 다른 중화권 정권들의 대응도 비슷한 수준.
  2. 동남아에 있는 화교 1세대는 상인 출신이거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뛰쳐나온 사람들이므로 반공정신이 투철했다.
  3.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어와 사실상 같은 언어인 말레이어가 국어로 되어 있기는 한데 현실의 제1언어는 영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