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Philosophy
자연철학은 현재는 명맥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 학문이다. 철학의 한 분과라고 할 수 있다.
자연철학의 소멸은 자연과학의 등장과 맞물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시작된 것이다. 그전까지의 과학자들은 사실 다 자연철학자들이었다. 그 시대 기준으로, 그리고 그 사람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들은 자연철학자들이었다. 뉴턴도 자연철학자이고, 갈릴레이도 자연철학자이고, 데카르트도 자연철학자이다. 헌데 현재를 기준으로 나뉘면 뉴턴은 과학자에 가깝고, 갈릴레이는 과학자에 가깝고, 데카르트는 철학자에 가깝다.
어째서냐면 과학이라는 용어가 제기되었던 이유와 연관되어서 설명해 볼 수 있다. 19세기 한 과학자가 기존의 자연철학자라는 용어는 너무 심원한 뜻을 담고 있다며, 앞으로 자신들이 하는 작업들은 science라고 불려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데카르트와 뉴턴, 갈릴레이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보면 뉴턴은 중력이나 천체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결국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관측을 하고, 수학적으로 설명을 하고, 이런 것 같다 하고 끝난다. 갈릴레이의 학설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자연현상에 대해 설명하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 데카르트의 경우 중력이나 천체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원리까지 파고들어서 설명한다. 근본적인 원리라는 말이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후술되는 고대 자연철학자들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비교적 쉽다.
고대의 자연철학자들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 그런 자연철학자들도 있지만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서 대가들이 자연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은 결국 사물의 핵심적인 원리까지 설명한다. 플라톤으로 말하자면 이데아와, 이성, 좋음의 이데아가 세상만물의 원리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지성을 최고 원리로 둔다. 불이 하늘로 올라가는 이유는 그 지성의 원리에 따라 불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근대철학자이면서도 수학자이자 언어학자 등등 재능이 넘쳤던 라이프니츠 역시 모나드론 같은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려 했기 때문에 자연철학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온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식으로 좀 더 설명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감옥에서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탈옥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 결코 내 다리와 뼈와 근육 등등이 여기 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둘 다 진정한 이유나 원리는 다리나 뼈와 근육 같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그러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 말하자면 지성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자연철학은 그러한 학문이다.
다시 뉴턴이나 갈릴레이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들의 과학적인 부분은 수학적으로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하고 나머지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 반면 그들의 자연철학적인 부분은 모든 것을 신의 조화로 돌리는 것이다. 인간이 지성으로 알 수 있는 부분까지, 아직 밝힐 수 있는 부분까지를 밝히지만 밝혀지지 않는 부분은 신의 섭리와 관련된 것이며, 밝혀지는 부분도 신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근본 원리를 신의 섭리에 돌리는 경향은 자연철학적이다.
당대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생각했기에 그들이 자연철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연철학은 근세 이후 사라지게 된다.- ↑ 학자들은 대개 플라톤의 이 대화편은 다른 대화편처럼 플라톤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묘사나 회고의 성격이 많이 들어갔다고 보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