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잠

棧潛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인물.

임성 출신으로 고당륭과 같이 유교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옛날 나라의 예를 들며 그대로 따르게 하는 경술(經術)에 뛰어났기에 고당륭전에 포함되어 있다.

조조 시절에는 현령을 지냈고 나중에는 업성을 감독해 지키는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잘못하면 조조 시험 때문에 조식한테 목이 날라갈 뻔했다 한 번은 조비가 태자로 있을 때 새벽에 사냥을 나갔다가 밤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왕공은 요충지를 두어 그 나라를 공고히 하고 도성을 쌓고 금위를 설치해 의외의 침범에 방비합니다. 시경 대아에서 말하기를 '종자(태자)는 성을 보존할 뿐 성을 훼손시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했고, 또 '너무 멀리 나가지 않도록 이것을 사용해 힘껏 간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냥터에서 방일해 새벽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며, 하루 종일 짐승을 좇는 쾌락으로 끝없는 위험을 잊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신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고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냥을 가는 횟수가 약간 줄었다고 한다.

조비가 즉위한 후 잔잠이 중랑으로 있던 222년에 황후 옹립이 거론되자 조비는 곽여왕을 황후로 세우려고 하는데, 이 때 잔잠이 겁도 없이 상소를 올려 여러가지 옛날의 예를 들며 반대를 한다. 조비는 이를 무시하고 황후로 세우는데, 다음은 상소문의 전문이다.

옛날의 제왕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밖(조정의 신하)의 도움 뿐만 아니라 안(궁정)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내조의 문제는 천하가 다스려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원인이 되며, 국가의 흥성과 쇠약함도 이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서릉씨의 딸(서릉루조)은 황제에게 시집갔으며, 영아[1] 등은 순 임금에게 시집가서 모두 현명함으로써 상고시대에 향기로운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나라 걸 임금이 남소 땅으로 도망친 것도 말희가 화를 야기시킨 것이며, 은나라의 주가 포락의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에는 숯불을 지피고 그 위에 죄인을 놓고 태워서 죽게하는 형벌을 세운 것도 달기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선왕과 성철을 그들의 정비를 책립함에 있어서 매우 신중히 해 반드시 이전부터 계속 내려온 귀족의 가문에서 취했고, 그 중에서도 아주 정숙한 여자를 선택해 후궁, 즉 육궁을 통솔하게 하고 경건하게 종묘에 제사를 올리게 했으며, 그 결과 부인의 덕교가 계승되고 바르게 되었습니다. 역경에서, '가정의 도가 바르게 되면 천하가 안정된다'라고 했으니 안으로부터 밖으로 미치는 것은 선왕의 법령이고 제도였습니다. 춘추에서 예를 관장하는 종인, 흔하의 말에, '첩을 정부인으로 삼은 예제는 없다'고 했습니다. 제나라 환공이 규구에서 제후들과 맹약을 결심하면서 또한 말하기를 '첩을 아내로 삼는 경우는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후궁의 대열에 들어선 첩들은 항상 수레를 타는 제왕의 지위에 근접해 있습니다. 만일 총애 때문에 이런 사람 중에서 황후를 얻는다면 비천한 사람이 갑자기 고귀한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니 신은 후세에 아랫 사람이 제왕을 능멸해 제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전제가 느슨해지고 법도가 없어져서 화란이 위로부터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조예가 즉위한 후에 궁전을 짓느라 노역이 심해지자 상소를 올려 또 다시 역사적인 이유를 대며 이를 반대하는 글을 올린다.

하늘이 백성들을 낳고 그들의 군주를 세운 까닭은 군주가 행복으로 백성들을 덮어주고, 만민을 잘 기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해를 빛나게 하는 것은 천자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영토를 나누어 준 것은 제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삼황의 시대로부터 당, 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넓은 이익을 천하에 주고, 깊은 덕행을 사방에 흐르게하여 백성들은 그들의 생활에 의지했습니다. 삼왕의 덕업이 쇠한 이후에 아래로 한대에 이르러 잘 다스려진 날은 점점 줄어들고, 사망과 혼란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한대의 혼란스런 시대 이후로도 또한 평정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태조(조조)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신 같은 무용을 갖고서 폭동과 반란을 토벌하고 황실의 기강을 회복해서 황제의 대업을 열었습니다.

문제(조비)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을 받아 항상 쉴 틈 없이 바빴습니다. 폐하께서는 성명한 도덕을 갖추고 숭상하고 백성들에게 휴식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방의 연방이 평안하지 못하므로 출정한 장부들은 먼 곳으로 가서 지키고, 바다 밖에는 사변이 일어나 군기는 만리까지 걸려 있으며, 중앙 군대는 혼란스럽고, 군용 물자는 수로와 육로로 바꾸어 운반되며, 백성들은 그들의 생계를 버리고, 국가는 매일같이 황금 천 냥을 소비합니다. 궁전을 대규모로 지어 사용한 공사 인력은 헤아릴 수 없으며, 조래산의 소나무를 산으로부터 깎아내어 계곡을 깊게 돌아가게 하고 기괴한 돌이나 무부(돌 이름)를 황하나 회수에 띄웁니다. 도성 안은 전부 전복이라 해서 응당 벼와 조 등을 생산해 황실에 공급하고 들짐승의 정원이 되어 사냥의 수요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초목이 무성해지고 황폐한 땅이 많아져 사슴과 토끼의 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생산을 상하게 하고, 땅에는 가시나무가 가득 자라고 있으며, 재해와 역병이 유행하고, 백성과 생산물은 모두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하늘은 따뜻한 기운을 줄여 좋은 곡식이 자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하는 문왕이 풍성을 만들어 경영을 시작했을 때 영대의 기초를 예측해 급히 서두르지 않았으며, 백성을 아들처럼 대하였으므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영소와 영유는 백성들과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현재 궁전은 높고 사치스러우며, 조각은 매우 기묘합니다. 유우씨의 총기를 잊고, 은신의 옥으로 된 궁실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지된 수렵장은 천 리이고, 한 걸음이라도 닿으면 법률에 저촉됩니다. 궁전의 화려함은 아방궁에 비교되고, 사용한 백성은 건계보다 백 배는 됩니다. 신은 백성들의 힘이 다 소모되어 아랫사람들이 이런 운명을 감당할 수 없을까봐 걱정입니다.

옛날 진나라는 효함산을 점거해 사해 안을 제어했으며, 스스로 도덕이 삼황을 넘었고, 공로는 오제를 결합했다고 생각해 칭호와 시호를 만세에 전하려고 했지만 이세에 전복되었으며, 평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가지가 이미 흔들렸으므로 근본이 실제로 먼저 뽑힌 것입니다. 성명한 군주는 세상의 사무를 관장하고 빼어난 덕행을 날릴 수 있으며, 공로가 있는 신하를 임용해 가까이 합니다. 재능과 지혜가 있는 현명한 사람을 관리로 삼으면 공업은 융성할 수 있고, 친근한 친목을 분명하게 사용하면 그들로 하여금 제왕과 똑같이 안정과 위험을 걱정하게 합니다.

근본을 깊게 하고 단단하게 하여 모두 강력한 보조한다면 비록 흥함과 쇠함의 변화를 겪는다고 하더라도 내부와 외부가 모두 보좌할 것입니다. 옛날 주성왕이 나이가 어려 정치를 담당하지 못했을 때 주공, 여공, 소공, 필공이 함께 좌우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무위후와 강숙의 감호가 없으며 섬서의 중임이 나누어지고, 또 주공단, 소공석 같은 사람이 관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동궁은 확립되지 않았으며, 천하에는 부왕이 없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관중의 일에 마음을 두시고, 오랫동안 무궁한 지위를 보존하시면 사해 안의 백성들에게는 큰 행운일 것입니다.

후에 연국의 중위로 임명되었지만 질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 해에 사망한다.
  1. 의 두 딸로서 아황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