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단

周公旦

생몰년도 미상

주나라의 인물.

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 그냥 "주공"이라는 말로도 자주 불린다. 그러니까 주공은 제후의 벼슬 이름이다. 영지가 주(周) 지역이라서 주공이라고 불렸다. 생몰연도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문왕의 넷째 아들이다. 첫째형이 희백읍고, 둘째 형이 주무왕 희발.

중국 고대사에서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인데 다른 성인인 탕왕, 문왕, 무왕은 자기가 신하의 입장에서 군주를 쫓아냈기에 역적이라고 비판받는 경우도 있지만, 주공은 그런 거 없다. 다만, 이런 사건을 군신관계로 파악한 것 자체가 지극히 유교적 관점이 반영된 것이므로 주의. 또 그 당시 중앙집권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던 청동기 시절 부족간의 세력 다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태공과 함께 형 무왕을 보좌하여 주왕의 폭정을 하는 은나라를 멸망시켰다. 달기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달:女+旦) 주공단이 은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훈련시킨 미녀라는 설도 있다.[1] 주나라를 건국할때 60세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노나라는 현재 중국의 산동성 곡부(취푸) 부근이며 공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주공은 장남 백금에게는 멀리 있는 노나라를 주고 차남 군진에게는 사후 자신의 주공 자리를 주니 그가 주평공이다. 주공단의 시호는 주문공이다.

무왕 사후 나이 어린 성왕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자신의 형제인 관숙[2], 채숙, 곽숙과 은나라 주왕의 아들 무경[3]이 끊임없이 주공을 헐뜯자, 그는 성왕에게 '올빼미(鴟鴞)'라는 시를 지어 올려 자신의 무고를 호소했다. 이 시는 시경에 실려있는데, 올빼미는 자신을 모함한 관숙 등을 비유한 것이다.

결국 무경과 관숙 등이 훗날 삼감(三監)의 난[4]이라 불리는 반란을 일으키자 주공은 출정하여 3년만에 반란을 진압하고 당시 황하 중류에 머무르던 머무르던 중국의 영역을 황해까지 넓혔다.[5] 당시 중국 동부지역은 이족(夷族)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환빠들의 떡밥이 된다. 이후에 호경 동쪽 낙수가 흐르는 땅에 도시를 세웠는에 이를 성주(成周)라고 했다. 지금의 낙양.

시경 빈풍편에 실린 시는 대부분 주공과 관련된 시이다.

공자가 매우 존경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논어에서도 그의 꿈을 꾼지 오래 되었다고 한탄하는 일화가 나온다. 유교의 창시자를 공자가 아니라 주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조카를 왕으로 앉히고서도 자기가 찬탈하지 않은 인의지사라는 점. 하지만 삼감의 난이 은왕조 부활이란 명분과 주공의 섭정을 핑계로 일어난 걸로 봐선 왕위만 빼앗지 않았을 뿐 주공이 주나라의 국정을 혼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주공단의 이러한 행적은 이후 군주의 종친이나 유력자가 섭정이란 명목으로 권력을 장악할 때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용해 먹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계유정난 직후의 세조이다. 또한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비슷하게 비판받는 것이 바로 선양이다. 본디 요가 순에게, 순이 우에게 전위한 것은 일종의 미담이었지만, 훗날 조비에서 이성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찬탈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써 악용한다.

대표적으로 전한을 멸하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전한의 마지막 황제이자 어린 유자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옛날 주공(周公)이 섭위했을 때에는 끝내 복벽하여 성왕(成王)에게 제위를 돌려 드렸는데 지금 나는 천제의 지엄한 명령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구나...'라고 탄식하는 체 했다. 물론 왕망 따위가 주공의 이름을 판 것 자체가 훌륭한 고인드립. 후에 조선 세조계유정난을 일으키고도 똑같은 고인드립을 쳤고, 단종 역시 수양대군이 주공 단이라며 최대한 찬탈의 명분을 없에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양위 크리.

삼국지 시대 공융조조원소세력의 본거지를 함락하고 원씨 집안의 많은 여자들을 취하고 조비문소황후를 취하는 것을 보자 "무왕은 주왕을 정벌한 후에 달기를 주공(周公)에게 주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는 조조와 조씨 일가를 조롱하는 말이었는데 조조는 여기에 낚여서 박식한 공융이니 실제 전거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공융은 "지금의 일을 살펴보니 과거에도 당연히 그랬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너를 보니까 그랬을 것 같아 물론 나중에 공융은 끔살.

사실 주공단의 행동도 그가 순수하게 도덕군자라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매우 현실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주나라는 친족 기반의 봉건체제라서 국왕 본인의 권력은 한정되어 있었고 위치 자체도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왕위를 찬탈해서 다른 제후들의 지지를 잃고 본인의 영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불안정한 왕위를 차지하느니, 영지를 유지하면서 제후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실권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오히려 주공단에겐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는 방법이었다는 것.

나중에 문화대혁명 당시에 4인방주은래를 까고 싶었는데, 주은래는 너무나 거물이었고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역풍이 불것을 우려해 이름이 중의적일 수 있는 주공을 대신 깠다는 이야기가 있다. 찌질함의 극치

코믹스 봉신연의에서는 깡마르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깐깐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성우는 세노 마사히코/최원형. 하리센을 기본무기로 장착해 태공망이 헛소리를 한다 싶으면 그때마다 후려치는 츳코미 역을 담당.
  1. 고우영십팔사략에서는 이 설을 채택하고 있다. 달기가 주공의 수양딸로 등장. 그리고 주공단도 내심 달기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역성혁명의 당위성을 지키기 위해서 냉혹하게 달기를 처단해 버린다.
  2. 문왕의 셋째 아들, 즉 주공의 바로 윗 형이다. 관숙과 뒤의 채숙, 곽숙은 모두 무왕과 주공의 친형제.
  3. 상나라 세력을 달래기 위해서 무왕은 그를 제후로 삼았다
  4. 삼감이란 말그대로 관숙과 채숙, 곽숙을 가리킨다. 본디 관숙 형제들은 무경을 감시하는 소임을 맡고 있었다.
  5. 형제간의 다툼을 마음 아파하던 주공은 귀환하면서 시를 짓는데 이 시도 시경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