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집

張緝/张缉
(? ~ 254)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경중(敬中). 장기의 아들, 조방의 부인인 장황후의 아버지.

장즙이라고 나온 책도 있지만 장집이 옳다.

2 생애

태화 연간(227 ~ 233년)에 온현의 현령이 되었고, 정치적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갈량이 한중으로 진군하자 장집은 마침 시기적절한 의견을 냈는데, 조예가 조서를 내려 중서령 손자에게 판단을 구하자 계략이 풍부하다고 말하니 그를 불러 기도위로 임명해 촉 정벌군에 참가하도록 했다.

싸움이 끝나 중앙으로 들어와 상서랑이 되었는데, 직무에 성실했으므로 조예의 눈에 띄었다. 조예는 장집의 재능이면 다방면으로 임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관상을 보는 사람을 불러 그의 관상을 보도록 했다. 관상보는 이는

이천 석에 불과합니다.

라고 하였지만 조예는

재능이 이와 같은데 어찌 관직이 이천 석에 그치겠는가?"

라고 했다.

동완에서 재임하던 중에는 수천 명의 병사를 통솔했는데, 장집의 성격은 재물에는 인색했지만 권세에는 힘써 하루 아침에 딸이 황후로 들어가게 되어 군을 떠나게 되자 실무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는 관례에 따라 군 태수의 자리를 떠나 사저로 돌아가 걱정을 하며 자주 국가를 위해 오와 촉의 공격상황을 진술했다.

오나라의 제갈각이 권력을 잡고 변방 지역에서 승리를 얻자 사마사는 장집에게 의견을 묻는데, 장집은 제갈각이 곧 살해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마사가 그 이유를 묻자 장집은

위광은 그 군주를 떨치고, 공적은 한 나라를 덮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니 제갈각이 합비에서 돌아오자 오나라는 과연 그를 죽였다.

장집은 중서랑에서 승진해 동완태수가 되었으며, 가평 연간(249 ~ 254년)에 그의 딸이 황후가 되었으므로 조예는 그를 불러 광록대부로 임명했으며, 또한 특진(特進: 삼공 다음의 지위)으로 임명하면서 처 향은 안성향군으로 봉해졌다.

그러나 254년 2월 12일에 장집은 이풍, 하후현, 소삭, 악돈, 유보현 등과 함께 사마사를 암살하고 장집 자신은 표기장군이 되기로 한 계획이 발각되자 처형되면서 삼족이 멸해졌다.

3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등장. 지력, 정치가 70대인 문관형이다. 다시 말하면 물론 전투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략 31/무력 27/지력 74/정치력 74/매력 61에 특기는 농업, 기술, 반목 3개. 통솔31짜리를 전투에 내보내고 거기에 반목쓰자고 적군에 인접시키는 건 자살행위므로 고민없이 후방에서 내정셔틀로나 쓰면 된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으나, PS3판과 PK에서 추가되었다. 지력이 80으로 상향된 데다가 군사 특기까지 있어 비책도 쓸 수있고, 계략부에 배치해도 좋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최유기천봉원수[1]으로 패러디 되었다.
  1. 저팔계의 전생. 참고로 부친인 장기가 저팔계로 패러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