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쥔쉰 周俊勳 | |
직업 | 현 바둑기사 九단 |
소속 | 대만기원 |
생년 | 1980년 |
국적 | 대만 |
출신지 | 대만 자이현 |
목차
1 소개
6세 때 바둑을 처음으로 접했고, 이후 재능을 드러내어 11세 때는 대륙으로 유학하여 송쉬에린 九단 문하에서 바둑을 배웠다. 13세 때인 1993년에는 중국에서 프로 三단을 인정받았고, 이듬해 귀국하여 다시 입단 과정을 거쳐 정식 프로기사가 되었다. 이후 초고속으로 승단하여, 4년 만인 1998년 대만 바둑 사상 최초로 九단이 되었다.
이미 10대 중반부터 대만 국내기전을 우승하는 등 대만 국내에는 사실상 적수가 없었고, 2000년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기전에도 출전하기 시작했다. 2001년 후지쯔배에서 목진석을 꺾는 등 선전하며 4강에 올랐고, 이후로도 꾸준히 세계기전에 출전하던 중 2007년 LG배 세계기왕전에서 후야오위 九단을 꺾고 대만 기사로는 최초로 우승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우승으로 대만의 바둑 영웅으로 부상하며 전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는데, 이듬해 2008년에 대만기원 개혁안을 반대하다가 5년간 대만기원 주최 국내기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 큰 논란이 되었다. 대만에는 대만기원 뿐 아니라 하이펑기원(린하이펑의 친가와 관련 있다), 잉창치바둑교육기금회 등이 있는데, 이들 사이의 바둑계 개편 과정에서 대만기원이 제시한 개혁안을 저우쥔신이 거부했던 것. 이후 저우쥔쉰은 하이펑기원 주최 기전에 출전하는 식으로 활동을 이어가다가, 하이펑기원을 이끌던 린원보 회장이 대만기원 이사로 취임한 이후 1년 7개월만에 대만기원에 복귀했다. [1]
이후로도 대만 바둑계 1인자로 활약하다가,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신예기사들의 거센 도전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하반기에는 랭킹이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1]
사진에서 보이듯 얼굴 우측이 온통 붉은 색인데, 선천적으로 있는 홍반(紅斑)이다. 어릴 적에는 이것 때문에 많은 놀림을 당하고, 심한 컴플렉스 때문에 학교에 제대로 출석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바둑 공부에 열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스타가 된 이후로는 붉은 얼굴이 오히려 자신의 상징이 되었다. 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붉은 얼굴의 바둑왕(紅面棋王)’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이야기가 수록되었을 정도. 잦은 결석으로 중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지만 프로기사로서 활약한 이후 명예 졸업장을 수여받았다고 한다.
동생 저우핑창(周平强, 1982-) 역시 프로기사로, 2016년 현재 六단이다. 형만은 못한 아우
2 주요 대회 입상경력
- 2003년 제16회 후지쯔배 16강. 8회 LG배 세계기왕전 24강. 제5회 춘란배 24강.
- 2004년 9회 LG배 세계기왕전 24강. 제3기 천원전 우승(대 린즈한). 제17회 후지쯔배 8강, 제2회 도요타덴소배 32강. 제1회 중환배 16강.
- 2005년 제2회 중환배 16강.
- 2006년 타이완 천원전, 명인전, 동강배, 왕좌전 우승 등 4관왕
- 2007년 11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대 후야오위 2:1), 제3기 왕좌전 우승(대 천스위엔 3:2)
- 2008년 대만기원 주최 기전 5년 출전정지[2]
- 2009년 기왕전 준우승(대 천스위엔 0:3), 명인전 우승(대 펑징화 3:0)
- 2012년 03.12 제1회 바이링배 본선64강 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