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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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한국어바둑
중국어圍棋, 围棋
일본어碁(ご), 囲碁(いご)[1]
영어Baduk, Weiqi, Go[2]
베트남어Cờ vây (碁圍)
러시아어Го, вэйци, Бадук(падук)
에스페란토Goo

1 개요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 조치훈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고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도 없다. - 이창호

판대기에 돌 놓는 게임. - 서봉수

바둑판이라 불리는 상하종횡으로 각각 19줄이 그려져 있는 평평한 판에 두 명의 사람이 바둑돌을 선의 교차점에 교대로 번갈아 두며 즐기는 놀이. 지구상에서 가장 룰을 익히기 쉽고, 동시에 가장 심오한 보드게임. 13줄이나 9줄로 되어 있는 미니 바둑판도 있다. 이들 바둑판은 초보자들이 연습용으로 두거나 아니면 바둑을 그냥 간단하게 두고 싶을 때 또는 휴대용으로 쓴다.

바둑의 목적은 단 하나, 집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보다 0.5집(반집)만 많이 만들면 이긴다. 문제는 이 조건을 두고 아직까지도 파훼법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왕초보들은 그저 많이 먹으면 이기는 줄 안다. 솔직히 그렇다.

전통 보드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양장기에 대응하는 서양의 게임은 체스가 있지만, 바둑에 대응하는 서양의 게임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바둑은 동양 고유의 보드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마게임과 유로게임이 꽉잡고있는 긱순위에서 100위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추상 전략 게임 부문 보드게임이자, 유일한 클래식 보드게임이다.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즐긴다. 세간의 인식은 어르신들의 소일거리.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데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바둑 말고도 컴퓨터 게임 등 여러가지 오락거리가 많아져 젊은층에게 별다른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다. 아예 젊은층에서는,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을 찾기도 힘든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기원이나 바둑 학원도 정말 보기 힘들다.

영어 표기로 한•중•일 삼국이 각각 'Baduk', 'Weiqi', 'Go'를 사용한다. 북미 및 유럽에서는 일본식 'Go'라는 표기가 일반적.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인공지능 이름인 알파고의 '고'가 바로 이 'Go'. 중국이 발원지지만 20세기부터 구미권은 주로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어 "고"가 대표하게 되었다.[3] 게다가 지금은 바둑계에서 한국사람들이 빛을 내지만, 바둑이 외국에 알려진 초창기만 해도 일본 바둑기사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데 바둑 자체가 서양권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으면서 'Go'가 '가다'라는 뜻의 많이 사용되는 일반동사라서 일상생활에 혼동이 많이 오는 관계로 Baduk, Weiqi라는 표현을 쓰는 곳도 있다. 문자로 쓸 때에는 'Go' 식으로 앞자를 대문자로 하고 앞뒤에 부호를 넣긴 해도 말로 할 때는 혼동될 수 밖에 없기에 서양권에서는 이를 이용한 개그도 있는 듯. 쓰나미도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그래도 2010년대 들어서 'Go'라는 서양 표현을 한국기원에서 'Baduk'으로 바꾸려고 시도중이다. 일본기원선진국 바둑 보급 사업을 2011년 포기하면서 한국기원이 대타로 여류 기사들 위주로 선진국 및 개도국에 바둑 보급사업에 나선 시점부터다. 아예 '보급기사'직을 따로 만들어서 대한민국 국내 및 국외 지역에 바둑보급사업을 할 기사를 따로 뽑아 양성하는 과정도 만들고 있다. 일본기원의 선례를 따르지 않겠다는 생각인 듯. 조혜연 9단, 박지은 9단, 문도원 3단, 이다혜 4단 등이 외국에 자주 나가서 보급사업을 펼치고 있다. 남자 일류 기사들은 한국 국내로 여류 기사들이 인재들을 데리고 오면 지도기를 맺어주는 멘토링을 하는 중. 목진석, 박정상 9단이 제일 적극적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보급사업을 하면서 'Go'로 굳은 표현도 'Baduk'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중. 다만 이런 성과가 나오려면 2030년은 지나야 한다.

초보자들끼리는 장난스럽게 둘 수 있지만 프로 기사들간의 대국은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치열한 수의 전쟁이다. 특히 알파고와 맞붙을 당시의 이세돌은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 상황까지 중에 가장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2 상세

자세한 룰은 여기를 참고.

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하여 '수담(手談)' 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인류가 낳은 다양한 아날로그 게임 중에 가장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할 것이라 추정되는 게임이다. 규칙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금방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규칙이 너무 없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너무 많은 관계로 그 모든 경우의 수들을 다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바둑의 규칙이 간단하다고 알려져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규칙이 간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숙련자라서 익숙하기 때문이다. 입문자에게 최대의 난관은 바로 '룰을 익히는 것'. 시간이 남는 위키러라면 위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 기본 룰을 한번 익혀보자. 머리에 스팀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른 보드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집', '맛' 등의 개념[4]과 대국이 끝난 후 계가를 하는 법 등을 확실하게 체득하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리는 편. 즉 바둑은 입문도 어렵고 숙달되기도 어려운 게임이다. 재미있는건 이 어려운 규정들을 아버지랑 두면서 배우면 순식간에 깨우친다는 것.

당장 집 짓는 법, 돌 따내는 법, 착수금지 등 기본적인 룰을 숙지했다고 해도 그 넓은 바둑판 위에서 당장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바둑은 오랜 시간동안 연구되어오면서 어느 정도 어떻게 돌을 깔아야 되는지,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어디에 돌을 놓아야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데, 정석, 포석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대국이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여기저기서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내 돌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혹은 상대 돌을 어떻게 죽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연구되었는데, 사활이 그것이다.일단 기본적인 정석, 포석법과 사활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초심자 딱지는 뗐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까지 올라가기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 정석과 포석법만 해도 수십가지가 넘으며, 사활 문제로 가게 되면 수천가지 경우는 가볍게 넘는다. 물론 이런 경우를 전부 외우는 건 불가능하고, 바둑을 두다 보면 주변 형세를 파악해서 최선의 수를 짚는 안목이 어느 정도 생기게 된다.

바둑 외적인 대국룰을 따지면 외워야할 룰의 양이 더 늘어난다. 기사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모든 상황에 대한 룰을 숙지하는 것은 어렵다. 심판이나 입회인 등과 마찰이 빚어지기도 할 정도니... 대표적으로 초읽기 상황에서의 화장실 가는 문제. 이는 오래전부터 문제시되어왔던 것으로 관례적으로는 상대 선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면 시계를 정지해 주었다. 그러나 상대가 동의하지 않았거나 혹은 화장실에 얼마나 있어도 되는가(오래있으면서 바둑내용을 생각할 수도 있으므로)는 정해진 규정이 없기때문에 문제가 된다. 2016년 한국기원 규정 개정으로 화장실 가는 것은 마지막 초읽기가 아닐 경우 5분 이내라면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초읽기 상황이면 화장실은 통틀어서 1회만 다녀올 수 있게 정해졌다. 한국기원 규정 개정내역.

이렇게 바둑은 한 수 한 수를 깊이 생각하면서 두어야 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한 판 두는 데 걸리는 시간이 굉장히 긴 편이다. 현대 프로바둑 기준으로, 가장 짧은 편인 TV 방송용 속기전의 경우도 한 판에 1시간은 족히 걸리고, 한국 프로 기전같은 경우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1인당 3~4시간은 주는 편이라 한 판에 거의 하루가 꼬박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일본쪽 프로 기전같은 경우는 아예 각각 6~8시간씩(!)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틀에 걸쳐서 바둑을 두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일본 프로 기전에서는 봉수라는 룰도 만들어서 사용하는 중. 한국이나 중국 기전, 심지어 응씨배에서도 점심시간이 있는 경우에는 봉수를 한다. 현대 바둑에서 기록된 최장시간 대국은 1938년 일본의 바둑 명인 혼인보 슈사이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의 대국으로, 각각 40시간의 제한시간을 부여받았으며 그 중 슈사이는 19시간 57분, 기타니는 34시간 19분을 사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대국이 일반 대국처럼 한 판을 진득하게 잡고 쭉 둔 게 아니라 찔끔찔끔 두는 바람에 무려 158일에 걸쳐서 간신히 완성되었다는 점. 거의 반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봉수도 15번이나 행해졌다고.

번갈아가며 바둑판에 돌을 얹어서 상대의 바둑돌을 포위하면 잡는 룰을 갖고 있지만 상기한 대로 규칙이 없는 만큼 활동이 너무 자유롭다보니 귀, 눈, 덤, 뜀, 맥, 변, 빅, 집, 축, 패, 계가, 고목, 공배, 굳힘, 궁도, 단수, 미생, 빈축, 사석, 사활, 삼삼, 삼패, 쌍립, 소목, 속기, 악수, 오오, 옥집, 완생, 외목, 우형, 잇기, 장생, 장문, 착수, 천원, 판빅, 팻감, 포석, 행마, 호구, 화점, 환격, 화국, 가일수, 귀곡사, 귀 8궁, 끝내기, 날일자, 눈목자, 마늘모, 만년패, 버림돌, 빈삼각, 불계승[5], 빵따냄, 수상전, 수읽기, 순환패, 양단수, 양자충, 옥집삶, 접바둑, 초읽기, 촉촉수, 치받음, 패싸움, 호리병, 회돌이, 후절수, 꽃놀이패, 대궁소궁, 만패불청, 매화육궁, 오궁도화, 유가무가, 육사팔활, 좌우 동형, 착수 금지, 천지대패 등 무궁무진한 용어가 파생될 만큼 심오한 보드게임이다. 즉 다른 고전 보드게임들은 일반 RPG인데 바둑은 샌드박스 RPG라고 보면 된다.

2016년 1월 20일에 19x19 바둑판에서 가능한 배치의 수가 완전히 계산되었다.# 총 208,168,199,381,979,984,699,478,633,344,862,770,286,522,453,884,530,548,425,639,456,820,927,419,612,738,015,378,525,648,451,698,519,643,907,259,916,015,628,128,546,089,888,314,427,129,715,319,317,557,736,620,397,247,064,840,935가지로, 대략 10의 171제곱의 수이다. 가능한 경기의 수는 구골를 뛰어넘는다고 하며[6], 똑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는데 15TB 용량, 8~16코어, 192GB의 램을 가진 서버가 몇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패와 따낸 자리에 다시 둘 수 있고 착수 포기등 방법등으로 바둑판을 전부 매우고 다시 따낸다면 또다시 360가지의 둘 곳이 생기므로 무한으로 보는게 맞다. 반상 위의 우주라는 바둑의 이명이 제대로 들어맞는 부분.

재미를 알기까지 무지 오래 걸린다. 배우기 오래걸리는 데다가 다른 놀이 문화가 발달한 현재, 바둑 인구는 점점 줄어만 간다. 할 만한 놀이가 정말 귀하던 70~80년대에 바둑이 인기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둑 애호가는 전세계적으로 분포하지만, 정식으로 프로 기사를 배출하는 국가는 한국/중국/일본/대만의 단 네 나라 뿐이고 기원으로는 겨우 여섯 곳이다.[7].... 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의 바둑 보급 사업에 따라 유럽연합을 관할하는 유럽바둑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고 프로 입단제도(한국 입단시험 시스템(풀리그 후 듀얼토너먼트)을 받아들였다) 및 대회가 시작되었다. 2016년에는 유럽연합선수권, 라쇼드퐁(스위스), 함부르크(독일),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바둑대회가 개최되고, 한국 바둑기사들이 유럽 프로기사들을 지도하고 제자로 받아주는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한중일 기사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되는 대회를, 국제 대회 정도면 몰라도, 세계대회라고 말하기도 좀 민망한 상황이다. 애초에 본격적으로 하는 나라가 동아시아 빼고는 없다. 그 외 지역 기사들은 실력이 넘사벽으로 한중일 기사들에게 처진다. 동남아나 유럽지역 기사들은 한국기원 단수로 初단 - 三단, 한국랭킹으로 300위 미만 수준.

어떤 의미로는 한 번 배우기 시작하면 타임 리프를 이룩할 수 있는 인류 최초의 원조훼인양성게임. 신선이 바둑 두는 거 보다가 도끼자루 썩을 정도로 시간 보내는 건 일도 아닌 거다. 난가(爛柯)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루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뜻. 술이기(述異記)라는 책에 이 이야기의 자세한 기록이 적혀있다. 중국 진나라의 왕질이라는 나무꾼이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두 동자가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정신 없이 지켜보다가 그 중 한 동자가 건네준 '과 비슷한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무언가의 열매'을 받아 먹으니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아 그 덕에 더욱 정신없이 관전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두 동자는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와 길흉을 관장하는 남두였고 이런 우주구급 존재의 반상대결을 보게 된 나무꾼이 다른 동자의 손짓에 정신을 차리고서 바라보니 도끼 자루가 썩어있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무꾼이 자루 없는 도끼를 들고 마을로 내려가니 자기가 알고 있던 사람들은 진작에 다 죽었고, 자기 집에 가보니 자기 증손자 뻘 되는 후손들이 자기가 나무 하러 간 날을 기일(忌日) 삼아 자기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더라는 이야기.

실제로 한 중생은 군대에서 한 번 바둑을 배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상병 때 바둑을 할 줄 아는 후임을 앉혀놓고 아주 기초 중의 기초만 배웠는데 바둑을 두다보니 어느새 제대 날짜가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축구, 장기와 함께 성행하는 군대 3대 스포츠다. 유머글 중에 바둑에 중독된 목사가 강단에 섰는데 예배에 참가한 사람들의 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바둑돌처럼 보여서 기도를 올리다가 마지막에 '아멘' 이라고 말한다는 게 그만 '아다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다리는 '맞다' 를 뜻하는 일본어 あたる(当る)가 명사형인 あたり(当り)로 바뀐 것. 바둑 용어로는 한 수만 더 두면 상대의 돌을 잡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단수(單手)' 로 순화. 게임 회사 아타리의 어원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바둑이 5단 이상이면 가정, 집, 직업 중에 하나는 없다고 한다.

재미를 알면 진짜 무섭다.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상기한 대로 행동(바둑용어로는 '행마')이 자유롭기 때문에 다음 번엔 누가 무슨 수를 둘 지, 그리고 어떤 수를 두면 다음엔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학자 이덕무는 자제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게 할 것 4가지에 바둑을 넣기도 했다. 나머지 3개는 소설, 담배, 여색. 심지어 바둑을 가리켜 죄의 괴수라고 하거나 바둑두는 소리가 나는 집은 난잡한 집안인 걸 알 수 있다고 까지하고, 당시 왕 정조도 승정원에서 바둑판을 두고 종종 두던 걸 없앴다고 하며 비슷한 의견을 내는 등 지금의 게임규제론자들이 게임을 보는 시선과 유사한 말이 많이 남아 있다. 뭐, 이와는 반대되는 언급으로 공자의 어록 중 "아무것도 안 하느니 차라리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낫다" 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적당히 즐길 경우 괜찮은 취미 생활이라 인증받기도 했다. 유성룡은 국수급의 바둑 실력으로 유명했고, 이순신난중일기에 바둑을 두었다는 내용이 자주 나오는 등 조선에도 바둑을 즐긴 위인이 많이 있다.

현존하는 바둑 기보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국 후한말의 군벌 손책여범과 같이 둔 바둑 기보가 있다.

중국 후한말의 장군 관우는 팔의 독을 제거하기 위해 뼈를 깎이면서도 마량과 바둑을 두어서 주변을 서늘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만큼 배짱이 두둑하고 대담한 관우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지만 마량조차 그 일에 신경쓰지 않고 무덤덤하게 바둑을 두었다 하니 마약바둑의 무서움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게임이었으니 각종 숙어들에도 바둑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초읽기에 들어가다", "이런 호구 같은 자식", "자충수를 두다", "신의 한 수", "승부수를 던지다" 등이 있다. 또한 바둑은 도박의 왕이기도 하다. 실제로 조선시대 내내 바둑은 엄청난 인기를 지닌 도박이었고 꽤나 사회적 문제도 많이 일으켰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기원을 세운 故 조남철 九(단급 표기는 아마추어의 경우 아라비아 숫자, 프로 기사의 경우 한자로 표기가 원칙)단이 내기 바둑을 강력히 반대한 덕택에 현재 바둑은 도박에서 꽤 거리가 있게 됐다고 한다. 뭐 모든 게임이 그렇듯 (즐기는 선에서는) 돈이 걸리면 몰입도가 달라지는 건 사실이긴 하다. 프로 공식 기전은 내기 바둑이 아니지만 아직도 기원 등지에서는 대부분의 대국이 내기 바둑이다. 물론 짜장면 내기 등의 소소한 내기도 많다. 이에 바둑에 스포츠토토를 도입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실제로 공청회도 열었다. 할지 말지 아직 정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고 논란도 있다. 2013년에 와서는 그냥 흐지부지 된 듯하다. 스포츠토토 바둑 적용의 제일 큰 문제는 바둑은 승부조작이 너무나 쉽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설토토는 바둑쪽으로도 범람한다. 승부조작의 마수가 언제든 뻗칠 수 있는 것.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파생 게임인 오목알까기가 있다. 판의 크기를 줄이고 다양한 규칙을 추가한 바투라는 온라인 게임도 있었지만 사라졌다.

이영도판타지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왠지 군인들의 전투력 측정기로 쓰이는 듯하다. 저 위쪽의 '상세' 초입부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즉 '(군사 작전 중에는) 할 수 있는 행동이 너무 많은 관계로 그 모든 경우의 수들을 다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니 높은 수준의 수읽기와 논리적 추론 그리고 수학적인 계산 능력이 필요' 하기 때문에 고급 지휘관에게 필요한 전술적, 전략적 역량을 계측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일 수 있다.

3 동아시아 국가의 바둑

세계랭킹사이트[8]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20년 동안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압도적으로 우세한 스포츠 종목이었다.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는 양궁(여자) 정도. 전성기 때는 쇼트트랙보다도 한국이 더 확실히 세계 최강을 지키고 있었다. 한국 바둑의 여명기와 중흥기에는 피겨 스케이팅김연아처럼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 하늘이 내려준 스타로 인해 갑자기 급부상한 것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조훈현 九단이 마지막 일본 유학파 타이틀 보유자가 되고 그 이후 이창호 九단과 이세돌 九단으로 이어지는 순수 한국파 기사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로는 국가 차원에서 바둑 종목 관리를 하는 중국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예전에는 랭킹 10위권까지는 한국이 우세, 10위권 밖으로는 중국이 우세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2016년 현재는 10위권 안에서의 우세도 확실하지 않으며 게다가 2000년 이후 입단한 한국 기사들의 vs중국전 승률이 40%에 못 미친다고 한다. 이미 중국과 호각인 상태이며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역전당할 수도, 호각인 상태가 장기적으로 갈 가능성도 있었으나, 2015년 이후로는 확실히 밀리고 있는 게 보인다.

1989년 세계 최대 규모로 탄생한 국제대회인 응씨배에서 한국 대표로 유일하게 출전했던 조훈현 九단이 우승한 이래 한국 기사들은 우승을 밥 먹듯이 해왔으며 1993년에는 모든 국제대회의 우승을 한국인이 독차지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이런 일이 꽤나 반복되었다. 1997년에는 서봉수 九단이 진로배에서 다섯 명의 한국 대표팀의 2장으로 출전하여 중국, 일본 대표 9명을 상대로 9연승을 거두어 우승을 결정지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23연속으로 우승하였다.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시대부터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한국 바둑은 이후 최철한, 박영훈, 이세돌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더욱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이창호의 극심한 부진으로 인해 바둑 최강국 자리가 지극히 위태로운 상황. 한국 기사들이 세계대회 결승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지만 이제 결승에 올라가더라도 중국의 젊고 유망한 신예들이 많아서 이제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9] 2013년에는 한국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물론 이는 개인전 한정으로, 단체 기전은 반대로 전부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도 기전 규모도 상당히 축소되고 정상급 기사의 평균 연령층이 올라가는 등 인프라가 많이 약화되었고 중국 바둑의 약진으로 이전과 같은 압도적인 기세는 덜하다. 그래도 해외 보급을 부단히 해서 그런지 미국과 유럽의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들은 한국을 성지로 생각한다. 한상대 세계바둑사 시리즈

한국의 경우에는 밑바닥 바둑 인구가 좀처럼 증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후원까지 줄어들어 바둑 기전 여럿이 없어지는 등 한국기원대한바둑협회의 마땅한 대책이 없이 악순환에 빠져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바둑계의 대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 바둑갤에서도 바둑 망해간다는 한탄 글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 바둑계는 初단이 九단이 되는 것보다 아마추어가 입단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初단이 九단으로 승단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기에는 각 지역 기원마다 은거고수가 널려 있기 때문. 그리고 한국은, 정부에서 인정하는 제도권안의, 정규 학교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한국바둑고등학교명지대학교 바둑학과가 있다. 바둑학과에서 학부뿐만 아니라, 석/박사 과정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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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민국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여론조사.

대한민국의 바둑을 둘 줄 안다고 응답한 바둑인구는 1992년 정점을 찍은 이후 2004년에 바닥(20%)을 찍었다. 바닥을 찍었을 때부터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바둑 후원을 안 해서 사라지고 있었는데, 2013년 여론조사에서 25%로 살짝 반등했다. 바둑에 관심 있다는 응답도 20%로 반등. 문제는 청년층이 바둑을 모르는 현상이 심하다는 것이다. 미래가 안 보인다.(...) 기업들이 다시 바둑대회를 후원해서 기전이 늘어나야 관심을 받으며 할 수 있고, 이는 바둑 인구의 증가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 한국기원2016년 3월 이세돌 - 알파고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로 바둑계가 더 알려지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러려면 한국기원도 계속 바둑 보급에 노력해야 할 듯.

일본은 세계대전이 생긴 이후 1990년 말까지는 요다 노리모토, 왕리청같은 톱기사들의 선전으로 그럭저럭 버티다가 2000년 이후 일본 바둑은 젊은 층의 바둑에 대한 기피로 인해 뚜렷한 쇠퇴를 보이기 시작하며 지금은 옛 명성이 무색하게 비참할 정도로 한국과 중국에 의해 완전히 도태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일본 기사들의 수입은 세계 톱 10 랭킹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인데 그 이유는 일본 내 기전의 상금이 웬만한 세계대회보다 높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큰 기전의 기성전의 경우 현재 우승상금이 4500만엔(한화로 약 4억 8천만원 안팎). 그래서 과거 기성전 6연패에 빛나는 후지사와 슈코 九단은 "나는 1년에 4판만 이긴다" 라는 말을 했는데 기성전 결승은 7전 4선승제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후지사와가 기성전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뽐냈으나 그 외 나머지 기전에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본의 한 바둑 평론가는 "일본에는 2명의 슈코가 있다. 후지사와 슈코, 그리고 괴물 슈코"라는 평을 남긴 적이 있다.

일본내에는 시간 제한이 없는 그들만의 바둑 경기를 펼치며 온실 속에서 갈라파고스화된 일본 기사들이 온실 밖에서 처참히 죽을 쒔다. 시간의 경우 근대에 들어서는 1인당 각 8시간, 총 16시간을 제한하며 대개 하루 안에 끝낸다. 이틀에 걸쳐서 대국하는 건 일본 3대 기전 도전기(결승) 정도가 있다. 2010년 이후로 일본의 바둑 인구는 이전부터 수십년간 바둑기사를 해온 프로들 아니면 씨가 말리다시피했다. 2011년에 일본의 유일한 바둑세계대회였던 후지쯔배가 대회에서의 자국 기사들의 극심한 부진을 이유로 폐지되고 말았으니 말 다했다. 한 바둑 비평가는 바둑은 박물관에서나 보게 될까 두렵다고 칼럼을 쓰기도 했다. 스폰서 구하기가 어려워 대회 수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칼럼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둑에 '제한시간'이라는 룰을 처음 도입하기 시작한 건 일본 바둑계이다. 근대 이전의 바둑에선 애초에 시간제한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초기 현대바둑에선 혼인보 슈사이와 기타니 미노루의 대국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사람당 40시간이라는, 사실상 시간제한이 없는 수준인 시간을 부여받았지만, 우칭위안 등 바둑계 거장들의 노력 덕분에 점점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제한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제한시간을 점점 줄이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도 아직까지 6~8시간대의 제한시간 룰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은 일본의 고립화에 한몫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일본 프로 기사들은 제한시간이 짧은 국제전에서 초읽기 등에 몰렸을 때 말아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강동윤 등의 기사들이 속기에는 매우 강하지만 속기전에 비해 제한시간이 긴 편인 장고바둑에선 비교적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상반된다.

한 번은 바둑학과에서 바둑을 둘 때 스폰서가 새겨진 장갑을 착용하는 대안으로 스폰서 마련의 아이디어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협회에서 무시했다. 사실 바둑 인구가(특히 청소년층) 줄어든 것과 세계 대회에서 힘을 못 쓰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다. 히카루의 바둑(고스트 바둑왕) 덕택에 그나마 기운을 차렸다지만 별로 전망이 좋지는 않다. 그나마 일본이야마 유타 九단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바둑이 밑바닥 인기를 회복하는 움직임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야마 유타의 실력이 부족해서 세계대회에서 광탈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커제박정환, 김지석, 스웨도 한번씩 이겨주는 이야마가 약한 기사라는 뜻은 아니라 이야마 유타를 받쳐줄 수 있는 일본의 바둑기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홀로 나와서 중도에 탈락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이다. ~~고장난명~ 예를 들어, 격투기로 비유하자면 자신의 연습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경쟁자와 강한 스파링 상대가 많아야 실력이 더욱 상승하면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10] 한 마디로, 일본에서도 강한 바둑기사가 많아야 한국과 중국의 실력이 있는 경쟁 바둑기사들을 탈락시킬 수 있고 그만큼 이야마 유타가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계대회 16강 대진표를 보면 보통 중국이 8-10, 한국이 5-7, 일본의 이야마 유타 이런 꼴이다.(...) 중국기사와 한국기사가 국내기사끼리 내전도 벌이고 한중전도 하면서 4강이 추려지는 것과 다르게, 일본은 이야마 유타가 한번 지면 그냥 선수가 없는 사태가 지속되니까 문제인 것이다. 산술적으로 세계대회 일본 대표로 유일하게 16강에 올라온 이야마 유타가 1/2의 승패 확률로 우승에 도전한다고 치면 1/16의 확률인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은 그래도 살아남는 사람이 좀 있으니 저거보단 높지만... 1988년 조훈현응씨배에 딱 한명 출전해서 우승까지 한 이런 케이스가 말 그대로 3.3 혁명급 기적인 것이지 이런 케이스를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게다가 이야마 9단은 일본기원잘라파고스 막장 짓거리로 인해 세계대회 출전마저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이야마 유타에 한해 1년에 세계대회 예선 출전 자체를 7개 기전 이상 하지 못하게 막아놓는 희대의 막장 짓거리를 하는 곳이 일본기원이다.(...) 사유는 이야마가 세계대회 자꾸 출전하면 일본 국내리그 후원사가 끊기니까. 그래서 삼성화재배만 해도 일본 대표에는 늘 이야마 9단 이름은 있지도 않고 고노 린이나 왕밍완같은 이름만 있다. 당연히 죄다 예선탈락해서 본선에 일본 기사는 제로다.(...)

이런 일본도 2016년 1월, 드디어 한국, 중국이 다 하던 바둑리그를 개최하는데 성공하면서 현대화에 맞춰서 따라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늦기는 엄청 늦었지만... 일본바둑리그 협회는 2016년 1월 1일 설립되었으며 공식사이트는 이곳이다. 첫 회라 그런지 아직 스폰서도 없으며 리그 우승 상금(승리수당이 아니다)과 준우승 상금이 각각 20만엔과 10만엔으로 굉장히 초라하지만 일본에서도 드디어 바둑리그가 시작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역대 바둑 프로의 ELO 레이팅을 적용한 랭킹을 보여주는 동영상. 일본의 초기 강세와조치훈의 1위 스틸 한국이창호이세돌의 합작품의 장기집권, 현 중국의 강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의 알파고

한국기원에서는 ELO레이팅이 아닌 다른 방식의 랭킹 평가제도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1달에 한번씩 그 달에 기사가 두었던 바둑들의 등급을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분류하고 상대방의 실력, 그리고 승패에 따라 승점과 감점 가중치를 달리 하여 계산하는 방식이다. 2010년에 한번 개정된 것을 지금까지 쓴다.

한국기원 기준 역대 1~5위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동영상.

4 한중일 외 국가의 바둑

미국 바둑 협회 등에는 프로기사들이 소속되어 있지만, 동아시아 기원에서 프로면장(免狀)을 받은 후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사들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the surrounding game"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지고 있고 한국의 프로 기사들이 직접 바둑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주로 미국 바둑협회 소속 기사들은 일본기원에서 프로입단시험을 치르는 편이다. 한국기원은 입단시험을 치르는 서양권 연구생은 거의의 없다. 규정상 금지된 건 아니나, 한국에 와서 바둑 교육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한국기원 소속 연구생들의 생활이 열악한 편이라... 일본기원은 유학생들이 그래도 좀 있다. 세고에 겐사쿠, 기타니 미노루 등이 만들어놓은 연구생 기반이 2010년대까지 그래도 좀 편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잡힌 편이기 때문이다. 중국기원은 그냥 외국 유학생 금지고...

북한도 바둑 인구가 있지만 실력은 한중일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진다. 최고수가 한중일의 아마추어 수준이다. 그래도 북한 기사들이 세계대회나 남한 대회에 가끔 초청되어서 출전하는 경우가 있는데[11] 남한 기사들이 북한 기사들 만나면 인터뷰하고 사인 받으려고 난리가 날 정도로 반응은 좋다. 남북한관계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북한 프로기사들이 옛날 농촌 청년처럼 순수하다고 남한 기사들이 좋아한다.(...) 북한 기사들과 많이 인터뷰 해본 유창혁 9단이나 서봉수 9단 등도 예의가 바르다며 칭찬하기도 하고.

유럽지역에서는 일본기원이 초기부터 개척사업을 하다 일본기원의 갈라파고스화로 인해 개척사업을 포기, 2007년 유럽 바둑 기반이 파탄날 때쯤 한국기원에서 박지은 9단(독일), 조혜연 9단(영미권)을 파견하며 다시 기반을 잡고 2010년대부터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유럽에는 프로바둑을 담당하는 기원은 없고 바둑협회가 아마추어와 프로를 동시 관할한다[12]. 유럽바둑협회가 유럽연합 전체를 관할하며, 비EU국가에도 지부가 있다. 개별 유럽 국가에서도 NOC같은 조직이 존재. 유럽 지역에서는 유럽연합선수권, 라쇼드퐁(스위스), 함부르크(독일),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바둑대회라는 4대 국제대회가 성립하고 매년 개최가 되고있다. 하지만 승단 규정이 매우 까다로운 데다 대회가 적고, 바둑 연구가 활발하지 못해 유럽 바둑 챔피언(유럽연합선수권 우승)이라는 판후이도 단수로는 2단, goratings의 ELO 레이팅으로는 3000점(기준선이다)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아직 약하다. 한국기원에서도 계속해서 보급기사를 파견하고는 있지만 힘에 부치고 있다.

5 연구생

한국의 바둑 연구생제도는 1~10조부터 각조당 12명씩 총 120명이다. 1-5조를 1군 6-10조를 2군이라고 칭한다. 주말 한달내내 리그를 통해 상위 4명 승급 하위 4명 강단. 승강단체제로 상위성적유지및 연구생입단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연구생 10조에 들어가기위해선 연구생선발전이라는것을 거쳐야하는데 상위성적을 낸 학생들이 새로 들어간다. 미생의 세계 그러나 앞 링크와 상반되게 이세돌 9단은 프로가 되기 쉬워졌다고 말한다. 연구생들이 정상급 기사를 이긴다는 건 아무래도 과장이 많이 섞인 듯하다. 박영훈 九단도 입단대회 확장 첫해(3 -> 6명)에 3등으로 입단한 박정상 九단을 입단 초기에 보고 "쟤가 입단을 어떻게 했냐"며 깐 적이 있다.(...) 다만 박정상 九단은 특유의 엄청난 노력으로 정상급 기사에 오른 드문 케이스다.

이세돌 九단이 입단하던 시절과 지금의 입단 난이도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쉽긴 하다. 이세돌 九단 시절에는 1년에 딱 한번, 그것도 2명, 여자기사 1명 해서 1년에 3명만 입단하던 시스템이었고, 괴상한 승단시험도 있었으니까... 당시 입단 기준은 연구생 + 일반인 풀리그를 치러서 갑조/을조에서 전승자(승률 100%)만 입단(여류기사는 입단시험 우승자만)했다. 최소 조건이 무려 14연승.(...) 전승자가 없는 해에는 아예 입단을 안 받는 해도 있었다![13] 지금은 이리저리 입단대회도 많아지고 패자부활전 입단제도도 생기고 해서 남녀 합쳐서 1년에 12명-15명이 입단한다. 이세돌, 박영훈, 조훈현 등 이전세대 입장에서는 문턱이 굉장히 낮아졌다고 느낄 법 하다.

다만 연구생 중에서 입단이 늦었던 사람들의 경우 좀 전성기가 빨리 와서 대회 본선에 바로 나가는 경우가 있는 편이다. 위태웅 初단의 경우 2016년 2월에 입단한 기사인데도 2016년 5월 국제대회인 신아오배 본선에 바로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입단한 지 3개월 된 신예가 중국랭킹 10위권인 구쯔하오 五단을 꺾고 본선에 진출한 거라 화제가 된 것.

연구생 단계에서 국제대회 본선에 일반조(아마조 말고)로 진출할 경우, 입단 누적포인트 100점 제도에 따라 한국기원에서 특별입단을 시킨다. 조인선 三단의 경우 2011년 삼성화재배 일반조 본선 진출(프로기사 3명을 꺾었다)로 연구생에서 특별입단이 허가되었다.

6 바둑의 기본 규칙

  1. 흑과 백을 쥔 사람이 한 수씩 번갈아 가며 둔다.
  2. 돌이 놓이는 위치는 선과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3. 선과 선이 교차하고 돌이 놓이지 않은 지점이라면 어디든지 돌을 놓을 수 있다. 단, 아래의 8~9와 같은 예외가 존재한다.
  4. 일단 놓인 수는 무르거나 움직일 수 없다. 단, 온라인 대국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 무르기를 인정한다. 조작 실수로 엉뚱한 곳에 착수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5. 집(家)을 많이 지은 쪽이 이긴다. 집의 개념은 다음 문서를 참조하자
  6. 중도에 기권할 수 있다. 기권을 흔히 '돌을 던진다' 또는 '돌을 거둔다' 라고 표현한다. 또한 기권승은 불계승, 기권패는 불계패로 표기한다.
  7. 상대방의 돌로 둘러싸인 돌은 죽은 돌이 되며 둘러싼 쪽의 대국자가 들어내야 한다. 잡힌 돌은 계가할 때에 상대의 집을 메운다.
  8. 사방이 다른 색 돌로 둘러싸인 곳에는 착수할 수 없다. 단, 둘러싼 다른 색 돌 중 끊어진 부분이 있어서 단수가 되어있을 때는 착수가 가능하다. 물론 단수가 된 그 다른 색 돌은 잡힌다.
  9. 동일한 패의 형태는 반복될 수 없다. 즉, 패가 나서 자신의 돌이 잡히면 그 바로 다음 수에는 다시 잡아낼 수 없고 다른 곳에 한 번 이상 둔 후에야 다시 잡아낼 수 있다(패의 규칙).

규칙 자체는 간단하나 제한된 바둑판 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여태껏 수많은 수와 이론, 정석들이 연구되어 있으며 상대와 자신의 수 하나하나에 엄청난 변수가 생기기에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필요로 한다. 흔히 바둑을 배운다고 하는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5번을 실행시킬 수 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상대의 5번을 방해하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 말해 이 규칙은 엄밀한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것이다. 또한 5번의 경우 중국식 룰에 해당된다고 보기에는 좀 미묘하다. 자세한 규칙은 아래에 서술한다.

6.1

바둑은 흑돌을 쥔쪽이 먼저 두는데,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에 백을 쥔 상대방에게 추가 점수를 주는데 이것을 이라 한다. 과거 일본식 덤은 4집 반 혹은 5집 반이었지만 바둑이 발전됨에 따라 흑이 갈수록 유리하다고 여겨져 2016년 현재 한국/일본은 6집 반이며 중국은 7집 반을 준다. 이때 반집은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인위적 장치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해도 3패빅, 4패빅, 순환패, 장생 등의 동형반복이 생기는 경우 무승부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따기 수준으로 확률이 낮기 때문에 사실상 바둑에는 무승부가 없다고 봐도 된다.[14]

바둑을 두면 매 판마다 대국료가 나오는데 생계가 곤궁한 두 기사가 서로 짜고 몇 번씩 무승부를 내서 대국료를 많이 타간 사건이 덤을 도입하는 데 발단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최초로 덤을 도입한 바둑계는 바둑이 먼저 융성한 일본 바둑계이다). 2009년부터 삼성화재배에서는 256강부터 대국료 대신 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는 초창기 4집 반 등으로 비교적 덤을 짜게 주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덤이 점점 증가해 현재 6집 반(한국)에서 7집 반(중국) 정도까지 올라왔다. 한국에서는 처음엔 5집 반 룰을 이용하다가 후일 바둑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며 무려 19줄이나 되는 그 넓은 바둑판에 5집 반을 줘도 흑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후 한국에서는 주로 6집 반을 사용한다. 그러나 6집 반을 주고도 흑이 아직도 유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식 바둑룰에서는 현재 덤이 7집 반(중국식 표기법으로는 3¾子, 응씨배에서는 '8점, 집 차이가 딱 덤만큼이면 흑이 이김')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덤을 많이 주는 경향이 있다느니, 중국식 룰에서는 6집 반 덤이 존재할 수 없다(3집 반, 5집 반, 7집 반 등 쉽게 말해 홀수만 가능하다)느니, 수학적인(?) 이유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마지막 공배를 누가 채우느냐에 따라 중국식 계가 룰에서는 승부가 뒤집히기 때문이라느니,짝수+반집 해놓으면 황금의 분쟁이 실시간으로 터진다느니 이런 말이 이전부터 이 문서에 들어가 있지만(심지어 수학을 아는 사람도 이런 착각을 한다), 사실은 수학까지 동원할 것도 없고 산수와 바둑 역사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중국식 계가법은 바로 아래 항목에서도 설명하다시피 '바둑판에서 살아 있는 돌'도 집으로 치기 때문에, 가로세로 19줄짜리 바둑판에서 흑집과 백집을 더하면 반드시 19²=361이 나온다. 그래서 중국식에서는 361/2=180.5를 넘기는 쪽이 이긴다(그러니 바둑 끝나고 계가할 때 한쪽만 세도 결과를 알 수 있지만, 그 한쪽조차 집 수가 180 안팎이니 세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전문기사제도가 1982년에야 생겼는데, 이때 일본식 계가법의 맞바둑 덤은 이미 5집반이 정착한 지 오래였다. 아래에서도 나오다시피 중국식이나 일본식이나 웬만하면 결과가 같으니 덤을 일본식과 같게 하는 쪽이 교류하기도 좋다(실제로 중국은 계가법과 바둑알 생김새 빼고는 거의 다 일본식을 받아들였다. 흑이 먼저 둔다든지 바둑판 생김새라든지 이런 것도 모두 일본식이고, 중국이 여는 대회 이름을 영어로 적을 때도 Weiqi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때 중국식 덤은 5.5/2=2.75였다.
덤이 5집반이면, 흑은 집이 180.5+2.75=183.25보다 많으면 이긴다(백은 집이 180.5-2.75=177.75보다 많으면 이긴다). 덤이 6집반이라면? 중국식으로는 6.5/2=3.25니까 흑은 집이 180.5+3.25=183.75보다 많으면 이긴다(백은 집이 180.5-3.25=177.25보다 많으면 이긴다).
덤 5집반이나 6집반이나 흑은 184 이상, 백은 178 이상이면 이기고 흑이 183 이하, 백이 177 이하면 진다. 물론 중국식 계가법에서는 흑과 백 어느 쪽도 차지할 수 없는 공배가 생기면 반씩 나눠가진다는 규칙(이건 응씨배 계가법에서도 받아들였다)이 있으니 흑집 183.5, 백집 177.5를 기준으로 승패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실제 바둑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겠는가? 처음에 맞바둑 덤을 일본식 계가법에서 썼던 5집반에 맞췄을 뿐, 6집반(중국식으로 3¼子)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중국식에서 지금 쓰는 덤은 3.75, 그러니까 7집반을 반으로 나눈 값이니 흑은 집이 180.5+3.75=184.25보다 많으면 이긴다(백은 집이 180.5-3.75=176.75보다 많으면 이긴다). 그러니 흑은 185 이상, 백은 177 이상이면 이기고 흑이 184 이하, 백이 176 이하면 진다.
그리고 361은 홀수다. 홀수는 짝수와 홀수를 더하여 나오는 값이다. (공배를 나눠가지지 않는다면)흑집이 짝수면 백집은 홀수, 흑집이 홀수면 백집은 짝수다. 또 짝수와 홀수의 차이는 홀수다. 그래서 중국식에서 흑집과 백집의 차이는 웬만하면(공배를 나눠가지지 않는다면) 홀수다. 그렇기 때문에 응씨배 덤이 짝수(8)고, 중국식 덤도 3.75나 '4, 딱 덤만큼 차이나면 흑승'이나 똑같은 말이다. 중국식 계가법으로 불계 선언 없이 끝까지 둔 바둑의 결과를 일본식으로 적은 것을 보면 백승일 때 반집승, 2집반승, 4집반승…이고 흑승이면 1집반승, 3집반승, 5집반승… 이렇게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쪽도 차지하지 못한 공배가 (홀수로) 있다는 뜻이다.

요약하자면 중국식 계가법은 흑집과 백집의 차이가 거의 홀수로만 나오는데(그래서 일본식과 달리, 접바둑이라도 흑집과 백집이 같게 나오는 결과는 거의 없다), 1982년에야 생긴 중국프로바둑에서 덤을 일본식에 맞춰 5집반으로 잡았기에 덤을 적어도 2집씩 조정해야만 덤을 바꾼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일본식 덤이 4집→4집반일 때부터 중국식과 교류를 했다면 중국식도 덤이 4집이나 4집반인 시기가 있었을 테지만(덤 5집반일 때와 결과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이건 가능하다) 이쪽은 확인이 필요하다.

덤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바둑계에서는 대체로 6집 반은 흑이, 7집 반은 백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15] 다만 6집 반에서 흑이 유리한 정도보다는 7집 반에서 백이 유리한 정도가 더 크다는 것이 바둑계의 통념.[16][17] 물론, 일본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5집 반의 흑은 중국식 7집 반의 백보다도 더 유리하다(...). 덤에 따른 흑백 승률.

6.2 중국식과 일본식, 그리고 한국식 룰

중국과 일본, 한국이 모두 바둑을 두고 있으나 각 국가에서 정한 바둑의 룰이 각각 다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일본식 룰을 따랐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룰이 거의 유사하지만 중국은 한국/일본과 약간 차이가 있다. 세계대회에서는 보통 대회가 열리는 국가의 룰을 따르거나 대회 자체에서 어떤 룰을 따를 것인지 정한다.

이렇게 룰이 다른 이유는 승부를 결정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기가 가진 '집' 의 양으로 승부를 결정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자기가 가진 '집' 과 바둑판에 살아있는 '돌' 의 수의 합으로 승부를 결정한다. 여기서 중국식의 룰을 채택하는 경우 사석이 승패에 무관하기 때문에 상대편에게 주게 된다. 여기에 황금의 분쟁이 발생하는 계기가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중국식 룰은 간명하다. 모든 경우를 실전해결로 한다고 해도 문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바둑을 다 둔 후에 자신의 집을 메워도 전혀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일본식 룰에서는 수많은 상황에 따른 해결방안을 룰에 계속 추가해야만 한다. 대신 일본식 룰은 중국식 룰에 비해 계가(집을 계산하는 것)가 훨씬 쉽다.

한국식 룰은 일본식 룰과 거의 유사하지만 일본식 계가 방식을 채용하면서 최대한 많은 상황에서 실전해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룰이 이렇게 다른데 한국 기사들이 중국 바둑 리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룰로 한 판의 바둑을 계가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승패의 결과가 같게 나오기 때문(99.9% 정도 일치)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바둑은 흑백이 번갈아가며 한 번씩 두므로 '바둑판 위의 돌 수+잡힌 돌 수=바둑판 위에 놓은 돌의 총 수' 는 흑백이 동일하거나 하나 차이가 되기 때문이다. 즉 바둑판 위의 돌 수가 상대보다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돌을 많이 잡았다는 말이 되므로 결국 마찬가지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한국-일본 룰은 100% 일치한다.

물론 자기 집을 스스로 메우는 경우에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손해가 되고 중국에서는 손해가 없이 단지 착수 기회를 기권하는 결과가 되는 차이가 생기게 되지만 중국식 룰이라고 해도 스스로의 집을 메우며 착수를 기권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귀곡사 항목 참조.

다만 마지막 수를 흑이 두는 경우 한 집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배를 메우는 과정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마지막에 공배를 메우는 것은 승패와는 관계가 없지만 중국식 룰에서는 마지막 수를 흑이 가져가느냐 백이 가져가느냐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기사들이 중국식 룰에 적응 못해서 역전패하는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다.

참고로 대체 왜 다른 방식의 승부방식이 선택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대 한국의 순장바둑의 승부방식(계가법)은 또 현대의 두 가지 계가법과는 또 완전히 다르며 이 또한 어느 정도(이 경우는 좀 많이 차이가 난다) 승부가 비슷하게 결론지어진다.

이러한 룰의 차이 때문에 대회 도중 사건사고가 간혹 발생하기도 한다. 사석(死石) 1개 때문에 1집 차 승부가 실제로 일어난 경우도 있었다. 일명 황금의 분쟁이 그것.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크게 조명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측에서는 제법 말이 많았었고 그 후에 일어났던 김은선 四단과 루지아 二단간의 룰에 관한 논쟁 등이 있다.

7 바둑의 역사

현재는 바둑판에 가로세로 19개씩의 선이 있지만 초창기에는 11줄~16줄인 때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그 발원을 명확히 알 수 없고 특히 중국에서는 지역마다 굉장히 다양하게 되어있어서 처음엔 몇 줄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나라 바둑의 기원은 '순장바둑' 으로 삼국시대 백제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도 역사적으로 명확한 사실은 아니며 오히려 순장바둑이 조선 말기에야 나타났다는 의견도 있다. 바둑사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할 듯. 다만 순장바둑은 현재 사장된 룰이다. 광복 이후 한국 바둑의 갈라파고스화 방지 차원에서 한국 바둑의 룰을 일본식으로 갈아탔기 때문.

바둑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중국 고대에 요 임금이 망나니였던 자신의 아들의 수양을 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요 임금은 신화적인 성격이 강해 실존인물인지 의심스러우나 적어도 춘추시대에 바둑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 사람인 공자가 바둑을 언급하였다. 맹자 역시 바둑을 지나치게 두는 것을 경계하는 말을 남겼다. 맹자가 이야기한 다섯 가지 불효 중 두 번째가 '쌍륙이나 바둑하고 술 먹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공양을 돌아보지 아니함' 이며 같은 말을 소학(小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둑 많이 두면 불효자 인증 사마천사기를 보면 전국시대의 인물들이 바둑을 언급하는 경우가 가끔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판은 중국 전한시대 한경제 대의 바둑판이다. 나무판이 아닌 도자기를 깎아서 만들어졌으며, 일부 파편만 발굴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대처럼 19x19 사이즈가 아닌 17x17 사이즈의 바둑판으로 추정된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바둑알은 서진시대의 물건이며, 특이하게도 돌을 깎아서 만들지 않고 모양새가 좋은 돌을 모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정창원(쇼소인)에는 바둑판인 목화자단기국(木画紫檀棊局)과 바둑알인 감/홍아발루기자(紺牙撥鏤棊子, 紅牙撥鏤棊子) 세트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화점 수만 제외하면[18] 현대에 쓰이는 바둑판과 형태가 동일하고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바둑 세트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자왕이 선물로 보냈다고 알려져 있으며[19] 쇼토쿠 태자가 애용했다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둑알 색이 현재처럼 흑백이 아닌 빨간색과 감색(짙은 파랑색)이며 바둑알 하나하나에 꽃과 새를 새겨넣어서 예술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보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손책여범이 둔 바둑이다. 이 기보에 네 귀 선착->걸침->눈목자 굳힘 등의 초보적 정석 개념이 이미 나온다. 손책-여범(孫策-呂範) 기보는 중국 송나라 이일민(宋李逸民)이 편저한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 실린 기보인데 프로 기사 경력의 바둑 고수이자 저술가(문용직)는 이를 '위작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고 단언한다. 포석의 산책 - 고대 중국 포석의 갈등.

또한 원나라 시대에 작성된 사활 풀이집인 현현기경이나 관자보 같은 것은 오랜 옛날임에도 불구하고 난이도와 문제 풀이의 독창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현재 프로 기사 지망생들에게 애용되는 사활집이다.

세설신어에는 남조 귀족들이 바둑을 둔 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다. 바둑 실력도 서로 평가하였는데 구품관인법에서 따와서 일품(一品), 이품(二品) 등으로 평가하였다.

한국에는 가장 오래된 바둑에 대한 기록이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장수왕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내 개로왕과 바둑을 두게 하는 한편 백제를 염탐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바둑이 본격적으로 근대바둑으로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은 종주국인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부터였다.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거물들이 바둑을 좋아하였으며 그 결과 국가 차원에서 바둑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수립한 뒤 바둑을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기소(碁所)라는 관청을 수립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의도는 전쟁이 끝나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에게 바둑을 두게 함으로써 관심을 돌리려는 생각이었다. 이 기소의 최고 책임자를 임명하는데 이 책임자(기소 명인)는 당대 바둑의 최고수여야 했다. 기소 명인의 녹봉은 당대 영주급인 데다 기소 명인이라는 칭호에 대한 매력 때문에 당대 바둑 고수들은 사활을 걸고 바둑 실력을 연마하였고 그 결과 이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4개의 바둑 가문이 성립이 되었는데 그들은 혼인보, 이노우에, 야스이, 하야시였다.

네 가문이 기소 자리를 놓고 수백 년 간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바둑은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현대 바둑의 이론이 정립되는데 즉 귀에 선착->변으로 발전->중앙으로 진출이라는 것이라든지 세력, 실리의 구분, 정석 등등이 거의 현대 바둑과 유사한 경지에 오르게 된다.

특히 이러한 막부 시대의 일본 바둑 기사 중 가장 돋보이는 기사로는 혼인보 도사쿠가 있다. 도사쿠는 당대 13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대 최고수들을 모두 선 치수 이하로 접을 수 있는 실력자였다. 또한 도사쿠는 돌이 서로 얽혀있는 과정의 효율을 매우 중시하였고 따라서 이미 놓여져 있는 돌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용하는가 식의 새로운 방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막부 시대에서 도사쿠 이외에 널리 알려진 기사는 혼인보 슈사쿠로 그는 고스트 바둑왕의 소개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어성기라 불리는 막부 앞에서 두는 바둑에서 19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다만 그는 기소 명인이 되지는 못했는데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망시 七단이었고 따라서 명인(=九段)이나 기소(슈사쿠의 스승인 죠와 이후 공석)가 될 수가 없었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혼인보도 아니었다. 후계자로 지명된 상태에서 사망하였으므로.)

슈사쿠의 19연승은 당대 최고수를 상대로 한 것이며 아무리 1인자라 하더라도 한두 판은 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보기 힘든 대기록이다. 물론 이창호 역시 프로 기사들 상대로 41연승의 기록을 세웠으므로 불가능한 기록은 아니다[20]. 또한 당시엔 시간 제한이 없이 물 쓰듯이 시간을 쓸 수 있었으므로 현대 바둑에서 볼 수 있는 초읽기로 인한 착오 등이 적었다. 때문에 보다 정밀한 대국이 가능하였고 따라서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진 기사들을 상대로 전승을 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무난하였다. 게다가 선수인 흑돌로 두어서 전승이라고 한다. 선수인 흑이 유리하기에 덤을 주고 시작하는데 당시엔 덤이 없었다. 즉 비슷한 실력이면 덤 없이 흑돌 잡고 무조건 이긴다고 봐야 한다. 당시 바둑 연구가 덜 된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것.

그 뒤 막부가 붕괴되자 기소가 없어져 4개 가문은 직격탄을 맞았고 그 결과 각 가문들은 해체되는 수순을 맞는다. 그 뒤 각 가문 출신들의 고수가 모여 일본기원을 수립한 뒤 신문사를 스폰서로 하여 혼인보라는 타이틀전을 개최하여 현대 바둑 선수권전(챔피언전)의 효시가 된다. 이들 일본 기사들은 한국과 대만 등에도 건너가 활발히 보급하였는데 이때 한국 최고수와 일본 프로 기사와의 치수는 석점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보급활동 중 중국에서 발굴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오청원이라는 기사는 일본에서 일인자가 되기도 하고 역시 한국에서 발굴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조남철은 한국으로 귀국하여 한국기원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국 프로 기사 바둑 단체를 출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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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까지 한국 바둑기사 우승 경력 횟수.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열렸던 모든 기전 횟수 중에서 조훈현 - 이창호 두 명이 획득한 타이틀 수가 전 역사 우승 기록 수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저 그래프에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한국기원이 창립된 이후의 한국 바둑사 전체에서 말이다.

한국 바둑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바둑/한국의 역사를 참조.

2010년대 들어서 2016년 7월 이세돌 九단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여 알파고와의 대국 과정을 소개하고 바둑에 대한 홍보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세계 바둑계에서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것은 이세돌 九단이 사상 최초이다.

8 남녀 실력격차

Q : 바둑은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여자가 더 잘하는데 바둑에선 왜 여자가 남자보다 약할까요.

A : “(여자가 남자보다) 감성적이고 이성적 힘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은 것 같아요. 두뇌가 다른 게 아닌가 싶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기면 “여자 아니다”고 말하는 거죠. 또 여자 스스로 남자한테는 안 된다는 자격지심도 있고요.”
- 전 여류 최강자 루이나이웨이 九단(2011년) 기사

Q : 남녀의 기량 차이에 대한 얘기가 다양하다.

A: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나다. 판단력·예측력에서 차이가 나는 듯하다. 바둑도 그렇다. 남녀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32강전은 특별했다. 상대들이 실수를 하고 나는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임할 수 있었다.“
- 2016년 현재 여류 최강 위즈잉 五단 기사

남자 바둑 프로기사와 여자 바둑 프로기사 간 실력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여류기사 1위인 위즈잉(중) 五단은 세계랭킹 100위권 밖이고, 한국 여류바둑 최강인 최정 六단은 150위권, 일본 여류바둑계를 평정한 셰이민 六단은 300위 밖이다. 상위 100위 안에는 전부 남자기사밖에 없다. 그나마 이것도 과거 90년대와 2000년대에 비하면 실력차이가 상당히 좁혀진 것.

남자 바둑기사들과 여자 바둑기사들의 대국 스타일의 차이 때문인데, 남자 기사들은 어느정도 '타협'이 성립하는데 여자 기사간 대국에서는 자존심 싸움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살벌하게 전투가 전개된다. 타협따윈 없다.[21] 이 차이가 실력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알파고이세돌의 대국에서 이세돌이 부분 부분에서 포인트를 땄지만 알파고의 그림에 갇혀버리는 그런 상황이 남자 - 여자 바둑 대국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여류 기사들 바둑을 중계하는 남자 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여자 바둑은 왜 이리 살벌한지 모르겠다"인데 보통 이렇게 '무서운' 대국들은 결과가 좋게 끝나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이 물러서서 타협을 해버리면 순식간에 페이스에 말려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성기의 이창호 - 조훈현같은 케이스랄까.

위즈잉(중), 최정(한), 셰이민(일), 왕천싱(중), 오유진(한), 조혜연(한), 김혜민(한), 후지사와 리나(일)같은 최정상급 여류기사들이라 해도 남자 기전으로 들어가면 본선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줄줄이 탈락하거나,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하거나 한다. 루이나이웨이 九단이 이창호 九단, 조훈현 九단을 격파하고 타이틀을 딴 것이 그야말로 전설이고, 그나마 박지은 九단이 요다 노리모토 九단을 이긴 정도가 고작이다. 당시 대회에서 박지은은 1차전에서 요다를 이겼지만 이 후 중국의 위빈 九단을 만나 패해서 곧바로 탈락했다.

그나마 실력으로 남자 기전에서 가능성이 있는 여류 기사라면 위즈잉 五단, 최정 六단 정도. 사실 이런 남녀 실력차를 극복하려면 여류 바둑대회와 성별 차별이 없는 대회가 더 많아져서 여류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남자 기사들의 기풍을 흡수해서 연구할 수 있도록 대회가 많이 생겨야 한다. 하지만 그나마 남자 기전도 후원 기업이 줄어들어서 고생하는 마당에 여자 기전도 발전이 막혀서... 어렵다. 그것도 많이.

9 바둑과 병역

프로 기사들에게 처음부터 예술체육요원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 바둑의 역대 1인자인 조남철-김인-조훈현 모두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서봉수, 유창혁 등도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일본에서 1인자로 군림하고 있던 조치훈의 경우만 유일한 면제였는데 당시 군사정권이 손을 썼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이 한국기원 4대 이사장을 지낸 적도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한국 바둑계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군사 정권이 어느 정도 기여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프로기사들의 예술체육요원 계기를 제공한 것은 이창호이다. 1993년의 이창호는 국내기전 12관왕, 연간 90승으로 당시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데다 국제기전에서도 조치훈에게 3:0 영봉승을 거두면서 동양증권배 2연패에 성공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창호가 신검을 받고 입대 영장이 나오는 1994년 7월이 되자 바둑계는 패닉에 빠졌다. 결국 한국기원 기사회 차원에서 '체육의 경우 국제경기 입상자는 예술체육요원이 있는데 바둑인은 그런 게 없다'며 징징질을 시전한 덕분에 국회에 프로 기사예술체육요원제도의 확대 적용을 청원하였고, 105명의 국회의원이 진정서를 내면서 일사천리로 이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일명 '이창호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이창호가 최초로 그 혜택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중일 바둑 삼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판단한 국제기전을 하나씩 선정하여 병역 특례를 줬다. 이것은 바둑을 예술로 보고 병무청에서 지정하는 국제 예술 대회 2위 안에 드는 사람에게 예술체육요원을 주는 것을 적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기전으로는 동양증권배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IMF 사태로 대회가 중단되었다. 이후 삼성화재배나 LG배 가운데 하나의 기전을 정해 대체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2008년에 바둑이 체육특기로 분류되면서 없는 일이 되었다. 중화권에서 개최하는 기전으로는 응씨배가 있는데 엄밀하게 중국이 아니라 대만 개최의 기전이므로 '중화권' 의 개최 기전이다. 또 일본의 기전에서는 후지쯔배가 선정되었다. 이 3개의 대회에서 2위이내 (우승 또는 준우승, 즉 결승에 진출하면 혜택이 부여된다.)를 기록한 기사들은 모두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동일한 수준으로 예술체육요원이 되었다. 4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한국기원에서 예술/체육분야의 일환으로 복무하게 된다.

  • 동양증권배 특례자
이창호(3, 4회 동양증권배 우승)
  • 응씨배 특례자
최철한(5회 응씨배 준우승)
  • 후지쯔배 특례자 (참고로, 후지쯔배는 2011년을 마지막으로 대회가 없어졌다.)
송태곤(16회 후지쯔배 준우승)
박영훈(17회 후지쯔배 우승)
박정상(19회 후지쯔배 우승)

2009년부터는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로 인정받고 또 바둑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체육특기로 분류되어 여타 스포츠와 같이 아시안 게임 및 올림픽 메달 획득 규정과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지금은 해군에서 바둑 특기자를 소집하고 있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이 이세돌 九단이 바둑을 잘 둬서 예술체육요원(병역)을 받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학력에 의한 면제(초졸-中3자퇴)이다. 비슷한 경우로 목진석 九단(중퇴)이 있다.

바둑이 올림픽에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됨에 따라 이후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정확하게 나온 바 없다. 바둑계에서는 바둑이 아시안 게임에 다시 합류하지 못한다면, 예전 처럼 예술체육요원 제도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10 바둑과 인공지능

바둑/인공지능 항목 참고.

11 바둑 관련 인물

기사 등 바둑 관련 인물은 바둑 관련 인물 문서 참조.

12 기전

  • 해외
    • 일본 7대 타이틀전 - 7대 타이틀을 각각 1번 이상 차지한 경우 그랜드 슬램(조치훈, 장쉬, 이야마 유타), 기성(棋聖), 명인, 본인방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한 경우 대삼관(大三冠 - 조치훈, 이야마 유타)
      • 기성(棋聖)전 - 이하 리그전에서 도전자를 결정, 도전기 7전 4선승제
      • 명인전
      • 본인방전
      • 천원전 - 이하 토너먼트전에서 도전자를 결정, 도전기 5전 3선승제
      • 왕좌전
      • 기성(碁聖)전
      • 십단전
      • NHK배 - 우승자와 준우승자는 '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 에 나간다
  • 중국갑조리그 - 중국은 바둑리그도 3부리그까지 존재하는데 갑조리그가 중국 바둑리그 시스템중 최상위 리그이고 2부리그는 을조리그, 3부리그는 병조리그로 불리고 있다.

13 바둑 용어

13.1 바둑에 관한 격언들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로 묘하게 모순되는 격언들이 좀 있다. 아래에서 소개할 격언들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고 어느 정도 '최선의 수'를 모색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 정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충분히 무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 곡사궁은 삶, 귀곡사는 죽음으로.
  • 귀에서 시작해서 변을 거쳐 중앙으로.
  • 귀의 빗꼴은 공배가 중요.
  • 귀의 빗꼴은 죽음, 변의 빗꼴은 삶.
  • 귀의 특수성. - 묘하게 비튼 말이 '귀는 마술단지'. 특히 사활관계에서는 정말 마술이 따로 없다.
  • 꼬부림과 빈삼각은 같지 않다.
  • 네 귀를 빼앗기면 필패.
  • 대궁소궁 불상전. - 수상전에서 유가무가는 일반적으로 유가가 이기지만 양쪽이 다 유가일 경우는 집이 큰 쪽이 유리하다.
  • 두점머리, 석점머리는 두들겨라. - 자기 모양은 살면서 상대방의 모양을 쪼그라뜨리는 것이라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괜히 두점머리 두들김이라고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 두 집 내고 살면 진다. - 대마가 두집나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외부에 막강한 두터움을 허용하고 뒷맛까지 모조리 없애서 역전할 여지를 줄여버릴 가능성이 무진장 높기 때문.집 지었는데 이미 다 막아놨어 ㅄ
  • 됫박형은 패로 알라. - 이거, 프로도 무진장 헷갈리는 모양이다. 요다 노리모토가 오오다케 히데오와의 대국에서 착각으로 대마를 죽여버린 일이 있다. 참고로 둘 다 정상급의 기사.
  • 됫박형을 알면 5단급.
  • 들여다볼 때 잇지 않는 바보 없다.
  • 들여다볼 때 이어도 바보. - 하도 예외상황이 많아서 그렇다. 장대말로 안형도 없이 몰리게 된다거나 하는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그럴 때는 변화구가 필요. 보통 주변의 상대 돌이 강할 때 고분고분 잇다가는 크게 말리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다 잡히는 경우도 있다.잇지 않아도 바보, 이어도 바보...잇지 말라는 거야, 이으라는 거야
  • 매화육궁은 죽음.
  • 모르면 손빼라.
  • 밭전자 사이를 째지 마라. - 좀더 강한 표현으로 밭전자 째는 놈 사위삼지 말라라는 표현도 있다.
  • Big은 삶.역시 큰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 빈삼각은 우형의 표본.
  • 빵따냄은 30집, 거북등은 60집.
  • 사귀생 통어복이면 필승.
  • 석점은 중앙이 급소.
  • 선치중 후행마. - 죽임은 젖힘에 있다와 대치되는 격언인데, 사활에서 둘을 적당히 배합해야 실력이 는다.
  • 아생연후살타 - 내 돌을 먼저 살리고 그 후에 상대의 돌을 잡으라는 의미.
  • 양곤마를 만들지 마라.
  • 양날일자로 달아나지 마라.
  • 양씌움을 당하면 필패.
  • 요석은 살리고 폐석은 과감히 버려라.
  • 유가무가 불상전. - 수상전에서 집이 하나 있는 쪽과 집이 아예 없는 쪽이 다투면 집이 있는 쪽이 반드시 이긴다. 다만 여기에는 무가가 안쪽 공배를 다 메우기 전에 유가가 바깥쪽 공배를 다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이걸 두고 홍태선 사범의 경우는 이 격언을 가르칠 때 유가무가 불쌍해로 가르치는데, 대마끼리 얽히고 설켜서 싸움이 날 때 한수 차이로 유가무가로 잡힐 경우에는 정말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는 대국이라고. 정수현 9단이 최명훈 9단과의 시합바둑에서 실착 하나로 수상전에 돌입했을 때 이 표현이 별안간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무참히 얼굴이 일그러졌다고 저술한 책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 바둑, 유가무가 때문에 한수 차이로 수십 점에 이르는 대마가 몰살당했다. 다시 말하지만 딱 한수 차이로!][22]
  • 육사 팔활. - 변의 2선에서 몰릴 때에 돌이 6개가 늘어서 있으면 죽고, 8개가 나면 산다는 말. 7개가 붙으면 패가 나서 반은 살고 반은 죽은 것이 된다. 귀의 2선이나 변의 3선에서는 사사 육활.
  • 2의 1에 급소 있다.
  • 장고 끝에 악수 둔다.
  • 적의 급소는 나의 급소.
  • 좌우 동형은 중앙이 급소.
  • 죽음은 젖힘에 있다.근데 이미 죽었지
  • 직사궁은 삶, 정사궁은 죽음. - 정사궁은 빈 점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뭉친 4궁을 말하는데 포위당한 쪽이 연속으로 두 수를 놓아야만 겨우 살 수 있다. 포위당한 쪽이 한 수 놓으면 어떻게 놓아도 3궁이 되기 때문.
  • 을 모르고는 바둑을 두지 마라.
  • 판육궁은 삶, 귀의 판육궁은 죽거나 패. - 판육궁은 3x2 형태로 된 직사각형의 6궁을 말하는데 귀에 붙어있으면 완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외부 공배가 다 메워진 상태에서는 2의 2 지점에 치중하면 그냥 죽고 외부 공배가 한 점 있는 경우 2의 1 지점에 치중하면 패가 난다.
  • 는 요술쟁이.
  • 한 칸 뜀에 악수 없다.예, 걍 무작정 돌격하죠

14 바둑을 소재로 한 창작물

14.1 만화

국내에서는 '고스트 바둑왕' 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2 애니메이션

  • 프리파라 - 토도 시온이 바둑을 좋아하는 천재 소녀로 등장하며 이후로도 바둑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몇몇 있다. 아예 대국 한 판을 묘사한 것[23]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

14.3 소설

  • 내기 바둑꾼
  • 도기
  • 명인 -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혼인보 슈에이의 마지막 대국을 소설화한 것.
  • 반상의 승부사
  • 피를 마시는 새 - 바둑이 꽤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 우주류
  • 천룡팔부 - 스토리상 두 번 바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은 단예사대악인의 계략으로 석실에 갇혔을 때 구출하기 위해 황미대사가 시간끌기/시선분산용으로 단연경과 바둑을 두는 때고, 두 번째는 소성하의 바둑 묘수풀이 대회에 초대받은 사부를 따라온 허죽이 우연히 소요파와 엮이면서 기연을 얻는 때이다.

14.4 게임

  • 여러 게임 포털의 온라인 바둑 게임 : 메이저 게임 포털은 모두 바둑 게임이 있고, 온라인으로 대국하게 되어 있다. 이 온라인 대국은 PC통신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온라인 게임쪽에서는 상당히 역사가 깊다. PC통신의 텍스트 환경은 바둑을 구현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인데, 바둑판은 ┼, ┌, ┑,├, ┤같은 괘선문자로 그리고, 바둑돌은 ○●, 천원점 같은 건 •등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야기새롬 데이타맨 같은 PC통신 프로그램에는 자체적으로 괜찮은 그래픽을 가진 바둑판을 내장하기도 했다.
    • 타이젬바둑 : 온라인 게임 사이트 중에서는 특히 바둑에 특화되어있다.
    • 한게임 바둑
    • 넷마블 바둑 = 바둑nTV
    • 오로 바둑
    • 엠게임 바둑
    • GoQuest 앱 - 국제 바둑 사이트로 9줄 바둑, 13줄 바둑을 둘 수 있다.
  • 바투(온라인 게임)
  • 바둑2.0
  • 로우바둑이

14.5 영화

14.6 드라마

15 그 외

꼭 바둑이 주요 소재인 작품이 아니더라도 바둑을 취미로 삼는 캐릭터들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무미랑전기서혜라든가, 후궁견환전견환이나 심미장, 경빈이라든가...

15.1 각종 분쟁

15.2 고전 바둑 묘수풀이 학습서

  • 현현기경 (1349)
  • 관자보 (1690)
  • 발양론 (1713)
  • 기경중묘 (1812)
  • 현람 (1833)
  • 사활묘기 (1910)
  1. 碁, 棋, 棊 세 글자 모두 '바둑 기'로 똑같은 뜻의 한자지만 일본에선 碁를(棋는 き라고 읽음), 한국과 중국에선 棋를 주로 사용한다. 其(소리) + 石ㆍ木(뜻)으로 이루어진 형성자인데, 나무로된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두는 것에서 뜻을 취했다.
  2. 순서대로 한국, 중국, 일본이 사용하는 표기이다. 가장 자주 쓰이는 표기는 'Go'.
  3. 비슷한 예로는 선불교를 일본을 통해 받아들임으로 해서 일본어 "젠"이 구미권에서 선을 뜻하는 일반명사가 된 것처럼.
  4. 집은 쉽게 말해서 자기 돌로 둘러싸여진 영역. 물론 일반적으로 이게 클수록 좋고, 바둑의 승리조건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바둑에서 맛은 앞으로 판세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한 가능성 정도로 해석 가능한데, 보통 '맛이 나쁘다'는 건 공격당할 여지가 많은 상황을 뜻하고, '맛을 본다'는 것은 상대방의 급소나 거점을 선수쳐서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나 간을 보는 상황을 뜻한다.
  5. 상대방이 패배를 선언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일종의 기권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둑에서는 상당히 자주 나온다. 끝까지 둬 봤자 패배가 뻔한 상황에 몰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6. 간단히 말해서 우주의 총 원자 개수보다도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7. 일본이 일본기원과 관서기원 두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대만도 대만기원과 해봉기원으로 나눠져 있다. 다만 일본기원이나 대만기원이나 나라이름 딴 기원이 제1기원으로 주도권을 쥐고 통합작업을 하고 있어 관서기원, 해봉기원 주최 대회가 없어지고 입단대회도 통합되는 등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8. 2016년 9월 8일 10:08 기준 알파고와 커제 사이의 Elo 차이가 2 이다!
  9.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신예들인데, 이들은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고 무수한 연습상대와 다양한 중국 내 기전 참여 기회를 제공받기에 세계대회 토너먼트에서 우승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중국의 신예들이 다른 기사들과의 경쟁을 하다보니 하위 단계에서 다른 신예들에게 탈락을 하는 경우마저 발생해 이전 한국의 절대 1인자 체제처럼 독주하는 케이스가 없고 여러 신예들이 차례차례 세계기전을 하나씩 우승하기에 의외의 복병에게 당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10. 프로야구로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KBO 리그보다 실력이 더욱 좋은 메이저리그가 팀도 많고 시장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더욱 기량이 뛰어난 야구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11. 김정은 정권 들어서면서 조선기원(북한기원) 소속 기사의 세계대회 출전에 애로사항이 꽃피는 중이라고 한다. 조선로동당 측에서 국외출장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는 듯. 탈북할까봐... 의외로 김정일 시절에는 조선기원 소속 기사들이 세계대회 많이 나오고, 남한 국내대회에서도 1년에 2-3차례 정도 본선 시드 배정으로 북한 선수를 출전시켜준 적도 있다.
  12. 한국은 한국기원(프로)과 대한바둑협회(아마) 단체가 나눠져 있어 갈등과 반목이 매우 심하다. 기원과 협회를 중재하고 최종적으로는 대한양궁협회대한축구협회처럼 단일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교감이 있으나 임의단체인 한국기원은 '상징성'을, 법정단체인 바둑협회는 '법적근거'를 가지고 반목하고 있어 바둑 단체 통합에 진전이 없다.
  13. 여류기사 쪽이 좀 심했다. 박지은 九단이 입단하고 4년동안 리그 전승자가 안 나와 입단자가 없었다.
  14. 예를 들어 장생은 50년이 넘는 한국프로바둑 역사에서 딱 1번 나왔다(일본에서는 두 번).
  15. 선수들의 성향 상 이에 맞지 않는 선수들이 몇몇 있다. 2000년대에 백의 승률이 더 높았던 조한승 기사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
  16. 6집 반과 7집 반은, 7집 덤을 기준으로 동률 시 흑과 백의 승리 여부가 반대로 판정되는 하나의 차이로 보일 뿐이라 유리한 정도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선수들의 수읽기 과정에서는 반집보다도 더 세밀한 단위의 수읽기가 전개된다고 한다. 실제로 박영훈 九단의 경우,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상태에서 1/16단위의 집계산까지 해낸다(...). 즉, 이런 수읽기 과정까지 반영한 결과를 보았을 때 유리한 정도는 6집 반의 흑이 7집 반의 백보다 덜하다는 것이다.
  17. 2015년 후반기 중국 1위 프로기사인 커제의 경우 7집 반은 백 필승에, 6집 반 경기도 백이 더 자신있다고 인터뷰했었다.(실제 승률도 백이 더 높게 나왔다.) 2015년도 LG배 8강에서 강동윤을 상대로 (흑백을 가리기 위한) 홀짝을 맞추었음에도 커제가 흑을 잡았다는 사실에 많은 기사들이 의아해했을 정도였고, 그 의문에 걸맞게 강동윤에 패배하였다(...) 참고로, 중국 공식기록에 따르면 커제는 2015년도에 중국식 룰로 백번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12월 30일 2015년 마지막 백번에서 이세돌에게 패배하였다!!
  18. 현재 사용하는 9화점이 아닌 16화점식의 바둑판이다. 19x19인 것은 현재와 같다.
  19. 756년에 작성된 도다이지 헌납기록(東大寺献納目録)에 백제 의자왕이 당대 중신이었던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일본의 일부 혐한들은 이 기록을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서 거짓말로 치부하기도 한다(...)
  20. 현대바둑 최대 연승기록 1,2,3위가 전부 한국기원에 있다. 1위 이창호 41연승, 2위 김인 40연승, 3위 이세돌 32연승. 이외에 30연승 이상 한 현대 프로기사는 한중일대 통틀어서 단 한명도 없다.
  21. 남자프로와 남자프로의 대국에서는 타협이 자주 나온다. 극단적으로 대마 수상전으로 치닫는건 바둑이 그 자리에서 끝나기때문에, 서로 피하려고 한다. 이걸 바로 '타협'이라고 하는 것. 여류기사들 대국에서는 타협 없이 강대 강으로 충돌해서 대마 수상전 및 거대 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보는 사람은 재미있을 지 몰라도 이런 대국은 바둑 수준 자체도 낮다고 치고(전성기의 이창호알파고의 대국이 제일 수준이 높게 쳐진다), 여기서 진 사람은 멘붕에 빠져 슬럼프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22. 그렇다고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프로바둑에서는 2수 이상의 수상전은 미리 읽고 애초에 그 길로 가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1수 차이의 수상전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다만 유가무가의 상황에서는 무가쪽이 공통 공배까지 전부 부담해야하므로 이 공배까지 다 자신이 메우고도 겨우 1수 차이로 진다면 억울한 감정이 들 수 있다.
  23. 1수부터 끝수까지 전부 묘사하여 기보로 적을 수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