嫡庶制度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원칙적으로는 양인과 천인. 이후에는 양반, 중인(仲人), 평민, 천민으로 분화되는 신분제도와는 달리 적서제도는 양반계급 중에서 일부 양반 출신이 본처(本妻)가 아닌 기생 또는 애첩 등과의 관계를 통해서 출산한 자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 사이에서 출산하게 된 이들은 본처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적자 출신들로부터 천민 못지않은 천대와 멸시를 받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리 아버지가 양반이라 해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슬픈 사연을 갖고 있으며 어머니들이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대감 또는 대감마님이라 부르라고 권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이 서자들에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적자 형이야 신분차이가 있으니 그러려니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었다. 홍길동전의 경우는 소설적 과장이거나, 당시로서는 아버지의 신분을 확실히 알 수 없었던 천인 신분이었던 어머니 탓으로 보아야 한다.
적자 및 본처 출신의 자식들은 대부분 양반과 기생 및 애첩 등에서 출산하게 된 자식들을 서얼 또는 서자(庶者)라고 부르며 이들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얼 및 서자 출신의 경우 적자 출신과는 달리 사실상 고위 관직에는 등용될 수 없었으며[1] 하위직에서 전전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정조 대에 서얼 출신들은 중인들과 함께 소청운동을 벌여 관직 진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정조는 그들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하여 불만을 다독이고자 했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1895년 을미개혁을 통해서 사실상 폐지되었고 일부 보수층에 의해서 어느 정도 존재하였다가 일제강점기 때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 얼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대감마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적서제도 때문이었다.
드라마 닥터 진에 나오는 김경탁 역시 작중에서는 서얼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대신 대감마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고위관직으로 가는 지름길인 청요직에 오를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