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 홍길동전이라는 고전소설이 아닌, 홍길동이라는 의적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사례는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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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설) 됴션국 셰둉대왕 즉위 십오년의 홍희문 밧긔 한 재상이 있스되 성은 홍이요 이름은 문이니..."[1]
The coin on the red way

빨간 길의 동전
사실 홍길동으로 만든 이다

최초의 국문소설로 알려진 허균의 고전 소설. 구운몽처럼 조선시대의 라이트노벨이라는 언급도 있다(...). 주인공이 벼슬을 못해서 깽판치는 해석도 있지만 매우 잘못된 왜곡이다.[2] 정확한 창작년도는 알수없다. 허균의 문집에는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이 없기에, 그가 저자라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허균과 동시대의 인물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문고에서 허균이 저술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주인공 홍길동은 실제 도적이었던 홍길동(洪吉同)을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洪吉童) 이라서 한자가 나르다. 일부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한자가 같은 것으로 나오지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을 확인해보면 소설 주인공과 실존 인물은 서로 한자가 다름을 알 수 있다.

1.1 작가 소개

작품이 나왔을때 '균이 홍길동을 지었는데 수호지와 견줄만 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허균의 직접적인 멘트는 없다. 그 이유는 왕정국가였던 조선에서 허균이 역적으로 몰려서 사형 당했기 때문이다. 덤으로, 자기 책에 "내가 바로 장안의 화제가 된 금서의 저자임!" 하고 자랑하는 자폭성 멘트를 쓸리가 없었을테니 스스로 밝힐 일은 없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그래도 허균의 저서는 일부분이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다.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도적질로 깽판을 치고 왕조를 뒤흔든다"라는 설정은 이후 허균의 서자 친구들이 일으킨 칠서의 옥이나 허균 자신의 인생과도 상당히 맥락이 통한다. (...). 허균 자신은 적자였지만 말이다.

2 작품 소개

홍길동의 어머니 춘섬은 홍판서의 첩이였다.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호부호형을 요청하지만, 이를 거절당하여 집안에서는 더욱 고립되고, 상황이 꼬여서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야인이 되어버린다. 그는 도적단을 접수하여 정의의 비밀결사 활빈당을 세우고 조선 전국을 무대로 의적활동을 하던중, 길동의 형과 아버지를 인질(?)로 잡은 임금 앞에서 일부러 잡혀주지만, 유유히 탈출하고 조선의 형조판서 자리를 얻은 후에, 저도라는 섬으로 부하들을 데리고 갔다가 옆의 율도국으로 쳐들어가 결국엔 율도국의 왕이 된다.

홍길동전의 구성은 영웅 소설의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고귀한 혈통, 비정상적 출생, 비범한 능력, 위기, 위기를 벗어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전형적인 고전소설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입신양명'만이 제일가치였던 1차원적인 단순한 오락소설들보다는 발달한 주제를 보여준다.

이 작품이 던진 교훈은 주로 서얼제도의 문제점, 그리고 민초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계급제도의 모순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계몽소설로 보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다. 그로 인해서 단순한 활극소설로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존재한다. 다만, 이는 대중장르를 겸하는 고전소설의 근본적인 속성이기에, 지나친 폄하라고 할 수도 있겠다.

2.1 작품의 의의

홍길동전에서 "평등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홍길동 개인의 입지전일 뿐, 결코 계몽적인 메시지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에 대한 비평은 계몽성을 내부에 숨긴 대중소설이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순한 오락소설이냐를 분간하려는 논쟁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적서 차별 제도와 탐관오리의 횡포를 비판한다. 그 당시 사찰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불리는 데 열중했기 때문에, 도적이 되어서 맨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해인사 탈취였다. 즉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볼 수 있다.

홍길동전의 의의는 철학에까지 왕조사상의 프로파간다 때문에 사회적인 발전이 늦었던 동아시아에서, 서얼제도라는 '피부에 와닿는' 요소를 통해서 차별제도의 근본적인 모순점을 파헤치고, 이를 대중소설로서 널리 읽히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비교대상은 현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당시의 계급제도를 두둔하는 프로파간다, 이에 길들여진 대중소설들 사이에 계몽적인 성향을 스며들게 만들었던 작가의 통찰력이라고 보아야한다.[3]

2.2 최초의 국문소설인가?

조선시대에는 보통 한글창작은 따로 표기하던 관례가 있었다. 하지만, 홍길동전은 특별히 한글소설이라는 언급이 남아있지 않다. 덕분에,원본이 되는 한문본이 존재할 것이라는 설이 많다. 하지만 현재는 원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심증에만 그치고 있다. 가장 오래된 판본도 1680년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허균은 1618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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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한글 소설로서, 설공찬전은 국문본이 1997년에 발견되면서 학계에 충격을 주었지만, 그 후 논의를 통해 설공찬전 국문본이 번역본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제자리 걸음이 되었다. 즉 설공찬전의 원작은 한문으로 지어진 것이다. 당대의 사회상으로 본다면, 홍길동전도 이렇게 한문으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작 한문으로 먼저 제작된 원본이나 언급은 발견된 적이 없어서 심증으로만 그친다..

홍길동전이 비국문소설일지도 모른다는 논란은 상식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추측일 뿐이다. 물론 허균이 죽으면서 저서가 대부분 불태워졌다는 점이나, 당대의 관례로 생각해보면 홍길동전은 한자 원본이 있을 가능성도 높긴 하다. 위키러들은 그저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는 점만 알아두고, 시험문제에서 홍길동전이 비국문 소설이니 아니니 하면서 떼쓰지 말자. 그래도, 최초의 국문소설이라는 평가 자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2.3 홍길동전에 대한 비판과 반박

  • 율도국에서 자신도 왕국을 세웠다?

홍길동은 정작 자신도 왕위에 올랐으므로, 민중을 살피기보다는 전형적인 왕조소설의 인물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활빈당 활동은 뭐지? 심지어, 율도국도 원래 주인이 있는 나라의 왕족을 몰살하고 세우는 것이다. 외딴 섬에 이상국을 세운다는 줄거리로 비슷한 허생전은 "세우려다 말고 그냥 간다"라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애초에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자연주의를 주장한 노자도 왕국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이상사회를 주장했다. 즉, 동아시아에서 왕정은 계급제도가 아닌 체제를 의미하는 개념이었다고 보아야한다. 현대의 평등사상은 사회계약으로 모종의 규칙 때문에 권리가 침해받지 않은 계약 이전 상태의 순수한 권리인 자연권에 의거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정한 자연법 사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신들조차도 계급이 정해져있는 철학적으로 꽉 막힌 상태였음을 감안한다면, 홍길동의 왕이 된다는 마무리를 현대적인 사상으로 비판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리"라는 개념은 존재했다. 물론 홍길동이 소위 문명국의 출신이고 조선과 중국에 조공하게 되었으므로 춘추필법에는 기존 "오랑캐" 왕가들 보다는 더 긍정적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족들의 씨를 말리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도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당장 조선 태조 이성계(이단)이 왕 씨들의 씨를 말렸을 때 개성 지방에서 이성계를 욕하는 민담이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자.

이런 비판 때문인지, 일부 판본에서는 섬을 접수하는 과정이 요괴퇴치로 바뀌어있다.[4] 그리고 홍길동전의 주제의식을 현대적인 평등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왕정)을 만든다' 는 생각으로 생각해본다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 자신이 서자였음에도 첩을 두었다?

홍길동전은 어디까지나 첩의 자식이 차별받는 서얼제도를 비판하면서 계급제도의 모순을 통찰한 작품이다. 즉, 처첩제도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어야한다. 본질적으로,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에서 서얼을 차별하는 의식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작중 내용에서 홍길동은, 백소저와 조소저 두 아내를 두었는데 그 사이에서 3남2녀를 낳았고, 그 중 장남을 세자로 삼고 나머지는 모두 대군으로 삼았으니 결코 자식들을 차별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애초에, 조선시대에 첩을 둔 것을 비난한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조차 까여야 한다. 또한 조선시대 첩의 지위는 생각보다 낮지 않았다. 본처에 준하는 지위가 인정됐고, 재산상속권도 인정되었다. 물론, 현대적인 가치로 본다면 처첩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까일 여지가 있다.

  • 홍길동이 왕이 된다는 마무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홍길동이 왕이 된다는 마무리는 천한 출신을 가진 인간도 왕이 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테마를 보여준다고 해석되는 편이다. 노비의 자식=왕이라는 등호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홍길동전의 마무리는 당대 기준으로 파격적인 것이었고, 단순히 평등의식이 없는 영웅론적 왕조소설이라고만 평할 수가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당장에, 현실에 존재하는 건국설화에서는, 왕족이 하늘이나 자연에서 출생한다는 신화소를 통하여, "왕족이 '인간들과 다른 존재'임을 강조하는" 신화들을 강조한다. 심지어 현대의 독재자들조차도 종교와 권위, 태몽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혈통을 신성한 것으로 포장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5]

3 총평 -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오락소설

홍길동전에 대한 비판들은 전부 근대 이후의 가치관을 기준에 두고 있다. 유럽에서조차 일부일처제는 기독교를 통해서 받아들여지는데 수백년이나 걸렸고,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아직도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는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16세기에 동양의 조선에서 나온 소설이 이 모든걸 동시에 생각해 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는건 말이 안 된다.

홍길동전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습은 동양철학 전반의 한계이지, 허균이 주장했던 온건한 신분제 개혁과 양립 불가능한 소재들도 아니다. 즉, 홍길동전은 수백년 전의 대중소설에서 계급사상의 모순을 통찰하고 이를 퍼트린 비판 능력으로 고평가를 받는 것이다.

물론,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엄청나게 진보했던 서구의 사회철학에 비할 작품은 아닐 수 있다. 토머스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담긴 리바이어던은 1650년대에 출판되었는데, 홍길동전은 학술서가 아닌 대중소설이니만큼 단순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천한 존재가 왕이 될 수 있다는 마무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당대 동양사회에서는 쉽사리 떠올려선 안 될 개념을 대중소설로서 읽히게 만들었다는 의의는 분명히 낮게 평가할 수 없다.

즉, 홍길동전의 한계는 동양 사회의 사상적인 한계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심지어,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권위주의에 찌든 사람들은 홍길동전의 주제를 정치적으로 곡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천한 놈이 감히 나랏님에게 대드는 내용이라고 욕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흠좀무.

결국 홍길동전이 당대 조선 사회를 기준으로 상당한 파격적인 메시지를 던졌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홍길동 같은 인재가 사회제도적으로 차별받았던 계기, 즉 '호부호형'이 자유롭게 허락되는 세상이 나타나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는지를 생각해보자.

4 기타

홍길동은 이 소설로 인해 유명해져서, 미국의 John Doe와 같은 '대표적인 이름' 위치에 올라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홍길동의 고향이 어디냐를 문제로 다툰일도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세종대왕(장헌대왕) 때이기 때문에 세종이 그다지 명군이 아니었다는 떡밥이 뿌려진 적이 있다. 그러나 허균 자신이 역사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당시로서는 오래된 임금의 이름을 끌어온 것 뿐이다. 따라서, 딱히 세종에게 반감을 가진 건 아닌 듯하다. 허균 자신도 임금의 신임을 받아 출세했으며 (결말은 참혹했지만) 홍길동도 왕이 된 점을 보면 조선왕조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완판본에서 나와있듯이 세종 15년에 아버지가 동침해 애를 가졌으니 실제 홍길동의 출생은 10개월 뒤인 세종 16년(1434년)일테고, 11살에 집을 뛰쳐 나왔으니 세종 27년(1445년)이다. 이후 천하를 주유하다 도적단의 두목이 되어 활빈당을 세웠는데 도적단의 두목이 되려면 아무리 못해도 15살은 넘었을 테니 1450년이후일 것이다. 세종대왕의 제위기간은 1450년까지니까 실제 홍길동이 활약한 것은 당연히 문종 이후가 된다. 게다가 소설 첫머리(본 항목 맨 위 사진) 세종 15년부터 "사방의 일이 업고 도젹이 업스며 시화연풍하여 나라이 태평하더라."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며 시화연풍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고 되어있는데 허균이 세종대왕을 비판했을 리가 없다.

현대 홍길동의 이미지는 신동우 화백의 명작 만화 풍운아 홍길동으로 인해서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위에서도 비판받았던 중세적인 캐릭터성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위에서 나온 모순적인 캐릭터성이 대규모로 물갈이 되고, 푸른 쾌자초립을 쓰는 이미지도 해당 만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동우 화백의 만화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돌아온 영웅 홍길동 참조.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2011년에 개봉한 홍길동 2084도 있다.

고우영판의 경우 홍길동이 양반의 서자가 아닌, 모함으로 몰락한 양반의 자제로 나온다. 작품 내 철학 왜곡!

박수동 화백의 홍길동과 헤딩박도 유명하다.

뱀발로 실질객관동화 60화에서 이걸 막장 드라마에도 쓸 수 있는 재료라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름으로 부르면?

5 게임

위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롤플레잉 게임. 에이플러스 제작. 1993년 발매. 동료는 없고 고정된 화면의 실시간 전투 방식이었다.
잠뿌리 게임 리뷰

1995년에 2편도 나왔지만 드래곤즈 레어 짝퉁이 되어 망했다. 잠뿌리 리뷰

소설이 아닌 만화를 포함한 기타 창작물은 홍길동 항목 참조.

  1. 위 사진은 홍길동전 완판 36장본으로 학계에서 홍길동전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판본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본보다 훨씬 후대에 작성된 것이지만.
  2. 홍길동이 가출하고 사회에는 편입될 수 없는 '야인'이 되는 계기는 아버지에게 '호부호형'을 거절당했다는, 혈육인데도 불구하고 계급제의 선을 건드렸다는 카스트적인 질서에 의한 모순이다. 이후 상황이 꼬여서 어쩔 수 없이 야인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주인공이 깽판을 치는 이야기도 아니다.
  3. 당시의 소설들을 현대로 치환한다면, "재벌 2세와 공장장님이나 자본가님들은 하나님의 혈통이니 천민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라는 프로파간다를 지닌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팔리고 있었던 시대였다. (...). 이는 다른 중세국가들, 특히 동양국가에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홍길동전은 중세적인 아나키즘으로 서얼제도와 왕통사상을 비판한 작품이다.
  4. 참고로, 이때 퇴치하는 괴물이 한국 요괴 중에서 은근히 오우거랑 비슷한 위치에 해당하는 지하국대적의 카테고리에 속한 괴물이다.
  5. 위에서 적혀있지만, 당시에는 계급 사상이 더욱 철두철미해서, 같은 가족끼리도 서얼과 노비들은 적자들에게 도게자를 기본으로 하거나, 대중소설들마저도 죄다 정숙한 선비와 하늘의 혈통 따위를 강조하는 주인공들만 성공하는, 근본적으로 계급 사상에 모든 사람들이 푹 썩어버린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