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1 개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일어난 대규모 선수 이탈 사건이자,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 프로레슬링 흥행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사건. 사실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이 사건 이전에도 90년대에 '미스터 프로레스'라고 불리던 일본의 대표 프로레슬러인 텐류 겐이치로가 주동이 되어 대규모로 전일본을 탈단해 WAR라는 단체를 만든 적이 있을 정도로 대규모 선수이탈을 자주 겪은 단체인데, 해당 문서는 2000년 1차와 2013년 2차로 나뉘어지며 직간접적으로 프로레슬링 NOAH와 관련된 두번의 사건을 기술한다.

2 1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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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NOAH의 서막을 알린 사건이다.

1999년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창립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시점에 있었다. 그 중심에는 전일본 5천왕의 정점인 미사와 미츠하루가 있었으며 미사와는 전일본의 2대 사장으로 임명되어 전일본을 이끌 위치로 올라섰다.

하지만 미사와는 이 위치를 단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직함은 사장이지만 경영권은 커녕 전일본의 지분도 없으며, 실질적 단체의 수익은 자이언트 바바의 부인인 바바 모토코가 다 가져가며 사장으로써 신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혁신안이 번번이 모토코에 의해 막혔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미사와 본인의 급여가 당시 신일본의 에이스인 무토 케이지의 1/3, 신일본 주니어급의 가네모토 코지와 동급이었고 그 밑의 선수는 그보다 아래의 대우를 받는 심각한 저임금상태였다. 선수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이언트 바바라는 거목의 존재덕에 그를 따르고 있었지만, 모토코의 경영간섭은 미사와가 제대로 전일본을 이끌기에는 너무나 지나쳤다.

결국 미사와는 모토코의 간섭을 거부하며 항의했고, 모토코는 그를 사장직에서 해임한다. 미사와는 사실상 모토코와 결별했으며 스승인 자이언트 바바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따르는 선수들과 함께 새 단체를 만들고자 했다. 여기에 자신의 평생 동지였던 코바시 켄타를 비롯한 전일본의 대부분 선수들이 호응해 전일본을 탈단해 새 단체를 만든다. 그것이 바로 프로레슬링 NOAH의 태동이다.

자세한 내용은 당 홈페이지 참조

3 2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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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일본 선수 이탈로 인해 새롭게 개양한 무토 케이지의 단체 WRESTLE-1의 창단 멤버들.

3.1 1차 이탈사건부터 2차 이탈사건 사이

그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로스터에 선수가 달랑 3명이 남는 단체 존립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때마침 무토 케이지안토니오 이노키의 격투기 노선에 반발하여 신일본을 탈퇴하고 코지마 사토시 등과 함께 전일본에 전격 입단하였다. 동시에 무토는 모토코에게서 전일본의 주식과 권한을 모두 넘겨받아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취임 이후 특유의 수완으로 다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정상급으로 올려 놓았다. 하지만 2011년 베테랑 레슬러였던 TARU가 슈퍼 헤이토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을 지고 사장에서 사퇴하였으며, 우치다 마사유키(内田雅之)가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무토는 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컸다.

3.2 발단

한편 2012년 11월 1일, 기업 회생을 주로 맡고 있는 주식회사 스피드 파트너스가 전일본을 인수하였고 이에 따라 스피드 파트너스의 사장인 시라이시 노부오(白石伸夫)가 전일본의 새로운 오너에 취임하였다. 시라이시는 오너에 취임하면서 전일본을 개혁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정책들을 발표했는데, 그러면서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신일본의 키타니 오너를 비판하면서 어그로를 잔뜩 끌게 되었다.

시라이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서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었는데, 이노키나 할 법한 실전 프로레슬링을 주장하는가 하면[1] 신일본 선수들 중 제대로 된 선수들이 한 명도 없다는 등의 발언을 계속했다.[2] 문제는 이것이 신일본의 이노키즘에 반발해 탈단한 무토 케이지에게는 제대로 뒤통수를 갈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프로레스 러브를 외치며 AV회사의 돈까지 끌어오는등 갖은 노력을 다했던 무사장 입장에선 시라이시의 행동이 자신의 철학과는 반대였기 때문에 사이가 봉합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져버렸다.

3.3 전개

그러던 와중 6월 1일을 기해 시라이시 본인이 우치다 노부유키를 쫓아내고 직접 사장에 취임했는데, 하필 이 날 무토 케이지가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일이 커졌다. 선수들 대부분은 무토를 존경하고 있었는데, 그런 무토가 회장직을 사퇴하자 많은 선수들이 SNS를 통해 곤혹스러운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6월 5일에는 무토가 주간 프로레슬링[3]을 통해 시라이시가 종합격투기를 하자고 주장했으며 더 락을 불러오고 싶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고[4], 전일본 이탈에 대해 시사하기도 하였다.

3.4 선수 이탈

잡지를 통해 무토의 전일본 이탈이 기정사실화되자 다른 선수들도 하나둘씩 트위터블로그, 페이스북을 통해 이탈이나 잔류를 선언하기 시작했고, 이 선수들이 6월 30일 흥행을 마지막으로 떠난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많은 팬들은 2000년 미사와가 주도한 이탈사건에 이어 제2의 이탈사건이 일어나게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결국 7월 1일을 기해 전일본은 시라이시를 사장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로 운영된다고 밝혔고, 무토 케이지는 7월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WRESTLE-1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설립한다고 발표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이탈한 선수는 무토를 포함해 11명으로 확인되었다.

3.5 영향

전일본의 로스터 수는 당장 이전의 절반 수준인 10명 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으며, 평소같았으면 한 흥행에 7~9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겠지만 분열 직후 처음 열릴 흥행은 5경기 수준으로 치러지게 되었다.

이후 미사와 사후 내부분열을 겪으며 2013년 여름 NOAH를 탈단한 아키야마 준 및 그의 파벌인 선수들은[5] 이전부터 프리 신분으로 전일본에서 뛰고 있었는데, 무토의 이탈후 전일본은 이들을 받아들여서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긴 했다. 이후 아키야마 준이 전일본의 새로운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아키야마 준의 말로는 전일본이라는 명칭도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한편 무토 케이지의 WRESTLE-1은 이탈후 TNA등과 협력 흥행에 참가하며 경험을 쌓은뒤 9월 8일 첫 단독 흥행을 가질 예정이다.
  1. 사실 당시 일본에서는 실전 격투기는 한물 간 상태였고 오히려 정통파 프로레슬링이 다시 대세가 된 상황이었다. 특히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경우 타나하시나 나카무라, 오카다 등의 선수들이 대박을 쳐서 확고부동한 업계 1위에다 전세계적으로도 WWE 다음갈 정도로 잘나가고 있었다.
  2. 하지만 앞서 말한 타나하시나 나카무라, 오카다 등은 상당한 미남에 몸도 비교적 좋은 편이며 무엇보다 실력 면에서도 최고급이며 명경기들을 많이 배출한, 그야말로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프로레슬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3. 일본의 대표적인 프로레슬링 전문 주간지
  4.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락은 이미 프로레슬러로서 정점에 선 인물이며 또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락이 레슬매니아에 참전한 것은 락이 원래 WWE 출신이고 락이 할리우드로 진출하는데 WWE가 협력을 제대로 해 준 점도 있어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일 뿐이다.
  5. 아키야마 준, 시오자키 고, 가네마루 요시노부,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