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 | |||||
신일본 프로레슬링 | 프로레슬링 NOAH | 전일본 프로레슬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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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 WRESTLE-1 |
全日本プロレスリング
All Japan Pro Wrestling
1 개요
1972년 자이언트 바바가 설립한 프로레슬링 단체.
오늘날 신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와 함께 일본 3대 메이져 프로레슬링 단체로 꼽힌다. 당시 프로레슬링의 경기 방식인 자이언트 바바의 의해 제창된 왕도 스타일을 슬로건으로 내걸은 단체이다. 왕도 스타일 덕분에 경기력면에서는 "역시 전일본"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이후로 사장으로 무토 케이지를 영입하면서 컬러가 변했다. 원래는 현재의 NOAH와 비슷한 이른바 '왕도' 프로레슬링을 표방하였으나 무토 영입 후 프로레슬링 러브라는 엔터테인먼트 노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차 이탈 사건 이후 전일본 5강중 한명인 아키야마 준이 사장에 취임하며 본래의 노선으로 회귀를 한다.
2 왕도 스타일
왕도 프로레슬링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설립자이자 오너였던 자이언트 바바가 표방한 당시 단체 운영의 방침이자 경기 스타일을 말한다. 캐치 프레이즈는 "밝고 즐겁고 격렬한 프로레슬링".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최대한 피하지 않고 받으며 그것을 극복해 승리하는 스타일의 프로레슬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경기 스타일 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상대방의 기술을 모두 받는 프로레슬링 만의 미학' , '불필요한 연출 배제', '경기를 임하는 태도의 진지함' 등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구현했던 모든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왕도 프로레슬링을 표방할 당시 메인이벤터가 사천왕(미사와 미츠하루,카와다 토시아키,코바시 켄타,타우에 아키라)이였기에 이들의 경기 내용이 가장 큰 주체가 된 것이 사실이다. 상기한 캐치 프레이즈 대로라면 왕도 프로레슬링에서 이들이 담당한 영역은 '격렬한' 부분이었으나 팬들이 받아들이기에 경기의 수준과 임펙트가 굉장히 컸기에 그 시합 내용 자체가 왕도로 대표된 경우라 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상기한 '밝은' 영역은 당시까지 일본 프로레슬링에 만연되었던(그리고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장외 싸움에 의한 양자 링아웃이나 반칙에 의한 불완전 결말 등 어두운 요소를 없애겠다는 의지 표명이었으며, '즐거운' 영역은 당시 세미 리타이어 상태였던 자이언트 바바를 포함한 노장들의 코믹한 오픈 시합으로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왕도 프로레슬링은 밝고 즐겁고 격렬한 세가지 영역을 모두 포함한 단체의 색깔이라 말할 수 있다.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자면 80년대 '아메리칸 프로레슬링' 스타일을 일본에서 보여주는 방식의 흥행을 하던 전일본 프로레슬링이 상기한 경기 스타일에 대한 팬들의 염증과 90년 텐류 겐이치로의 SWS 이적사태, WWE(WWF) 전미 점령으로 인한 미국 프로레슬러 방일 제한 등으로 변화를 모색하던 중 표방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당시 거물들끼리의 대결은 당연시되었던 양자 링아웃, 반칙 패배 결말 등을 없애고 무조건 경기로 결말을 봐야했기에 선수들이 가진 역량은 모두 경기에만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격렬한 시합에 다소 무리가 있었던 노장들은 오픈 시합의 코믹한 부분으로 자리를 비켜주니 메인이벤트급 시합은 회를 거듭할 수록 대담해지고 치열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기술을 받는 미학'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 기술의 위험성은 점점 높아갔고 그것을 극복하는 투지의 묘사를 위해 카운트 2.9로 표현되는 아슬아슬한 장면 묘사는 계속 정교화되면서 경기의 질이 올라간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기술을 받는 미학'이 시각적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 관절기는 가급적 배제되고 타격기와 수플렉스 계열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런 스타일은 전일본 이탈 전의 텐류 겐이치로가 표방했던 '지방 흥행이라도 격렬하게 최선을 다한다' 라는 태도를 담은 격렬한 스타일과 점보 츠루타 등의 전통적인 프로레슬링 스타일, 그리고 초슈 리키가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줬던 빠른 속도의 공방이었던 '하이스퍼트 레슬링'이 당시 젊은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어 탄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에이스였던 미사와 미츠하루 등을 포함한 전일본 선수 90%가 이탈해 노아를 창설하면서 비슷한 경기 내용을 노아에서 보여주었고(비록 노아의 캐치 퍼레이즈는 '자유와 신념'이었지만 경기 내용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무토 케이지가 사장이 되고 다소 연출적인 요소가 가미된 '패키지 프로레슬링'을 주창하면서 왕도 프로레슬링이 갖고 있던 고유한 색채는 많이 희석되었다.
위에서 말했던 왕도 프로레슬링의 경기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모든 매니아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갈수록 높아져가는 사용 기술의 위험성으로 인해 (속칭 수직낙하 공방으로 말해지는) 노아의 사장이자 왕도 스타일의 대표라 볼 수 있는 미사와 미츠하루의 급사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3 문제점
과거부터 연출력이 매우 떨어졌다. 메인이벤터조차 단벌타이즈에 하나같이 모든 레슬러들의 캐릭터성이 부족해 대부분 레슬러들이 하나같이 복제인간, 즉 성격이 비슷해보이고 그외 캐릭터성을 알수있는 난입/사고/세그먼트 그런요소들이 배제되어 꾸준히 시청하게 하는 드라마틱한 전개에 있어 매력이 부족한 편이다. 경기력은 월등하나 즉 레슬러들을 상업적으로 파생 시킬수 있는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
그저 단순히 프로레슬링 공식전 또는 대회 그 자체 같을 뿐 진검승부 자체로 경기자체에는 몰입하게 하는 요소가 있으나 그 외적인 요소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 마저도 경기력이 부족한 레슬러들은 그 장점을 살리지못해 그당시에 사대천왕+노장(텐류 외 죠니 에이스.스턴 한센 등등) 이외에는 대부분 묻히는 경향이 있다. 쇼맨쉽 베이스의 레슬러는 아이러니 하게도 전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는 곧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경기는 "진지함" 쇼맨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인지 구장내부도 함성소리를 제외하곤 매우 조용한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다. 7~80년대는 선역으로 자이언트 바바, 점보 츠루타, 펑크 형제가 있었고 악역으로 압둘라 더 부처, 타이거 제트 싱, 스턴 한센, 브로디 브루저를 중심으로 대결이 펼쳐졌는데 90년대 들어서 4대 천왕의 탄생과 함께 엄근진진검승부 중심으로 옮겨진 것. 일본인 악역의 부족이 원인인 듯 하다.
전일본의 전성기를 이끈 4천왕의 수장격인 미사와 미츠하루 조차 선수들의 네임벨류만으로 흥행을 매진시키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신일본은 자본력으로 도쿄돔에 자주 입성하는듯 대형이벤트를 많이 벌여왔지만 그에 반해 전일본은 소, 중형구장에서 주로 시합을 갖는다.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는것은 좋은 점이지만 단체 규모면에선 신일본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당시 신일본에 비해 전일본 레슬러들이 보수가 낮아 불만사항이 많았을거라 추측되나 이는 곧 자이언트 바바의 카리스마로 어떻게든 단체의 붕괴는 막았지만 결국 사후 레슬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4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1999년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 이후 미사와 미츠하루가 사장으로 취임해 그 명백을 이어 가기에 이르지만 미사와 미츠하루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경영상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수정하기 개혁을 주장하지만 경영진과 고질적인 트러블으로 인해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발발 그 사건의 중심 미사와 미츠하루는 전일본을 탈단해 단체를 창설한다. 그리고 미사와를 뒤따르는 사대천왕(단 카와다 토시아키는 전일본에 잔류한다) 및 전일본의 추측이 대량 탈단하여 단체를 정립하는데 바로 프로레슬링 NOAH이다. 프로레슬링 NOAH 역시 전일본의 왕도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즉 전일본을 뿌리로 둔 파생(2계) 단체라고 말할수 있다. 다만 프로레슬링 NOAH는 전일본의 일부 문제점들이 보완되어 진보적인 단체성향을 띄우게 된다.[1] 프로레슬링 NOAH는 교류에 폐쇄적이던 전일본과 달리 타단체와의 교류등으로 전일본시절의 폐쇄적인 장막을 걷혀내기도 했다.
이후 전일본은 무토 케이지등을 영입하여 과감하게 개혁을 단행하여 단체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성공하며 대규모 선수이탈로 무너질듯한 전일본을 3대 메이저 단체로 유지시키는데는 성공하나, 그 중심 무토 케이지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며 사장자리를 사퇴 탈퇴 선언을 하면서 제2의 전일본 선수 이탈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그 자리는 아키야마 준이 매꿨다.
하지만 현 상태는 매우 위험한 상태로 비슷한 위험을 겪고 있던 프로레슬링 NOAH가 신일본의 모기업 부시로드에 인수되고, 스즈키군의 침공으로 나름 이슈를 끄는데 성공하며 반등의 기회를 보이곤 있지만 전일본의 경우에는 잇단 메인급 선수들의 계약 해지와 그로인한 경기력의 퇴보, 그리고 사장 아키야마 준에 대한 안좋은 소리까지 나와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5 게임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수많은 게임으로 발매 되기도 하였다.NCS에서 개발한 2D 시절의 게임은 그저 그런 평가 였으나 3D게임으로 재현된 전일본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게임들
PS1으로 개발된 게임으로 지금은 도산한 HUMAN사에서 개발하였다.스태미너가 너무 줄어들어 짜증나는 점이 있긴하지만 게임성은 우수하다는 평가 이 게임의 시스템은 "킹오브 콜로세움" 으로 이어진다.
N64로 개발된 게임으로 WWE 노머시를 만든 AKI사가 개발했다 버추어프로레슬링2 엔진을 개량하여 만들었으며 하이브리드 레슬링개념을 도입하여 MMA VS 프로레슬링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WWE NOMERCY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위로 올라타는 마운트가 가능한 MMA 스타일 프로레슬링 스타일 두가지 재미를 느낄수 있다
SEGA 사에서 전일본을 베이스로 만든 프로레슬링 게임 아케이드,드림캐스트로 출시되었다 원조는 STV로 발매된 전일본 프로레슬링 : 피처링 버추어 빠른 전개와 버튼 타이밍에 의한 연계기 밎 심리전으로 왕도 스타일에 가장가까운 재현율을 보이고 있다. 게이지가 차오르면 단발성으로 봉인기등을 사용할수 있고 조건에 의한 숨겨진 기술살인기등이 존재한다.
팬서비스를 위해 버추어 파이터 캐릭터인 울프,제프리,카게.등이 참전하기도 했다.
그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타이틀로 한 게임은 발매되지는 않고 있다
6 타이틀
- 삼관 헤비웨이트 챔피언 : 미야하라 켄토 (55대) ★★★★★
- 차기 도전자 : 스와마
- 세계 태그팀 챔피언 : 오카바야시 유지 & 세키모토 다이스케 (72대) ★★★★
- 차기 도전자 팀 : 제우스 & 더 보디가드
-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 타카오 소마(DDT 프로레슬링) (41대) ★
- 차기 도전자 :
-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 아오키 아츠시 & 사토 히카루 (99대) ★★
- 차기 도전자 팀 :
- GAORA TV 챔피언 : 나카지마 요헤이 (13대)
- 차기 도전자 :
7 연중 토너먼트 & 리그전
8 유명 인물
9 소속 선수
전일본 프로레슬링/선수 목록 참조- ↑ 캐릭터성 일부 도입, 기술의 강도 완화, 교류 강화, 젊은 선수들 육성, 화려한 등장씬 등.
- ↑ 신일본의 G1 클라이맥스와 비슷하게 리그 경기이다. 레슬링 리그 경기는 여기가 원조이다. G1은 의외로 좀 늦게 1991년에 생겼다.
- ↑ 1977년부터 시작된 태그팀 리그로 초기에는 NWA,AWA 용병들이 다수 참전하고 일본선수는 자이언트 바바, 점보 츠루타,텐류 겐이치로+1명 정도만 참가해서 사실상 NWA AWA올스타전 성격이 강했는데 90년대 부터 사천왕이 성장하면서 전일본 소속선수들의 참전이 늘어 나게 되었다.
- ↑ 2013년에 탄생한 체급에 상관없이 진행되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무차별급 토너먼트전. 단체, 체급에 상관없이 시합은 시간무제한 1판 승부로 진행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가을의 제전'
- ↑ 2014년 2월 익사이트 시리즈 에서 새롭게 탄생한, 주니어 헤비웨이트급 선수들의 싱글 리그전.
- ↑ 2014년 10월 부활! 자이언트 시리즈 에서 새롭게 탄생한, 주니어 헤비웨이트급 선수들의 태그 리그전.